243화 제국의 품격
즉위식 다음 날, 전국에 황제 즉위를 선포하는 조문을 반포했다.
봉천승운황제(奉天承運皇帝)는 다음과 같이 조령(詔令)을 내린다.
짐이 생각건대, 단군 이후로 강토가 분리되어 각각 한 지역을 차지하고는 서로 패권을 다투어 오다가 고려 때에 이르러서 삼한을 통합하였다.
우리 태조께서 고려를 계승해 왕위에 오른 이후, 국토 밖으로 영토를 더욱 넓혀 북쪽으로는 말갈(靺鞨)의 지경까지 이르러 조공을 받았고, 남쪽으로는 탐라국(耽羅國)을 차지하여 충성을 받게 되었다.
사천리 강토에 하나의 통일된 왕업(王業)을 세웠으니, 예악과 법도는 당요(唐堯)와 우순(虞舜)을 이어받았고 국토는 공고히 다져져 우리 자손들에게 만대토록 길이 전할 반석 같은 터전을 남겨 주었다.
……근래에 이르러 경장을 이룩하여 독립의 터전을 세우고, 마침내 북벌을 완수하여 국토를 넓히고 자주의 권리를 행사하게 되었다. 이에 여러 신하와 백성들, 군사들이 한목소리로 대궐에 호소하면서 수십 차례나 상소를 올려 반드시 황제의 칭호를 올리려고 하였는데, 짐이 누차 사양하다가 끝내 사양할 수 없었다.
올해 4월 11일 백악산(白嶽山)의 남쪽에서 천지에 고유제를 지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니, 국호를 대한으로 정하고 이 해를 광무 원년으로 삼았다.
……아! 애당초 임금이 된 것은 하늘의 도움을 받은 일이고, 황제의 칭호를 선포한 것은 온 나라 백성들의 마음에 부합한 일이다.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도모하며 교화를 시행하여 풍속을 아름답게 하려고 하니, 세상에 선포하여 모두 듣고 알게 하라!
광무 원년 4월 12일
조문이 반포되자, 전국의 국민은 환호하며 만세를 외쳤다.
"이제 우리 조선, 아니 우리 대한도 당당한 제국이오."
"황제의 칭호를 선포한 것은 온 나라 백성들의 마음에 부합한 일이라고 하시니, 어찌 우리 국민이 기뻐하지 않겠소?"
"그렇소! 우리 모두 함께 만세를 외칩시다!"
"대한국 만세! 황제 폐하 만세!"
황성에서는 황제 즉위 후 7일에 걸쳐 축하 행사가 열렸다.
정동의 여러 공사관과 가까워 서양식 궁전으로 조성되고 있는 경운궁(慶運宮)에서 외빈을 맞이하는 행사가 열렸다. 즉위식에서 면복과 조복을 입었던 이선과 문무백관은 서양식 대례복으로 갈아입었다.
각국 특사와 외교관들이 황제 즉위를 축하하고, 이선은 일일이 이들에게 화답하고 답례했다.
왕족의 서열순에 따라, 독일 제국 빌헬름 2세의 동생 하인리히 대공이 가장 먼저 이선을 알현했다.
"황제 폐하, 즉위를 축하드립니다. 카이저께서도 폐하의 즉위를 진심으로 기뻐하고 계십니다."
"독일 제국의 황제 폐하께서 대공 전하를 친히 보내서 축하해 주시니 감격할 따름입니다. 폐하께 감사의 뜻을 꼭 전해 주십시오."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이선과 하인리히는 잠시 환담을 나누었다.
이선의 예상대로, 대공의 방문은 단순히 황제 즉위를 축하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하인리히 대공은 해군 제독이자 독일 황실에서 해군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독일 아시아 함대의 본거지로 노리는 산동반도 교주만을 방문하고, 그 적합성을 본국에 보고할 예정이었다.
하인리히 대공은 올해 안으로 독일이 교주만을 조차하리라 암시했고, 이선은 동의의 뜻을 보였다.
그동안 식민지 분할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독일이,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에 진출하겠다는 의미였다.
다음 차례는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대공이었다.
"황제 폐하, 즉위를 축하드립니다. 작년에 폐하께서 모스크바에 오셨듯이, 차르께서도 할 수만 있으시다면 직접 참석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하하, 대공 전하께서 와 주신 것만으로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대공께서 황제 폐하께 전해 주시면 되지요. 즉위식을 직접 참석하시니 어떻습니까?"
"과연 유서 깊은 국가답게, 동양의 유구한 전통과 아름다운 의식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특별한 경험을 러시아에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고마운 말씀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대관식을 치르는 러시아 황족이 보기에도, 처음 공개된 동양의 대관식은 특별하고 아름다운 의식이었다.
알렉산드르 대공은 러시아 해군을 대표했고, 러시아 역시 요동반도 대련만을 노리고 있기에, 당분간 극동에 머무르며 추이를 지켜볼 예정이었다.
다음 차례는 일본의 다케히토 친왕이었다.
"황제 폐하, 즉위를 축하드립니다. 천황 폐하께옵서도, 함께 청국을 무찌르고 동양 평화를 이루어 낸 동맹국 대한제국의 황제 즉위를 크게 기뻐하고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천황 폐하께 짐의 감사를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올해 36세의 다케히토 친왕은 이선과 비슷한 연배였다. 영국 유학을 다녀온 다케히토는 일본 황실에서도 유럽통으로 알려졌고, 합리적인 인사였다.
"친왕께서는 일본 황실에서 해군을 대표해, 지난 전쟁에도 참전하셨다지요."
"예, 해군 대좌로 연합 함대 기함 마쓰시마(松島)의 함장을 지냈습니다."
"아, 황해 해전을 승리로 이끈 바로 그 마쓰시마로군요. 짐은 북양함대를 무찌른 일본 해군의 위업에 경탄해 마지않습니다."
"평양 전투의 영웅이신 폐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청국을 무찌른 조선, 아니 한국 육군의 활약에 일본에서도 크게 감탄했습니다."
"하하, 그렇다면 우리는 전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폐하."
이선은 친왕과 우호적으로 환담을 나누다가, 당부의 말을 했다. 일본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건 새로운 제국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일본은 실로 동양의 영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섬나라는 바다가 생명이라 할 수 있지요. 영국 해군이 세계의 바다를 제패했듯, 일본 해군이 아시아를 대표해 대양으로 나아간다면, 같은 동양인으로서 짐 또한 감격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폐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일본 해군의 일원으로서 어찌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친왕은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비록 지금은 동양의 힘이 약해 서양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나, 언젠가 동양의 힘이 강해지면 진심으로 연대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근래 스페인의 압제에 시달리는 필리핀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에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압니다. 일본이 아니면 누가 아시아를 대표해 그들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과연 그렇습니다. 동양은 동양인의 것이지요. 폐하의 조언을 깊이 받아들이고, 본국에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해군을 대표하는 다케히토 친왕은 북수남진론자였고, 이선의 말을 이해했다.
사쓰마 파벌, 해군, 아시아주의자들은 북방의 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대만을 경영하여 남양과 중국 남부로 진출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이선은 일본의 진출 방향을 대륙과 북방이 아닌 해양과 남쪽으로 돌리기 위해서라면, 한·일연대론이든 아시아주의든 자극할 용의가 있었다.
이어서 이선은 이탈리아 왕자, 프랑스 대통령 특사, 미국 대통령 특사, 영국 대표, 오스트리아-헝가리 대표 등을 만나고 우호 친선을 다짐했다.
탁월한 외교관인 이선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말, 원하는 말을 정확히 짚어 내는 능력이 있었다.
내심은 무엇을 생각하든 간에, 이선은 신생 대한제국이 각국과 두루 우호를 맺고 동양의 평화를 지켜나갈 것을 다짐했다.
각국 외교관들은 새로운 제국의 새 황제에 대해, ‘잘 알려진 것처럼 유능하고 진보적이며, 서양과 서양 문화에 대해 극히 우호적인’ 인물이라 평가했다. 그리고 ‘새 황제가 이끌 대한제국은 동양을 대표하는 문명국가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열강은 새로운 제국의 출현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황제 즉위 후, 제국의 국격(國格)에 맞게 제도를 일신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가장 먼저 추진된 건 태조와 오묘(五廟)를 황제로 추존(推尊)하는 일이었다.
황제로 즉위하면 고조부까지 소급하여 황제로 추존하는 게 관례였다.
여기에 더해 태조 이성계는 왕조 창건자로서 존중의 의미를 표해 황제로 추존하고자 했다.
"삼가 역대의 전례(典禮)를 상고해 보건대, 예조(藝祖)인 조상을 하늘에 함께 제사 지내고 추존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 예는 부친, 조부, 증조부, 고조부에 국한하는 것이 원래 공통된 규례입니다."
"과연 그렇소. 내각은 태조와 오묘에 새로 추존할 묘호와 제호 망단자를 의정하여 아뢰도록 하시오."
이선은 법적으로 조부는 익종(翼宗, 효명세자), 증조부는 순조, 고조부는 정종(正宗, 정조)이었다.
5월 11일, 내각은 태조와 이선의 오대조를 추존하는 일을 의정하여 상주했다.
"태조 대왕의 묘호와 제호 망단자를 태조 고황제(太祖 高皇帝)로 높이니, 태(太)는 천대에 빛을 밝힌 것을 이르며, 고(高)란 곧 기강을 만들고 표준을 세운 것을 이릅니다."
"실로 태조 대왕의 업적을 기리기에 적절하오."
"정종 대왕을 정조 선황제(正祖 宣皇帝), 순조 대왕을 순조 숙황제(純祖 肅皇帝), 익종 대왕을 문조 익황제(文祖 翼皇帝)로 추존하고자 합니다."
"좋소. 그리하겠소."
그리하여 정종은 정조 선황제가 되었고, 효명세자는 살아서는 임금도 아니었지만 죽어서는 황제의 지위에 추존되었다.
"비록 짐이 직계는 아니나, 헌종 대왕과 철종 대왕도 오묘에 속하는 선대왕이시니 예우를 빼놓을 수 없소. 제호를 새로 정해 받들도록 하시오."
헌종은 법적으로 이선의 백부였고, 철종은 종조부였다.
"아, 선대왕을 높이 받들고자 하는 성상의 정성이 지극하십니다. 마땅히 그리하겠습니다."
‘선왕을 황제로 추존해야 한다면 세종 대왕을 추존하고 싶으나…….’ 이선은 마음 같아선 조선 최고의 명군이자, 대한제국의 공식 문자로 지정된 ‘국문(國文, 한글)’을 창제한 세종을 황제로 추존하고 싶었으나, 관례에 없는 일이라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헌종 대왕을 헌종 성황제(憲宗 成皇帝), 철종 대왕을 철종 장황제(哲宗 章皇帝)로 추존하고자 합니다."
"아뢴 대로 하시오. 장례원(掌禮院)에 명하여 추존하여 배천(配天)하는 예식을 준비하고, 총리대신과 궁내부대신, 장례원경이 주관하도록 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황제뿐만 아니라, 황후도 추존되었다. 태조의 왕후인 신의왕후·신덕왕후, 정조의 왕후인 효의왕후, 순조의 왕후인 순원왕후, 문조의 왕후인 신정왕후, 헌종의 왕후인 효현왕후, 철종의 왕후인 철인왕후 모두 황제의 제호를 따라 고황후, 선황후, 숙황후, 익황후, 성황후, 장황후로 추존되었다.
죽은 사람을 추존하는 건 쉬운 일이었으나, 보다 어려운 건 산 사람을 높이 모시는 일이었다.
퇴위한 대군주와 왕태자를 어떻게 예우해야 할지 내각에서 논의가 있었다.
전 국왕이자 황제의 부친이니 예우를 높이는 건 당연한데, 황제보다 더 높인다면 황제의 권위에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
논의가 분분하자, 이선이 결정을 내렸다.
"태종께서 태조를 태상왕으로 높이 모셨다 하여, 군주의 권위가 훼손된 일이 있었소? 전례를 따라 높이 모시는 것이 옳소."
효를 중시하는 조선의 군주들은 대대로 선왕의 권위를 드높여, 본인이 그 권위를 누렸다. 이선도 굳이 그 전례를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원컨대 존호(尊號)를 태상황(太上皇)으로 올리고자 하나이다."
이선이 직접 부왕을 태상황으로 높이 받드니, 이형 역시 재위 시에는 국왕이었지만 퇴위 후에는 황제가 되어 버렸다.
태상황은 최고의 예우를 받으며 경복궁에 모시게 되었고, 거액의 연금이 주어져 유복한 노후를 누릴 수 있었다.
함께 퇴위한 왕후에게도 태황후의 칭호가 주어지고, 소생인 대군과 공주의 밝은 앞날을 보장했다.
이선은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아우들에게 우애를 다할 생각이었다.
이윽고 태상황 소생의 자식들, 태자와 황자들의 책봉 문제도 논의되었다.
"제국에서는 황제의 소생이나 형제를 친왕(親王)으로 책봉하는 게 관례입니다. 성상께서는 여러 형제를 두고 계시니, 친왕을 책봉하소서."
"옳은 말이오. 짐에게는 세 사람의 아우가 있으니, 전 왕태자 척, 의화군 강, 대군 영이오. 모두 친왕으로 책봉하고자 하니, 친왕의 봉호를 정하도록 하시오."
내각에서는 황명을 받들어 친왕의 봉호를 의정했다.
"전 왕태자 척을 순친왕(純親王)으로, 의화군 강을 의친왕(義親王)으로, 대군 영을 영친왕(英親王)으로 의정하여 아룁니다."
"좋소. 아뢴 대로 하겠소."
이로써 이척은 순친왕, 이강은 의친왕, 이영은 영친왕이 되어 친왕부(親王府)를 열게 되었다.
새 황실 전범은 제정되지 않았으나, 아직 황제 소생의 황자가 없으므로 이들은 황제의 후계자 일원이었다.
이들은 대한제국 황실을 대표하여 왕실 외교를 할 의무가 있었다. 친왕으로 임명된 황자들에게 첫 임무가 주어졌다.
"순친왕과 의친왕은 황실을 대표하여, 영국 여왕 폐하의 즉위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도록 하라."
의친왕 이강은 유럽 및 미국 순방을 마치고, 형의 황제 즉위식에 참석하기 위해 1897년 봄 귀국했다. 귀국하자마자 다시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 기념행사(Diamond Jubilee)에 참석하기 위해 떠나야 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황상께서도 영국 여왕처럼 오래 재위하시어, 우리 대한에서도 60주년 기념식을 치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강의 덕담에 이선은 쓴웃음을 지었다.
"60년이라, 한 갑자나 되는구나. 그렇게 오래 살지도 못하거니와, 누굴 말려 죽일 셈이냐?"
"그만큼 오래 나라를 이끌어 주신다면 좋은 일이지요, 하하."
이강에게는 흔한 외국행이었지만, 첫 해외여행을 떠나게 된 순친왕 이척은 들뜨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척과 이강은 어렸을 때부터 따로 지내서 형제간에 썩 가깝지 않았으나, 여정을 함께 하며 형제의 우애를 되찾았다.
"아, 마침내 말로만 듣던 서양에 와 보니 좋구나."
"형님께서 이렇게 즐거워하시니, 이 아우도 기쁩니다."
"내 무거운 책무를 마침내 벗어던졌으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하하, 완화군 형님, 아니지, 황제 폐하께서는 왕족의 책무도 무겁다 하셨습니다."
"물론 그렇지. 실로 황상의 책무가 무거우시니, 우리가 함께 짊어져야 할 것이다."
이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을 대신해 황위에 올라서 책무를 짊어진 형이 고맙지 않을 수가 없었다.
1897년, 광무 원년. 이선이 이끄는 새로운 제국의 미래는 더없이 창창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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