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새로운 힘
시간을 잠시 앞으로 돌려, 1897년 12월 독일 제국 의회.
외무장관 베른하르트 폰 벨로우(Bernhard von Bulow)는 독일 제국의 새로운 방향을 알리는 연설을 한다.
"우리는 양지(陽地, Platz an der Sonne)에 있는 이를 음지로 몰아내려고 할 생각이 없다. 단지, 우리는 양지바른 곳에 우리의 자리가 마련되기를 요구할 뿐이다!"
대영 제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는 것을 빗대서 한 연설이었다. 즉,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 등 제국주의 열강의 패권을 빼앗겠다는 게 아니라, ‘독일의 위상에 어울리는 식민 제국’을 쟁취하겠다는 의미였다.
이는 통일 이후 식민지 경쟁에서 한 발 떨어져 있던 독일이 적극적으로 건함(建艦) 정책에 나서고, 식민지 쟁탈전에 나서겠다는 의미였다.
그 시작은 바로 중국 산동반도, 교주만이었다.
11월, 독일인 선교사 2명이 산동의 반(反) 기독교 세력에게 피살당했다. 산동은 후일 의화단 운동의 모태가 되는 곳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유독 반서양 감정이 강한 지역이었다.
예전부터 교주만을 노리던 독일은 이를 명분 삼아, 즉각 아시아 함대를 파병해 점령했다. 독일은 3개월 후 교주만 조차 조약을 맺어 청나라의 사후 승인을 받았다.
이는 연쇄 효과를 일으켰다. 독일 카이저 빌헬름 2세는 러시아 차르 니콜라이 2세로부터 미리 양해를 구한 바 있었다. 러시아는 독일의 교주만 점령을 승인하고, 12월 태평양 함대를 파병해 요동반도 대련만과 여순을 점령했다.
청나라는 극도로 당황했다. 이는 엄밀히 말하면 중국의 영토를 보전하겠다는 러·청 동맹 조약의 위반이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막대한 전쟁 배상금으로 재정난에 시달리는 청나라를 구슬렸다. 러·청 은행 설립과 청나라 외채 모집을 보증해 주는 대가로 대련만과 여순의 25년간 조차를 승인받았다.
연쇄 효과는 계속되었다. 청나라와 베트남의 공동 보호국인 프랑스는 1차 동아시아 전쟁을 틈타 청나라를 완전히 밀어내고, 베트남과 보호 조약을 맺어 식민화했다. 이후에는 베트남 국경을 넘어 광서성까지 영향력을 확대해 철도 부설 조약을 체결했다.
중국을 자신의 영역으로 여기는 영국이 이런 상황을 그냥 지켜볼 리 만무했다. 홍콩 조차지를 확대하여 구룡반도를 99년간 조차하는 조약을 강요하고, 독일과 러시아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산동반도 위해위의 할양까지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도 중국 분할의 기회를 틈타 절강 주산군도의 조차를 요구했으나, 청나라는 이탈리아의 요구만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탈리아는 무력시위로 위협했으나, 청나라도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았다.
1898년, 중국의 분할은 기정사실이었다. 바로 지근거리에 있는 대한제국과 일본은 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연쇄 효과는 중국을 넘어 한반도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1898년 2월, 주한 러시아 공사 시페이에르가 이선을 알현했다.
"황제 폐하, 러시아 제국 정부는 동양의 평화와 청국과 한국의 주권을 위하여, 대련과 여순을 조차하게 되었음을 알립니다."
"귀국 황제 폐하께 축하의 말씀을 전해 드리시오."
"감사합니다. 이어 본국의 요청 사항을 황제 폐하께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말씀해 보시오."
"예. 러시아가 이제 여순을 영유하게 되었으니, 태평양 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와 여순이라는 두 곳의 모항(母港)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두 항구를 연결해 항행하려면 한반도 해안을 빙 둘러야 합니다. 이는 유사시 함대의 분단을 발생시킬 수 있고, 원료 소모도 적잖이 발생합니다. 하여……."
이선은 시페이에르의 말을 끊었다.
"얼마 전에 태평양 함대 소속 군함이 부산에 입항했다는 보고를 받았소. 오늘 요구할 사항과 관계있는 일 같은데?"
"역시, 폐하께서는 영명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러시아는 절영도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곳에 석탄 저장고를 설치한다면, 태평양 함대의 항행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절영도(絶影島), 즉 부산 영도. 조선 시대에는 말 사육장인 섬으로 유명했고, 이곳에서 사육된 명마가 빨리 달려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 하여 절영도라고 불렸다.
대한 해협 근처에 위치한 절영도의 군사적 가치는 일본과 러시아가 모두 주목하고 있었다. 일전에 일본이 절영도 조차를 요구했다가 이선에게 퇴짜를 맞은 바 있었고, 삼국 간섭 이후에는 러시아가 눈독을 들였다.
러시아 해군은 여순보다 한반도 남해안이 항구로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태평양 함대 사령관 스타르크 제독은 부산과 마산 일대를 여러 차례 방문하여 입지 조건을 확인하고, 진해만이 태평양 함대의 새 모항으로 어울린다고 보고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 요구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영국을 지나치게 자극한다고 우려했고, 대신 청나라를 구슬려 여순을 확보했다. 그러자 해군은 블라디보스토크와 여순의 중간 지점인 부산 절영도에 석탄 저장고를 요구했다.
"유감스럽지만, 허용할 수 없소. 짐은 결코 우리 영토를 외국의 군사적 이익을 위해 제공할 생각이 없소이다."
"외국이라니요, 어찌 그리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러시아는 한국 최고의 우방이요, 동맹 조약을 체결한 사이입니다. 우리 니콜라이 2세 폐하와 황제 폐하의 우정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물론 나는 언제나 귀국 황제 폐하의 좋은 친구이오만은, 국가 간의 문제는 군주의 우정으로 논할 사항이 아니오. 절영도는 부산에 있고, 부산은 해협을 놓고 일본과 지척에 있소. 일본은 이를 러시아의 위협적인 남하 정책으로 받아들일 것이오. 그렇게 되면 동양의 평화와 세력 균형이 깨질 수 있소."
이선의 완곡한 거절 의사에도, 시페이에르는 물러서지 않았다.
"일본이 걱정이시라면, 마음 놓으십시오. 한국의 국방력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충분하나, 아쉽게도 해군력이 부족합니다. 일본의 대륙 침략을 막기 위해 러시아 태평양 함대가 존재하며, 이를 위해서라도 절영도 석탄 저장고는 필요합니다."
대한제국에 해군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주지하다시피 해군력 강화에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로 했고,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고 해도 건함경쟁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대한제국의 초점은 조국 방위와 북방진출에 맞춰져 있고, 육군력 강화에 예산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들, 외국에 해군 위탁 방위를 맡길 생각은 없었다. 일본을 경계한다고 해서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도 없었다. 절영도 조차는 일본을 겨냥한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컸다.
"다시 말하거니와, 짐은 대한의 영토를 결코 외국의 군사적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없소이다."
"삼국 동맹의 당사자인 청국은 러시아에 대련과 여순을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한국은 작은 섬에 해군용 석탄 저장고 설치 정도조차도 용인할 수 없단 말입니까?"
시페이에르의 멈추지 않는 요구에 이선은 결국 정색을 하고야 말았다.
"공사, 왜 같은 말을 여러 번 하게 만드는지 모르겠군요. 절영도 조차는 동양 평화와 세력 균형을 깨트릴 수 있다고 이미 말했소이다."
"그러면, 왜 일본에게는 인천에 석탄 저장고 설치를 허용하셨습니까? 일본에 허용하시면 우방인 러시아에도 허용하셔야지요."
1894년, 조·청·일 전쟁 당시 조선은 인천 월미도에 일본 해군의 석탄 저장고 설치를 허용한 바 있었다.
"그건, 그 당시 조선을 침략한 청국에 맞서 싸운 동맹이 일본이었으니까. 일본 해군의 황해 작전을 위해 필요한 용도였소."
"전쟁은 끝난 지가 오래입니다."
"애초에 5년 계약이었소. 어차피 내년이면 만료될 예정이지. 말 나온 김에, 예정보다 빨리 조속히 환수하도록 하겠소. 일본에 그리 요구하리다."
이선은 이때다 싶어 월미도 석탄 저장고 환수를 기정사실화했다. 계약 만료를 앞두고 일본은 다시 5년 연장을 요청해 왔는데, 러시아의 절영도 설치를 거부했다는 명목으로 일본의 석탄 저장고도 환수할 예정이었다.
황제가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시페이에르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결국, 고개를 숙이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선은 절영도 조차 문제가 이걸로 끝났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2월 22일, 대원군 훙서 이후 니콜라이 2세는 즉시 특사와 친서를 보내 조문하고 이선을 위로했다.
특사는 태평양 함대 사령관 스타르크 제독이었고, 제독은 이선에게 정중히 조의를 표했다.
"황제 폐하, 얼마나 슬픔이 크십니까? 니콜라이 2세 폐하께서는 폐하께 마음으로부터 나온 조의와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폐하의 세심하신 배려에 어떻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 지 모르겠군요.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해 주십시오."
이선은 니콜라이 2세의 조의를 정중히 받아들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스타르크와 시페이에르는 대외강경파였고, 이들은 해군부와 알렉산드르 대공의 지지를 받아 절영도 조차 문제를 끄집어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여순을 잇는 중간 지점으로 부산이 꼭 필요하다는 게 해군의 구상이었다.
외무부는 반대했지만, 알렉산드르 대공의 설득에 넘어간 니콜라이 2세도 ‘차르의 벗’ 이선이 즉위한 대한제국에 이만한 부탁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시페이에르에게 재차 훈령을 내렸다.
대원군의 성복이 끝난 후, 시페이에르는 다시 이선을 알현하여 절영도 문제를 다시 꺼냈다.
"우리 황제 폐하께서는 러시아와 한국의 우호를 위하여, 절영도 석탄 저장소 설치 문제를 다시 한번 고려해 주시길 바란다는 의견을 보내오셨습니다."
할아버지를 잃고 슬픔에 잠겨 있던 이선에게 당혹스러운 요구였다.
‘이런 눈치도 없는 놈을 봤나…….’
"이 문제는 이미 한 차례 논의한바, 더 이상 재론하지 않으면 좋겠소."
"폐하, 우리 황제 폐하께서 친히 부탁하신 사항이십니다. 우리 러시아가 한국을 위해, 니콜라이 2세께서 폐하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습니까?"
이선은 슬슬 짜증을 느꼈지만, 점잖게 답했다.
"귀국의 호의에는 늘 감사드리고 있소. 하지만, 이 문제는 다르다고 보오."
"러시아의 역할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청국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할 때 러시아는 제일 먼저 조선의 독립과 중립을 지지했으며, 조선이 재정적으로 어려울 때 차관도 제일 먼저 제공했으며, 군사력을 증강하고자 할 때 교관을 파견해 돕고 최신 무기도 제공했습니다. 일본의 요동 할양도 막아 조선의 만주 진출을 용이하게 했지요."
‘그래서 뭐, 청을 대신해 러시아가 상국 행세라도 하겠다는 건가?’ 이선은 이렇게 내뱉고 싶었지만, 외교적 상황을 고려해 인내했다.
러시아는 향후 만주 진출을 위해 꼭 필요한 파트너였다. 적어도 당분간은 러시아와 척질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짐도 다시 한번 고려해 보겠소. 일단 각의에서 논의를 거쳐야 하니, 답을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소."
"감사합니다, 폐하. 러시아는 앞으로도 대한제국의 충실한 동맹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시페이에르는 마치 이선이 수락이라도 한 것처럼, 희희낙락했다.
"러시아가 이런 요구를 해 왔소이다. 경들의 생각은 어떻소?"
이선은 각의에서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알렸다. 하필 국상 기간에 이런 요구를 하니, 그간 친러 성향을 보였던 대신들조차도 불쾌함을 보였다.
"공사가 참으로 무례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임 베베르 공사는 참으로 점잖은 이로 늘 대국적인 입장을 견지했는데, 지금 공사는 러시아의 국력을 과신하는지 오만방자하군요."
"대한국이 현재 국상 기간임을 모른단 말입니까?"
"이런 무례한 요구는 거절해야 합니다, 폐하."
거부해야 한다는 게 다수 의견이었지만, 조심스러운 의견도 제기되었다.
"러시아 황제가 직접 부탁한 사항을 단칼에 거절하면, 지금까지 돈독했던 러시아와의 우의가 깨질까 봐 걱정됩니다."
"더욱이 러시아는 삼국 동맹 조약을 맺은 당사자이고……."
"러시아의 의견도 일리가 있습니다. 일본이 월미도 석탄 저장고를 설치한 전례가 있지 않습니까? 일단 수락하는 척하며 시간을 벌어 봄이 어떠신지요."
"안 됩니다. 절영도 조차를 수락한다면, 영국과 일본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가만히 있다가, 영국과 일본에 공을 넘겨 그들이 러시아를 막도록 하지요. 그럼 러시아와 우의를 잃을 일도 없을 것입니다."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결정은 이선의 몫이었다.
"짐은 대한국의 황제로서, 조종(祖宗)의 강토를 단 한 뼘이라도 내주어 외국의 군사적 용도로 허용할 용의가 없소. 러시아에 한 가지를 내주면, 일본과 영국도 비슷한 요구를 하고 나설 것이오. 그럼 다른 열강도 연쇄적으로 요구하겠지. 일본의 월미도 석탄 저장고도 조기 환수할 생각이오."
"과연, 폐하께서는 영명하십니다!"
"그리고, 대한이 스스로 거절을 하지 못해 영국과 일본의 힘을 빌린다면, 자주 국가로서의 체면이 어찌 되겠소? 이 일은 우리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오."
"성지(聖旨)가 지당하십니다. 대한의 일은 대한이 해결해야 합니다."
내각은 황제의 뜻을 받들어, 러시아의 요구를 거절하기로 했다.
이선은 자주국의 원칙을 지켰지만, 동시에 외교 현실주의자였다. 러시아와 같이 한국에 호의적인 열강에게 단호한 거절을 해서, 혹여 우의를 상실한다면 곤란했다.
"폐하, 러시아의 요구를 어찌 거절할 생각이신지요? 폐하께서 러시아 황제와의 우의를 생각해 곤란하시다면, 신이 직접 나서 거절하겠습니다. 만약, 저들이 트집을 잡는다면 신이 책임질 것입니다."
총리대신 김홍집이 황제를 찾아 악역을 자처했다. 이선은 그의 충심을 높이 평가했으나 사양했다.
"경의 충심은 고맙지만, 그럴 필요까진 없소이다. 짐이 대한국의 황제인데, 어찌 책임을 총리에게 넘기겠소이까? 짐에게도 다 생각해 둔 바가 있소."
"그러하시군요. 성지를 일러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좋소. 언론에 러시아의 요구 사항을 흘렸소."
"아하, 그러면 영국과 일본이 알아서 러시아를 저지하려 들겠군요."
"물론 그럴 목적도 있지만, 그들에게만 맡기자면 자주 국가로서의 체면이 떨어지는 일이지."
"하오시면……?"
"대한에는 새로운 힘이 있지. 러시아와 일본뿐만 아니라, 이제 모든 열강이 알게 될 것이오."
이선은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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