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257화 (256/812)

257화 미서일(美西日)전쟁

이선은 주한 일본 공사 하라 다카시와 회견했다.

하라는 언론인 출신으로, 실제 역사에서는 1918년 일본 최초의 원내 제1당 당수로서 총리가 되어 정당 내각을 이끌었다. 의회 정치의 실현과 군부의 문민 통제를 주장하고 있어서, 이선이 일본 정치인 중에선 우호적으로 보는 인물이었다.

"공사, 짐은 일본이 아시아의 영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영국처럼 섬나라이고, 해양 강국이고, 동양 최초로 입헌 정치를 실시했소. 그러니 영국의 길을 걷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폐하."

"일본은 대한의 독립 전쟁에서 함께 싸운 전우이자 우방이오. 삼국 간섭 이후 다소간의 오해가 생겼다고 하지만, 양국의 우호가 사소한 오해로 흔들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여부가 있겠습니까? 일본 역시 한국이 중요한 이웃 나라이자 우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선과 하라는 우호적인 덕담을 주고받았다. 이선은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다.

"대한과 일본은 동양을 지키는 두 축이 되어야 하오. 근래 청국의 위신이 크게 흔들리면서, 서양 열강의 분할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소. 특히 대한의 지척에 있는 산동과 요동에 독일과 러시아가 조차지를 얻어 요새화하니, 동양 평화를 위협할까 걱정이 됩니다."

이선은 카이저와 차르의 조차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마치 전혀 몰랐다는 듯 우려를 표했다.

"일본 정부 역시 이를 심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 제국을 향한 카이저의 욕심이 끝이 없는 것 같소. 스페인과 협상해 필리핀을 얻으려고 하던데, 미국이 스페인과 전쟁을 벌이더라도 어떻게든 필리핀을 확보하려는 모양이오."

순간 하라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폐하, 그런 정보가 있습니까?"

"아아, 뭐 짐이 듣기로는 그렇소. 알다시피 짐이 러시아 황실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 보니. 러시아 차르와 독일 카이저의 친분이 두텁지 않습니까."

"과연 그렇군요."

하라는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저의 방정맞음은 유명하고, 외교적 사항을 차르에게 알려 줬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리고 이선이 차르를 통해 정보를 확보할 수도 있었다.

"짐이 귀국에 특별히 이 정보를 알려 주는 건, 일본에 관한 짐의 호의라고 생각해 주시오. 필리핀과 대만은 지척이 아니오? 독일이 필리핀을 차지하면 곤란하겠지."

"폐하의 호의에 일본 정부를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산동과 요동 문제도 미리 알았더라면, 귀국에 정보를 알려 주었을 텐데 아쉽게 되었소."

"폐하께서 앞으로 그렇게 도와주신다면, 일본은 황제 폐하와 대한제국의 우의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선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하라의 보고를 받은 이토는 생각에 잠겼다. 하라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새 황제는 일본에 관해 굉장히 우호적이었다.

- 한국 황제가 완화군 시절에 일본에 비타협적이고 비우호적인 모습을 종종 보인 건, 아무래도 작고한 대원군과 퇴위한 국왕을 배려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대원군으로 대표되는 조선의 보수파들은, 그 기원이 분로쿠의 역(文?の役,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본에 대한 오랜 적대심과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황제나 정부를 이끄는 김홍집, 김옥균 등은 일본의 개화와 헌정에 관해 우호적입니다.

황제는 대원군이 총애하던 손자이므로, 유교적 도리를 다하기 위해 일본에 거리감을 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완고한 대원군이 작고하고 그 세력도 쇠퇴하였으니, 양국 관계를 가로막는 장애물도 사라졌습니다.

일본을 적대시한 한국과 러시아의 연합은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황제가 친러파라는 오해가 있으나, 제가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이는 차르와의 특별한 관계로 인한 것일 뿐, 오히려 서구에 관해 더 우호적입니다.

근래 한국에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여러 정파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으나, 결국 황제가 선택한 정파가 승리할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개화당 세력이 승리할 가능성이 큽니다. 전술하였듯 개화당은 일본에 관해 우호적이니, 양국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좋아질 것입니다.

메이지 31년 4월 25일, 原 敬.

이토는 하라의 보고를 액면 그대로 믿지 않았다. 이선이 노련한 외교관들도 매료시킬 만큼 얼마나 화술이 능수능란한지, 이토도 직접 경험해 봐서 알고 있었다.

일본에 대해 호의적이라는 이선의 태도는 외교적 사탕발림일 가능성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선의 우호적 표시는 이토에게 바람직한 일이었다. 이토는 북수남진론에 공감했고, 한국과 그 배후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러시아와 적대하고 싶지 않았다.

유일한 걱정은 한국이 러시아나 독일과 반일 동맹을 체결하여 일본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인데, 세력 균형을 고려하는 이선이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독일이 필리핀을 차지하기 위해 무력을 불사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건, 명백한 호의적 표시였다.

‘북쪽은 안심하고 남쪽으로 가도 된다는 신호인가.’

육·해군의 대 스페인 선전 포고 요구를 억누르고 있던 이토는, 미국 아시아 함대에 이어 독일 아시아 함대가 필리핀 해역으로 향한다는 말을 듣자 마침내 명령을 내렸다.

"미국이라면 모를까, 삼국 간섭의 당사자이자 황화론을 선동하는 독일이 필리핀을 차지하는 걸 용인할 수 없소."

"그렇습니다. 즉시 해군을 파병해야 합니다!"

"해군 분함대를 필리핀 해역으로 파병하시오. 단, 스페인과 전투를 벌이는 건 용인하지 않겠소. 독일이 미국에 적대적인 행동을 보일 경우, 미국을 지지한 뜻을 분명히 밝힌다는 의미의 파병이오."

열강과의 관계를 조심스러워하는 이토는, 미국과 합의 없이 필리핀 분할을 시도했다가 역풍이 불까 우려했다. 이토는 일단 미국과 접촉해서 참전 여부를 타진했다.

1898년 5월 1일.

조지 듀이(George Dewey) 제독이 이끄는 미국 아시아 함대가 홍콩에서 출발해 마닐라만 해역에 진입했다. 방호순양함 4척, 포함 3척으로 구성된 미 함대는 방호순양함 2척, 경순양함 4척, 포함 1척으로 구성된 스페인 동인도 함대와 격돌했다.

듀이 제독의 명령을 받은 순양함 올림피아의 함장 그리들리(Gridley)가 포격을 개시하면서, 마닐라만 해전의 막이 올랐다.

"You may fire when ready, Gridley!"

"Fire!"

불과 3시간 만의 전투 끝에, 미국 함대는 스페인 함대를 완파했다.

미국의 손실은 순양함 1척 소파, 전사자 1명, 부상자 9명이었다.

그에 반해 스페인은 7척 모두 격침, 전사자 77명, 부상자 271명이었다.

일방적인 교전 비였다. 한때 세계를 주름잡던 스페인 무적함대의 초라한 퇴장이었다.

무적함대의 침몰한 잔해 위에서, 미국이 태평양의 새로운 지배자로 떠올랐다.

미 함대는 즉각 마닐라만을 장악하고, 마닐라 항을 봉쇄했다. 하지만 미 육군이 태평양을 지나 필리핀에 상륙하려면 한참이라, 제해권을 장악하고 봉쇄 상태를 유지했다.

마닐라만 해역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이 파견한 함대로 득실거렸다.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규모를 자랑하는 건, 독일 아시아 함대였다. 8척의 독일 군함은 마닐라만 해역에 주둔하면서, 미국에 대해 공공연히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독일 함대는 미국 함대 앞을 가로막고, 관례적으로 하는 상대국 국기에 대한 경례도 거부했다. 더 도발적인 건, 독일이 봉쇄된 마닐라의 스페인 군대를 위해 보급 물자를 상륙시켜 전달을 강행했다는 것이었다.

명목상 중립이라지만, 독일이 스페인을 도와 필리핀을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분명히 보였다.

"당장 철수하지 않으면, 미합중국에 대한 적대 행위로 간주하겠소!"

"허, 독일 제국과 일전을 각오하겠다. 그 말이오?"

"적대 행위가 계속된다면, 어쩔 수 없소."

전쟁을 각오하는 미국의 강경한 태도에, 독일은 일단 한발 물러서야 했다.

4척의 일본 분함대를 이끌고 마닐라만에 도착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대좌는 노골적으로 미국 편을 들었다. 해군의 거두인 야마모토 곤노효에(山本?兵衛)의 최측근인 사이토는, 주미 공사관 해군 무관을 지낸 친미파였다.

미국은 일본의 지지에 감사를 표했다. 일본은 미국과의 협상에 돌입했다.

5월부터 전쟁은 본격화되었다. 미국과 스페인의 초점은 쿠바에 맞춰져 있어서, 주된 격돌은 쿠바와 카리브해에서 벌어졌다. 미군의 필리핀 상륙은 빨라야 6월 말로 예정되었다.

5월 중순, 아기날도와 필리핀 임시정부가 미국 함대의 호위를 받아 필리핀으로 돌아왔다.

아기날도는 홍콩 주재 미국 영사와 협약을 체결해, 미국은 필리핀 독립을 지원하고, 필리핀은 미국의 전쟁에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필리핀으로 돌아온 임시정부는 대 스페인 전쟁을 선포하고, 필리핀군을 조직했다. 이미 무장 게릴라 투쟁을 벌이고 있던 필리핀군은, 지원이 끊긴 스페인 식민군을 상대로 연전연승했다.

6월이 되자 필리핀군은 루손섬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스페인 식민 세력을 마닐라에 고립시켰다.

6월 12일, 아기날도는 마침내 필리핀의 독립을 선언했다.

"스페인의 333년 지배를 종식시키고, 필리핀의 자유와 독립, 공화국 수립을 엄숙히 선포하는 바이다!"

아기날도와 필리핀 독립운동가들은 필리핀의 ‘독립’에 환호하며 감격했다.

하지만 이는 섣부른 환호였다. 그들이 모르는 사이, 열강은 그들의 운명을 멋대로 결정하고 있었다.

미국-스페인 전쟁 발발 이후, 이토는 전쟁에 개입해야 한다는 육·해군의 강력한 압력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토는 미국과의 협상이 이뤄지기 전까지, 어떠한 섣부른 행위도 용납하지 않았다.

"대만에서 필리핀의 거리는, 미국에서 쿠바의 거리보다 가깝습니다. 필리핀과 남양은 제국의 이익선입니다! 애초에 필리핀 독립운동을 지원한 것도 일본인데, 왜 미국의 눈치를 보는 겁니까?"

"그야 미국은 강하고 일본은 약하기 때문이지! 내각의 명령 없이 멋대로 굴면 용납하지 않겠소."

군부는 육·해군을 막론하고 ‘새가슴 이토’를 비난했다. 늘 대립하던 육군과 해군이 모처럼 합심하는 모습이었다.

"어휴. 이토 총리는 젊은 시절의 패기는 다 어디로 가고, 열강의 눈치만 살살 보고 있는가."

"완전히 새가슴 노인네야. 그동안 필리핀과 남양에 공을 들인 게 얼만데, 미국에 그냥 갖다 바칠 생각인가."

"어리석은 애송이 녀석들. 열강이 일본을 동등한 파트너로 여기고 사이좋게 자신들의 패권을 나눠 주리라고 생각하나. 지금의 일본 국력으로는 열강이 떨궈 주는 걸 챙기는 것만으로도 과분하다."

이토는 본질적으로 일본의 팽창을 희망하는 제국주의자란 점에서 군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일본보다 훨씬 강력한 서양 열강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토는 일본이 서양 열강보다 한참 뒤떨어진 2류 제국주의 국가임을 인식했다.

이토 내각은 해군을 필리핀에서 가까운 대만으로 집결시키고, 미국 정부를 상대로 협상을 계속 시도했다.

"일본이 미국을 도와 전쟁에 참전하는 조건으로, 필리핀을 공동 보호국으로 삼으면 어떻습니까? 필리핀의 독립을 미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보호하는 거지요."

"일본의 호의는 고맙지만, 그럴 필요까지가 있겠습니까?"

미국은 일본의 필리핀 공동 보호국 제안을 거절했다. 미국은 필리핀을 독점적으로 지배할 생각이었다. 미국이 장차 최대 시장으로 여기고 있는 중국 시장을 향한 중간 지점으로 여기는 필리핀을 일본과 나눠 가질 생각이 없었다.

스페인 정도야 미국이 독자적으로 격퇴할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독일의 참전 여부인데, 그 경우에만 일본을 끌어들일 용의가 있었다.

"필리핀 공화국은 독립운동을 지원해 준 일본의 호의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필리핀의 해방을 위해 스페인 군대에 맞서 함께 싸우지요."

아기날도의 필리핀 임시정부가 일본에 계속 구애를 보냈다. 필리핀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을 딱히 선호해서가 아니라, 미국이 필리핀을 이용만 하고 독립을 짓밟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실제 역사에도 그랬다.

"정부는 대체 무얼 하는가? 일본의 벗, 필리핀의 요청을 외면할 것인가? 필리핀 해방에 일조하라!"

"이토 내각은 즉각 스페인에 선전 포고하고, 아시아 해방을 위해 앞장서라!"

군부의 조종을 받는 호전적 팽창주의자들과 아시아 해방을 부르짖는 아시아주의자들이 전쟁을 선동했다.

육·해군의 일치된 압력에 이어, 조슈를 대표하는 야마가타와 사쓰마를 대표하는 마쓰가타도 공동으로 압력을 행사했다.

"대만은 우리의 남쪽 관문으로서, 남방으로 대일본제국의 판도를 팽창하고자 한다면, 우선 이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재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국의 정략으로 북을 지키고 남을 공략하는 방침을 정하지 않았습니까? 대만은 그 첫 번째 발판으로서 남양 여러 군도에 미칠 수 있는 형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방, 무역, 식민 문제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필리핀은 대만의 지척입니다. 그 영향력을 침해하려는 미국에, 최소한의 단호함은 보여 줘야 합니다."

전쟁에 반대하던 마쓰가타조차도 사쓰마 파벌의 요구를 받아들여 압력을 행사하자, 이토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미국과 충돌을 벌이지 않는 선에서, 필리핀 임시정부의 지원 요청을 받아들인다는 명분을 취해 스페인에 선전 포고하기로 결정했다.

"필리핀 공화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일본제국 정부는 필리핀 독립의 대의를 위해 스페인 왕국에 선전 포고한다."

"와아아아!"

"대일본제국 만세!"

"천황 폐하 만세!"

"아시아 해방 만세!"

1898년 6월 21일. 일본 정부는 스페인을 상대로 선전 포고했다.

일본 국민은 서양 국가를 상대로 한 최초의 전쟁에 환호성을 내질렀고, 필리핀 독립과 아시아 해방의 대의를 믿었다.

대만에 주둔하던 일본 함대와 해군 육전대가 즉시 필리핀 북부에 상륙했다.

일본군의 출현은 필리핀 임시정부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나, 미국에는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출현이었다.

미서(美西) 전쟁은, 미서일(美西日)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 25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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