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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혁명의 시대-277화 (276/812)

277화 습격

외교관 회의를 마치고 한국 공사관으로 돌아온 홍영식은 한숨을 쉬었다. 이제 무력 충돌이 눈앞이었다.

‘정말 모든 게 성상의 예측대로 되어 가고 있군. 이미 이렇게 될 걸 알고 계셨단 말인가.’

홍영식은 의화단 사태가 격화되자, 본국에 매일 보고하고 황제로부터 훈령을 받았다.

사태를 읽는 이선의 예측은 정확했고, 훈령은 단호했다.

- 상황이 더 격화될 경우에 대비해 본국은 동원령을 준비하고 있음. 서태후와 청 조정은 결국 각국을 향해 선전 포고 할 것이라 예상함. 열강과 협조하여 연합 체계를 구축할 것. 단독 행동 없이, 오직 연합 체계하에서 움직일 것. 공사가 모든 임무를 완수하고 무사 귀환하길 희망한다.

‘모든 임무를 완수하고 무사 귀환하길 희망한다.’

홍영식은 황제의 격려에 감격하면서도,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부터는 정말 목숨을 걸어야 했다. 전쟁도 아니고 외교관 임무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니,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결국 외교도 총성 없는 전쟁이고, 전쟁은 총을 든 외교로군. 내가 그 최전선에 섰으니, 어찌 목숨을 아끼겠는가?’

영국 공사 맥도널드(C.M MacDonald)의 전보를 받은 천진에서는, 해군 제독 시모어(E.H. Seymour)의 지휘하에 9개국의 다국적 연합군이 결성되었다.

영국 916명, 독일 540명, 러시아 326명, 프랑스 158명, 미국 112명, 일본 54명, 이탈리아 41명, 대한제국 30명, 오스트리아-헝가리 26명 등 총 2,200명으로 구성된 혼성 부대였다.

"복서 폭도들로부터 북경 공사관을 수호한다. 연합군, 열차에 탑승하라!"

"북경으로 진격한다!"

6월 11일, 9개국 연합군의 1차 원정대, 소위 ‘시모어 원정대’가 북경을 향해 출발했다. 이들은 전원 해군으로, 천진항에 있는 군함의 해병들(marines)과 수병들(sailors)이 급히 동원되었다. 원정대는 천진역에서 다섯 대의 열차에 나눠 타고 북경으로 향했다.

- 연합군이 결성되면, 병력을 파견하되 해군육전대 1개 소대로 한정한다. 단, 북경에 진입하지 못할 것 같다면, 적극적인 교전은 회피할 것.

황명을 받은 군부대신 한규설이 천진의 대한제국 해군을 향해 훈령을 보냈다.

명에 따라 대한제국 해군육전대(海軍陸戰隊), 즉 해병 1개 소대 30명만이 연합군에 합류했다.

‘1차 원정대는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열강이 질적으로 우위에 있다 할지라도, 수병 2천여 명으로는 절대 북경을 함락시킬 수 없다. 연합군 본대에 대비하여 최소한의 성의만 보이면 된다.’

이는 이선의 결정이었다. 그는 시모어 원정대의 북경 진입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청나라가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라지만, 다국적 수병 2천여 명으로 청군 중앙군을 격파하고 북경에 진입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렇기에 1개 소대라는 최소한의 성의만을 보였다. 이는 열강에 대한제국군도 의화단 사태의 해결을 위해 병력을 준비하겠다는 제스처였다.

대한제국이 9개국 연합군 중 청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국가라는 건, 앞으로 엄청난 이점이었다. 이선은 주한 각국 공사에게 이점을 주지시켰다.

북경에서는 전례 없는 혼란이 지속되었다.

의화단의 난동은 더욱 거세졌고, 공사관 구역은 불안에 떨었다.

예정대로라면 시모어 원정대는 하루면 도착해야 했다. 하지만 도착하지 않았다.

6월 12일, 외교관들은 연합군의 도착을 영접하기 위해 북경역으로 나갔으나, 빈 플랫폼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도착할 시간이 지났잖소?"

"아무래도 청군의 방해가 있는 것 같군. 역은 위험하오. 빨리 빠져나가서 공사관으로 돌아갑시다."

연합군이 도착하지 않고, 오히려 의화단으로 추정되는 적대적인 무리만 불어나자 외교관들은 급히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공사관 구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일본 공사관의 서기관 스기야마 아키라(杉山彬)가 ‘회교도 장군’ 동복상이 이끄는 감군(甘軍)에게 피살당했다.

이슬람을 믿는 회족으로 구성된 감군은 청군 중에서도 유독 서양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나는 언제든 무례한 외국인들을 죽일 수 있다고 태후께 말씀드렸다. 왜놈을 죽여 갑오전쟁의 원한을 조금이나마 갚았구나!"

스기야마의 살해에 동복상은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첫 외교관 살해에, 외국 사절들은 이제 청군이 자신들의 목숨까지 노린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공사관 구역의 방비는 더욱 엄중히 이루어졌다.

전쟁의 유령이 불려 나오자, 의화단의 광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6월 13일, 수많은 권민이 북경으로 진입했다. 이들은 통제 불능이었다. 통제되지 않는 광기는 전염처럼 번져 나갔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양귀의 것은 모조리 불태우고 박살 내라!"

권민들은 교회와 외국인의 거처를 불태웠고, 외국인들이 학살에 피해 모두 공사관 구역으로 숨자 대신 중국인 기독교도들을 보이는 족족 학살했다.

의화단의 파괴와 방화는 살아 있는 이에게 한정되지 않았다. 16세기와 17세기의 초기 선교사들, 마테오 리치, 아담 샬, 페르비스트 등의 무덤을 파내고 관을 박살 냈다.

그야말로 형용할 수 없는 광기의 연속이었다.

"대체 시모어 제독은 언제 오는 거야!"

"이러다가 정말 다 죽겠군."

"본국에서는 우리의 사정을 알고 있나?"

북경과 외부를 잇는 전신도 끊어지면서, 공사관 구역의 사람들은 적대적인 군중에 포위되어 정보조차 차단된 공포에 떨어야 했다.

북경이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는 동안, 공사관 구역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시모어 원정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하면-.

경진선 철도가 끊겨 북경을 향해 걷고 있었다.

열차는 초기 40km를 무사히 운행했으나, 그 이후부터는 철도가 끊겨 있음을 확인했다. 의화단의 파괴 공작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결국, 원정대는 열차에서 내렸다. 철로 보수를 기다리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원정대는 북경을 향해 도보로 행군해야 했다.

원정대의 첫 난관은 해하(海河)를 지키는 북양군 사령관 섭사성의 부대였다. 북양대신 겸 직례총독 영록은 섭사성에게 저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홍장의 막료였던 섭사성은 의화단 전쟁이 무익하다고 여겼으므로, 원정대의 행군을 모른 척하고 넘겨 주었다.

첫 전투는 피할 수 있었지만, 의화단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殺! 殺! 殺!"

"복서 놈들이다! 전군 전투 준비!"

"기관총 발사!"

수천 명의 권민들은 창과 칼로 무장한 채, 아무런 전략도 없이 무작정 ‘죽여라’만 외치면서 돌격했다.

압도적으로 무장한 연합군은 손쉽게 권민을 격퇴했다. 연합군의 피해는 전방에 고립된 불운한 이탈리아군 다섯 명이 전부였다. 권민은 120명이 전사하고 도주했다.

연합군의 진격은 순조로워 보였지만, 북경과 천진의 중간 지점에 있는 낭방(廊坊)에서 한계에 부딪혔다.

동복상의 감군 5천여 명이 낭방을 지키고 있었다. 좌종당의 서역 정벌 이래, 감군은 청군 내에서도 용맹하다고 평가받는 부대였다. 이들은 의화단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양귀들은 북경으로 한 발짝도 들어올 수 없다."

"침략자 양귀를 모조리 죽여라!"

6월 19일, 낭방에서 연합군과 감군의 교전이 시작되었다. 연합군은 감군의 용맹하고 광신적인 방어에 애를 먹었다. 시모어 원정대는 대부분 수병이라 지상전에는 익숙하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원정대가 떠난 천진에서도 극도의 혼란이 지속되었다. 천진에는 서양 각국의 조계가 있었고, 이는 의화단의 공격 대상이었다.

의화단이 천진에 진입해 기독교인 학살을 감행하자, 항구의 연합국 군함들은 결단을 내렸다.

"대고 포대를 점령해 적의 기선을 제압한다!"

"전함, 포격 개시!"

6월 17일, 9개국 연합함대는 청나라 해방(海防)의 상징인 대고(大沽) 포대를 향해 맹렬히 함포 사격을 가했다. 1860년 2차 아편전쟁에서 영불 연합군이 애를 먹었던 바로 그 대고 포대였다.

다음 날, 대고 포대는 연합 함대에 의해 손쉽게 점령되었다. 이제 청나라가 바다에서 올 연합군을 막을 가능성은 단 하나도 없었다.

대고 포대 전투, 낭방 전투가 지속되는 동안 북경의 청 조정은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황제와 태후가 지켜보는 가운데, 어전 회의가 열렸다.

"이미 전쟁은 시작된 것이오! 공사관을 전면적으로 공격하는 것만이, 지난 60년의 국치를 씻어 내는 길이오!"

"안 됩니다! 공사관을 공격하면 정말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권민이 칼과 총에 다치지 않는다는 건, 위조된 것입니다! 어찌 저런 도적의 무리를 믿으십니까?"

광서제는 의화단을 질책하는 대신들에게 동조했지만, 이미 전쟁으로 마음이 기울어진 서태후가 벌컥 화를 냈다.

"주술을 믿을 수 없다고? 그래, 민심도 믿을 수 없단 말인가? 지금 대청은 쇠약이 이미 극도에 이르렀으니, 의지할 것은 오직 민심뿐이다. 만약 민심마저 잃는다면 어찌 나라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서태후도 의화단의 주술을 진심으로 믿는 건 아니었다. 가뜩이나 그 위신이 땅에 떨어진 청나라가, 의화단을 열렬히 지지하는 민심을 외면했다가 왕조가 멸망할 것을 우려했다.

1차 어전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은 없었지만, 의화단을 모집하여 입대시키겠다는 조서가 발표되었다.

2차 어전 회의도 전쟁인지 협상인지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3차 어전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대고 포대가 연합군에 의해 포격 당하고 있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북경의 전신이 끊어지는 바람에 정보 전달이 늦어지는 건 청 조정도 마찬가지였다.

서태후는 사실상 전쟁이 발발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각국과의 외교 관계는 사실상 단절된 것과 다름없다! 북경에 상주하는 외교관들은 즉각 청군의 호위를 받아 공사관 구역을 떠나라!"

황제는 아무리 자신이 허수아비여도, 상황이 정말 돌이킬 수 없다고 여겨 반대했다.

"이는 국가의 대계인데, 이렇게 결정해서는 안 되오. 대신은 더 상의해서 결정하시오."

"황상은 상관하지 마시고, 쓸데없는 명으로 일을 그르치지 마시오!"

태후의 외침에 황제는 분을 삼켜야 했다. 태후는 어전 회의에서 누가 상위에 있는지 분명히 보여 준 것이었다.

정보가 차단되어 있는 공사관 구역도 혼란하긴 매한가지였다. 그나마 총리아문이 협상에 응하는 척은 했지만, 이게 진심인지 기만인지 알 수가 없었다.

6월 22일, 총리아문은 24시간 이내로 각국 사절이 청군의 호위를 받아 공사관 구역에서 퇴거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에 공사관을 대표해 주청 독일 공사 클레멘스 폰 케텔러(Clemens von Ketteler)가 항의하기 위해 총리아문으로 향했다.

독일 공사가 숭문문 앞 대로에 도착하는 순간, 무장한 청군과 의화단이 케텔러를 포위했다.

"네 이놈들! 네놈들이 감히 독일 황제 폐하의 전권사절을 막으려 하느냐?"

"洋鬼!"

"殺! 殺! 殺!"

권민은 늘 그렇듯이 ‘죽여라’를 외칠 뿐이었다. 권민에 동조한 청군도 습격자의 무리에 합류했다. 케텔러는 권총을 뽑아 맞서려 했지만, 결국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독일 공사 케텔러의 죽음은 충격적이었다. 전권 사절은 그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이고, 군주를 대리하는 사람이었다. 이는 사실상 독일, 더 나아가 수교국 전체에 선전 포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독일 공사관의 호위병들은 공사의 죽음에 격분하여 총리아문으로 달려가 관원들을 폭행하고, 기물을 파괴했다. 청조는 이를 대단한 모욕으로 받아들였고, 서로 간에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각국 사절은 이제 완전한 전쟁 상태라는 걸 인지했다. 공사관 구역은 포위 상태였다.

이 순간, 전면전만을 막아 보려는 최후의 노력이 있었다.

영국 육군 중장 찰스 고든, ‘차이니즈 고든’은 전 상승군 사령관, 조선 군사고문단장, 수단의 총독을 재임하고 퇴역했다.

1898년, 고든은 변법파로부터 외국인 수석고문관 취임을 제안받았다. 이미 65세의 노장이었지만, ‘차이니즈 고든’은 자신의 마지막 공적 활동을 청의 개혁을 위해 바치는 데 동의했다.

고든은 상승군 활동으로 서태후와 청 황실에도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고, 이홍장이나 양무파와도 두루 친밀하며, 변법파가 모범으로 삼는 영국인이니만큼 모두가 만족할 만한 인사였다.

수석고문관으로 부임해 변법에 힘을 실어 주던 고든은, 이듬해 변법파의 몰락과 수구파의 득세로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

의화단 사태가 격화되면서, 고든은 청 조정과 각국을 중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전쟁은 피할 수 없어 보였다.

케텔러 살해 소식을 들은 고든은, 각국 공사에게 청 조정을 설득하려는 최후의 시도를 할 것이라 알렸다.

"청나라와 서양의 전쟁은 세계의 비극이오. 더 큰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나는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저들을 설득하겠소."

노장은 죽음을 각오한 비장한 태도로 외교관들 앞에서 역설했다.

고든은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목숨을 바치겠다는 태도였다.

사절들은 모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고든과 군사고문단 시절부터 친분을 갖고 있는 홍영식은 더욱 그러했다.

"장군의 고결한 정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저들은 서양인은 전부 죽이려하고 있습니다. 청조의 수석고문관이라 할지라도 위험한 건 매한가지입니다."

"압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영국 공사 맥도널드가 반대했지만, 고든은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고든이 아무리 청 조정의 존경을 받는다고 해도, 안위는 장담할 수 없었다.

고든에게는 중국어가 능하지 못하다는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누구도 쉽게 통역에 나서지 않으려고 했다. 죽음을 각오하는 외교라는 건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때, 홍영식이 나섰다.

"제가 장군과 함께 총리아문으로 가겠습니다. 동양인이 함께 가면 덜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고맙소, 홍 공사."

고든은 홍영식을 향해 깊은 신뢰감을 보이며 악수를 청했다. 홍영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든의 손을 맞잡았다.

‘나 역시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고든 장군 혼자 사지로 내보낼 수 없다.’

- 27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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