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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혁명의 시대-278화 (277/812)

278화 의화단 전쟁

정보가 차단된 공사관 구역에서는 미처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었다.

시모어 제독이 이끄는 9개국 연합 원정대가, 낭방 전투에서 동복상의 감군에게 막혀 북경 진격을 포기하고 천진으로 퇴각했다는 것이었다.

2,200명의 원정대와 5,000여 명의 감군은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감군은 원정대만큼은 아니어도 근대식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고, 광신적인 저항을 보였다.

"대청 만세!"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시다)!"

"양귀 섬멸!"

청나라에 대한 충성, 이슬람 신앙, 반서양과 반기독교 감정으로 똘똘 뭉친 감군은 원정대보다 훨씬 많은 희생을 냈음에도, 공격을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제독! 적은 계속 몰려오는데, 탄약이 부족합니다!"

"제길, 철도가 파괴돼서 보급도 수월하지 않으니……. 일단 천진으로 후퇴한다!"

무더운 날씨에 보급은 수월치 않고, 9개국이나 되는 연합군의 통제력도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청군의 저항이 거세자 시모어 제독은 원정대에 철수를 명령했다.

원정대 전사자는 7명, 부상자 57명이었다. 감군의 공세가 집중됐던 독일군의 피해가 컸다.

그에 비해 감군의 사상자는 400명이 넘었지만, 원정대의 진격을 저지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승리였다.

시모어 원정대는 여러모로 심각한 실패였다. 퇴각하는 과정에서 청군과 의화단의 유격전으로 더 많은 손실을 입었고, 천진까지 되돌아갔을 때 62명이 사망하고 232명이 부상을 입었다.

원정대의 도착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공사관 구역의 사람들은 알지 못했지만, 시모어의 실패는 당분간 공사관 구역에 지원군이 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6월 24일,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공사관 교회에서 진행된 합동 예배에 참석한 후, 고든은 홍영식을 대동하고 최후의 협상을 위해 총리아문으로 향했다.

"호위병이라도 넉넉히 데려가십시오."

"저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작정한다면, 호위병을 데려가 봐야 같이 죽을 뿐입니다. 공사관 전투에 대비해서 호위병을 남겨 두는 게 낫습니다."

고든은 호위를 거절했다. 예비역 육군 중장인 고든은 여전히 냉철했다. 그는 최후의 협상을 시도했지만, 임박한 공사관 지역 전투에 대비해 방어 태세를 준비하고 떠났다.

목숨을 건 위험천만한 협상 시도였다. 물론 독실한 기독교도인 고든이 자살할 생각으로 호위병도 없이 나서는 건 아니었다.

고든은 서태후와 청 황실에서도 존중하는 인물이었고, 청조로부터 정2품 제독의 지위를 수여받았다. 무엇보다 선황인 동치제가 친히 하사한 황색 마고자, 황마궤(黃馬?)가 있었다.

고든은 청조의 관복 위에 황마궤를 걸쳐 입었다. 황제가 하사한 황마궤를 입은 공신은 건드릴 수 없다는 게 불문율이었다.

"관복이 잘 어울리십니다."

"공사도 전통 복장이 잘 어울리는군요."

홍영식도 의화단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서양식 제복 대신 조선의 조복(朝服)을 입었다. 청나라의 관복은 아니지만, 중국인이 보기에 익숙한 옷이었다.

"내가 처음 중국에 온 게 40년 전이었소. 상승군을 이끌고 태평천국을 격파했지. 태평천국도 파괴를 일삼는 기이한 광신도였지만, 이 의화단만큼은 아니었소. 나는 진심으로 중국이 개혁을 이뤄 내길 바랐소. 하지만 대체 이 나라는 40년 동안 무엇이 바뀌었는지 모르겠군……. 더 극심한 혼란과 배외주의만 남았으니."

총리아문을 향해 걸어가면서, 늙은 고든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차이니즈 고든’이라 불릴 만큼 중국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1880년에 러시아와 청나라 사이에서 전쟁이 예상되었을 때에는, 영국 정부의 반대에도 청군을 지휘하겠다고 나설 정도였다. 그러니 청조의 반동과 혼미가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장군께서 청국에서는 뜻을 못 이뤘을지 몰라도, 조선에서는 뜻을 이루셨습니다. 장군이 창설에 도움을 준 조선의 신식 군대가 있었기에,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독립을 지켜 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대한제국의 모태가 될 수 있었지요."

고든이 조선에서 군사고문단장으로 신생 조선군의 창설에 중요한 역할을 할 때, 홍영식은 군무독판으로 군제 개혁을 이끌었다. 그는 진심으로 고든에게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었고, 고든 역시 대한제국의 성공을 기쁘게 여겼다.

"나는 청나라, 오스만, 이집트, 조선에서 군사고문을 지냈소. 결국 대부분 실패했지만, 그래도 성공적인 사례를 한 가지 만들어서 다행이군요."

"그럼요. 장군의 이름은 제 조국에서도 영원히 기억될 겁니다. ‘코리안 고든’이란 호칭을 드리고 싶군요."

"하하, 그러고 보니 귀국 황제 폐하를 처음 만난 게 꼭 20년 전이군요. 그때는 어렸지만 총명함이 남달랐지. 결국 황제께서는 조국으로 돌아가 개혁을 성공으로 이끌었소. 돌이켜 보면 그때 조선은 중국보다 뒤떨어져 보호를 받는 처지였는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군요. 이게 바로 지도자의 중요성이라고 해야 할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황제 폐하께서 안 계셨다면, 제 조국도 청국과 비슷한 상황일지 모릅니다."

고든의 평가에 홍영식이 동의했다. 그 당시 조선은 양무운동이 한창 전개되던 청나라보다 훨씬 낙후하고 보수적인 나라였다. 이선과 개화당이 권력을 잡아 개혁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조선이 청나라의 처지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청나라 관복을 입은 서양인과 조복을 입은 한국인의 기이한 동행에, 만인의 시선은 집중되었지만, 감히 위해를 가하려는 자는 없었다.

북경에 사는 사람이라면, 고든이 입은 황마궤를 모를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주위로는 수많은 군중이 따라 움직였다. 홍영식은 그들의 증오 어린 눈빛을 보면서 뒤통수가 서늘했지만, 다행히도 무사히 총리아문 앞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대청 총리아문 수석고문관 과등(戈登)과 대한 특명전권공사 홍영식이 총리대신 이혁단군왕 전하를 뵙고 싶소. 문을 열어 주시오."

"전하께서는 계시지 않소. 돌아가시오."

"시급한 문제요. 모두에게 비참할 전쟁을 막기 위해 마지막으로 논의해 보고 싶소!"

"어허, 돌아가라고 하지 않소!"

고든과 홍영식의 절박한 요청에도, 총리아문의 관리들은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죽이지 않고 돌려보내는 걸 다행으로 여기라는 태도였다.

"덕국 호위병들이 불과 얼마 전에 총리아문을 습격해 관리들을 폭행하고 박살을 냈는데, 무슨 낯짝으로 서양인이 여길 오는가? 정녕 죽고 싶은가?"

전통 팔기군 차림의 만주인이 적대적인 태도로 병사들을 이끌고 왔다. 이혁단군왕 재의가 이끄는 만주 팔기군 소속 호신영(虎神營)이었다.

"나는 영국인이지만, 동시에 대청 황제 폐하의 명을 받은 총리아문 수석고문관이기도 하다. 나는 내 조국과 대청국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자 할뿐이다!"

"분명히 태후께서 모든 서양인은 24시간 이내로 퇴거하라고 명했을 터. 이미 24시간은 지났다. 즉 전쟁은 시작된 거나 다름없단 말이지. 우리가 너희를 죽여도 될 시간이란 뜻이다!"

군관은 사나운 태도로 쏘아 붙였다. 팔기군 병사들이 일제히 고든과 홍영식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네 이놈들! 네놈들 눈에는 이 황마궤가 보이지 않는가? 나를 죽이려 한다는 건, 내게 이 옷을 하사한 선황 폐하와 수석고문관에 임명한 황제 폐하를 모욕하는 일이다! 또한 이는 영국에 대한 선전 포고이기도 하다! 정녕 그 뒷감당을 할 수 있겠는가?"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대한국 황제 폐하를 대리해 이 자리에 서 있다. 나를 죽이는 건 대한국을 공격하는 것과 같다!"

고든과 홍영식의 외침에 군관과 병사들이 움찔했다. 분명 고든이 걸친 황마궤는 선황이 하사한 옷이었다. 이를 공격한다는 건 고든의 말처럼 선황에 대한 모욕이었다.

움찔하던 군관은, 각오를 다지듯이 칼을 뽑아 들었다.

"사악한 양귀 놈! 너희 영길리 놈들은 대청에 아편을 팔고 침략을 해 이 모든 악을 만들었다! 네놈들이 북경을 점령하고 황궁을 불태운 원한을 우리가 잊을 것 같으냐?"

"그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전쟁을 벌인다면, 또다시 그런 참사가 반복될 것이다! 그건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영불연합군의 1860년 북경 함락과 약탈은 도덕을 중시하는 고든도 격분시킨 사건이었다. 고든은 영국군의 만행이 야만적이고 수치스럽다고 공친왕에게 대신 사과했다. 하지만 그 영국군의 행위가, 영국인 고든에게 부메랑처럼 날라 왔다.

"더러운 조선놈, 너도 마찬가지다! 조선은 대청의 제후국이었거늘, 양귀와 왜놈의 앞잡이가 되어 만주를 침략해? 네놈들이 만주를 빼앗으려는 걸 모를 줄 아느냐!"

"침략은 그대들 청국이 먼저 한 게 아닌가! 우리는 병자년의 오랜 원한을 갚았을 뿐이다!"

"그래, 우리도 너희 침략자에게 원한을 갚으려고 한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군관의 외침에 팔기군 병사들이 일제히 외쳤다. 상황을 지켜보던 권민들도 고든과 홍영식을 에워쌌다. 고든과 홍영식은 군도와 권총을 뽑아 들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군. 이런 자들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으니, 이 나라는 이제 망했소. 앞으로 더 큰 보복이 걱정이오. 죽을 길에 함께 끌어들인 것 같아서 미안하오, 공사."

"아닙니다. 장군과 마지막을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제 죽음이 조국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홍영식은 죽음을 각오했다. 이미 오래전에 국내 수구파의 암살 기도로 죽다 살아난 적이 있었고, 전쟁 때에도 청나라에 피랍되고 억류되어 목숨이 위태로웠었다.

그는 목숨을 반쯤 내어놓았다고 생각했고,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국가를 위해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전권공사인 자신의 죽음은 대한제국에게 복수할 최선의 명분이 될 터였다.

"殺!"

타다다당!?

푸쉭!?

쏟아지는 총알이 고든과 홍영식의 몸에 박혔다. 창칼이 어지럽게 그들의 몸을 베었다.

대영제국 육군 중장, 대청국 총리아문 수석고문관 찰스 조지 고든. 향년 67세.

대한제국 전 군무대신, 주청 특명전권공사 홍영식. 향년 45세.

능력과 인품을 모두 갖춘 두 사람은 역사보다 15년 이상을 더 살았지만, 참살이라는 본래의 운명은 피하지 못했다.

일본 서기관 스기야마와 독일 공사 케텔러 남작에 이어, 고든과 홍영식의 살해는 청나라가 돌아갈 다리를 완전히 불사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중에서도 고든의 죽음은 서태후에게도 충격이었다.

"다른 자는 몰라도, 과등까지 죽이면 어떡하나! 그자는 영국 장군이고, 선제의 황마궤까지 입고 있었는데! 이런 어리석은 놈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후회해 봐야 죽은 이가 살아 돌아올 수 없었다.

서태후는 이미 참혹하게 난도질당한 피해자들의 시신을 수습해, 공사관 구역으로 정중히 돌려보내라고 명령했다.

예를 갖춰 봤자 이미 때는 늦었다. 광신적인 의화단을 승인해, 정규군까지 반서양의 광란을 저지르게 부추긴 건 태후와 만주 황족들이었다. 결국, 그 책임을 져야 할 이도 그들이었다.

"태후 폐하, 이제 돌이킬 수 없습니다. 만약 협상하려 한다고 한들, 저들은 외교 사절 살해의 대가로 엄청난 요구를 할 것입니다. 이미 저들은 태후 폐하의 퇴진과 황상의 복귀를 요구하고, 군대 주둔을 강요하려 합니다. 차라리 싸우는 게 낫습니다."

"동복상 장군과 감군의 승리는, 전 중국이 단결하면 충분히 싸워 볼 만하다는 걸 의미합니다. 서양 군대가 중국에 오려면 한참 걸립니다. 그 전에 공사관 구역을 정복하고, 모든 중국 땅에서 서양을 몰아내소서!"

"적군은 천진으로 퇴각했다고 하니, 천진과 대고를 몰아치면 설 땅이 없을 것입니다!"

"공사관이 부서지면 양이의 씨를 말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하는 자연히 태평스러워집니다!"

"선전(宣戰)의 상유(上諭)를 내려 주소서!"

수구파와 배외주의자가 총결집되어 전쟁을 갈구했다. 서태후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1900년, 경자년, 광서 26년 6월 25일.

황제의 명의로, 그간 수교했던 모든 국가를 향한 외교 단절과 선전 포고의 조서가 내려졌다.

연합군을 결성한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 미국, 일본, 한국 9개국은 특히 중국에서 몰아내야 할 적으로 규정되었다.

……지난 60년 동안, 서양 침략자는 중국에 참을 수 없는 치욕과 분노를 안겨 주었다.

이제 그들은 침략을 시작했고, 중국의 멸망이 임박했다. 만약 우리가 또다시 굴복한다면, 짐이 죽어 어찌 열성조를 뵐 면목이 있겠는가?

중국의 승리를 위해서는, 단합된 노력만이 필요할 뿐이다. 서양 침략자에 맞서, 전 중국이 분연히 일어나 맞서 싸우자!

이제 청나라와 9국 연합국의 전쟁은 국제법적으로도 명확해졌다.

의화단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청나라의 선전 포고와 북경에서 일어난 참극이 전해졌다. 북경의 전신이 끊어지는 바람에,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며칠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제국익문사를 통해 마침내 북경의 소식을 전해 들은 대한제국은, 충격과 분노에 잠겼다.

"폭도 무리가 전권공사 홍영식 공과 고든 장군을 참살하였습니다!"

"아아, 금석! 그대가 황성을 떠날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

"동지들, 금석의 원수를 갚아야 하지 않겠소!"

개화당은 충격에 빠졌다. 특히 김옥균, 박영효는 홍영식과 오랫동안 절친한 벗이자 뜻을 함께해 온 동지였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홍영식은 벗은 많았지만 적은 별로 없었고, 모두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이선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누구 못지않게 홍영식의 죽음에 슬퍼했다.

‘이럴 수가 있나……. 홍영식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내 미리 주의를 해야 했는데!’

이선은 전보문을 구기면서 분노했다. 청나라가 외교관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르리라 예상했지만, 자신이 보낸 외교관이 참살당할 거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참으로 기묘한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실제 역사에서 홍영식은 1884년 12월 갑신정변 실패 후 청군에게, 고든은 1885년 1월 수단의 마흐디 반란군에게 살해당한다.

이선의 등장으로 역사가 바뀌는 바람에 두 사람 모두 역사보다 훨씬 많은 활약을 할 수 있었지만, 군대에 의한 참살이라는 본래 운명은 피하지 못했다.

‘정해진 운명은 피할 수 없다, 이건가? 그렇다면 내가 더 크게 바꿔 주지. 금석, 경의 원수는 내가 반드시 갚아 주겠네. 자금성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날, 경의 장례식을 청국의 잔해 위에 성대히 치러 줄 터이니!’

이선은 서쪽을 향해, 분노의 칼을 갈았다.

- 27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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