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화 이성과 용기
9국 연합군은 차츰 천진으로 모여들었다.
천진 전투로 인해 교훈을 얻은 연합군은, 지휘권을 일원화하고 주력이 올 때까지 북경 진격을 연기하는 데 합의했다.
유럽에서도 병력이 급파되었다. 특히 공사 살해에 격분하고 있는 독일은 참모총장을 지낸 백전노장 알프레트 폰 발더제(Alfred von Waldersee) 육군 원수를 필두로 하는 정예군을 파견했다.
열강은 지휘권의 일원화는 합의했지만, 누가 최고 사령관으로 취임할지는 합의하지 못했다. 빌헬름 2세는 공사 살해라는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독일이 사령관을 맡아야 한다며 열강을 설득했다. 그래서 원수급의 백전노장을 보내는 것이었다.
"전권공사가 살해당한 독일이 연합군 사령관을 맡고, 역시 전권공사와 서기관이 살해당한 한국과 일본이 부사령관이나 참모장을 맡는 게 좋겠군. 왕자의 생각은 어떻소?"
"폐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본국에 그리 보고드리겠습니다."
카이저는 이강을 불러, 동병상련의 처지인 독일과 한국이 함께 주도권을 행사하자고 요구했다.
이는 한국 입장에서 구미가 당기는 말이었지만, 카이저의 단순한 호의가 아니었다.
병력 파병의 규모는 크지 않으면서 최고 사령관 자리는 달라고 압박하는 카이저의 억지에 영국, 프랑스, 미국 모두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연합군 파병의 최대 지분을 차지하는 러시아가 동의하는 입장을 보이면서 발더제의 사령관 취임이 가까워졌지만, 독일과 중국의 거리를 볼 때 상황이 해결되기 전까지 도착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요컨대 카이저는 한국 더러 독일의 2중대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일본이나 한국 모두 프로이센식으로 군대를 육성했고, 지휘부는 독일 유학을 통해 친독(親獨)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니, 독일의 대리인 역할을 해 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요동반도와 필리핀 문제로 일본은 카이저가 고깝게 여기고 있었으나, 한국은 좀 달랐다.
‘한국 황제는 니키의 장기 말이고, 니키는 내 장기 말이나 다름없으니.’
카이저는 이선이 니콜라이 2세의 장기 말이라고 여겼고, 본인이 차르를 장기 말처럼 다루고 있다고 판단했으니, 한국은 2중대도 아니고 3중대처럼 다룰 수 있다고 판단했다.
"후, 그동안 독일 신세 진 걸 이렇게 갚으라 이건가? 사령관 하는 건 좋지만, 카이저처럼 굳이 전면에 나서고 싶진 않은데."
이선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군사고문단 도입, 독일제 무기 수입, 유학생 파견 등 군사 문제에 있어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건 사실이지만, 냉정히 말해서 동아시아 문제에 있어 독일은 그렇게까지 중요한 나라가 아니었다.
가뜩이나 러시아 2중대 이미지가 강한 대한제국이었다. 러시아의 동맹국인 프랑스는 그래서 한국과 좋은 관계를 맺었지만, 영국은 아니었다. 특히 앞으로 만주 문제가 발생하면 영국과 미국의 경계를 높일 상황이었다. 적극적인 연합군 참여로 대한제국의 대외 이미지 상승을 노력하는 이선으로선 굳이 카이저에 동조할 필요가 없었다.
‘부사령관이니 참모장이니, 굳이 큰 실익도 없는 자리 얻어 봐야 뭘 하겠나? 하지만 카이저의 기분을 맞춰 주기도 해야겠지.’
대한제국이 명목상 부사령관이나 참모장 자리를 얻더라도 열강이 그 권위를 인정할 리도 없었고, 오히려 러시아에 이어 독일까지 2중대 노릇하냐는 영국의 의심만 사기 좋았다. 구태여 관심을 끌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기분파 카이저의 ‘호의’를 거절하면 무슨 원망을 들을지 모르니, 이선은 파병 사령관 인선에 공을 들였다.
젊은 참모장교 박유굉 정령이 참장으로 승진하여 근위여단을 이끌게 된 건, 그의 유능함을 높이 평가해서도 이지만, 열강을 고려한 인선이었다.
"박 참장, 짐이 경을 근위여단장으로 임명한 이유를 잘 알 거라 생각하오. 경은 대한의 첫 번째 군사 유학파이자, 가장 유능한 참모장교요. 이 전쟁은 9개국이 연합한 이상, 전쟁 못지않게 정치가 중요하오. 아니, 어떤 의미로는 정치가 더 중요하지. 경은 클라우제비츠의 금언에 관해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다, 이를 이르시옵니까?"
파병부대인 근위여단장으로 임명된 박유굉은 조선 최초로 군사 유학을 떠난 인물이었다. 박규수와 박영효의 일족인 반남 박씨로, 아직 조선에 독자적인 사관학교가 없을 때 일본에 유학해 육군유년학교와 육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일본 육사를 졸업한 후에는 조선으로 귀국해 건군에 참여했고, 조선이 독일과 군사 협정을 맺어 유학생을 파견할 때 다시 선발되었다.
박유굉은 프로이센 최고의 군사 엘리트들이 다니는 전쟁대학(Kriegsakademie)에서 수학할 기회를 얻어,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즈음에는 조선 최고의 군사학 전문가가 되었다.
독립전쟁 당시에는 조선군의 가장 유능한 참모장교로 전략을 총괄했다. 박유굉은 진급을 거듭했고, 마침내 34세의 젊은 나이로 장군 반열에 올랐다.
"바로 그렇지. 경은 짐의 뜻을 잘 이해하리라고 생각하오."
"황공하옵니다! 삼가 황명을 받들어, 지극한 성은에 보답하겠나이다."
일본 육사에 독일 전쟁대학을 다닌 박유굉은 일본 및 독일 장교들과 두루 인맥이 넓었다. 아니, 꼭 일본과 독일로 한정되지 않았다. 박유굉과 같은 시기에 독일에서 유학한 청국 신건육군 참모총판 단기서(段祺瑞)와도 친밀한 사이였다.
박유굉을 파병부대 사령관으로 임명한 건, 열강 입장에서도 바람직한 인선이라 할 수 있었다. 독일 장교들은 프로이센 전쟁대학 출신인 박유굉을 높이 평가했고, 다른 나라 장교들도 박유굉의 실력을 인정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는 중국으로 보내는 병력을 파송했다. 카이저는 독일군이 떠나는 빌헬름스하펜 항에서 악명을 떨칠 연설을 했다.
"용서란 없다! 자비란 없다! 포로도 필요 없다! 천 년 전 훈족의 왕 아틸라가 오늘날까지 전설적인 위명을 떨치는 것처럼, 중국에서 그렇게 하라! 앞으로 천년 동안 중국인이 감히 독일인을 쳐다볼 수 없도록, 압도적인 무력을 행사해 야만인들에게 문명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어라! 행운을 빈다, 동지들! 독일은 신과 함께 전진한다!"
"Gott mit uns!"
이른바 악명 높은 ‘훈 연설’이었다.
카이저의 강경한 연설은 독일 외무부조차 놀라게 했고, 영국과 프랑스의 조롱을 샀다. 이후 독일이 ‘훈족’으로 경멸당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 무자비한 징벌을 가해야 한다는 건 서양 모두가 동의한 바였다. ‘포로는 필요 없다’라는 카이저의 명령을 받은 독일군은 말할 것도, 연합군 모두 중국에 대한 가혹한 복수를 다짐했다.
예외가 있다면, 한국이었다. 한국 역시 오래 묵은 원한, 홍영식 살해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지만, 이선은 장병들에게 이성과 절제를 요구했다.
"친애하는 근위여단 장병 여러분! 그대들은 짐의 근위이자, 전우이다. 결코 짐의 곁을 떠나지 않는 근위부대를 청국에 파병하는 이유를, 그대들은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그대들은 대한국 최고의 정예요, 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동지들이기 때문이다!"
"오오오!"
"그대들은 평양의 승리를 기억하는가? 독립전쟁의 승리를 기억하는가?"
"예!"
"그렇다, 그대들과 짐이 공유하는 영광스러운 기억이다! 분명 우리는 승리했고 청국은 패배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여 근대의 세례를 받았지만, 저들은 낡은 체제에 얽매여 패배를 자초했다."
그들을 전우이자 동지라고 지칭하는 황제의 연설에, 충성심 높은 근위여단 장병들은 더욱 깊은 감명을 받으며 경청했다.
"이번 사변, 권비의 난동은 청국의 몰락이 어디까지 전락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중국은 사라져 버렸다! 시대착오적인 만청 조정과 잔인무도한 권비는 혐오스러운 적이다. 이들을 징벌하라! 자금성에 태극기가 올라가는 그 날, 삼전도의 치욕은 완전히 되갚을 수 있을 것이다!"
"와아아아아아!"
열렬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환호성이 잠잠해진 후, 이선은 연설을 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적은 만청과 권비이지, 청국의 양민이 아니다! 청국의 양민 또한 무능하고 부패한 만청 조정의 피해자라는 걸 인지하라. 우리는 서양의 세례를 받았지만, 동양 문명을 계승했다. 서세동점의 시대가 도래하고, 중국의 힘이 땅에 떨어진 지금, 우리에게 동양 문명을 계승하고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
"북경을 함락시키더라도, 서양 연합국이 그 어떤 만행을 저지르더라도, 절대 동참하지 말라. 일체의 군율 위반은 엄금한다. 결코 민심을 적으로 돌리지 말라! 비록 대한국의 군대가 가장 막강하지는 않더라도, 가장 절도 있고 정의로운 군대임을 그대들이 증명해 주길 바란다! 자랑스러운 대한의 건아들이여, 짐은 그대들을 믿는다!"
"와아아아!"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근위여단 장병들은 환호와 만세로 황명을 받들 것을 천명했다.
대한제국군 중에서 정예인 근위사단, 정예 중의 정예라 할 수 있는 근위여단이었다.
무기의 장비와 훈련도, 전투 수행 능력뿐만 아니라, 군기의 엄정함에 있어서도 최고였다. 아직 신흥 세력인 대한제국군에서, 열강의 군대와 비견될 수 있는 유일한 부대로 평가받는 근위여단이었다.
이런 정예를 북경 공략에 파병하는 것은, 대한제국의 위명을 떨칠 목적과 동시에, 이선의 뜻을 한 치도 어기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선이 박유굉에게 말한 것처럼,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이었다. 9개 연합국이 결성한 의화단 전쟁은 더욱 그러했다.
근위여단은 두 번에 나눠서 천진으로 수송됐다. 선발대로 1연대 1대대가 천진 공략에 참여하고, 나머지 병력은 천진 전투 후에 도착했다.
파병군의 규모는 근위여단과 해군육전대를 포함하여 6,500명이었다. 일본군, 러시아군, 영국군 다음가는 규모였다.
박유굉이 선발대로 천진 전투에 떠나기 직전, 이선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
"짐은 경에게 클라우제비츠의 금언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겠소. 전쟁의 본질은 많은 힘들을 조화롭게 연합하는 것이다. 전쟁은 불확실한 안개 속에 둘러싸인 위험한 세계이므로, 끊임없는 충돌을 성공적으로 이겨 내려면 두 가지 힘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게 무엇인가?"
"하나는 이성(理性)인데, 큰 어둠 속에서도 인간의 정신을 진실로 이끄는 내면적 불빛의 흔적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이 희미한 불빛을 따르는 용기다."
"하하! 경은 전쟁론을 꿰고 있군. 역시 프로이센 학파다워. 바로 그렇소. 이성 없이 용기만 있는 군대는 야만인에 지나지 않고, 용기 없이 이성만 있는 군대는 결단력이 부족하지. 아군은 이성과 용기가 모두 조화가 이뤄지길 바라오."
"예! 성상의 가르침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근위여단을 천진으로 보낸 후, 이선은 평양에 행재소(行在所)를 설치하고 상황을 지휘했다. 평양 감영이 행재소 역할을 했다. 이선의 명령으로 도시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 평양은, 근대 도시로 탈바꿈하는 중이었다.
이선이 노리는 건 근위여단의 북경 진격이 전부가 아니었다. 만주 진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인대가 해방한 서간도 지역은, 원래대로라면 합의한 대로 7월까지 철수를 완료하고, 국경으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의화단 전쟁이 시작되고, 청나라가 열강을 향해 선전포고 하면서 합의는 우야무야 되었다.
만인대 시절과 차이가 있다면, 만인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서간도로 진입한 대한제국 정규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근왕의식이 있는 전봉준과 달리, 급진파인 김기범은 한동안 무장 해제를 거부하며 뻗대기는 했으나, 결국 전봉준의 설득을 받아들여 해산에 동의했다.
이선은 직접 서간도를 시찰하기 위해 평양을 떠나 압록강을 건너자, 전봉준과 만인대 지휘부는 알현을 청했다. 이선은 기꺼이 전봉준을 친견했다.
"폐하! 신등(臣等)이 어리석고 광포하여, 폐하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대한의 입장을 곤란하게 하였습니다. 사사로이 군대를 움직인 죄가 크오니, 신을 처벌하소서!"
"분명 민병대를 결성해 사사로이 군대를 움직인 건 잘못이오. 군은 통수권자인 짐만이 명할 수 있소. 민병대라고 해도 다르지 않소.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오."
"실로 신의 죄가 큽니다. 하오나 신을 따른 농민들은 죄가 없습니다. 이들은 오직 만주에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일념으로 움직인 것뿐이니,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전 공, 일어서시오. 경의 충심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는데, 어찌 경을 처벌하겠소? 경은 대한의 농민들에게 큰 희망이 된 사람이오. 경을 중용할지언정, 처벌할 마음은 추호도 없소."
"황공하옵니다."
"짐 또한 만주에 이상 사회를 건설하려고 했던 농민들의 열망을 모르지 않소. 이는 짐에게 토지 개혁의 필요성을 더욱 깨닫게 하였으니, 머지않아 오래 기다려 왔던 대계(大計)를 시행할 수 있을 것이오. 곧 경에게 중책을 맡기겠소."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선이 전봉준을 치하하고, 오히려 토지 개혁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였다고 하니, 전봉준은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랜 기간 진행되었던 양안과 토지 조사가 마침내 마무리되었음에도, 이선이 암시했던 토지 개혁은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 급진파는 전봉준이 믿는 ‘황제의 선의’에 회의적이었고, 근왕의식이 있는 전봉준도 마음 한편에 의심이 싹 트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서간도 진격이 국내에 토지 개혁을 앞당길 목적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로선 결국 목표를 달성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선에게 있어, 이는 즉흥적인 구상이 아니라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숙원이었다.
‘토지 개혁은 그간의 개혁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의 경제와 사회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거니까. 한차례 승전만으로는 부족했다. 하지만 자금성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심양에 북벌군이 입성한다면, 누가 감히 맞서겠는가?’
이선에게 이 전쟁은 국제 정치의 연장선만이 아니었다. 국내 정치의 연장선이기도 했다. 승전 분위기 속에서, 초대 민의원 선거와 토지 개혁까지 모두 이뤄 낼 생각이었다.
의화단이 불러일으킨 폭풍이 중원을 넘어 만주에까지 번지고 있으니, 때는 임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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