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북경의 50일
1900년 8월 14일.
이날은 공사관 구역의 포위전이 시작된 6월 25일부터 꼭 50일째 되는 날이었다.
공사관 구역에 포위된 사람들은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600여 명의 호위병과 자원병 중 전사자는 68명, 부상자는 150명에 달했다. 구역의 외곽 부분은 함락되거나 파괴당했으며, 민간인들은 영국 공사관 주위에 버티며 항전 중이었다.
가장 위태로운 시기였던 7월 17일부터 12일간 휴전을 하지 않았더라면, 공사관 구역은 벌써 무너졌을 터였다. 휴전 기간 동안 청 조정은 식량과 생필품을 공급해 줬고, 호위병은 재정비를 할 수 있었다.
결국 휴전은 깨지고야 말았지만, 공사관 구역은 곧 원군이 도착하리라 생각하고 버텼다.
외부와의 연락은 여전히 차단된 상황이지만, 휴전이 끝나기 직전 연합군이 천진을 점령하고 북경으로 향하고 있다는 낭보가 은밀히 전해졌던 것이다.
"남은 식량이 얼마나 되오?"
"최대 사흘 치 정도 됩니다."
"이대로 가다간 굶어 죽을 판이군. 원군이 빨리 당도해야 할 터인데."
식량 사정도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싸울 수 있는 사람들과 외국 민간인에게 식량이 우선 배분되었으므로, 중국 기독교도들은 기아에 시달렸다. 최소한의 식량은 배급되어 아직 아사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대로 가다간 기아와 병으로 쓰러질 상황이었다.
쾅! 콰아아앙!
"잠깐, 들어 보십시오! 저거 포격 소리 아닙니까?"
"그렇군, 틀림없소! 연합군이 근거리에 당도한 것 같소!"
14일 새벽, 북경 외곽에서 포성이 들렸다. 공사관 구역에서는 연합군의 당도를 확신하여 사기가 올랐다.
"제군! 우리의 투쟁이 곧 결실을 맺을 것이다! 아군이 곧 북경에 도착한다!
"승리가 멀지 않았다! 힘내서 버텨 보자!"
"와아아아!"
이동휘와 안중근의 격려에, 악전고투하던 대한제국 호위병들도 환호성을 내질렀다.
공사관 구역의 열렬한 기대와 함께, 14일 새벽 2시 연합군의 포격이 개시되었다.
북경에는 길이 33km의 성벽과 16개의 문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었다.
자금성이 있는 황성(皇城)은 내성(內城) 안쪽에 있고, 만주족이 거주하는 북쪽 내성의 성벽은 한족이 거주하는 남쪽 외성(外城)의 성벽과 맞닿아 있어, 북경 전체가 높고 두터운 성벽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공사관 구역은 내성의 남쪽 끝, 외성과 면한 지역에 있었다.
"다섯 개의 문을 동시에 공격하도록 합시다. 각자 맡을 문을 정하지요."
13일까지 북경 외곽에 도달한 1만 5천의 6개국 연합군은 지원군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부대를 다섯으로 나누어 각 문에 공세를 준비했다.
북쪽부터 남쪽까지, 내성 북문인 안정문(安定門)에는 한국군, 내성 동북문인 동직문(東直門)에는 러시아군, 내성 동문인 조양문(朝陽門)에는 일본군, 내성과 외성이 만나는 동편문(東便門)에는 미군과 프랑스군, 외성의 동문인 광거문(廣渠門)에는 영국군.
공사관 구역에 인접한 문을 선점하려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가장 먼저 공사관을 해방한 영광을 누리기 위함이었다. 논쟁 끝에 가장 가까운 동편문에 미군과 소수의 프랑스군이 배치되었다.
한국군은 공사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북쪽의 안정문을 배정받았지만, 박유굉은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그에겐 이선이 부여한, 공사관 구역의 해방보다 더 중요한 임무가 있었다.
"근위여단 장병 제군! 북경이 우리 눈앞에 있다. 고려를 침략한 원나라의 대도, 조선을 침략한 청나라의 황도가 바로 이곳이다. 우리 선조들은 그동안 조공을 바치고 황제의 문안을 여쭈기 위해 북경에 왔지만, 우리는 당당한 승리자의 자격으로 왔다. 마침내 북경 성벽과 자금성에 태극기가 꽂힌다면, 남한산성과 삼전도의 치욕은 완전히 되갚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와아아아!"
"마지막 전투다! 전리품에 눈이 멀어 의무를 수행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고, 명예롭게 싸워라! 제군의 무운을 빈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온갖 고생에도 불구하고 북경의 턱밑에 도달한 박유굉과 대한제국군 장병들은, 임박한 입성의 전율에 몸을 떨었다.
안정문 바깥, 황제가 토지신에게 제례를 올리기 위해 건설된 지단(地壇)에 사령부를 설치한 박유굉은, 황기실의 위패를 살펴보았다.
고종순황제지위(高宗純皇帝之位, 건륭제), 성조인황제지위(聖祖仁皇帝之位, 강희제), 태종문황제지위(太宗文皇帝之位, 홍타이지)가 차례로 보였다.
조선을 굴복시켰던 태종 홍타이지. 260년이 지나, 조선의 후예인 대한제국군이 옛 침략자이자 옛 상국의 황제 위패를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예전 같았으면, 조선인들은 이 위패도 감히 쳐다볼 수도 없었고, 황제를 향해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해야 했을 터이다.
이제 역사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급진개화파답게 반청주의자인 박유굉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청산의 시간이다."
연합군의 공세는 5시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새벽 3시, 러시아군 사령관 리네비치는 선수를 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우리 러시아군이 차르의 명으로 대군을 파견했는데, 가장 큰 영광을 다른 나라 놈들에게 넘겨 줄 수야 있나? 우리가 먼저 진격하여 공사관 구역을 해방한다!"
러시아군은 자신에게 배정된 동직문을 내버리고, 미군에게 배정된 동변문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동변문을 지키는 수비대를 사살하고 대포로 문을 박살 낸 러시아군은, 바로 돌입을 개시했다.
"돌격!"
"러시아 만세! 차르 만세!"
타다다다다당!
청군은 성문 안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저항했다. 격렬한 저항에 러시아군은 수십 명을 잃고 다시 성문 밖으로 밀려났다.
"망할 러시아 불곰 놈들! 합의를 깨고 우리 구역을 침범해?"
"동변문은 미합중국의 몫이다!"
미군은 뒤늦게 러시아군이 동변문으로 침입했다는 걸 알았다. 미군의 항의에 러시아군은 공세 방향을 바꿨다. 연합군 간에 상호불신이 얼마나 심한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촌극이었다.
"공격! 성벽을 뚫고 공사관 구역으로 진격하라!"
오전 11시, 미군은 동변문에서 청군의 저항을 완전히 제압하고 성루에 성조기를 휘날렸다. 미군은 청군과 시가전을 벌이며 공사관 구역으로 향했다.
"적의 반격이 강합니다!"
"천황 폐하의 군대에 후퇴란 없다!"
대조적으로 일본군은 조양문에서 악전고투 중이었다. 조양문은 내성에서 자금성으로 이어지는 가장 가까운 문이었기 때문에, 청군의 저항도 격렬했다.
"보고에 따르면 연합군 친구들이 모두 열심히 싸우고 있다는군. 하지만 영광은 우리의 몫일세!"
영국군이 멀리 떨어진 외성의 광거문을 택한 이유가 있었다. 광거문의 방어는 확실히 내성의 다른 문에 비해 헐거웠고, 영국군은 공사관에 접근하는 빠른 길을 알고 있었다. 광거문 밑에 흐르는 수로를 따라 공사관 구역에 진입할 수 있었다.
영국군은 이런 정보를 다른 연합군에게 알려 주지 않고, 독자적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탕! 탕! 타다다다당!
격렬한 총성이 공사관 구역 주위에 울렸다.
의화단은 공사관 구역을 향해 최후의 공세를 퍼부었지만, 무의미한 공격이었다.
"유니언 잭이다!"
"와아아아아!"
"원군이다! 살았다!"
오후 2시 30분, 영국의 인도군 부대가 제일 먼저 공사관 구역에 진입했다.
터번을 쓴 시크교 군인들이 달려드는 권민을 모조리 제압하고, 위풍당당하게 공사관 구역에 도달했다. 수로를 통해 진입한 영국군의 손실은 거의 없었다.
50일간의 포위전을 치른 호위병들과 그동안 공포에 떨며 숨어 있던 민간인들은 일제히 뛰쳐나와 ‘해방군’을 맞이했다.
"브리튼 만세!"
"연합군 만세!"
4시 30분, 미군도 청군의 방어선을 뚫고 공사관 구역에 도달했다. 공사관 구역은 완전히 해방되었다.
1900년 8월 14일, 50일간 지속되었던 북경 공사관 포위전은 종식되었다.
한때 천하를 제패하고 군림했던 대청의 수도, 북경은 전투 개시 하루 만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북경 성내에는 북양군과 감군, 팔기군 등 3만의 정규군이 존재했지만, 이들의 전투 의지는 바닥을 기었다. 숫자도 다 파악하기 힘든 의화단이 있었지만, 이들은 전력으로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사실 마음만 먹는다면, 주전파의 계획대로 청군이 공사관 구역을 쓸어 버리는 건 가능했을 터였다.
하지만 군을 지휘하는 북양대신 영록은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지 않았다. 대포를 쏘지 못하게 하고, 정규군 대신에 의화단을 투입해 희생만 늘렸다.
‘공사관 구역이 함락되어 안에 있는 외교관과 민간인이 모두 살해당하면, 뒷감당은 진짜 감당할 수가 없다. 태후 폐하의 명령은 거역할 수 없으니 공격하는 시늉만 하자.’
서태후의 측근이자 강경한 배외주의자인 영록조차 현실을 깨닫고 체념 상태에 빠졌으니, 그 휘하의 장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대개 이홍장이 키운 회군 출신인 북양군 장교들, 신식 교육을 받은 신건육군의 장교들은 서양 열강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고, 연합군과의 전투 자체에 극히 회의적이었다.
그들의 옛 주군인 이홍장이 동남호보를 선언했다는 소문이 알려지자, 북양군은 북경 방위에서 슬금슬금 빠져나갔다. 이들의 충성 대상이 대청 황제와 황실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태도였다.
"여기서 개죽음당하는 건 무의미하다. 우리는 중국 최후의 희망이다. 살아서 중국을 재건해야 한다. 이중당께서도 우리의 선택을 질책하지 않으실 게다. 북경을 포기하고 퇴각한다."
청 조정 입장에서 가장 믿을 만한 부대인 신건육군의 참모총판 단기서는, 북양대신 영록의 명령을 거부하고 북경 방위를 포기했다. 신건육군은 연합군을 피해 서북쪽으로 퇴각했다.
단기서는 애초에 이홍장이 세운 천진무비학당 출신에, 이홍장의 추천을 받아 독일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니, 서태후보다 이홍장을 더 따르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아니, 이홍장이 아니었더라도 단기서는 가망 없는 전투에서 싸울 생각이 없었다. 성벽 너머에 있는 태극기를 보면서 단기서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박유굉은 승리자의 일원으로 북경에 진입하는데, 나는 꼬리를 말고 도망쳐야 하는구나! 이게 다 나라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프로이센 전쟁대학 유학 동기인 박유굉은 승리자의 일원으로 입성하는데, 자신은 무능한 정권을 보위하다 퇴각하는 상황이었다.
돌이켜 보면 자신이 박유굉보다 못할 건 하나도 없었다. 신무기로 무장하고 독일식으로 철저히 훈련을 받은 신건육군이 근위여단보다 못할 것도 없었다.
단지 정부의 차이였다. 이선과 서태후의 차이, 대한제국 정부와 청 조정의 차이였다.
‘이따위 무능한 정권을 보위하다 죽느니, 차라리 망하는 걸 내버려 두는 게 낫다!’
단기서는 의화단을 끌어들여 열강에 선전 포고한 서태후와 청 조정에 저주를 퍼부으면서, 북경을 벗어나 퇴각했다.
"우리는 최후까지 싸운다!"
"대청 만세!"
"알라후 아크바르!"
청군 중에서 유일하게 전의를 불태우는 건 동복상의 감군이었다. 서양에 대한 강렬한 적대감을 갖고 있는 이 무슬림 장군은 최후 항전을 명령했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진 상황이었다. 감군은 연합군에 맞서 시가전을 벌였지만, 15일 오전 저항을 포기하고 퇴각했다.
조정이 이미 자금성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소문이 파다하기 퍼졌기 때문이었다.
"우린 최후까지 싸우라고 해 놓고선 도망쳤다고?"
"태후와 황제가 도망쳤다면 우리가 계속 싸울 이유가 뭐가 있나?"
"젠장, 비겁한 만주놈들! 우리도 퇴각한다!"
타다다다다당!?
탕! 탕! 탕! 탕! 탕!
"Fire!"
"Kill boxer, kill more boxer!"
총알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우락부락한 체격의 양귀들은 마치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총알을 비처럼 쏟아 냈다.
소년 장삼은 현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분명히 의화권을 익히면 총알을 피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청 조정과 의화단이 단결하면, 양귀들 따위는 모두 몰아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양귀들이 마법처럼 쏟아 내는 총알에 창칼을 들고 덤벼든 의화단은 물론이요, 양총으로 무장한 청군조차 줄줄이 쓰러져 나갔다.
"으아아악!"
"아흑!"
총알이 권민들을 쓰러트리고, 마침내 장삼의 몸에까지 박혔다.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극심한 고통이 장삼의 정신을 지배했다.
세상에 총알을 피할 마법 같은 건 없었다. 장삼은 양귀들보다 청 조정과 의화단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이 더 컸다.
‘다 거짓말이었어! 아, 이런 멍청한 짓에 목숨을 걸었다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아, 아버지! 어머니!’
장삼은 쓰러졌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생존 본능이 지배했다. 장삼은 시체 더미 속에 몸을 숨기고 죽은 척을 했다.
양귀들은 무자비했다. 의화단이라면 부상자도 사살했다. 그동안의 학살을 생각하면 자업자득이었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냄새가 진동했지만, 죽음을 피하려면 그 속에 숨는 수밖에 없었다.
8월 15일 오전, 청 황실은 공황 상태였다.
북경은 단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함락되었다. 이미 연합군은 내성에까지 진입했다. 천안문의 금군은 아직 버티고 있었지만, 자금성까지 진입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내가 나라를 망쳤구나! 내가 대청을 망쳤구나!"
서태후는 뒤늦게 후회의 탄식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40년 전 북경 함락 때도 그랬던 것처럼, 서양 열강은 북경을 점령하더라도 이권이나 뜯어내고 말 것이었다. 하지만 의화단의 폭발을 막아 내지 못한다면, 태평천국처럼 큰 반란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서태후에겐 열강보다 태평천국이 더 끔찍한 악몽이었다. 의화단보다 열강을 적으로 돌리는 게 낫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열강은 40년 전보다 훨씬 강력했고, 의화단은 태평천국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오합지졸이었다. 열강은 북경을 박살 낼 기세로 덤벼들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북경은 여러 번 함락되었다. 금나라의 수도 중도가 몽골군에게 함락될 때, 원나라의 수도 대도가 명군에 의해 함락될 때, 그리고 명나라의 수도 북경이 만주 팔기군에 의해 함락될 때.
모두 큰 인명 손실을 동반한 이민족 간의 투쟁이라 할지라도, 긴 안목에서 보면 천명의 교체에 의한 왕조 교체였다. 그들은 모두 천명을 얻은 새로운 주인으로 중국을 다스렸다.
이번은 달랐다. 중국을 침략하고 식민화하려는 침략자들에 의한 함락이었다.
서태후는 눈물을 흘리며 이화원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사랑하던 이화원도, 정복자에 의해 짓밟힐 운명이었다.
중국 역사에, 이토록 수치스러운 순간은 없었다.
- 287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