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만주의 유혈
시간을 잠시 앞으로 돌려, 1900년 7월 만주.
의화단의 광풍이 몰아치는 화북 일대와 달리, 만주는 한동안 무풍지대로 보였다.
하지만 6월에 이르러 의화단의 광풍이 만주 일대에 상륙했고, 청 조정이 열강을 상대로 선전 포고하면서 적대시가 노골화됐다. 만주에 등장한 의화단의 첫 번째 공격 대상은 러시아가 부설하는 동청철도가 되었다.
7월 초순, 의화단은 단 10일 만에 동청철도를 공격해 거의 모든 전선을 파괴하고, 수십 대의 기관차를 파괴했다. 사태는 러시아의 철도 경찰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사태 통제가 불가능하다. 지원군을 보내 달라!"
하얼빈의 동청철도 본부에서는 러시아를 향해 지원 요청이 쏟아졌다.
동청철도 부설을 주관하는 재무대신 비테는 차르에게 사태를 보고했고, 7월 10일 니콜라이 2세는 군대 투입 명령을 내렸다.
"아무르 군관구, 프리모리예(연해주) 군관구, 자바이칼 군관구, 관동주(대련)에 동원령을 내리고 군대를 투입하라."
1896년 러·청·조 비밀동맹조약에 따라, 러시아는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청국을 방어할 의무가 있었고, 이를 위해 동청철도를 이용해 군을 파병할 수 있었다. 또한 동청철도협정에 따르면, 청 조정은 철도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만약 청군이 치안을 지키지 못해 내란 상황이 발생해 동청철도가 공격당하면, 조약 6조에 의거하여 러시아와 한국은 개입할 명분이 있었다.
"만주에 20만 대군을 파병하고, 연합군 사령관은 러시아인이 차지해 북경까지 진격해야 합니다."
"아닙니다. 열강과 마찰을 빚을 일은 피해야 합니다. 철도 보호를 위해 만주 진격은 단행하되, 연합국과의 협조를 통해야 합니다."
강경론으로 선회한 육군대신 쿠로파트킨(Aleksey Kuropatkin) 대장은 급진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재무대신 비테는 깜짝 놀라 만류했다.
"지금 모든 상황이 불확실합니다.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든, 무수히 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발생할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미처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겁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만주는 부설조차 제대로 되기 전에 공격을 받았습니다. 대군을 동원할 수야 있지만, 문제는 수송에 걸리는 시간입니다. 육상으로든 해상으로든 대군을 파병해도 가을은 되어야 도착할 상황이지요."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
"우리의 동맹, 한국을 이용해야 합니다. 만주의 지척에 한국군이 배치되어 있지 않습니까? 아군이 도착하기 전에 그들에게 일차적인 진압의 요청을 해야 합니다."
"짐의 생각도 그와 같소. 짐은 이미 한국 황제와 사태 해결에 관해 협의하고 있었소. 그는 놀랍게도 이미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지. 우리를 대신해 동청철도 보호를 나서 줄 것이오."
비테의 건의에 차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이선은 니콜라이 2세에게 밀서를 보내 의화단 사건의 전개와 만주 파병 계획에 관해 논의했다. 러시아의 요청을 받으면 한국이 군대를 투입할 예정이었다.
한국과 이선에 대해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차르와 달리, 강경론이 지배하는 육군은 냉소적으로 생각했다. 이들은 한국군에게 ‘만주 정복’의 과실을 넘겨 줄 생각이 없었다.
"황제 폐하께서 한국군에게 먼저 선점의 기회를 주셨지만, 이들은 우리의 본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움직여 줄 선봉대에 불과하다. 최종 점령은 러시아군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본관은 만주 작전에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달한다."
1. 아무르 군관구. 하바롭스크를 출발해 숭가리강을 거슬러 동북쪽에서 하얼빈으로 진격한다.
2. 프리모리예 군관구. 니콜스크-우수리스크를 출발해 동청철도 연변을 따라 동남쪽에서 하얼빈으로 진격한다.
3. 프리모리예 군관구. 노보키예프스크를 출발해 동남쪽에서 길림으로 진격한다.
4. 자바이칼 군관구. 만주리를 출발해 동청철도를 따라 서쪽에서 치치하얼로 진격한다.
5. 자바이칼 군관구. 블라고베셴스크를 출발하여 아무르강을 도하해 북쪽에서 하얼빈으로 진격한다.
6. 관동주. 요동반도 여순과 대석교를 출발하여 남쪽에서 봉천으로 진격한다.
7월 중순부터 순차적으로, 러시아군은 여섯 방향으로 만주 진격을 개시했다. 1차 목표는 동청철도와 남만주철도의 분기점인 철도요충지 하얼빈이지만, 최종적으로 흑룡강, 길림, 봉천의 만주 삼성을 모두 제압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러시아제국 정부는 대한제국 정부에 동맹조약에 의거, 만주 파병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러시아 정부의 요청을 받은 대한제국은, 병력을 동원했다.
"요동의 4여단은 북상하여 봉천의 남만주철도 연선을 방어하고, 북간도의 5여단은 북상하여 길림의 동청철도 연선을 방어한다."
최전방 병력인 4여단과 5여단에 국경을 넘어 진격 명령이 떨어졌다. 평안도에 주둔하는 정예 6여단과 함경도에 주둔하는 7여단이 요동과 간도로 전진 배치되었다.
이선은 4여단장 권동진 참장과 5여단장 이범윤 참장에게 밀명을 내렸다.
"재만(在滿) 한국인 보호, 재만 서양인과 기독교도 보호, 철도 방위 이 세 가지 목표만 충실히 이행하라. 의화단은 공격해도 좋지만, 청군이 선제공격하기 전에는 공세를 개시하지 말라. 이 전쟁은 전투의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치적 승리, 외교적 승리라는 걸 명심하라."
"삼가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선은 군대에 침착함을 요구했다. 만주를 모조리 점령하겠다는 듯이 폭주하려는 러시아군과 달리, 한국군은 열강에 다른 태도를 보여야 했다.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하는 영국과 일본, 중국의 문호 개방과 영토 보전을 주장하는 미국이 러시아의 만주 점령에 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리라는 건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이들이 ‘러시아 2중대’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 대한제국이 적극적으로 만주 공격을 개시하면, 한국의 만주 진격은 러시아를 위한 길이라고 여길 터였다. 외교를 러시아에서 여러 열강으로 다각화하려는 한국에 있어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선은 조심스러운 외교전에 나섰다. 유럽에 파견되어 있는 이강과 영국 공사 서광범에게 영국 정부와, 미국 공사 서재필에게는 미국 정부와 접촉해 양해를 구하라는 훈령을, 일본에는 외무대신 박영효를 보내 의화단 전쟁 이후에 관해 논의하게 했다.
공식적으로 내놓은 대한제국의 입장은 결국 다음과 같았다.
"대한제국군의 만주 진격은, 의화단의 폭거와 북경 조정의 선전 포고에 맞서, 만주 지역의 한국 및 열국의 생명과 자산을 보호하고, 질서를 회복하고 평화를 재건하려는 목적이지 다른 뜻은 없다."
물론 열강이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터였다. 그렇기에 이선은 공세를 서두르기보다 명분의 축적을 기다렸다.
그동안 한국군은 만주로 확산된 의화단의 공격을 저지하고, 외국인의 보호와 철도 방위에만 집중했다.
아무르강(흑룡강)에서는 본격적인 러-청 전쟁이 개시되었다.
1858년 애훈(愛琿, 아이훈) 조약 이후 아무르강 북쪽은 러시아에 할양되었고, 청나라의 북쪽 끝 도시인 흑하(黑河, 헤이허) 너머에는 러시아령 블라고베셴스크가 있었다.
흑룡강성을 관할하는 흑룡강장군(黑龍江將軍) 수산(壽山)은 만주 팔기 출신으로, 외국 세력, 특히 러시아에 강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수산은 조정이 포고한 ‘선전 상유’를 충실하게 이행할 계획이었다. 러시아군에서 동원령이 떨어지자, 러시아군의 침입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수산은 전열을 가다듬었다.
"저들이 우리를 먼저 공격하는 걸 당하고 있느니, 먼저 선제공격한다."
7월 16일 오전, 청국 국경수비대는 아무르강을 항행하던 러시아 기선을 포격했다. 격분한 아무르 군정지사 그라프스키 중장이 포격이 개시된 애훈을 향해 군대를 이끌고 진격하자, 블라고베셴스크는 일시적으로 지휘권이 부재했다.
17일 밤, 흑하의 흑룡강군이 강 건너 도시를 향해 맹렬히 포격을 개시했다.
쾅! 쾅쾅! 콰아앙!
세 시간에 걸친 이 맹렬한 포격은, 만주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동시에 ‘멸양’이라고 써 붙은 삐라가 블라고베셴스크는 시내 곳곳에 붙었다. 도시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청군이 강을 건너 도시를 공격하리라는 공포가 번졌고, 러시아인들은 중국에서 들려오는 ‘멸양’의 악명을 두려워했다. 결국 도시에 주둔하던 카자크 군대는 독자적인 ‘작전’을 개시했다.
"우리 도시에 거주하는 중국놈들은 모두 적과 내통하고 있다! 이들을 모조리 강에 밀어 넣어 적들에게 돌려보내라!"
"옛!"
블라고베셴스크 시내에는 수천 명의 중국 노동자가 거주했다. 이들은 공포의 애먼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카자크와 공황 상태의 주민들은 중국인들을 두들겨 패고 강제로 아무르강에 몰아넣었다.
"강을 건너 네놈들 땅으로 돌아가라!"
"저는 수영을 못합니다요, 나리!"
"그래? 그럼 하게 해 주지!"
타다다다당!
카자크는 총을 쏘고, 기병도를 휘두르면서 중국인들을 강제로 아무르강에 몰아넣었다.
수천 명의 중국인 중, 무사히 강을 건너 대안에 도달한 건 100여 명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도하를 강요받다가 익사하거나, 카자크의 총칼에 죽었다. 수천 명의 시체가 아무르강을 둥둥 떠다녔다. 끔찍한 학살극이었다.
‘아무르강의 유혈’로 명명될 이 참극으로 인해, 수천의 중국 민간인이 피살당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 아무르강을 건너 진격한다!"
러시아군 지휘부는 예기치 않은 학살에 당황했으나, 탓하지 않고 기세를 몰아 아무르강을 넘어 7월 24일까지 청나라의 최전방 기지인 ‘강동 64둔(江東六十四屯)’을 점령하고 청군을 섬멸했다.
‘아무르강의 유혈’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러시아의 악명을 떨친 사건이었다. 이는 열강, 특히 일본으로 하여금 러시아의 남하에 의구심을 품게 하였다.
유혈은 만주의 중심지, 심양 봉천으로 이어졌다.
봉천은 청조의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자, 봉천성을 관할하는 성경장군(盛京將軍)이 있는 곳이었다.
성경장군 증기(增琪)는 비교적 합리적인 인물로, 청 조정의 선전 포고 명령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열강과 파국을 빚지 않으려고 했다. 봉천에 거주하는 러시아 철도 관계자들, 서양 선교사들을 보호하려고 했다.
흑룡강(아무르)에서 러시아군과 청군의 교전이 시작되고, 한국군이 철도 방위를 위해 국경선을 넘는다고 했을 때도, 증기는 전쟁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증기의 이런 태도를 ‘비겁한 반역 행위’라고 여기는 자들이 있었다.
결국 의화단의 선동을 받은 약 3천의 병력이 반란을 일으켰다.
"양귀와 관련된 것은 모조리 불태우고, 박살 내라!"
"침략자 아라사의 철도와 역을 파괴하라!"
의화단과 반군은 봉천 역사(驛舍)를 불태우고, 철도를 파괴했다.
반란에 가담한 병사들이 폭주하면서, 사태는 증기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봉천에는 가톨릭 만주 대교구가 있었다. 만주 대교구는 조선대교구와 마찬가지로 파리외방전교회 관할이었고, 프랑스인 주교와 신부, 수도사가 머물렀다. 이들은 의화단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양귀와 가양귀자들을 죽여라! 교회를 공격해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의화단과 반군은 먼저 중국인 기독교도들을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 이들은 학살을 피해 성당으로 도주했지만, 그곳 또한 공격 대상이 되었다.
"주님의 성전에서 물러나시오! 우리는 황제의 칙령에 의거해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소!"
"닥쳐라, 이 양귀놈아! 이미 조정에서 너희를 멸하고 했느니라!"
"모조리 죽여라!"
"형제자매들, 어서 피하시오! 으윽!"
"꺄아아악!"
봉천 성당에서 무시무시한 학살극이 벌어졌다.
프랑스인 주교, 신부 2명, 수도사 2명, 200명이 넘는 중국인 기독교도가 학살당했다.
화북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회 습격과 기독교도 학살이 끝내 만주에서도 재현된 것이다.
학살극을 벌인 의화단과 반군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살인, 방화, 약탈을 이어 나갔다.
소수의 운 좋은 사람들이 학살극에서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살아남은 프랑스 신부와 중국인 기독교도들은 봉천역을 지키던 러시아 철도수비대에게 달려가 구조를 요청했으나, 이들 또한 반군의 습격을 막기 급급했다.
철도수비대는 소수의 생존자만 구조해, 가까운 남쪽의 한국령을 향해 도피했다.
"이는 문명 세계에 대한 선전 포고입니다! 프랑스, 러시아 그리고 모든 문명 세계는 청국에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
봉천 학살 소식을 들은 주한 프랑스 공사 플랑시는 격분했다. 그는 즉각 한국 주재 외교관 회의에서 만주 토벌을 부르짖었고, 대한제국 정부로 달려가 호소했다.
"아직 살아남은 신부와 교인들을 위해 구호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연합군은 아직 천진에 머물러 있습니다. 러시아군이 봉천에 도달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한 달은 걸릴 것입니다. 봉천에서 가까운 문명국의 군대는 오직 귀국뿐입니다! 프랑스 공화국은 귀국의 구호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대한국은 재만 한국인뿐만 아니라, 열국인의 생명과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도 보고를 받으시면 명령을 내리실 겁니다."
김옥균의 보고를 받은 이선은, 사제와 교인들의 희생이 안타까우면서도, 명분을 얻었다는 역설적인 기분이 들었다.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을 구하겠다는데, 이제 군대를 본격적으로 파병해도 반대할 열강은 없겠지?"
"여전히 일본은 탐탁지 않게 여기겠습니다마는,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프랑스의 설득에 영국과 미국도 이해한다는 입장입니다."
"영미가 이해했다면 충분하네. 역시 기독교인 보호만큼 저들에게 있어 유용한 명분이 없군. 일이 이리되니 병인년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네. 참 세상일이란 알 수가 없어."
불과 34년 전만 해도, 조선 조정이 프랑스인 신부와 천주교도들을 학살했다. 그때 가까스로 살아남은 신부가 청나라로 도주해 구원을 호소했고, 이는 프랑스 함대 침공의 명분이 되었다.
34년이 지나, 만주의 프랑스 신부와 교인 살해가 한국군의 파병을 정당화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역사의 변화는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충용스럽고 명예로운 대한제국군은, 만주에서 참극을 벌이고 있는 의화단과 청국 폭도에 맞서, 박해받고 있는 열국인과 기독교도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주에 군대를 파병하는 바이다!"
1900년, 광무 4년 7월 25일, 만주 진격의 포고령이 공포되었다.
이로써 ‘북방 전쟁’이 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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