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북벌 완수
1900년, 광무 4년 9월 2일, 경자년 8월 2일.
한국 역사에 이날은 길이 기억될 날이었다.
청조가 발흥한 수도 성경(盛京), 봉천(奉天), 혹은 만주어로 묵던(Mukden), 혹은 심양(瀋陽).
청나라에게는 태종 홍타이지가 천명을 계승하였다고 선포한 성지이지만, 조선에는 치욕의 땅이었다.
병자호란에서 참패한 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효종)이 볼모가 되어 심양으로 잡혀왔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많은 포로가 피랍되어 심양으로 끌려와,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비참한 노예의 처지로 살았다.
동시에 심양은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소현세자는 심양에서 청조의 입관(入關, 북경 진격)을 경험했고, 다른 왕족들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효종은 만주 팔기의 막강함을 체감하고, 왕위에 오른 후 조선군의 정예화에 힘썼다.
하지만 효종이 꿈꿨던 북벌과 심양 정벌은 한낱 꿈으로 끝나고야 말았으나, 240년이 지나 마침내 현실로 다가오게 되었다.
조선의 후예들이 이 순간에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9월 2일, 이선은 친위여단과 1사단을 이끌고 봉천에 입성했다.
성경장군 증기는 항복의 뜻으로 성루에 백기를 내걸었다. 기수가 성루에 올라 백기를 대신하여 태극기를 게양했다. 그 순간, 이선 이하 장병들은 일제히 태극기를 향해 거수경례했다. 장병 중에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마침내 북벌의 꿈이 이뤄졌다!"
잠시 후, 증기가 관리와 장교들을 대동하고 이선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대한 황제 폐하께 성경 봉천부의 안전을 맡깁니다. 약조하신 바와 같이 부디 대청의 권위를 존중해 주시고, 관민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대청 황제 폐하는 짐의 귀한 벗이요, 성경장군은 관민의 안위를 염려해 무혈개성하였으니 짐이 이를 어찌 존중하지 않겠소? 짐은 반드시 약조를 지킬 것이오."
이선은 엄숙한 어조로 약조를 재확인했다.
"결코 주민에게 민폐가 없도록 하라. 단 한 명의 생명, 단 한 푼의 금전도 빼앗는 일이 없어야 한다. 군율위반자는 가차 없이 처벌할 것이다."
봉천에 입성하기 전, 이미 황명으로 군율의 준수를 철저히 다짐했다.
절대다수는 이선의 뜻을 받아들였지만, 간혹 불만을 제기하는 자도 있었다.
"저들 만청은 조선에 삼전도의 치욕을 안겨 주었고, 선왕을 심양으로 끌고 가는 굴욕을 주었습니다. 심양에는 선왕과 선조들의 피와 눈물이 담긴 곳입니다. 마땅히 그 치욕을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심양에는 침략자 황태극(皇太極, 홍타이지)의 능묘와 칸의 궁전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치욕을 갚아 줘야 합니다! 황태극의 위패를 태우고 태묘를 부수소서! 2천만 동포가 기뻐할 것이며, 열성조께서 하늘에서 감격할 것입니다!"
"심양에서 정통 중화의 재건을 선포하소서! 북경이 연합군에게 함락되고, 심양이 대한에 의해 정복되었으니, 천명이 바뀌었습니다. 대명이 망하고 만청에 의해 무너졌던 존주대의가, 오늘날 대한으로 계승된 것을 천하만방에 알려야 합니다!"
이선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본 뒤 일갈했다.
"정치를 오늘 하루만 할 셈인가? 내일은 없나?"
북벌론자들이 청나라를 원수로 여기는 건 이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명분론적 형식에 집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우리는 승리했다. 저들처럼 무자비한 정복자가 아니라, 관대한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대한은 개화된 문명국이지, 저열한 복수심에 불타는 야만국이 아니다."
증기와 봉천군은 ‘청조의 권위를 존중’하는 조건으로 무혈개성했다.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그걸 뒤엎을 순 없었다.
꼭 합의가 아니더라도, 이선은 청나라에게 지나친 치욕을 안겨 줄 생각이 없었다. 영원히 적으로 둔다면 모를까, 광서제가 대한제국군에 의해 구출되어 ‘대한국의 귀빈’이 된 현 상황에서 그 선조를 모욕한다는 건 전혀 무의미한 짓이었다.
‘청나라가 실제 역사처럼 혁명으로 완전히 패망하기보다는, 중원을 포기하고 만주로 퇴각해서 명맥을 이어야지. 앞으로 만주는 한국의 완충지가 되어야해. 기껏 공을 들여서 광서제를 우리 손아귀에 넣었는데, 쓸데없는 원한을 왜 산단 말인가?’
이선의 장기 구상에 따르면, 만주는 대한제국의 완충지가 되어야 했다.
러시아가 우방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대로 통째로 만주를 넘겨줄 생각은 없었고, 장차 청조를 대신할 중화권 국가에게 넘겨줄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렇다고 현재 대한제국의 국력과 체급으로 거대한 만주를 통째로 삼킬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자원 공급처로 꼭 필요한 남만주 일대를 직할령으로 가져오고, 나머지는 한국에 우호적인 국가가 완충 지대로 남는 게 바람직했다.
그 구상이 실현될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당분간 광서제를 손 안의 보석처럼 소중하게 다룰 생각이었다.
이선은 증기의 안내를 받아, 소수의 근위병과 고관들을 대동하고 심양 고궁을 둘러보았다.
숭정전(崇政殿)은 청태종이 사신을 접견하던 장소였으며, 청나라 역대 황제들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선양고궁에 머물 때 숭정전에서 정사를 돌봤다.
조선이 심양문안사를 보낼 때 이곳에서 황제를 알현했는데, 이제는 조선의 후예가 승리자로서 방문했다. ‘대청 황제’가 아닌 ‘외국 황제’가 숭정전을 살피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북경을 정복한 후, 자금성에 승리자로 온 도르곤의 심정이 이러했으려나? 도르곤이 자결한 숭정제를 황제의 예로 장례를 치러 줬듯이, 승리자에게 그 정도 여유는 있어야지.’
이선은 정중한 태도로 고궁을 살펴보고, 고궁 남쪽에 있는 심양관(瀋陽館) 혹은 고려관(高麗館)으로 향했다.
심양관은 소현세자가 사실상 주청 조선 대사의 역할을 했던 곳이자, 선왕인 효종이 살고 현종이 태어났던 곳이라 조선 왕실에서는 특별히 여겼던 곳이었다.
영조가 심양문안사에게 심양관의 그림을 그려오게 했는데, 그 시점에서 이미 사라져서 추정되는 위치에 자리 잡은 사찰의 그림을 그려 바쳤다.
1900년 시점에는 사찰조차 제대로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아 허물어지기 직전이었다. 이선과 고관들은 이곳에서 간소한 제례를 준비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이선은 열성조에게 제례를 올리며 북벌의 완수를 선언했다.
"효종선문장무신성현인명의정덕 대왕(孝宗宣文章武神聖顯仁明義正德大王)은 용맹과 지혜를 타고났으며, 예법을 회복하는 데에 뜻을 두었고, 한 질의 《춘추(春秋)》를 빛나는 해와 별처럼 여기었다.
조정에 있는 어질고 준수한 이들과 원대한 계책을 부지런히 힘썼으며, 송 효종(宋孝宗)처럼 중원을 도모하려고 갖은 노력을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북벌이라는 큰 뜻을 펴지는 못하였다……."
궁내부 시종원경 김규홍(金奎弘)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고사(古史)를 언급했다.
"효종 기해년(1649)에 대왕께서 송시열에게 하명하시길, ‘정예화된 포병 10만을 길러 자식처럼 위무하여 모두 결사적으로 싸우는 용감한 병사로 만든 다음, 기회를 봐서 오랑캐들이 예기치 못할 때 곧장 관(關,산해관)으로 쳐들어갈 것이오. 그러면 중원의 의사와 호걸 중에 어찌 호응하는 자가 없겠소?’ 하시었다."
김규홍은 송시열이 기록한 이른바 ‘기해독대’의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
"이어 말씀하시길, ‘아마 곧장 관으로 쳐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오. 저들은 무비에 힘쓰지 않아 요동과 심양의 천 리 길에 활을 잡고 말을 타는 자가 전혀 없으니 우리가 쳐들어가면 무인지경에 들어가듯 할 수 있을 것이오.
또 하늘의 뜻을 헤어려 보건대, 우리의 세폐를 저들이 모두 요동과 심양에 쌓아 두고 있으니 아마도 다시 우리의 물건이 되게 하려나 보오.’라고 하시었다."
낭독을 마친 김규홍은 그 공을 황제, 즉 이선에게 돌렸다.
"아, 신등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이는 실로 우리 성상의 치세를 예견함이 아닌가 하옵니다! 효종 기해년으로부터 4갑자가 지나 작년이 기해년이오, 올해가 경자년입니다.
성상께옵서 10만의 정예군을 키워 만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셨으며, 만청이 혼미에 빠지니 북벌의 기치를 높이 들고 요동을 무인지경 가듯 달리어 심양에 이르셨습니다. 요동과 심양이 다시 우리의 것이 되었으니 어찌 하늘의 열성조께서 예견하신 뜻이 아니겠습니까!"
"와아아아!"
김규홍의 지나친 찬사에 이선은 오히려 낯뜨거웠으나, 엄숙한 표정과 어조로 말을 받았다.
"짐은 오늘 효묘(孝廟, 효종)와 소현세자가 계시었던 이곳 심양관에서, 병자년의 치욕을 깨끗이 씻고, 열성조의 뜻을 받들어 북벌을 완수하였음을 후손된 자이자 대한국의 황제로서 엄숙히 선언하는 바이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이선이지만, 이는 전국적 열광을 위해 필요한 퍼포먼스였다.
진정으로 ‘북벌을 완수’했다고 할지는 의문이겠으나, 북경과 심양이 함락된 상황에서 선언하기에는 충분했다.
‘조선의 오랜 숙원인 북벌과 만청 정벌을 성공시킨 군주가 어떤 평가를 받을까?’
반청 성향의 개화파는 말할 것도 없고, 그동안 이선의 정책에 반대했던 유림들조차도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선에게 이제 새로운 개혁의 동력이 생긴 것이다.
9월 9일, 수보치치 중장이 지휘하는 러시아 관동 주둔군이 봉천에 당도했다. 이미 봉천이 한국군에 의해 함락되었다는 소식에 수보치치는 격분했다.
"이건 합의 사항 위반이 아니오! 분명 알렉세예프 총독의 요구로 봉천은 러시아군이 공격하기로 합의하였을 터인데!"
"아니, 러시아의 일방적인 요구였지 문서로 합의한 사항도 아니지 않소. 그러면 청군이 항복하겠다는데, 그걸 내버려 두고 기다리잔 말이오?"
"좋소! 그렇다면 청군이 다시 러시아군에게 항복하는 절차를 치르고, 봉천의 관리는 우리 러시아군이 맡도록 하겠소!"
"이미 한청 양국 간에 합의된 사항인데 그럴 수야 없지요."
실제 역사에서는 러시아군이 9월에 대공세를 개시하여 10월 초까지 만주 전역을 장악한다. 하지만 한국의 개입으로 인해 러시아가 차지한 영역은 확 줄어들었다.
러시아군은 15만 대군을 동원하고도 거리의 문제로 인해 흑룡강성 전역, 봉천성과 길림성의 일부를 장악하는 데 그쳤다.
한국군은 3만의 병력을 동원해 거의 희생조차 치르지 않고 봉천과 길림의 핵심을 장악했으니 러시아군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만도 했다.
"재주는 러시아 불곰이 넘고, 돈은 한국 여우가 번 셈이군."
"역시 한국 황제는 참으로 교활할 정도로 영민한 사람이오."
"열강도 아닌 한국이 만주로 달려드는 꼴이 우습긴 하오만, 러시아가 만주 전역을 점령하는 것보단 낫지."
열강들, 특히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하는 영·미·일은 한국군의 봉천 점령을 만족해했다.
영구 함락과 군정 실시로 러시아의 만주 진격 의도에 불신을 갖고 있던 영미일 삼국에, ‘러시아의 2중대’로 생각했던 한국이 독자적 행보로 봉천을 차지한 건 최선은 안 되어도 차악은 되었다.
특히 격분한 러시아군과 한국군 간에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전해지자, 영미일 삼국은 은근히 한국 편을 들기 시작했다.
"러시아 불곰이 만주 전역을 먹으면 토해 내라고 하기 어렵겠지만, 한국은 말이 좀 통하겠지요?"
"그동안 한국이 러시아 차르의 장기 말이라고 판단했던 게 실수였던 것 같군. 잘 설득해 봅시다."
"한국이 러시아를 막는 보루 역할을 할 수 있다면야……."
영미일 삼국은 한국이 만주 출병 때부터 공을 들여 설명하고 있었고, 박영효가 일본 총리 오쿠마 시게노부와 은밀히 밀약까지 맺어 둔 상황이었다.
"일본은 한국의 봉천 점령과 만주 진격을 승인하고 지지한다. 단, 영토 문제는 북경 함락 이후 열국 회의에서 결정해야 하며, 독자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일본의 아모이(廈門, 샤먼) 점령과 복건 진격을 승인하고 지지한다. 영토 문제는 북경 함락 이후 열국 회의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건 이하동문."
‘북수남진’으로 방향을 잡은 일본의 오쿠마 내각은 한국과 모종의 합의를 이룰 수 있었다.
영미일이 한국에 대한 편견을 던져 버리고, 중국 이권을 놓고 영국과 러시아가 충돌을 이어 나가고, 영국과 일본도 은근히 대립하고 있는 상황은 한국 입장에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러시아가 한국에게 베푼 ‘은의’를 생각하면, 무작정 러시아와 관계가 틀어져서 좋을 것도 없었다.
이선은 러시아군의 요구를 일부 수락했다.
"봉천과 길림에 러시아군의 주둔을 허용하고, 청 지방당국의 행정권을 존중하되, 한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이를 보조한다."
청 지방당국도 배제하고 만주를 독자적으로 차지하기 원했던 러시아 육군으로선 불만족스러웠지만, 외무부와 재무부는 이선의 중재안을 받아들이라고 권했다.
이선은 러시아 공사관을 통해 니콜라이 2세에게 친서를 보냈다.
짐의 가장 좋은 형제이신 황제 폐하, 한국군이 봉천과 길림에 먼저 입성한 일을 두고 러시아 국내에서 어떤 의견이 나오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오나 이는 동청철도를 지키기 위한 러시아 정부의 출병 요청, 선교사와 기독교도를 보호하기 위한 프랑스 정부의 출병 요청으로 인해 한국군의 출병이 빨라졌고, 북경 함락으로 인해 청국의 저항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국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러시아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영구 점령과 군정 실시로 인해 열강, 특히 영미일이 러시아의 의도에 불신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러시아가 만주 전역을 장악했더라면, 영미일이 더욱 결합하였을 것이며, 만주에서 즉각 철수하라고 요구했을 것입니다.
한국이 러시아를 이용했다는 비난은 무시하시고, 러시아가 한국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한국은 남만주에 고토 수복과 주민 보호라는 명분이 있습니다. 이 명분을 내세우면 러시아가 남만주를 직접 지배하는 것보다 열강에 대응하기가 수월할 것입니다.
짐과 한국은 황제 폐하와 러시아의 충실한 벗이니, 한국의 남만주 관리는 곧 러시아의 남만주 관리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청국 황제와 협상 책임자인 이홍장을 잘 설득하여, 만주의 행정권을 받아 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한러 양국 간에 그 어떤 흔들림도 없어야 하고, 단결해야 합니다.
폐하의 좋은 형제, 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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