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323화 (322/812)

4화 제국의 새로운 항로

러시아 제국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1903년은 로마노프 왕조 수립 29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해 2월 11일(율리우스력, 그레고리력 24일), 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에서는 러시아 제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가장(假裝) 무도회가 열렸다.

황제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는 로마노프 왕조 초기 차르와 차리나의 비잔틴풍 예복을 입고, 황족들과 귀족들, 관료들과 장교들도 17세기의 복장을 입고 춤을 추었다.

황실 무도회에 초대된 외교관들도 각국의 전통복장을 입고 왔다.

예컨대 조선의 경우, 특사로 파견된 이후 유럽에 체류 중인 의친왕 이강과 주 러시아 공사 이범진(李範晉)은 사모관대와 단령을 입었다.

"황제 폐하, 대한국 황제 폐하께옵서는 로마노프 왕조의 통치 29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오며, 만대에 걸쳐 황실의 번영을 기원한다고 전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고맙소, 대공. 귀국의 왕조는 작년에 510주년을 맞이했다고 들었소. 그래서 카를 이바노비치 베베르를 특사로 파견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작년, 대한제국 선포 5주년과 개국 510주년을 맞이하여, 러시아는 전 주한공사 베베르를 특사로 파견하여 축하한 바 있었다.

"정확하십니다, 폐하. 우리 황제 폐하께옵서도 크게 기뻐하셨다 하옵니다."

"510년이라, 귀국의 왕조는 참으로 유서 깊은 왕조요. 이처럼 양국은 기쁨을 함께하니, 짐과 귀국 황제 폐하는 형제나 다름없고, 우리 두 나라 역시 형제의 나라나 다름없소. 그렇지 않소?"

"실로 그러하옵니다. 위대한 로마노프 왕조 역시 500주년을 맞이하길 축원하겠사옵니다."

이강의 축원에 니콜라이가 껄껄 웃었다.

"500주년은 너무 먼 이야기군. 10년 뒤가 300주년이니, 성대하게 준비할 생각이오. 그때 귀국 황제 폐하를 초대할 수 있기를 기원하겠소."

"예, 폐하. 성수무강하시옵고, 제국에 광영이 가득하시길 기원하옵니다."

무도회는 겨울궁전의 콘서트홀에서 새벽 1시까지 거행되었다.

옛 러시아의 복장을 입은 이들로 홀이 가득 메워져 있었으니, 이는 표트르 대제 이전의 전통적 러시아를 그리워하는 니콜라이 2세의 취향에 딱 맞아떨어졌다.

제국의 부(富)가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희귀한 모피, 거대한 다이아몬드, 화려한 진주와 보석으로 풍부하게 장식된 러시아 민족의상들이 웅장한 콘서트홀을 가득 메웠다.

"과연 러시아 황실의 부는 놀랍기만 하오. 나는 6년 전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 기념행사, 작년에는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에도 참여했지만, 그 천하의 대영제국도 러시아 황실은 따라갈 수가 없는 것 같구려."

"참으로 감탄만 나옵니다만……."

무도회가 끝난 후, 공사관으로 돌아온 이강은 찬탄을 표했다. 이범진도 감탄을 표했지만, 뒷말을 아꼈다. 이강은 그의 말을 짐작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전하께 감히 말씀 올립니다. 대부분의 국민은 가난하고 비참한데, 황실만 이렇게 부를 독점하는 나라가 어찌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하겠습니까?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난 것처럼, 러시아에서도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외교적 수사를 포기한 정곡에 대한제국 사절단은 깜짝 놀랐다.

"네 이놈, 친왕 전하께 그 무슨 무례한 말버릇이냐? 전하, 송구하옵니다."

이범진이 대범하게 정곡을 꼬집은 약관의 젊은이를 꾸짖었다.

"전하, 아들놈이 아직 어리고 무지하여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제가 대신 사죄를 구하겠습니다."

"아니오, 젊은 패기가 좋구려.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육군 참위 이위종이라고 하옵니다. 현재 프랑스 사관학교에 재학 중입니다. 전하께 사죄드립니다."

약관의 젊은이는 이범진의 차남, 이위종(李瑋鍾)이었다.

올해 갓 스물인 이위종은, 어릴 적부터 최고 엘리트 교육을 받은 이였다.

"호오, 군인이었나. 자네 약력 한번 읊어 보게."

대원군의 측근이었던 이경하(李擎廈)의 손자, 이범진의 차남 이위종.

미국에서 초등학교, 프랑스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친의 뜻대로 프랑스 생시르 육군 사관학교에서 사관 양성 과정을 이수했다. 나폴레옹이 설립한 생시르에 입학한 한국인은 처음이라, 이위종은 큰 기대를 받고 졸업 이전에 이미 대한제국 군부로부터 참위 계급을 받았다.

방학을 맞은 이위종은 부친이 공사로 재임 중인 러시아를 찾았다. 영어와 프랑스어가 능통하고, 독일어와 러시아어도 구사할 줄 아는 이위종은 당대 한국인 중 최고의 자질을 갖고 있었다.

"직설적인 태도가 가히 군인답긴 하군."

"황공하옵니다."

"송구하옵니다, 전하. 저놈이 어릴 적부터 해외에서 살았다 보니, 황실의 예법을 모릅니다."

이위종은 공화국인 미국과 프랑스에서 자라며 자유주의 사상을 가지게 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이 대개 그런 것처럼 차리즘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사고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군인은 무조건 국가의 명에 복종해야 하네. 러시아는 대한의 우방이니, 저들이 어떤 체제를 갖고 있든, 국민을 착취하든 우리가 관여할 바가 아닐세. 러시아가 대한에게 어떤 이익이 되느냐가 중요한 거지."

이강은 한껏 노련한 외교관처럼 말했다. 이는 모두 형 이선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흠, 근데 약관의 나이에 5개 국어를 할 줄 한다는 건 대단하군. 아무래도 자네는 군인보다는 외교관이 적격인 것 같은데. 앞으로 진로에 대해 한번 고민해 보게. 자네 춘부장께서도 외교관이지 않은가."

의친왕은 당돌한 이위종에게 왠지 호감이 갔다.

"……! 전하의 가르침을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이위종은, 체질적으로 군인보다는 외교관이 더 마음에 끌렸다.

‘형님도 나를 보며 이렇게 생각하셨으려나.’

이강은 추억을 떠올렸다. 이위종은 마치 7년 전, 스무 살 때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자신도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 서구식 자유주의에 열광했으나, 형 이선과 함께 사절단을 다니면서 외교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다. 이선이 강을 외교관으로 키우려고 한 것처럼, 이강은 이위종에게서 외교관의 자질을 보았다.

로마노프 왕조 역사상 가장 성대한 가장 무도회.

차르의 매제이자 최측근인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제국 역사상 마지막 화려한 대무도회…… 그러나 새롭고 적대적인 러시아가 궁전의 창문을 통해 제국을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가 춤을 추고 있을 때, 노동자들은 투쟁을 하고 있었고, 극동의 구름은 위험할 정도로 가깝게 접근하고 있었다……."

1903년, 로마노프 왕조 러시아 제국은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암운(暗雲)이 짙게 깔리고 있었다.

* * *

1903년 5월 6일(19일). 니콜라이 2세는 만 35세 생일을 맞이했다.

차르는 이날, 중대한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38세의 귀족, 예비역 친위대 기병 대위 알렉산드르 미하베조브라조프(Aleksandr Mikhailovich Bezobrazov)를 국무상서에 임명한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동아시아 산업 주식회사’의 대표에 불과한 베조브라조프가, 단숨에 대신급 반열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알렉산드르 경. 아니, 이제는 국무상서 각하라고 불러 드려야 하나, 하하하."

"감사합니다. 다 여러분 덕이지요.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황제 폐하와 신임 국무상서를 위해 건배!"

베조브라조프는 잘생긴 외모에 탁월한 화술을 지닌, 페테르부르크 사교계의 총아였다. 동시에 그는 차리즘과 러시아 팽창주의를 신봉하는 극우 비밀조직의 일원이었다.

그는 차르의 매제이자 해군 제독인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 유수포프 공작, 현 태평양 함대 사령관 겸 관동주 총독 알렉세예프 제독, 전 태평양 함대 사령관 아바자 제독, 전 한국 공사 마튜닌 등과 연합하여 새로운 파벌을 형성했다.

고위 귀족과 해군이 중심이 된 이들 ‘베조브라조프 일파’는, 동아시아에서의 공격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이들은 만주의 독점, 중국 이권의 취득, 태평양으로의 진출을 추진했다.

"베조브라조프가 국무상서라고? 그 애송이가? 허허, 폐하께서 어지간히 그자를 총애하시는군."

"그 작자, 겉보기엔 그럴싸하지만, 내면은 텅 비어 있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오. 그런 자가 국무상서가 되어 국무회의에 끼어든다니, 원……."

요컨대, 베조브라조프는 차르의 궁정에서 급부상한 ‘비선실세’였다.

국무상서 취임은 마침내 차르조차도 베조브라조프를 최측근으로 인정했다는 의미였다.

이는 재무대신 비테, 외무대신 람스도르프, 육군대신 쿠로파트킨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이 당시, 러시아의 동아시아 정책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 관점이 존재했다.

첫째, 재무대신 비테가 추진하는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동아시아 침투 정책.

"동청 철도와 러-청 은행을 중심으로 경제적, 외교적으로 만주를 지배해야 합니다. 만주에 연고가 있는 청나라 및 대한제국과 손잡아 만주를 간접지배하고, 러·청·한 극동 삼국 동맹을 부활시켜 영국과 일본을 견제해야 합니다. 청나라와 열강을 안심시키기 위해 만주 협약을 준수, 만주에서 러시아군을 철수시켜야 합니다."

둘째, 육군대신 쿠로파트킨이 추진하는 북만주 점령 정책.

"국가 안보적 측면에서, 육군은 북만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확신합니다. 이대로 만주 전역에서 철군을 단행하는 건, 만주 점령을 무의미한 일로 만드는 것입니다. 방위가 어려운 남만주는 청나라에게 반환하고, 북만주는 러시아가 단독으로 확고하게 지배해야 합니다. 봉천과 길림에서는 철수하더라도, 흑룡강성에서는 주둔을 이어 나가야 합니다."

셋째, 베조브라조프 일파가 추진하는 공격적이고 모험적인 정책.

"만주의 자원은 풍부하고 다양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중요한 지역을 망해가는 청나라에 반환해야 하며, 한국 같은 소국에게 양보해야 합니까? 극동의 야만인들에게 문명을 전파하는 건 러시아의 신성한 사명입니다. 만주 전역, 더 나아가 몽골과 신강도 러시아의 해방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세기에 러시아는 극동의 지배자로 군림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러시아 정부의 정책은 비테가 주도했다. 그렇기에 청나라와 만주 철군 조약을 체결하고, 한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만주를 평화적으로 관리하고자 했다.

그런데, 1903년 들어 베조브라조프 일파가 급부상했다.

"물렁하기 짝이 없는 비테를 실각시키고, 우리 애국자들이 국정을 주도해 나가야 합니다."

"도대체 왜 영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소. 영국이 보어전쟁에서 보여 준 무능함을 보면, 그들을 두려워야 할 이유가 없소."

"그나마 경계해야 할 건 일본이지만, 섬나라 따위 두려워할 것 하나도 없소. 망해 가는 청나라는 논할 가치도 없고."

"블라디보스토크와 여순을 잇는 중간 항로, 한반도 남단에 러시아의 해군기지도 확보해야 합니다."

"그건 한국 황제가 반대하지 않소?"

"한국은 러시아의 덕을 그렇게 많이 봤으면서, 러시아에게 이권을 양여하는 데 그렇게 인색할 수 없습니다. 한국은 러시아인지, 영국인지 확실히 선택하게 해야 합니다."

"만주는 러시아가 독점적으로 지배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야 해요."

"그렇소. 러시아 제국의 무한한 영광을 위하여!"

베조브라조프 일파는 차르에게 속삭거렸다.

"위대하신 선제 니콜라이 1세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러시아의 쌍두독수리 깃발이 한 번 올라간 곳은 결코 다시 내려올 수 없습니다. 만주 전역에서 철수하자는 비테, 남만주에서 철수하자는 쿠로파트킨 모두 러시아의 이익을 도외시하고 있습니다. 만주는 오로지 러시아가 독점해야 합니다."

"그리고 태평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표트르 대제께서 발트해를 제패하시고, 예카테리나 대제께서 흑해를 제패하신 것처럼, 황제 폐하께서는 태평양을 제패하셔야 합니다. 역사는 폐하를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대제를 계승한 니콜라이 대제로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차르는 표정을 관리하면서 근엄한 어조로 말했다.

"비테와 쿠로파트킨은 모두 짐의 충신이네. 경들은 그들과 대립하지 말고, 화합하여 함께 러시아의 국익을 도모하게."

말은 그렇게 해도, 니콜라이는 베조브라조프 일파의 아부가 듣기 좋았다.

니콜라이가 베조브라조프 일파에게 기우는 건, 그들의 모험적인 말을 듣고 강경한 정책을 지지해서만은 아니었다.

니콜라이의 속내는 좀 더 복잡했다.

‘짐의 나이 어느덧 서른다섯. 신성한 러시아의 전제군주로서 통치권을 행사해야 하거늘. 비테는 사사건건 짐에게 가르치려고 든다. 대신들도 늘 비테가 옳다 그러고. 도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

겉으로 내색하진 않아도, 늘 퉁명스러운 어조로 쓴소리를 하는 신하 비테에 대한 차르의 불쾌한 감정이 싹텄다.

‘이선 그 친구를 보라고. 나랑 동갑이고, 재위 기간은 오히려 더 짧은데, 자신의 뜻대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지 않나. 대러시아의 황제인 내가 작은 나라의 군주인 그보다 못할 게 뭐란 말인가?’

니콜라이는 친우 이선에게 찬탄을 느끼면서도, 그에 대한 경쟁의식이 싹텄다. 그보다 능력이 부족하다는 열등감은, 자신이 훨씬 강력한 국가를 지배한다는 우월감으로 교차했다.

‘러시아의 유일한 결정권자는 짐이다. 짐은 신으로부터 황권을 대리한 러시아의 황제다.’

니콜라이의 감정은, 러시아의 정책 방향을 인도했다.

견제세력 없는 전제군주국의 한계였다.

1903년 5월, 러시아는 이른바 ‘극동 신항로’ 정책을 채택했다.

- 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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