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육상 패권주의
"만주와 몽골, 티베트는 공통의 혼(魂)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만주 황실이 먼저 이를 저버린 이상, 어찌 저들의 압제를 따르겠는가?"
티베트는 대청 황제의 신하일지언정, 중국의 일부라고 여기지 않았다.
만주-몽골-티베트는 불교라는 공통점과 왕실 간의 유대로 연결되어 있지, 북경 조정의 직접 통치를 받는 지역이 아니었다.
광서신정의 근대적 국가 개혁 과정에서 변강을 중국 본토 18성(省)과 같은 행정 재편을 이루려고 하니, 반발이 일어나는 건 당연했다.
"이 험악한 시대에 티베트라고 설산(雪山)에서 잠들어 있을 수 없다. 이대로 잠들면 얼어 죽을 뿐이다. 티베트도 깨어나야 한다."
티베트의 성(聖)과 속(俗)을 모두 지배하는 젊은 지도자 툽텐 갸쵸(Thubten Gyatso), 즉 13대 달라이 라마는 기존의 라마들과 달랐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자주 독립, 근대화를 지향했다.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닌 티베트의 계몽전제군주를 꿈꿨다.
그의 모델은, 청나라로부터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모두 이뤄 낸 대한제국의 이선이었다.
"성하(聖下), 동양의 신흥국으로 떠오른 조선 역시, 오랫동안 청의 번국이었습니다. 20년 전까지는 낙후한 국가에 불과했지요. 하지만 뛰어난 군주와 정치가, 국민의 합심으로, 자강을 이뤄 냈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영적 조언자’이자 외교 고문, 도르지예프는 예전부터 러시아와 한국을 찬미해 왔다.
‘성스러운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짐짓 정치를 멀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측근 앞에서는 거침없이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북경의 간섭이 날로 심해지니 앞날이 걱정이외다."
"10년 전 조선 또한 그러했사옵니다. 청이 조선을 굴복시키려 하자, 그들은 단호히 침략을 무찌르고 자주독립을 쟁취했습니다. 티베트가 나아갈 길도 바로 여기에 있음으로 사료(思料)되옵니다."
티베트와 달라이 라마는 과연 대한제국과 이선에게서 모범을 찾아낼 수 있었다.
"분명 청의 힘이 예전만 못한 건 사실이오. 하지만 우리에겐 제대로 된 군대가 없고, 지배층은 전통만 맹신하고 개혁에 전혀 공감하고 않소. 어찌 청을 물리치고 자주를 쟁취할 수 있겠소?"
티베트의 처지는 20년 전 조선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국가였고, 무력은 빈약하며, 지배층은 수구적이었다. 달라이 라마 한 사람이 바뀐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티베트는 군사력이 강력한 국가의 지원을 받는 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역사를 보면 저 몽골의 쿠빌라이 칸과 파스바가 있으며, 알탄 칸이 달라이 라마의 인도로 불교를 받아들이고 몽골에 불법(佛法)을 전파했으며, 만주의 칸도 대대로 달라이 라마를 스승으로 모셔 왔습니다."
16세기, 티베트 승려 쇠남 갸초는 몽골 초원에서 쿠빌라이 칸의 후예를 자처하던 알탄 칸과 손을 잡고 몽골-티베트 동맹을 결성했다.
그 결과 쇠남 가쵸는 최초의 달라이 라마가 되어 티베트는 몽골의 군사적 보호를 받을 수 있었고, 몽골은 급속히 불교화되었다. 몽골과 티베트의 영적(靈的) 동맹은 굳건했다. 이 동맹은 몽골의 칸 제위를 빼앗은 만주와의 동맹으로 계승되었다.
"만주의 천명이 끝난 시대, 새로운 천명은 단연코 러시아에 있사옵니다. 러시아는 과거 쿠빌라이 칸의 대몽골에 비견할 만한 강국입니다. 러시아만이 티베트와 몽골의 독립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음…·…."
"차르, 하얀 칸은 곧 쿠빌라이 칸과 알탄 칸의 환생입니다. 성하께옵서는 선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이시니, 이 동맹은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옵니다."
"러시아 차르가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한국 황제가 어린 나이에 러시아에 가서 힘을 길러 돌아왔음을 생각해 보시옵소서. 한국의 독립과 영토 확장은 러시아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러시아는 만주가 벌벌 떨 만큼 강력하며, 차르는 벗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도르지예프는 러시아와 차르를 거듭 찬양했다.
미사여구를 차치하고, 달라이 라마가 생각해 봐도 티베트를 도울 수 있는 열강은 러시아뿐이었다.
청나라의 약화 이후 영국은 노골적으로 티베트를 자국의 세력권으로 여기고, 간섭을 시도해 왔다. 자부심 강한 달라이 라에게 불쾌한 간섭이었다.
먼저 영국의 전통적 숙적인 프랑스와 접촉해 보았으나, 프랑스는 가톨릭 선교 문제를 당면 과제로 제시했다. 티베트 지배층이 기독교 선교에 반발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서양 열강은 언제나 티베트를 무시하고, 대가를 요구해 왔다. 오직 러시아만이 티베트를 존중해 주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도르지예프의 외교적 성과 덕분인지는 몰라도, 별다른 조건 없는 지원을 해 주었다.
비록 달라이 라마가 요청한 대사관 설립과 군사 교관 파견은 정중히 거절했지만, 티베트로 차르의 친서를 소지한 외교관을 파견했다.
외국 사절이 라싸에 들어와서 달라이 라마와 알현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으나, 러시아 사절은 예외적으로 알현을 허가받았다.
1902년 티베트에 온 러시아 사절단은, 포탈라 궁에서 달라이 라마를 알현하고 베르단 소총 500정과 탄약을 선물로 주었다.
청나라의 압박, 영국의 간섭으로 분개하던 달라이 라마가 크게 기뻐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티베트는 너무나 허약하오. 무엇보다 시급한 건, 군대의 재편이오. 러시아에 재차 군사고문 파견과 무기 지원을 요청해 주시오. 만약 러시아가 거절한다면, 청과 전쟁을 했던 한국이나 일본도 좋소. 그들의 근대화 경험, 승전 경험을 공유하고 싶소. 티베트의 개혁과 독립을 위하여, 나는 거리낌 없이 새로운 방법을 받아들일 것이오."
"성하의 신성한 결단을 받들겠사옵니다!"
도르지예프가 다시 유라시아의 장도(長途)에 올라, 한국에까지 이른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 있었다.
그동안 가장 고립되었던 설산의 나라 티베트로부터, 유라시아 국제정치의 지각판이 흔들리고 있었다.
* *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표트르 대제의 대개혁 이래, 러시아는 늘 유럽을 지향해 왔다. 러시아는 유럽 질서의 일부이고, 유럽 열강과의 관계를 가장 우선시했다.
러시아 외교 정책의 1순위는 발트해와 동유럽이고, 2순위는 발칸 반도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이었으며, 3순위가 페르시아와 투르키스탄이었다.
러시아에게 있어 극동은 한참 우선순위가 밀린 지역이었다. 러시아의 극동 정책은 ‘관망 정책’이었다.
그런데, 1900년 이후 러시아에서 만주와 극동 문제가 급부상하고 있었다.
"비잔티움을 계승한 제3의 로마, 러시아는 게르만의 후예인 서구 문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오. 고귀한 영혼의 슬라브 문명은 타락한 서구 문명과 결코 화해할 수 없소."
유럽과는 다른 러시아의 문화적 특수성을 주장하는 ‘슬라브주의’가 재조명받는가 하면.
"러시아는 육상 대국이오. 러시아의 미래는 이제 동쪽에 있소. 러시아는 정치적으로 몽골 제국의 영토를 계승했소. 거대한 대륙의 지배, 이야말로 러시아의 사명이오."
아직 ‘주의’라고 지칭될 정도는 아니지만, 유라시아 대륙으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유라시아주의’의 초기 형태도 드러나고 있었다.
몽골의 지배를 ‘타타르의 멍에’라고 부르며 악몽으로 여기는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개념이었지만, 일부 지식인을 시작으로 군부와 귀족 상층부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러시아의 신비주의 철학자이자 시인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Vladimir Solov’yov)는 본래 슬라브주의자였으나, 1890년대 청조일전쟁을 전후하여 동양에 주목하는 인사가 되었다.
"동양에 범몽골주의(Pan-Mongolism)가 등장하고 있다. …… 러시아여,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방 이민족에 의해 유린당한 옛 루시를, 멸망당한 비잔티움의 운명을 잊었는가? 제3의 로마 운운하는 아첨꾼들을 멀리 하라! 동양이 러시아를 향해 달려온다. 동양의 사상과 서양의 무기로 무장한 황인들이 달려온다. 러시아 미래의 적은, 동양에 있다……."
‘타타르의 멍에’에 대한 역사적 트라우마, 슬라브 신비주의와 황화론을 결합한 솔로비요프의 주장은 명백히 과장된 것이었다. 러시아를 공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일부 일본인이나 중국인과 달리, 러시아는 동양에 대해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솔로비요프의 기여는, 그의 의도와 달리 ‘범몽골주의’란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러시아 군부의 일각에서, ‘범몽골주의’를 이용해 아시아 방향의 군사력 확대를 추구했던 것이다.
"범몽골주의라! 우리가 가장 염려하는 건, 근대화된 일본이 거대한 중국을 지배하게 되어 새로운 동양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오. 대륙에 대한 일본의 야욕은 결코 용납할 수 없소."
"중국의 단결도 용인할 수 없소. 그러면 우리는 장차 대륙에서 거대한 경쟁자를 상대하게 되는 거니까. 중국의 변방, 특히 만주와 몽골은 분리되어야 하오."
"의화단 전쟁은 우리에게 기회였소.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만주는 러시아의 확고한 통제 하에 있어야 하며, 다른 열강의 개입을 막아야 하오."
알렉산드르 베조브라조프를 중심으로 한 일단의 파벌은, 러시아의 동아시아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이들의 모험주의적 정책은 전통적인 외교 정책을 수행해 온 외무부, 재무부, 군부의 우려와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나, 차르의 신임을 받는 데 성공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우리에게 있어 매우 유용한 국가입니다. 이 작은 나라는 러시아를 위협할 수 없지요. 그동안 우리의 극동 정책은 한국을 키워 중국과 일본 사이의 세력 균형을 이루는 데 있었습니다. 마침내 목표에 근접하고 있지요. 한국의 군주는 총명하고 로마노프 황실과 3대에 걸쳐 우애를 맺어 온 인물이니, 더할 나위 없습니다."
"만주가 동양의 발칸이라면, 한국은 동양의 불가리아나 세르비아, 그리스입니다. 고토 회복을 원하는 그들을 내세워 만주 이권을 쟁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좋소. 한국을 동맹이자 우호적인 완충지대로 삼고, 만주를 러시아의 세력권에 두어, 힘의 우위에 의한 극동의 평화를 추진합시다."
이른바 러시아의 극동 ‘새로운 항로’를, 영국과 일본은 매우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영국은 티베트와 중국 문제에 있어, 일본은 만주와 한반도 문제에 있어 러시아의 의도를 의심했다.
특히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가 러시아에 특사를 파견한 것이, 영국령 인도제국에 큰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1903년 5월, 영국은 러시아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러시아 외무부에 확답을 요구했다.
"티베트는 인도 제국에 밀접해 있는, 영국의 세력권입니다. 설마 러시아가 티베트 문제에 개입하겠다는 건 아니겠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티베트 특사가 찾아와 달라이 라마의 인사를 전하기에, 이에 대한 답례만 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티베트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원합니다."
러시아 외무대신 람스도르프와 재무대신 비테는, 군부 일각에서 계획한 티베트-몽골 분리 공작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티베트가 영국과 특수한 이해관계가 있음을 이해하며, 그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좋습니다. 약속을 지키시리라 믿지요."
"티베트가 인도 제국에 접해 있듯, 만주도 러시아 제국에 접해 있습니다. 영국도 만주가 러시아의 세력권에 있음을 인정합니까?"
람스도르프와 비테는 러시아의 만주 세력권을 열강에게 평화적으로 인정받길 원했다.
"귀국의 입장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영국이 티베트를 점령하고 있지 않듯, 러시아도 만주를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있지 말아야 합니다. 러시아군이 만주에서 철수한다면, 러시아의 영향력을 인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으음……. 좋습니다."
러시아의 온건파는 영국의 티베트 영향력 인정과 만주 철군을 대가로, 러시아의 만주 영향력을 인정받기로 했다.
결국 러시아는 티베트가 영국의 세력권이라는 건 인정했지만, 만주가 러시아의 세력권이라는 건 승인받지 못한 셈이 되었다.
이는 굴욕 외교라는 강경파의 반대에 부딪혔다.
"아니, 왜 도대체 우리는 영국에 양보만 하고, 끌려 다녀야 합니까?"
"티베트가 영국의 세력권이면, 만주는 러시아의 세력권! 이렇게 합의하면 될 일이지, 왜 이런저런 조건을 붙여야 합니까?"
"영국은 티베트뿐만 아니라 장강 이남의 중국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만주 문제는 러시아와 특수한 이해관계가 있음을 의화단 전쟁부터 인정했던 바입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말을 바꾼단 말입니까!"
온건파는 러시아가 영국과 ‘그레이트 게임’, 유라시아의 패권 경쟁을 벌일 국력이 못 된다고 판단했지만, 강경파는 영국이 러시아를 지나치게 압박한다고 생각했다.
강경파의 비판에 니콜라이 2세의 마음도 움직였다. 차르가 ‘신항로 정책’을 추진하게 된 배경 중 하나였다.
티베트-몽골 분리 공작은 지나치게 청국과 영국을 자극할 수 있어 조심스럽게 나섰지만, 만주 문제에 있어서는 어떠한 양보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영국이 해양 패권을 장악한 나라라면, 러시아는 육상 패권을 장악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결코 물러서는 안 됩니다."
영국의 세계 해양 패권에 맞서, 러시아는 유라시아 대륙의 육상 패권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움직여 나갔다.
"만리장성 이북, 만주-몽골-신강을 러시아의 영향권으로 두고, 세력을 부식(扶植)시킨다. 만주 점령은 지속한다. 한국을 우호 국가로 이용한다. 티베트 분리에 개입하지는 않되, 만약 영국과 일본이 청국에 영향력을 행사해 만주 문제에 개입하려한다면, 러시아도 티베트의 독립을 은밀히 후원한다."
러시아 대외정책의 ‘유라시아로의 전환’이, 마침내 지평선 너머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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