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338화 (337/812)

19화 영일동맹

전문을 작성하던 이범진은 생각에 잠겼다.

‘이걸 받아들이면 자치령이 크게 확대되고, 대한의 남만주 진출을 러시아가 지지하고 후원하는 형태가 된다. 아우는 더할 나위 없는 일이라 반기겠으나…….’

러시아 공사 이범진, 자치령 의용군 사령관 이범윤 형제는 대표적인 친러·반청·극일론자였다.

러시아의 힘으로 일본을 견제해 대한제국의 독립을 지키고, 청나라를 압박해 만주로 진출한다.

마튜닌의 제안은 이범진의 외교 공작이 성공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었지만, 무작정 좋다고 받아들이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큰 사안이었다.

이범진은 황제와 정부에게 결단을 맡기고, 자신의 의견을 첨부해 황성으로 전문을 보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황성으로 보낸 비밀 전문은 외무부에 수신되었다.

암호를 해독한 외무대신 김옥균은 전문의 내용을 읽고 깜짝 놀랐다. 그는 즉각 황제를 알현하러 갔다.

"황제 폐하, 주 러시아 공사관에서 온 전문입니다."

전문을 읽던 이선도 뜻밖이다 싶었다.

"러시아가 관리하던 봉천성 남부와 길림성 일대에 자치령을 확대해 대한에게 맡기겠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렇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김옥균은 떨떠름해하는 어조였다. 이선은 그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했다.

"제국익문사에서는 새로운 소식이 없소?"

"특별한 동향은 없습니다만, 유럽국에서 보내온 전문이 있습니다. 관련된 소식이라 생각하여 첨부하였습니다."

이선은 익문사의 비밀 전문도 해독해서 읽었다.

주목할 만한 사항은, 근래 영국 외무부에 일본 공사의 출입이 잦다는 보고였다.

‘결국 영국과 일본이 결합하는가?’

이선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하다, 입을 열었다.

"러시아에서 보내온 전문은 매우 흥미롭고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소."

"하교(下敎)해 주시옵소서."

"첫째, 이건 정부의 공식적인 제안이 아니오. 마튜닌이라면 짐도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고, 그가 한국에 우호적인 인사인 점도 맞소. 하지만 현재는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게 아니지. 황제의 총애를 받는 파벌의 일원이라고 해도, 그게 곧 정부의 입장이라고 할 수는 없지. 현 러시아의 정치구도를 보건대, 재무부, 외무부, 군부 모두 반대할 것이오."

베조브라조프 파벌은 지금껏 그래 온 것처럼 차르만 설득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차르에게 비공식적으로 조언을 하는 이선에게 친서를 보내 달라 부탁한 것이었다. 내부에선 그들 파벌이, 외부에선 이선이 차르에게 조언을 해서 달성하자는 복안이었다.

"둘째, 이걸 받아들이면 주변국과 극한 대립을 각오해야 하오. 청국의 분노가 러시아에서 대한을 향하게 될 거고, 청국 황제와 맺어 둔 우호 관계도 날려 버리겠지. 일본도 마찬가지. 대한이 러시아와 손잡고 자국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며 북진론을 정당화할 거요. 러시아를 견제하는 영국은 어찌 생각하겠소? 기껏 영국과의 관계를 개선해 오고 있었는데, 대한이 노골적으로 러시아의 수하로 들어갔다고 여기겠지."

‘그동안 어그로는 러시아가 끌고 실리는 우리가 챙기는 상황이었는데, 이리되면 반대로 어그로는 우리가 끌고 실리는 러시아가 챙기게 되는 셈이지.’

"셋째, 대한이 계속 팽창할 국력이 아직 부족하오. 북방 신영토를 확보한 지 채 10년이 안 됐고, 자치령이 수립된 지 겨우 2년이오. 정부가 북방 사민 정책을 해서 주민 수를 늘려 나가도, 여전히 자치령에는 인구가 부족한 상황이 아니오? 말이 쉽지, 청국령에 50만을 이주시켜 개발할 여유가 있다면, 자치령에 보내는 게 우선이오."

요동도와 연길도, 자치령을 확고한 대한제국 영토로 만들기 위해 ‘한국화’를 진행 중이었다.

특히 안산과 본계의 철광, 무순과 화룡의 탄광 개발에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있었다. 힘을 추가로 분산시킬 여력이 없었다.

"앞으로 한 10년 뒤라면 모를까, 지금은 여유가 없소. 지나치게 확장하려다가는 소탐대실하는 법이지."

‘1910년대에 정세 변화가 분명히 일어난다. 그때까지 필요한 힘을 축적하고, 동양 질서를 재편한다.’

"과연 영명하십니다, 폐하! 신이 우려하던 바를 정확히 짚어 주시니, 성지(聖旨)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김옥균은 이선이 국내외 정세를 모두 냉철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 새삼 신뢰감이 솟았다.

"일단 이건 내각 외에는 극비로 해 둡시다. 여론이 알면 당장 차지하자고 떠들 수도 있으니."

"예, 폐하!"

이선은 전문을 다시 보면서 씩 웃었다.

"그래도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란 건 부정할 수가 없군. 짐이 먼저 친서를 보낼 필요는 없지만, 러시아가 이토록 호의를 보내는 데 무조건 거부할 필요도 없지. 일단 저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계속 지켜보면서, 정세의 변화에 따라 대응합시다."

* *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폐하, 이 제안을 한국이 받아들이면, 남만주 철군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북만주를 러시아의 지배권역으로 넣을 수 있습니다. 청국과 일본을 견제하는 동양의 체스말로 쓸 수 있지요."

"흠……."

니콜라이 2세는 신뢰하는 매제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의 제안을 경청했다.

"육군이 안보를 위해 북만주를 원하는 만큼, 해군도 진해만을 원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포트 아르투르(여순) 사이에는 거리가 너무 멀어 태평양 함대가 분산되어 있습니다. 한반도 남해안에 최소한 저탄소와 월동 정박지는 있어야 합니다."

"산드로, 하지만 그렇게 되면 청국과 일본을 지나치게 자극하게 될 텐데. 뭐, 그 두 나라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쳐도, 영국의 반발은 어쩔 텐가?"

"영국은 장차 독일의 건함 정책을 견제하느라 급급할 겁니다. 극동 문제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으리라 판단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동맹 프랑스가 있습니다."

"외무부는 영국과 일본이 동맹을 맺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던데."

"해군 역시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을 키워 일본을 견제하는 체스말로 둬야지요."

차르는 고민했다. 극동 신항로 정책이나, 만주 철군 중단은 결국 자신이 명령한 바였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국가의 강경한 반발에 부딪히자, 본래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니콜라이는 고민하게 되었다.

"산드로, 경의 조언은 고맙게 생각하네. 분명 한국과 한국 황제는 러시아와 짐에게 좋은 파트너야. 필요하다면 그들을 키워 줘야겠지. 하지만 짐이 혼자 결정할 사항은 아닌 듯하네. 대신들과 상의해 보도록 하지."

"폐하! 러시아는 신성한 전제군주의 나라로……."

"알아, 아네. 하지만 좀 더 차분히 생각해 보세나. 극동 문제 말고도 고민할 게 많지 않나? 일단 머리 좀 식히세. 그래, 온 김에 오늘같이 사냥이나 나가겠나?"

"그러시지요, 폐하."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결단을 피하는 니콜라이였다. 비테의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 본인의 주도로 정책 변화를 결정한 후에도,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러시아가 겉으로 보이는 강경책과 달리 확고한 방향을 못 잡은 내부 사정과 달리, 일본 여론은 러시아가 공격적인 남하 정책을 쓴다고 확정하고 있었다.

"러시아, 동양 침략의 본색을 드러내다!"

"저 북방의 침략자가 노리는, 만주의 다음 목표는 어디겠는가? 서로는 북경, 남으로는 조선, 동으로는 홋카이도일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러시아의 야욕을 저지해야 한다!"

"정부의 굴욕적인 대러 양보, 대륙 방기 정책에 반대한다! 대일본제국은 조선, 청국을 지도하여 함께 러시아에 맞서 싸워야 한다!"

"러시아가 끝내 황국의 안보를 위협한다면, 단호히 무력에 호소해야 한다!"

"대체 내각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전쟁을 준비하라!"

사이온지 내각과 원로들은 현실감각을 상실한 여론의 호전적인 태도에 혀를 찼다.

"쯧, 어리석은 놈들. 열강과의 전쟁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줄 아나?"

"우리 업보지요. 국민에게 호전적 사고를 심어 준 건 황민화의 영향이니."

사이온지는 고위 귀족 출신임에도, 천황제 국가를 확립한 메이지 정부의 ‘국체(國體)’, 군인칙유(軍人勅諭, 1882)와 군국화 사상, 교육칙어(教育勅語, 1890)와 황민화 교육을 내심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 결과 국민들, 특히 식자층과 예비역 사이에 호전적인 여론이 팽배했다.

사이온지는 장차 군인칙유와 교육칙어를 손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뭐, 일단 내버려 둡시다. 어차피 저들이 정부 정책에 개입할 일은 없으니."

내각은 호전적 여론을 제재하진 않았다. 정부는 정부대로, 군부는 군부대로 ‘러시아의 위협’은 목표 달성의 수단이었다.

실제 러시아는 결코 일본을 침략할 생각이 없었지만,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 러시아의 위협을 자국에 늘 강조해 왔다.

동양을 노리는, 더욱이 국경을 인접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서양 대국’의 존재야말로, 일본의 부국강병 정책을 정당화시키는 요인이었다.

현 정부에는, 영국과의 동맹을 정당화시키는 명분이었다.

영국식 입헌군주정과 온건한 자유주의 정치를 지향하는 사이온지와 입헌정우회 지도부는, 본질적으로 친영파라고 할 수 있었다.

영국 유학파가 주류를 차지하고, 영국제 군함을 대거 발주하고 있는 해군은 영국과의 동맹을 당연히 지지했다.

육군은 독일 유학파가 주류였으나, 그들이 외치는 러시아 주적론에 따라 영국과의 동맹은 찬성했다.

영국과의 동맹을 반대하고 있는 건, 원로 이토 히로부미와 이노우에 가오루 정도였다.

"영국과 일본은 결코 대등한 동맹을 맺을 수가 없네. 저들의 세계 지배에 장기말로 사용될 뿐이야. 굳이 영국과 동맹을 맺어 가면서까지 러시아와 대립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각하, 오해하지 마십시오. 영국과의 동맹은 유사시를 대비한 방위 동맹이지, 공격 목적이 아닙니다."

"내가 영국에 대해서는 잘 아네. 영국과 동맹을 맺으면 결국 러시아와 대립해야 한다니까! 영국은 동양에서의 러시아 견제를 일본에 맡기려는 거야. 이용당하는 거라고!"

"서로 도움이 되니까 동맹을 맺지요. 그렇다고 러시아가 이대로 만주를 차지하고 한국을 조종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러시아가 만주 차지하면 좀 어떤가. 그건 청국이 분노할 일이지 일본하고는 무관하네. 한국은 일본에 우호적인 중립만 유지해 주면 돼. 러시아는 열강일세. 청국하고는 차원이 달라. 섣부른 대립은 금물이네."

젊은 시절 고향인 조슈가 영국·프랑스·미국·네덜란드 4개국 연합군에게 참패(시모노세키 전쟁)하는 걸 지켜본 이토는,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다시는 서양과 싸워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겼다.

일본은 열강과의 전쟁을 감당할 국력이 없고, 러시아와의 대립도 피해야 했다.

"하여튼, 이토 영감은 공러병(러시아 공포) 환자야. 날이 갈수록 증세가 더 심해지는 것 같다니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이제 슬슬 뒷방으로 물러날 때가 온 게지."

정부와 군부의 소장파는 이토의 우려를 비웃었다.

사이온지는 자신을 후임 총리로 지명한 이토를 존중했고, 군부 강경파의 주장대로 전쟁을 각오할 생각도 없었지만, 영국과의 동맹은 이토의 반대를 무마하고 계획대로 추진했다.

영국과 일본의 동맹 논의는, 1903년 초부터 극비리에 추진 중이었다.

사이온지 내각의 외무대신 고무라 주타로를 훈령을 받아, 주영 일본 공사 하야시 다다스는 영국 외무장관 랜스다운 후작 페티-피츠모리스(Marquess of Lansdowne, Petty-Fitzmaurice)가 동맹의 세부사항을 논했다.

동맹 논의는 양국의 이해관계가 달라 한동안 지지부진하다가, 마침내 7월 세부사항에 합의할 수 있었다.

때마침 러시아가 신항로 정책을 발표하고 2차 철군을 거부하니, 영국과 일본은 동맹을 체결할 적당한 명분을 찾게 된 셈이었다.

"이로써 그레이트 브리튼 연합왕국과 일본제국, 양국 간에 동맹이 체결되었음을 확인합니다."

"양국의 영원한 우의를 위하여!"

1903년 7월 30일, 영일동맹이 체결되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과 동쪽 끝에 있는 두 섬나라, 세계를 주름잡는 해양패권주의 제국과 이를 목표로 하는 신흥국 간의 동맹이었다.

명백히 영국이 상위 파트너, 일본이 하위 파트너인 동맹이지만, 일본은 세계 최강의 열강과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 자체에 환호했다.

영국은 ‘영광스러운 고립’을 끝내고, 크림 전쟁 이래 처음으로 타국과 동맹을 맺게 되었다.

영국의 목적은, 새로 떠오르는 독일의 건함 정책에 맞서 대서양과 지중해에 함대를 집중하기 위해, 동아시아의 해양 방위를 일정 부분 일본에 위임하기 위함이었다. 전통적인 숙적인 러시아와 프랑스를 견제할 목적도 다분히 깔려 있었다.

영국은 일본을, 자국의 세계 지배에 필요한 ‘극동의 헌병’으로 채용한 것이다.

동맹 조약 체결의 공식 발표는 2주 후, 8월 12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극비에 붙여져 그때까지 제3국은 동맹 체결의 여부를 전혀 알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황제의 특명을 받아 영·일의 동향을 살피던 주영 한국 공사관은 동향에 민감했다.

영국에 체류 중이던 의친왕 이강과 주영 공사 민영환, 참서관 이한응(李漢應)은 영국 상류사회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어떤 상황이 진전되고 있음을 추정했다.

"서둘러 본국에 타진하게. 한동안 영국 외무부를 자주 방문하던 일본 공사가 휴가를 떠남. 일상적인 여름휴가는 아닌 거로 보임. 영국과 일본 사이에 모종의 합의를 이뤘다는, 확인되지 않는 소문이 외교가 일각에서 돌고 있음. 본국의 훈령 바람."

비밀 전문이 런던에서 황성으로 전달되었다.

동양의 정세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었다.

- 20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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