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339화 (338/812)

20화 물밑 접촉

1903년 8월 12일, 영일동맹이 세계에 공표되었다.

일본은 문자 그대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각지에서 축하연이 열렸고, 도쿄에서는 동맹 체결을 축하하는 제등행렬까지 진행됐다.

"세계 최강국, 칠해(七海)의 패자(霸者) 대영제국과 동맹을 맺다!"

"일본의 국력이 열강에 도달했음을 인정한 바가 아니겠는가!"

"유신 이래 가장 기쁜 날이다! 감격에 겨워 눈물이 다 나는구나."

일본이 환호할 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일본의 군사력이 급증하고 있다지만, 경제적으로는 후진국이었다. 산업 혁명 이래, 세계 최고의 산업을 자랑하는 영국의 연간 강철 생산량은 일본의 5천 배에 달했다. 그런 대국과 동맹을 체결하다니.

그러나 일본인이라고 모두 동맹에 열광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도쿄제국대학 출신으로 당시 영국에 유학 중이던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는 일본의 열광을 듣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마치 가난한 자가 부잣집과 결연을 맺어, 도취된 나머지 온 동네에 북을 치며 뛰어다니는 셈이 아닌가? 상대가 뭐라 생각하건 말건."

나쓰메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영국 현지에서는 영일동맹 체결 소식에 지극히 무덤덤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오히려 비판적인 목소리가 많았다.

"영광스러운 고립을 이렇게 끝낸다고?"

"보어전쟁으로 고립의 한계를 깨달았으니, 동맹이 필요하긴 하지."

"그럼 서양 열강 중 하나와 동맹을 맺었어야지! 동양의 소국 따위와 동맹이라니?"

"일본이 아무리 성장했다고, 백인종과 황인종 사이에 대등한 동맹이 가능할 리가 있나!"

일본 여론이 열광하는 것과 달리, 영국 여론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영국 정부는 일본과의 동맹을 ‘저렴한 가격에 고용한 극동의 헌병’으로 생각했지만, 표면적으로는 국가 간의 대등한 동맹이었다. 서양 열강과 동양 국가 간의 대등한 군사동맹이 체결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본의 국제적 위신은 크게 상승했다.

대한제국 황성.

주한 일본 공사 하라 다카시는 외무부를 찾아, 외무대신 김옥균에게 영일동맹의 체결을 알렸다.

"동양의 평화와 여러 국가의 독립과 영토 보전을 위하여, 일본제국과 대영제국의 동맹이 체결되었음을 알립니다."

"접수하였습니다. 황제 폐하께 상신하겠습니다."

"제가 직접 황제 폐하를 알현하고 일본국 정부의 성명을 전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경운궁 정관헌에서, 하라는 김옥균과 함께 이선을 알현하고 일본 정부의 성명서를 전달했다.

"대일본제국과 대영제국의 동맹이 체결되었음을, 대한제국 대황제 폐하께 삼가 아룁니다."

영일동맹 체결 소식에 이선은 의외로 무덤덤했다. 일본 정부가 보내온 성명은 다음과 같았다.

「…… 동양의 전반적인 현상과 평화의 유지를 위하여, 대영제국 정부와 대일본제국 정부는 다음과 같은 사항에 동의했다.

첫째, 청국·한국의 자주독립과 영토 보전.

둘째, 동아시아 일대에서 열국에 상공업 활동의 개방과 촉진.

셋째, 전쟁을 막기 위한 영일 양국의 특별한 노력.

…… 일본제국 정부는, 동양 평화의 수호를 위하여 대영제국 정부와 함께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으리라 엄숙히 천명하는 바이다.」

일본의 성명서에는 미사여구만 가득할 뿐, 동맹의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전혀 없었다.

"영국과의 동맹이라,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폐하. 이는 모두 동양의 평화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함입니다."

하라는 주위에 이선과 김옥균만 있음을 새삼 확인하고,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외신(外臣)은 한국에서 일본의 국익을 대표하는 외교관입니다만, 특별한 이웃나라인 양국이 함께 발전해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귀공의 호의에 감사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일영동맹의 체결은 동양 정세의 대변화를 의미합니다. 일본 정부의 입장은, 청나라에 맞서 동맹을 체결하였던 10년 전처럼, 대한제국 역시 동맹의 일원으로 합류하길 바라는 바입니다."

김옥균이 순간 고개를 돌려 하라를 쳐다보았다. 하라는 엄숙했고, 이선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귀국의 공식적인 제안이오, 비공식적인 타진이오?"

"현재로선 비공식적인 타진입니다만, 정식으로 논의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려를 해 봐야겠군요. 이런 중요한 일은 바로 결정할 수 없지. 아, 공사에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하문하시옵소서."

"아마도 조약 문구 중에는, ‘한청 양국의 독립과 영토 보전을 보장’이라는 구절 다음에, ‘영국은 청국에, 일본은 한국에 특수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여타 열강의 공격적인 행위로 이를 침해받을 경우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이런 구절이 있을 법합니다만. 공개가 되지 않으니까 답답하군요."

이선의 지적에 하라는 흠칫 놀랐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외신 역시 본국의 성명을 받은 게 전부라……."

"아, 그래요. 외교관에게도 보안 엄수하는 철저한 비밀동맹이군요. 그래도 제3국에 동맹을 제안하려면, 제3국의 이해관계가 저촉되는 사항을 공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우리도 진의를 확실히 파악할 수 있지요."

"본국에 보고하여 훈령을 기다리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만납시다."

이선은 하라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라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면서 악수를 받았다.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영국과 일본 간에 정말로 동맹이 체결되었으니, 정부의 대외방침도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지……."

하라가 물러난 후, 김옥균이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그래야겠지. 일단 내각을 소집해서 대책을 논의하도록 합시다."

영일동맹 체결까지는 이선의 예상 범위였다.

하지만 역사가 달라진 만큼, 조약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해외 공사관과 익문사에 명해, 각국의 반응을 살피고 물밑 접촉을 이어 나가시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보니까. 정보가 확보되는 대로 즉각 대안을 마련하겠소."

"예, 폐하!"

* * *

영국, 런던.

"일본과의 대등한 동맹이라니, 그건 아닙니다. 독일이 건함을 한다고 난리를 치니, 대서양과 지중해에 집중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동아시아 해역을 일본에 위탁 맡긴 셈이지요. 겸사겸사 러시아의 남진도 저지할 겸. 대영제국이 어찌 동양의 소국 따위와 대등한 위치에 있겠습니까?"

근래 주목받는 젊은 하원의원의 말에 좌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문 귀족가의 기병 장교 출신으로, 보어전쟁에 종군기자와 군인으로 참전하여 이름을 알린 29세의 윈스턴 처칠(Winston Spencer Churchill)이었다. 처칠은 귀국 후 보수당 소속의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물론, 동양인들의 장점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근면성실하고 국가에 충성스럽지요. 서양 문명을 익히기 위해 다른 유색인종들보다 훨씬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유학생이 영국에서 고등 학문을 배우고 있지요."

처칠은 말없이 경청하던 대한제국 의친왕 이강을 흘끗 쳐다보더니, 동양에 우호적인 언사를 첨가했다.

"의원님 말씀이 옳습니다. 우리 동양인들은 근대 문명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제 조국에서는 황제 폐하께서 몸소 모범을 보이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우리 국민이 따르지 않을 수가 없지요."

"하하, 전하께서도 직접 모범을 보이고 계시지요. 귀국의 미래가 밝습니다."

이강은 황제의 명을 받아 지난 몇 년간 영국 정관계 인사들과 친분을 도모했고, 비슷한 연배인 처칠과는 꽤나 가까워진 터였다.

이강은 본래 음주가무를 즐겼고, 처칠도 술이라면 빠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별도의 내실에서 술잔을 계속 주고받았다.

"우리 황제 폐하께 의원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드리니까, 장차 영국과 세계의 미래를 바꿀 재능을 가졌다고 격찬하시더군요."

"하하, 과찬이로군요. 미래에 대한 예견이 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귀국 황제께서 저를 그렇게 좋게 봐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처칠은 의례적인 찬사로 받아들였지만, 기분은 유쾌했다.

"장차 대영제국의 장관과 수상에 오르실 분과 알게 되어 기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별말씀을. 저야말로 전하와 친분을 맺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강은 처칠의 야망을 건드렸다. 과연 그는 야망이 강한 청년이었다.

보수당 소속이지만, 의회에서 점차 당론과 달리 자유당에 공감하는 투표가 늘어갔다. 보수당의 정책, 특히 보호주의 경제와 노동 문제에 대한 당의 경직된 태도에 실망했기 때문도 있었지만, 화려한 언변과 튀는 성격의 처칠을 보수당 중진들이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있었다. 그는 내각의 정책을 거침없이 비판했고, 보수당에서 자신의 미래가 없다고 여겼다.

"영일동맹에 대한 의원님의 고견은 잘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동맹으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나라는 이웃인 한국일 것입니다. 앞으로 어찌 될지 궁금합니다."

"제가 거기까지 논평할 위치에 있겠습니까."

처칠이 한발 물러서자, 이강이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아시다시피, 저는 국제 정치나 이런 복잡한 문제는 잘 모릅니다. 운 좋게 왕가에서 태어나 놀기 좋아 하는 한량이지요. 위대하신 황제 폐하와 비교하면 그저 모자란 아우라 부끄럽습니다. 오죽하면 형님께서 절 영국에 보내시고 세계를 공부하기 전에는 들어오지 말라 하셨겠습니까? 저도 세상 돌아가는 건 좀 알고 싶습니다."

이강의 한탄에 처칠이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그도 명문가인 말버러 공작가 태생으로, 부친은 재무장관까지 지냈다. 이런 귀족적 태생과 달리, 어린 시절의 처칠은 가문과 귀족 사회에서 ‘저능아’ 취급받으며 자랐다. 학교 수업은 낙제하기 일쑤였고, 3수 끝에 들어간 사관학교에서도 낙제생이었다.

하지만 결국 처칠은 홀로서기에 성공했고, 20대의 나이에 주목받는 정치인이 되지 않았는가.

그가 보기에 이강은 놀기 좋아하고 파티나 쫓아다니는 한량이지만, 총명하고 재능은 분명히 있어 보였다.

처칠은 이 동양 왕자에게 공감을 느꼈다. 그가 공작가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처럼, 왕자도 황제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하, 동맹 조약의 구체적 내용이 아직은 비밀에 있어서, 여당 의원인 저도 추정할 뿐입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이라도 괜찮으시다면……."

"물론입니다.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영일동맹은 분명히 동아시아에서 러시아를 겨냥한 동맹입니다. 대영제국이 일본에게 아시아에서 행동할 자유 권리를 부여하진 않았겠지만, 영국을 대리할 헌병으로 고용한 건 확실합니다."

"대한제국은 어찌 될까요?"

"한국이 러시아와 친밀한 관계인 건 잘 압니다만, 앞으로는 영국과 손을 잡는 게 현명한 선택이 될 겁니다. 영일동맹은 동아시아의 축을 바꿀 겁니다."

"하지만 의원님께서 아까 말씀하시길, 대영제국은 동양의 소국과 대등한 관계를 맺지 않는다고……."

이강의 말에 처칠이 웃음을 흘렸다.

"그거야 백인들 들으라고 한 소리지요. 국익 앞에 인종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뭐, 맞습니다. 영국과 일본이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없듯이, 한국도 마찬가집니다. 국력 차이 때문이지요. 한국이 영국과 손을 잡더라도, 일본은 영국의 하위 파트너고, 한국은 일본의 하위 파트너가 되는 걸 감수해야 할 겁니다."

"으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제공할 수 없는 걸, 영국은 제공해 줄 수 있을 겁니다. 러시아는 앞으로 떨어질 낙엽입니다. 귀국이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되면 좋겠군요."

"가르침 감사합니다. 다만 영일동맹의 내용을 알지 못하니 판단을 내릴 수가 없군요, 하하."

"동맹은 의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니, 하원 외교위원회에 곧 공개되긴 할 겁니다."

처칠이 바로 하원 외교위원회 소속이었다.

이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본국에 보낼 전문의 내용을 계산했다.

영일동맹이 공식적으로는 평화를 지키기 위한 동맹이고,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적대하진 않았지만, 어떤 국가를 겨냥한 동맹인지는 말하나 마나였다.

명백히 러시아를 견제하는 군사동맹이었다.

러시아는 영일동맹의 체결에 당혹했다.

"영국이 정말로 일본과 동맹을 맺다니!"

"영국놈들, 서양 열강으로서의 자존심도 팽개쳤나? 동양의 조그만 섬나라 따위와 군사동맹이라니!"

"뭐, 러시아도 1896년에 청국 및 조선과 방위동맹을 체결한 바 있지 않았소."

"그건 러시아가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동양 국가들을 보호해 준다는 의미였지, 대등한 군사동맹은 아니잖소!"

"이건 명백히 러시아를 겨냥한 군사동맹이오.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러시아의 동맹, 프랑스도 당혹감을 느꼈다.

프랑스의 숙원인 독일에 대한 복수를 달성하려면, 러시아가 영국과 대립을 중단하고 유럽에 집중해야 했다.

"유럽에 집중하기는커녕, 갈수록 러시아가 아시아로 빠져들고 있지 않는가! 영일동맹의 체결은 러시아의 위신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겠지. 러시아는 결코 아시아에서 물러서려고 하지 않을 텐데……."

프랑스의 우려대로, 독일은 내심 즐거워하고 있었다. 영일동맹 체결은 분명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할 목적이지만, 절반 정도는 영국이 독일의 건함 정책에 집중할 목적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이저는 자신의 대전략이 성공했다고 여겼다.

"일본 따위가 영국과 동맹이라니, 많이 컸군. 분노한 러시아가 계속 동쪽으로 나아가 줬으면 좋겠어. 러시아와 영국이 아시아의 진흙탕에 빠져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바라던 바이지, 하하!"

각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 속에서, 한국의 외교는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미 공사 서재필, 주영 공사 민영환, 주불 공사 서광범, 주독 공사 홍종우, 주러 공사 이범진 등은, 황명을 받아 물밑에서 각국 정부와 접촉을 시도했다.

- 2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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