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대미(對美) 외교
"영국과 일본이 말뿐인 독립 보장을 했다면, 러시아와 프랑스는 실질적인 독립 보장을 했다는 거군."
러시아가 영일동맹으로 수세에 놓인 이상, 동양의 유일한 우호국인 한국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이선은 그 점을 공략했고, 러시아도 이를 받아들였다.
러시아와는 1896년 조약으로 대한제국이 침략 받을시 개입을 명문화(明文化)했고, 프랑스는 조약상의 의무는 없었지만 경제적 지원은 약속했다.
‘유사시 독립 여부는 한숨 돌렸지만, 전쟁 자체를 억지하는 게 가장 좋지. 앞으로는 미국도 중요해질 터.’
이선은 유럽 열강들에 이어, 대미 외교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공사, 짐이 미합중국을 얼마나 특별하게 여기는지는 공사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미국은 대한이 개항한 이래 최초로 국교를 맺은 서양 국가요, 가장 먼저 보빙사절단을 보낸 나라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부강함과 진취성은 대한이 언제나 본받아야 할 나라입니다."
"황제 폐하, 폐하께서 20년 전에 미국에 오셨을 때를 기억하는 미국인들이 많습니다. 폐하의 말씀대로 미합중국과 대한제국의 우호는 영원할 것입니다."
주한 미국 공사 호러스 알렌, 한국명 안련(安連)이 유창한 한국어로 화답했다.
알렌은 본래 공사관 의사이자 제중원의학교 교수로 전문 외교관은 아니었지만, 이선과의 특별한 친분을 고려해 주한 미국 공사로 발탁되었다.
"공사께서도 이 나라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근대적 의학 체계를 갖추기 위해 함께 노력한 동반자 아니겠습니까?"
"폐하의 말씀은 실로 광영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저는 참으로 기쁩니다. 한국에 와서 함께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하느님의 인도였습니다."
단순히 말뿐만은 아니었다. 알렌은 의사 출신이지만, 물욕이 강하고 거간꾼 기질이 있었다.
이선은 은밀히 돈과 이권을 안겨 알렌의 물욕을 만족시켰고, 알렌은 자연스럽게 이선과 대한제국에 충성했다.
실제 알렌의 대표적 이권인 운산 금광은 조선 주도로 개발이 되어 국유화되었기에 실제 역사처럼 알렌과 미국 자본이 차지한 건 아니었다. 이선은 금, 철, 석탄만큼은 국가 주도에서 양보하지 않았다.
하지만 광산 개발, 철도·전차·도로 부설, 전기·전화·상수도·자동차 도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의 신기술이 한국에 쏟아져 들어왔고, 알렌은 그 중간에서 거간꾼 역할을 하며 넉넉한 뇌물을 받고 있었다.
알렌이 대한제국의 무궁한 발전을 고대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귀국 대통령께도 짐의 우의를 꼭 전해 주시길 바라오. 짐이 미국을 얼마나 특별하게 여기는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대한제국의 고귀한 황족들과 촉망받는 인재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시고, 최신 기술을 도입하시고, 투자도 아끼지 않으시는데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대통령께 이 기쁨을 함께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역시 공사는 대한의 벗입니다."
알렌의 미사여구를 웃으면서 받아들였지만, 이선은 그를 완전히 믿지 않았다. 알렌이 미국의 대외정책에 기여하는 바는 지극히 작았고, 루스벨트가 신임하는 인사도 아니었다.
이선은 미국 본토를 직접 공략하고 있었다.
미합중국, 워싱턴.
"대한제국은 미합중국의 대외정책, 아시아의 문호개방과 세력균형을 지지합니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균형을 맞춰 주기를 바랍니다."
주미 공사 서재필은 필사적으로 미국 정재계에 로비를 하고 다녔다.
대미 로비라면 일본도 만만치 않았다. 이토 히로부미의 측근으로 사법대신을 지낸 가네코 겐타로(金子堅太郞)가 대미 외교에 나섰다. 가네코의 강점은 루스벨트의 하버드 동문으로,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는 점이었다.
"어서 오세요.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공사님과 부인께서 초대장을 보내 주셨는데 거절할 수가 없지요."
때로는 개인적인 친소관계가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뷰캐넌 전 대통령의 5촌 조카인 뮤리엘 부인, 미국 정치 명문가를 처가로 둔 서재필은 여러 인맥을 통해 공략해 나갔다.
공사 서재필, 무관 노백린, 유학생으로 현지에서 발탁된 참서관 이승만과 김규식(金奎植) 등은 유창한 영어와 미국 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로, 미국 상류층의 환영을 받았다.
이선은 대미 외교를 도울 인사를 추가로 미국에 파견했다.
"의친왕 강에게. 신속히 미국으로 가라. 명분은 보빙사절단 20주년 기념행사 참관, 대학 방문, 유학생 격려. 영국에서 했던 활동을 미국에서 지속하라."
영국에 체류하며 ‘왕실 외교’를 지속해 왔던 의친왕 이강에게 미국으로 가라 명했다. 결국 영일동맹이 체결된 시점에서는, 영국보다는 미국이 더 중요했다.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강 본인도 유학했던 미국을 좋아했던 만큼, 훈령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강은 미국 유학 당시 사교계의 스타였고, 미국 여인과 사랑에 빠진 적도 있었다.
"런던과 파리도 좋지만, 역시 내 취향은 뉴욕이지. 뉴욕이여, 기다려라! 내가 돌아간다!"
영국에서의 임무를 마친 이강은, 즉각 미국행 배편을 예매했다.
* * *
이 무렵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국무장관 헤이가 의화단 전쟁을 전후하여 공언한 ‘중국의 문호개방과 동아시아 세력 균형’이었다.
동아시아 진출의 후발주자인 미국은 중국의 영토 보전과 주권의 보호자로 자처했고, 필리핀을 통한 중국 시장 진출을 희망했다.
1903년 7월, 헤이가 병석에 누우면서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직접 외교 정책까지 총괄하기 시작했다.
헤이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동아시아 진출을 노렸다면, 루스벨트는 전략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이 무렵에 공표된 영일동맹에 대한 반응은, 미국에도 민감했다.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이 필요하기는 하다. 러시아의 만주 독점, 특히 태평양 진출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영일동맹은 러시아의 후퇴에 기여하리라 본다."
철저한 사회진화론자이자 제국주의자인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처음에는 러시아의 만주 점령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백인 열강’인 러시아가 의화단의 추태를 보인 ‘황인 야만국’ 청나라를 굴복시키는 건, 그의 관점에선 당연한 귀결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만주 철병 거부는 루스벨트가 추구하는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깨는 행위였다. 미국은 러시아의 의도를 의심했다.
러시아의 남하는 견제받아야 했고, 그런 의미에서 영일동맹은 미국도 지지할 요인이 충분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영일동맹이 현재는 러시아를 겨냥한 동맹이라고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동맹이다. 영국의 위임을 받은 일본 해군이 태평양에서 설치고 다닌다면, 결국 미국과 충돌할 우려가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영일동맹은 미국이 추구하는 태평양 패권을 침해할 수 있었다.
루스벨트는 분명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일본에 우호적이었지만, 영국과 일본은 미래의 경쟁자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일본이 영국의 후원을 받아, 장차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열강으로 성장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이미 미서 전쟁에 일본이 참전해, 필리핀 문제에 개입하고 괌을 제외한 스페인령 동인도제도를 점령한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내가 그 당시 대통령이었으면 결코 러시아의 만주 점령도, 일본의 태평양 개입도 용인하지 않았을 거요. 태평양은 장차 미국이 독점해야 하오."
루스벨트는 전임자 매킨리를 비판했다. 당시 그는 의용군을 이끌고 카리브해 전선으로 나가느라 대중적 인기는 폭발했지만, 정부 정책에 관여하지 못한 걸 유감으로 여겼다.
"그나마 요새 일본은 영국이 잘 길들이고 있는 것 같은데, 러시아가 문제군. 말은 부드럽게 해도,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다녀야지. 말을 안 들으면 몽둥이로 다스려야 하는 법."
루스벨트는 힘의 신봉자이자, 미국의 패권을 열망했다. 하지만 미국의 국력이 아직 아메리카를 제외하고는 유럽 열강에 도전할 형편은 못되므로, 아시아에서는 세력 균형을 추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국력이 만족할 수준에 도달할 때, 태평양의 지배자로 군림하겠다는 복안이었다.
대한제국의 외교는 바로 이 점을 노리고 있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미국이 실제 역사처럼 일본의 후원자가 아니라, 중립으로만 남아 줘도 성공이지. 루스벨트는 본질적으로 친일이 아니라 철저한 미국 중심의 제국주의자. 친일을 택한 것도 그게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서였지. 막연한 명분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익을 적절히 제공해 준다면 일본 편만 들지 않을 터.’
이선은 미국과 루스벨트가 만족할 만한 여러 유인책을 타진했고, 미국은 그런 시도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1903년 9월, 영일동맹에 이어 노불선언이 발표되면서 동아시아는 두 개의 세력이 대립하게 되었다.
제3의 세력, 독일과 미국은 중립적인 입장이었다. 8년 전 삼국간섭을 함께 했던 독일이 러시아에 기울어진 중립이라면, 미국은 일본에 기울어진 중립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대통령 각하, 접견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어서 오십시오, 공사."
루스벨트는 굉장히 반갑다는 듯, 서재필과 힘차게 악수를 했다. 운동광 루스벨트의 강한 악력에 서재필은 손이 아플 지경이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마침 주한 공사가 쓴 편지를 읽던 참이었소. 그러고 보니 공교롭게도 양국 공사의 본업이 같군요?"
주한 미국 공사 알렌이 의사 출신인 것처럼, 주미 한국 공사 서재필도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약 20년 전 닥터 알렌의 의술을 보고, 새로운 눈이 뜨였습니다. 저는 당시 차관보급 관리였지만,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호오, 그래요. 그래서 공사를 비롯한 한국 엘리트들이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하게 되었군요."
"예, 그때만 해도 의술은 조선 사회에서 낮게 여겨졌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의학을 중시하십니다. 최초의 여성 의사도 미국에서 공부했지요. 미국은 기회의 나라입니다."
"하하! 과연 아메리칸 드림을 실천하고 있군요. 그럼 미국인이 공사의 운명을 바꾼 것이군요?"
"그때 닥터 알렌이 구했던 분이 바로 홍영식 공인데, 3년 전 중국에서 의화단에게 피살당하셨지요. 홍 공은 보빙사 부사로 미국에 오셨던 분이고, 제게도 형님과 같은 분이었습니다."
갑신경장 직후, 홍영식이 수구파에게 피습당해 중상을 입은 바가 있었다. 그때 그를 수술하여 살렸던 이가 마침 미국 공사관 의사로 부임한 알렌이었고, 이후 최초의 근대적 의료기관인 제중원이 설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 그렇군요. 영국 장군, 독일 공사, 한국 공사가 피살된 걸 기억하는데, 공사의 벗이었군요. 유감입니다. 상심이 컸겠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 복서 무리의 난동을 보며 느낀 바가 있는데, 문명화가 이토록 중요하다는 겁니다. 일본인과 한국인은 동양인이지만,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 문명사회의 일원이 되었소. 하지만 중국인들은 문명을 거부한 결과, 저런 야만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징벌을 받는 것도 당연한 귀결입니다."
루스벨트는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공사는 기독교 신자지요?"
"예, 주님을 믿습니다."
"한국에 기독교 신자가 많은가요?"
"증가 추세입니다. 기독교가 곧 서양 문명으로 인식되고 있는 덕이지요. 전교가 오래된 가톨릭이 강세이긴 합니다만,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근래 개신교의 교세도 강해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터키인과 중국인들이 먼저 서양화를 시도했음에도 한계에 부딪힌 건, 기술만 도입했지 핵심인 머리를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오. 하지만 일본인과 한국인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합리주의와 기독교는 서양 문명의 핵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 터키인들보다 일본인과 한국인이 더 백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루스벨트는 당대를 풍미하던 사회진화론, 제국주의와 인종주의적 관점에서 동양을 바라보았다. 사회진화론자들에게 서양 문명과 기독교는 ‘절대 선’이었다.
"일본은 신토를 내세우지만, 한국은 더 이상 유교를 국교로 내세우지 않습니다. 종교에 대해 좀 더 관대하고 자유롭습니다."
"아, 좋습니다, 좋아요. 헌법과 의회, 사상과 종교의 자유. 산업의 발전과 국방을 위한 군사력을 향한 노력. 귀국은 문명사회의 일원으로 합류할 자격이 충분합니다."
이선이라면 이런 노골적인 평가가 고깝게 들리겠지만, 서재필은 만족했다. 그도 사회진화론과 제국주의에 익숙한 19세기 사람이었고, 서양에서 이런 말은 굉장한 칭찬을 의미했다.
"각하, 대한제국은 문호 개방에도 충실합니다. 러시아-프랑스 공동 선언은 만주의 평화를 되찾게 해 줄 것입니다. 대한제국 정부는 한국령 남만주의 문호를 개방하기로 했습니다."
러시아의 만주 독점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미국은 줄곧 문호개방을 요구하고 있었고, 러시아가 만주에 열강의 진출을 불허한 점을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다.
노불선언은 만주 철병 재개와 열강의 만주 투자에 대해서도 완화된 조건을 약속했다.
한국은 때맞춰 한국령 남만주의 문호를 개방할 의사를 밝혔다. 러시아의 동의를 얻은 타진 대상은 미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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