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친왕 전하의 사랑
1903년 가을, 미합중국 뉴욕.
"아메리카여! 내가 돌아왔도다!"
대한제국 의친왕 이강은 대서양을 넘어 뉴욕항에 도착했다.
이강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유의 여신상을 쳐다보았다. 미국 유학 시절을 인생의 황금기로 기억하는 그로선, 미국 복귀가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전하, 전하를 영접하라는 황명을 받았습니다. 주재무관 참령 노백린입니다."
의친왕이 도착할 때까지 항구에 대기하고 있던 노백린이 거수경례하자, 이강은 악수를 청했다.
"오, 노 참령. 우린 대사절단에서 이미 안면이 있던 사이 아니오? 그리 딱딱하게 대하지 않아도 됩니다."
"광영입니다, 전하."
노백린은 곁에 있던 젊은이를 소개했다. 굉장히 영민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공사관 참서관 김규식 군입니다. 로노크 대학을 졸업, 명문 프린스턴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인재입니다."
"김규식입니다. 제가 당분간 전하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친왕 전하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 기억하지! 대사절단의 최연소 학도 아니었나?"
23세의 청년 김규식(金奎植)은, 근대화의 수혜를 받은 당대의 최고 엘리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부친 김지성(金智性)은 실무관료로, 일찌감치 개화의 필요성을 깨닫고 신문물을 습득했다. 갑신경장 이후에는 외교관이 되어 일본, 러시아 등지에 재직했다.
김지성은 해외로 떠나면서 어린 아들을 선교사 언더우드가 설립한 경신학당에 보냈고, 경신학당의 1호 제자가 된 김규식은 언더우드의 극진한 관리를 받았다.
총명한 김규식은 영어와 신문물을 빠르게 습득해 나갔다. 태생적으로 병약하여 공부에 몰두한 김규식은 유독 언어적 재능이 뛰어났다. 14세에 관립영어학교에 진학, 웬만한 교사나 관리들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1896년, 서재필의 추천을 받아 김규식은 16세 최연소로 대사절단 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로노크 대학 출신 아니오? 동문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하더군. 동양의 천재가 입학했다고."
"과찬이십니다, 전하. 전하의 어학우(御學友)로서 부끄러움이 없도록 정진했습니다."
이강이 다녔던 버지니아 로노크 대학 예비과정을 거쳐 대학에 진학한 김규식은, 가히 천재라고 불릴 정도의 평가를 받았다.
영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까지 능통하여 교수들의 찬탄을 받을 정도였다.
성적도 워낙 좋아서 미국인 학생들을 제치고 로노크 대학 전체 차석으로 졸업했다.
동시기에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이승만과 안창호가 학사 학위만 받고 귀국, 현실정치에 뛰어든 것과 달리 김규식은 학문에 매진했다.
김규식은 명문 프린스턴 대학의 장학금을 받아 대학원에 진학했다. 1903년 여름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게 되어, 한국인으로는 최초의 정치학 석사가 되었다.
학위논문을 요약한 발표회에서 김규식은 다음과 같은 예견을 했다.
"동양의 미래는 러시아와 영국의 갈등,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곧 영국과 일본이 결합하게 될 것이며, 영국의 후원을 받은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은 피할 길은 없다. 동양의 땅과 바다에서 다시 한번 포성이 울리게 될 것이다. 한국은 이 위험한 게임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한국은 이제 과거의 무기력한 나라가 아니기에, 결코 침략의 멍에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현실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젊은 백면서생의 분석이라고 하기엔 정확하고 냉철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발표 직후에 영일동맹 체결이 공표되었고, 김규식은 일약 주목을 받게 되었다.
"우사(尤史, 김규식),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네. 황제 폐하께 자네를 정식 외교관으로 채용하라고 주청을 올리겠네."
"대단히 감사합니다만, 저는 이미 박사 과정 진학을 제안받았습니다."
주미 공사 서재필은 김규식의 후견인이었고, 그 식견을 높이 평가했다.
정치학 교수이자 프린스턴 대학 총장인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은 김규식에게 전액 장학금 제안과 함께 박사 진학을 권했다.
"자네의 학구열은 진심으로 높이 평가하네만, 공부는 언제든지 할 수 있네. 자네 생각처럼, 작금 동양의 정세는 화급하네. 미국과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야. 공사관에서는 자네 같이 유능한 인재가 필요하네. 더욱이 자네는 정치를 공부하는 사람이 아닌가? 현실정치를 한번 체험해 보게. 그럼 더욱 자네의 학문에 도움이 될 테니."
결국, 김규식은 서재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서재필의 주청을 받은 이선이 친히 외교관으로 특채한 김규식은, 주미 공사관 3등 참서관으로 임명되어 외교관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강이 미국에 도착했을 당시, 김규식은 외교관으로 막 첫발을 뗀 무렵이었다.
"전하, 제가 직접 뉴욕으로 모시러 가지 못해 송구합니다. 미 국무부와 중요한 논의가 있어서……."
워싱턴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에 도착한 이강을 공사관 일원이 맞이했다. 서재필은 이 당시 미국과의 차관 협약 체결을 위해 정신없이 바쁜 상황이었다.
"아니, 별말씀을. 공사께서 공사다망(公私多忙)한 건 당연한 일. 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전하께서 합류하시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삼가 황명을 받들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강은 예전의 놀기 좋아하는 한량이 아니었다. 형 이선을 대리해 왕실외교를 수행하는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미국은 공화국이라 왕실외교가 중요하지 않아 보였지만, 의외로 이강의 역할은 다양했다.
"전하, 다음 일정은 보빙사절단 20주년 기념행사입니다."
"연설을 준비해야겠군요."
"김규식 군이 연설문 작성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이강도 영어가 유창했지만, 김규식의 어휘 구사력은 차원이 달랐다. 김규식이 작성한 연설문을 보고 이강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이걸 나더러 외우라고?"
"그렇습니다."
"그럼 난 조선말로 할 테니, 자네가 통역하면 안 되나?"
"주빈이 친왕 전하이신데, 전하께서 직접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20년 전, 성상께옵서 보빙사를 이끌고 오셨을 때 친히 연설하시어 미국인들의 깊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거로 압니다."
"형님은 워낙 타고 나신 분이고……. 뭐, 아무튼 알겠네. 혀 좀 굴려 보지."
1903년 11월 1일.
워싱턴에서 보빙사절단 방미 20주년을 맞이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의친왕 이강 이하 주미 한국 외교관 일원, 한국 및 동아시아와 관계가 있는 정치인, 경제인, 종교인 등이 기념행사에 모였다.
10월에 만주 문호개방과 한미 경제협정이 잇달아 이뤄지면서, 한미관계의 순항을 상징하듯 기념행사의 분위기는 지극히 우호적이었다.
"친애하는 신사숙녀 여러분. 대한제국과 미합중국은, 1882년 수교 이래 최상의 관계를 추구해 왔습니다.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서양에 문호를 개방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1883년 황제 폐하께서 친히 사절단을 이끌고 온 첫 나라가 미국이라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황실의 일원인 본인과, 한국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이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좌중의 시선이 이강에게 집중되었다.
"우리는 진보와 혁신을 원하고, 세계에서 가장 진보와 혁신을 이루고 있는 나라가 미합중국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이강은 박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좌중을 쳐다보며 씩 웃었다.
"물론 미국의 여인이 특별히 아름답고 매력이 넘친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마는."
"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강이 유학 당시에 미국 배우와 연애를 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였다.
"…… 앞으로 한미 양국의 우호가 영원하길 바라며, 이상으로 제 축사를 마치겠습니다."
"와아아아!"
좌중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김규식이 써 준 연설문은 이강이 임의로 바꿔 버렸지만, 오히려 반응은 더 좋았다. 김규식의 연설문이 정치적이고 학술적이었다면, 이강의 연설은 듣는 이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편안한 담화(談話)였다.
"훌륭한 연설이었습니다, 전하!"
"감사합니다, 여러분."
"20년 전 황제 폐하께서 미국에 오셨을 때가 기억납니다. 어린 나이에도 총명함이 타고난 분이셨죠."
"전하께서도 총명하시니, 한국 황실의 현명함을 잘 알겠습니다. 한국은 과연 현자들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과찬이십니다. 저는 폐하의 신하에 지나지 않으니,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위치입니다."
사람들이 이강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미국인들은 민주공화국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왕족이란 희귀한 존재였다. 동양에서 직접 미국에까지 유학을 온 왕족에 관심이 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전하, 이분은 상원 외교위원회를 이끄시는 의원이십니다. 차관 협정에도 많은 도움을 주셨지요."
"오, 반갑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분이군요."
서재필은 이강에게 미국 정·재계의 유력인사들을 소개했다. 이강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악수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술잔을 부딪쳤다.
아무리 사교적인 이강이라지만,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슬슬 피곤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술잔을 들고 발코니에 나가 달을 쳐다보았다.
‘달은 어디서 봐도 같구나.’
"아, 안녕하세요, 전하."
약간 어색한 억양의 한국어가 들려오자, 이강은 자연히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뜻밖에도 묘령의 서양 여성이었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인은 푸른빛 눈과 금발 곱슬머리가 인상적이었다.
"오, 한국어를 할 줄 아시다니 놀랍습니다."
"사, 사실 인사 정도만 해요."
여인이 한국어를 약간 할 줄 알지만 유창하지 않음을 알고, 이강은 영어로 언어를 전환했다.
"편히 이야기하시죠. 한국어는 어떻게 배우게 된 건가요?"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셨어요."
"어떤 분이신가요?"
"선교사 피터 브라운이라고 합니다. 10년 동안 한국에 계시다 귀국하셨어요."
"아, 그럼 아가씨는 미스 브라운이시군요. 숙녀분의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요?"
"저는 에밀리, 에밀리 브라운이라고 합니다. 전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프린스 이강입니다.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강과 에밀리 브라운은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아버지께서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시려고 해요. 저도 같이 가려고요.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어요."
"고마운 말이지만, 솔직히 미국에 비하면 한국은 많이 낙후되어 있어서, 아가씨의 실망이 클 겁니다."
"아니에요. 아버지께서 한국은 희망과 기회가 넘치는 나라고, 한국인들은 성실하고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셨어요. 저도 아버지와 함께 한국인들을 돕고 싶어요."
에밀리의 순수한 포부에 이강은 기특하게 쳐다보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에밀리의 손을 잡았다.
"정말 훌륭한 분이군요."
"전하!"
어느새 다가온 김규식이 이강을 불렀다. 에밀리는 얼굴을 붉히고, 이강은 저도 모르게 헛기침을 했다.
"안에서 사람들이 전하를 찾고 있습니다. 귀빈께서 자리를 비우시면 안 되지요."
"알겠네, 알겠어."
이강은 김규식의 입을 막고, 에밀리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에밀리 양, 만나서 기뻤습니다. 오늘은 바빠서 더 이야기를 눌 수 없겠지만, 더 이야기 나눠 보고 싶습니다. 내가 또 연락을 드리지요."
"감사합니다, 전하."
에밀리는 이강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자네, 피터 브라운이라고 아나?"
"장로회 선교사지요. 오늘 행사에도 왔습니다."
"호오, 그래."
이강은 손쉽게 에밀리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장로회 선교사 피터 브라운은 한국과 관계가 깊은 인물이었다.
주한 미국 공사 알렌, 연희전문학교장 언더우드와도 교분이 깊었다. 언더우드의 양자나 다름없는 김규식과도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브라운 선교사, 한국을 위해서 애를 많이 쓰셨다지요. 감사드립니다."
"전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명하신 바를 따른 것뿐입니다."
이강과 피터 브라운은 친교를 텄다. 한국 선교 사업을 확대할 구상을 갖고 있는 브라운은 이강의 관심이 기꺼울 따름이었다.
11월, 미국도 수확의 계절이자 낙엽이 지는 가을이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피터 브라운은 주미 한국공사관에 초대장을 보냈는데, 뜻밖에도 프린스 이강이 수행원을 데리고 직접 나타났다.
"전하께서 직접 찾아 주시다니,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제 아내, 그리고 제 딸 에밀리입니다."
"안녕하세요, 전하."
"반갑습니다, 미세스 브라운, 미스 브라운."
이강과 에밀리는 처음 본 사람처럼 새로 인사를 나눴다.
"기념행사에서 전하를 먼발치에서 바라봤다고 하던데, 직접 대화까지 나누게 되어 제 딸에게도 크나큰 영광이겠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과 알게 되어 제가 영광이지요."
이강은 부친의 허락을 받아, 에밀리와 정식으로 친교를 맺게 되었다.
이강은 바쁜 와중에도 종종 에밀리를 만나서 함께 산책을 하고,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다졌다.
그런데…….
"보스턴 선데이 포스트 특별판입니다! 한국 왕자와 미국 아가씨의 로맨스 스토리!"
- 본지 단독 특종 보도! 미국 여인은 어떻게 한국 황실의 일원이 되었는가? 프린스 이강과 에밀리 브라운 양의 로맨스를 독자 여러분께 공유한다!
1면에 조선 궁중 의복 차림 서양 여인의 그림으로 대중의 관심을 끈 11월 29일 자 보스턴 선데이 포스트는, 그야말로 전미의 화젯거리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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