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지정학적 전환
1904년은 ‘유라시아’라는 개념이 지리학에 최초로 등장한 해다.
기존에는 유럽과 아시아를 분절적으로 파악했으나, 유럽과 아시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유라시아’라는 개념을 주장한 학자가 있었다.
영국의 지리학자, 핼퍼드 매킨더(Halford Mackinder). 훗날 지정학(Geopolitics, 地政學)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되는 인물이다.
1904년 1월 25일, 매킨더는 영국 왕립지리학회에서 「역사의 지리적 중심축(The Geographical Pivot of History)」 을 발표했다.
"유라시아의 역사는 ‘대륙세력(land power)’과 ‘해양세력(sea power)’의 투쟁의 역사다. 정치적 유럽은 아시아에서 발원한 초원 유목 세력들의 침략에 맞선 투쟁의 산물이다. 콜럼버스 이래, 해양세력이 흥기하여 서방이 세계 패권을 쥐었다. 주지하시다시피, 해양세력의 선두는 대영제국이다. 하지만 그 패권은 20세기에 접어들어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세력이 다시 흥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는 대륙세력의 시대가 될 것이며, 중심축(Pivot)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중심축은 유라시아 대륙의 북부와 내륙 초원 지대다. 과거에 이 지역은 사막과 삼림으로 인구가 희박한 텅 빈 지대였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상황을 역전시켰다. 스텝지역이 농업지역으로 전환되고, 대륙횡단철도의 부설은 유목민의 말과 낙타를 철도 기동력으로 대체하고 있다. 중심축을 지배하고 있는 러시아 제국은, 20세기의 몽골 제국이다."
"중심축의 외부에는 ‘내부 초승달 지대’가 있다. 유럽, 중동, 인도, 동아시아 등 유라시아의 인구와 부가 몰린 지역이다. 영국, 미국, 일본 등은 유라시아 바깥의 ‘외부 초승달 지대’다. 그동안 해군력의 우위를 통해 해양세력이 보유하고 있던 패권을 대륙세력이 도전하고 있다. 지금의 러시아는 낙후되어 있지만, 만약 독일과 손을 잡아 강력한 대륙세력을 구축한다면, 세력균형은 뒤집힌다. 대륙세력은 내부 초승달 지대를 넘어 유라시아 연안에 도달하고, 거대한 함대를 건설해 해양세력을 위협할 것이다."
"내부 초승달 지대에서 핵심지역은, 프랑스·이탈리아·이집트·인도·한국이다. 이 지역은 해양세력이 중심축 국가를 격퇴하는 교두보가 되어야 한다. 해양세력은 이 지역에서 함대 배치를 넘어 중심축 동맹을 몰아내기 위한 지상군을 배치해야 한다."
매킨더는 세계지도에서 프랑스, 이탈리아, 이집트, 인도를 거쳐 극동의 한반도를 차례대로 가리켰다.
"영국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야 한다. 이탈리아도 동맹에 합류시켜야 한다. 이집트와 인도는 대영제국의 지배 권역에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찌해야 할까?"
영국은 떠오르는 열강인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수백 년 숙적이었던 프랑스와 협상을 추진 중이었다. 이탈리아는 독일과 동맹 중이나, 독일에서 떼어 내기 위해 협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이라니? 영국인들 대부분은 한국, 코리아란 나라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다. 전 세계 최고의 지리학 전문가가 모인 왕립지리학회 회원들에게도 한국은 큰 의미가 없는 나라였다.
하지만 매킨더의 생각은 달랐다.
"영국과 일본이 동맹을 맺었으니, 일본에 극동 문제를 위임하자고 하는 이들도 있다. 위험한 발상이다. 한국은 중국으로 향하는 교두보다. 만약 일본에 의해 조직된 중국이 장차 러시아 제국을 대신해 중심축의 패권을 장악한다면, 중국은 세계 질서에 거대한 위험이 될 수 있다. 중국은 거대한 대륙의 자원에 해양까지 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킨더의 발표는 그 당시에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새롭기는 했지만,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이론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매킨더는 20세기 초에, 20세기 중반 소비에트 연방의 부상, 20세기 후반 소련의 붕괴 이후 중국의 부상을 날카롭게 예견했다.
바로 ‘중심축’이 갖고 있는 잠재력이었다.
물론, 역사는 바뀌기 마련이었다.
1904년 4월, 매킨더는 자신의 발표를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 왕립지리학회지에 논문으로 실었다.
마침 그때는 ≪글로브≫의 국제적 러시아 스파이 보도로 떠들썩할 무렵이었다.
러시아의 위협과 잠재력을 이론적으로 주장한 매킨더였으나, 진지한 학자인 그로선 이와 같은 촌극이 개탄스럽기 짝이 없었다.
"한국을 러시아에서 떼어내 해양세력의 일원으로 끌어들여야 하는데, 영국 언론이 황제를 러시아 스파이로 낙인찍어 모욕하다니! 한국이 더욱 러시아로 기울어지길 바라는 건가?"
매킨더는 자신의 이론을 요약 정리하여 신문에 기고했다.
"…… 한국은 러시아의 지배에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일본이 중국으로 향하는 교두보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한국은 해양세력의 지도국, 대영제국이 대륙세력을 저지하는 교두보가 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근거 없는 스파이 타령이 아니라, 한국을 설득해 대영제국의 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매킨더의 주장은 반박과 조롱을 불러일으켰다.
"뭐, 프랑스와 동맹을 맺을 순 있지. 이탈리아도. 모자란 점이 많아도 서양의 일원이니까. 하지만 백인종과 황인종 간의 동맹은 가당치도 않소."
"일본과의 대등한 동맹도 대영제국의 위신을 실추시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무슨 한국 따위와 동맹을 맺는단 말이오?"
매킨더도 황화론이라는 인종주의적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현실주의적 태도로 바라봤다.
"바로 그런 태도가 황인종을 단결시킬 수 있소. 그들이 가진 잠재력을 무시해선 안 되오. 일본은 착실하게 열강의 뒤를 따르고 있으며, 한국도 그 길에 접어들었소. 만약 중국이 그들처럼 변혁하여, 동양이 단결해 서양에 맞서려 한다면 미래의 위협이 될 것이오. 영국은 그들이 폭주하지 않도록 길들여야 하오."
하지만 당장 그런 전망은 보이지 않았기에, 매킨더의 주장은 학계 내부에서는 혁신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정계에서는 잊혀졌다.
매킨더의 주장이 정계의 주목을 받게 된 건, 영국이 라싸를 점령하고 티베트에 조약을 강요할 무렵이었다.
티베트 침공은 국제적으로 강한 비난을 받았고, 국내에서도 자유당과 노동당의 비판을 받았다.
"솔직히 티베트 원정은 불필요했던 거 아니오? 러시아가 배후에 있었던 근거도 결국 없는 거로 드러났고……."
"티베트에서 러시아의 유령을 봤나 보지."
"아니, 달라이 라마가 몽골로 망명하여 러시아의 보호를 받게 된 건 맞잖소. 러시아가 중국 변방을 지배하려는 건 분명하다니까."
러시아의 위협을 근거로 티베트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노력하던 보수당 일각에서는, 매킨더의 중심축 이론을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음, 중심축을 지배하는 러시아의 패권을 저지한다. 교두보에서 러시아를 몰아내야 한다. 독일과 러시아의 결합을 막아야 한다. 프랑스와 손을 잡아야 한다. 모두 일리가 있는데?"
"책상머리 학자의 주장치고는 재미있는 점들이 있군."
매킨더는 보수당과 자유당을 초월하여 소장파 의원들이 회동하는 포럼에 강연을 부탁받았다.
그는 이 자리에 자신의 이론을 지지하는 프랑스인과 한국인을 대동했다.
얼마 전, 매킨더는 자신이 재직하는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에 특별한 손님의 방문을 받았다.
"대한국 황제 폐하께서는, 매킨더 교수의 논문을 직접 읽어 보시고 친서를 보내셨습니다."
"오오, 제 논문이 한국에까지 알려졌단 말입니까? 그것도 황제 폐하께서 직접 읽어 보셨다고요?"
매킨더는 한국 황제의 친서를 열어 보았다. 친서는 격조(格調) 높은 영어로 작성되어 있었다.
「친애하는 매킨더 교수. 짐은 영국의 학문적 성과를 진심으로 높이 평가합니다. 짐은 진작부터 정치지리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근래에는 지정학이라고 부른다지요?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주목한 교수의 논문은 짐의 깊은 흥미를 끌었습니다. …… 교수의 탁월하고도 명쾌한 논문은 짐의 시야를 크게 넓혀 주었습니다. 교수의 이론을 국정에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새로운 이론을 주장하는 학자에게, 자신의 이론에 관심을 갖고 지지해 주는 후원자만큼 반가운 존재는 없었다. 하물며 그 사람이 일국의 황제나 된다면.
"국무로 바쁘신 와중에도 일개 학자의 논문을 직접 읽고 친서까지 보내 주시다니, 감격할 따름입니다."
"조선의 국왕은 전통적으로 군주이자 학자였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 서구화를 이끌고 계시지만, 여전히 그 전통을 따르고 계십니다. 동양 고전에서 서양 학문으로 바뀌었다는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참으로 훌륭한 전통의 응용이로군요. 지정학이란 개념이 등장한 건 극히 최근의 일인데, 이미 알고 계시다니 놀랍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영어에 능통하시고, 특히 영국의 학문을 매우 높이 평가하십니다. 매일 영어 신문을 읽어 보시고, 틈틈이 영미의 최신 논문도 검토하시지요."
방문자의 설명에 매킨더는 새삼 감탄했다.
"세상에 이런 분을, 러시아 스파이 운운하며 모욕하다니."
"아, 모든 한국인의 분노를 자아냈죠. 한국인들은 진심으로 황제 폐하를 존경하고 충성합니다. 국가를 위해 모든 걸 다 바치신 분을 타국의 스파이 운운하다니……."
"한국인의 분노를 이해합니다. 영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크게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영국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국가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다 보니 발생한 해프닝 정도로 생각하시지요."
"참으로 이해력이 높고 관대하십니다."
"황족들에게도 영어 공부를 명하시고, 촉망받는 청년들을 영국과 미국으로 유학 보내시는 이유가 있지요."
"선생도 젊은 나이에 굉장히 영어가 유창한데, 미국식 영어로군요. 미국에서 공부했습니까?"
"아, 이거 송구합니다. 제 소개가 늦어졌군요.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정치학 석사 이승만이라고 합니다. 국제 관계를 전공했습니다."
30세의 청년 이승만은 정중한 태도로 매킨더와 악수를 했다.
‘20세기 포럼’은 양당 체제의 영국에서, 예외적으로 당을 초월하여 소장파 의원들이 주축이 된 포럼이었다.
주 강연자 매킨더 교수가 새로운 지정학 이론에 대해 발표하고, 이어서 프랑스인 교수가 시대의 전환에 따른 영불 동맹의 필요성에 대해 발표했다.
다음 차례는 바로 이승만이었다.
"멀리 한국에서 온 미스터 싱먼-리를 소개합니다.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 학사, 하버드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한국 내에서 정당 활동도 한 바 있는, 한국 정계와 학계에서 촉망받는 인재입니다."
이승만은 1896년 이선이 이끈 대사절단에 선발되어 미국에서 유학했다. 비상한 머리와 유창한 언변을 지닌 이승만은 빠르게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시에 정치적 욕구도 강했던 이승만은, 헌법 제정과 의회 개설 소식을 듣고 귀국했다.
친미 성향의 자유주의자 이승만은 선배격인 서재필과 윤치호에게 발탁되어 독립당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독립당에게 실망스러웠고, 이승만은 다시 미국 유학을 선택했다.
하버드 대학에서 정치학으로 석사를 받은 이승만은, 서재필의 추천으로 김규식과 함께 관계(官界)에 입문했다.
주영 공사관 참서관으로 임명된 이승만에게 하달된 외무대신 서광범의 훈령은, 영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야심만만한 이승만은 이보다 더 큰 목표가 있었다.
‘어떻게든 영국과 동맹을 맺어야 해. 낡아 빠진 전제국가 러시아는 썩은 동아줄이다. 장차 대한이 나아갈 길은 영국과 미국, 이 해양세력들과 손을 잡는 거다. 그동안 영국이 대한을 무시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지. 황제 폐하의 성심도 영국에 있는 듯하니, 내가 이를 주도해서 성사할 수만 있다면…….’
이승만은 매킨더의 지정학 이론에 진심으로 공감했다. 그가 보기에, 대한제국의 미래는 해양세력에 달려 있었다. 한국은 해양세력의 선봉이 되어 대륙세력에 맞서야 했다.
마침 황제도 매킨더의 이론에 관심을 보이며 이승만에게 친서를 전달하게 했고, 영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본심을 추측하면 상투적인 우호관계가 아니라, 진심으로 영국과의 우호를 원하는 것 같았다.
"매킨더 교수님의 이론은 너무나 훌륭합니다. 특히 한국이 해양세력의 교두보가 되어야 한다는 지정학적 전환에 크게 공감합니다. 신사 여러분께서 이해하기 쉽도록, 제가 비유를 좀 드리고자 합니다."
이승만은 유럽 지도와 아시아 지도를 비교했다.
"만주는 극동의 발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러시아가 남하를 추구하는 지역이지요. 그렇다면 청조는 극동의 터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몰락해 가는 다민족 제국, 러시아의 남하로 멸망의 위기에 처한 국가. 신사 여러분, 떠오르는 바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지금으로부터 꼭 50년 전, 크림 전쟁입니다."
영국인이라면 크림 전쟁에 대해 모를 수가 없었다.
"러시아가 조차한 요동 반도, 이곳은 극동의 크림 반도입니다. 크림 반도가 흑해 함대의 본거지인 것처럼, 요동 반도는 태평양 함대의 본거지지요. 해양을 향해 뻗어있는 대륙세력의 칼입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대한해협은 극동의 보스포루스 해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사 여러분, 영국은 일본을 동양의 척후로 고용했습니다. 일본은 동양의 영국입니다. 청국은 동양의 터키지요. 그럼 크림 전쟁의 참전국이 하나 더 떠오릅니다. 앞서 발표한 신사분의 나라, 프랑스입니다."
이승만은 손으로 지도의 지명을 잇달아 가리켰다가 한반도에 고정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손을 잡고 터키의 멸망을 저지하고, 러시아의 남하를 막아 냈습니다. 50년이 지나, 영국과 프랑스는 다시 손을 잡고자 합니다. 한국 총리, 김옥균 공은 늘 말해 왔습니다. 일본이 동양의 영국 노릇을 하려 하니, 한국은 동양의 프랑스가 되어야 한다고. 그렇습니다. 한국은 동양의 프랑스가 되길 원합니다. 동양에서 서구 자유주의 문명을 지키려는 나라, 대륙세력의 남하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열쇠는 한국입니다. 영국은 한국과 손을 잡아야 합니다!"
이승만은 야심만만한 어조로, 영국의 미래를 움직일 소장파 정치인들 앞에서 도발적으로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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