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367화 (366/812)

48화 외교 혁명

"근본적인 문제는 동양 평화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귀국이 안보 위협을 느끼는 걸 이해합니다. 러시아의 남하가 위협적이다, 일본에서 지척인 한국이 적대하는 세력에 넘어가면 곤란하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력한 육·해군을 보유하고 있고, 정한론자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일본은 위협적입니다. 그러니 이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겠지요."

"진정 옳으신 말씀입니다. 안보 위협이 사라지면, 정한론도 자연히 사라지게 됩니다."

"동양 평화를 위해, 양국의 관계를 좀 더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영국과 함께한다면 더 좋겠지요."

순간, 하라의 동공이 확대됐다. 이는 동아시아 외교의 중대한 전환점을 의미했다.

"일영동맹에 한국이 합류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겠습니까?"

이선이 눈짓하자, 곁에 배석해 있던 김옥균이 대신 답했다.

"먼저 불가침조약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동맹을 체결한다면 당연히 불가침이지요."

"다만 동맹의 성격은 공격이 아니라 상호방위조약이어야 합니다. 일방이 침공을 당했을 때만, 일방이 개입할 의무가 있습니다. 공격 시에는 의무가 없습니다."

이선은 러시아가 먼저 일본을 공격할 일은 없다고 판단했다. 소수의 강경파와 달리, 니콜라이 2세는 절대 일본을 선제공격할 생각이 없었다.

먼저 불씨를 점화할 가능성은 일본이 훨씬 높았다. 그러니 상호방위조약으로 제약해야 했다.

"만에 하나, 일본이나 영국이 먼저 적국에 선제공격을 하는 상황이 온다면?"

"우호적 중립은 지켜야겠지요. 만약 2개국 이상이 참전해 영일 모두가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면, 그 경우에는 참전하겠습니다."

한국은 오직 영국이 일본 편으로 참전할 경우에만 합류하겠다는 의미였다.

하라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고민하는데, 이선이 입을 열었다.

"2개국 이상이 참전한다면 영일동맹과 노불동맹이 쌍방에서 전쟁을 한다는 말인데, 짐의 생각에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금년이 가기 전에 영국과 프랑스는 협상을 체결할 겁니다. 일본과 러시아가 체결한 동맹국들이 협상 단계에 이른다면, 두 나라가 대립할 가능성도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황공하오나, 영국과 프랑스가 협상을 체결하리라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독일이라는 떠오르는 적이 있기 때문에."

실제 역사대로라면 이미 4월에 영불협상이 체결되어야 했다. 하지만 영불협상을 가속화한 러일전쟁이 발발하지 않았으므로, 자연히 협상도 지연되었다.

그럼에도 이선은 확신했다.

"프랑스가 독일에 복수하고 싶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영국이 독일과의 건함경쟁 만으로 프랑스와 손을 잡을까요?"

"건함경쟁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국은 언제나 유럽 대륙의 세력균형을 원하는데, 독일이 그 균형을 깨트리고 있으니까. 시일의 문제지, 곧 타협하리라 봅니다."

영국에 대해서라면 동맹국인 일본이 더 잘 알고 있어야 했다. 일본에도 영불 간에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하지만 두 나라 간의 적대와 경쟁의식, 식민지 갈등으로 인해 단기간에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폐하의 예측대로 영불협상이 곧 체결된다면, 일로 간에도 훨씬 순조로운 대화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러시아는 프랑스 자본, 일본은 영국 자본에 상당히 의존하는 상황이니까. 영불협상이 체결되면 짐이 앞장서서 일본과 러시아의 관계 개선을 중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컨대 물주인 영국과 프랑스가 손을 잡으면 러시아와 일본은 돈 때문에라도 대립이 어렵다는 의미였다.

"외신이 특파대사로 방한하긴 했으나, 전권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폐하께서 제안하신 바를 문서로 작성해 주시면, 본국에서 협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구체적인 사항은 총리대신과 논의하도록 하십시오."

이선이 악수를 청하자, 하라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악수를 받았다.

"폐하, 하라 특사와 논의를 마쳤습니다. 특사는 귀국하는 대로 내각에서 협의하겠다고 했습니다."

김옥균이 회담 내용을 모두 보고했다. 이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소, 총리."

"폐하께 삼가 여쭙고자 하옵니다."

"좋소."

"신과 대신들은 진작부터 일본과 연합해야 한다고 고려했지만, 그동안 러시아와 맺은 우방 관계가 깨질까 봐 강하게 주장하진 못했습니다. 성심이 이쪽으로 향할 줄은……."

"물론 짐과 니콜라이 2세는 친우지. 차르 암살을 막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그래서 짐은 최대한 그를 설득하고 있소. 오랫동안 관찰한 친구로서 말하건대, 차르는 먼저 전쟁을 일으킬 사람은 아니오. 그는 좋은 사람이지만, 그럴 결단력은 없어. 일본은 러시아와 차르에게 과장된 공포를 갖고 있소."

이선의 냉정한 평가에 김옥균이 고개를 끄덕였다.

"통제하기 어려운 건 일본이지. 그러니 오히려 일본에 손을 내미는 거요. 마침 일본 정계에 변화가 있었으니까 해 볼 만하지. 야마가타와 군부, 정한론자의 입지가 약해진 지금이야말로."

일본의 정한론자들은 ‘한반도는 일본을 향해 뻗어 있는 비수’를 운운하며 정한론을 정당화했다. 현 일본 정부를 이끄는 이들은 온건하긴 했지만, 한국이 러시아와 손잡고 국내에 러시아 함대의 주둔을 허용한다면 개전도 각오할 터였다.

반대로 한국은 일본에 더 강한 위협을 느꼈다. 아무리 현 정부가 온건하다 할지라도, 일본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기에, 외교적 조약으로 묶어 두는 건 고려할 방법이었다.

"짐은 계속 대러 외교에 중점을 두겠소. 일본과의 협의는 총리가 비밀리에 진행해 주시오."

"예, 폐하. 만약 일이 잘못되면 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습니다."

일종의 역할분담이었다. 김옥균은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각오를 다졌다.

만약 일이 틀어지면, 김옥균이 단독으로 일본과 협상한 걸로 하고 총리에서 사퇴하겠다는 말이었다.

"짐은 경의 지모와 충정을 믿소. 경이 아니라면, 누구를 믿고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하겠소?"

이선은 김옥균에게 강한 신뢰를 보였다. 김옥균은 머리를 깊이 숙였다.

‘정말로 대한에 유리한 판이 만들어졌군. 개항 이래 한일 관계에 있어 이만큼 대등한 상황에 놓인 적이 없었어. 아니, 오히려 일본이 한 수 접어 줘야 할 상황이지. 성상께서는 이조차도 예측하셨단 말인가? 정말로, 애국가 가사처럼 상제여 황제를 도우소서, 로군.’

누구보다도 주군의 속내를 잘 파악한다고 자부하는 김옥균으로서도, 이선이 익문사를 움직여 일본과 한국에서 잇달아 새 판을 깔았다는 건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7월 12일, 일본 도쿄.

메이지 천황이 친림한 가운데, 총리 사이온지 긴모치 이하 내각 대신들, 두 명의 원로, 세 명의 육·해군 참모부 책임자들이 참석한 어전회의가 개최되었다.

"실로 국가의 대계가 걸린 문제입니다. 황공하오나 천황 폐하께옵서는 신중하게 숙고하시어 성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본래 원로를 대표해 상주하는 건 늘 이토의 몫이었지만, 부상으로 부재했으므로 마쓰가타가 상주했다.

"짐은 동양의 평화를 원한다. 전쟁은 짐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비록 러시아가 무도하다고는 하나, 이로 인해 오히려 동양의 평화가 깨진다면 희생되는 이는 짐의 신민이니, 어찌 짐의 마음이 편하겠는가. 하물며 러시아 문제로 국론이 갈려 극단적인 폭도들이 유신의 원훈들을 공격하니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마침 한국 황제가 동양의 대국을 헤아려 조약을 제안하니 반가운 일이다. 황제 또한 군주로서 신민의 희생을 바라지 않는 건, 짐과 같을 것이다. 짐은 이를 마음 깊이 헤아린다. 내각은 짐의 명을 받들어, 동양 평화로 이끌 조약을 체결하라."

언제나 성단을 요청한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원로와 내각의 결정을 따르는 천황이었다.

이미 사이온지는 사전 공작에 들어가 메이지의 동의를 받아 낸 상황이었다.

부상 중인 이토도 편지로 천황에게 상주했고, 마쓰가타와 이노우에도 사이온지를 지지했다.

메이지가 전쟁을 원치 않는 건 진심이었다. 그는 본래 청나라와의 전쟁도 원치 않았었다. 하물며 러시아 같은 열강과, 국가와 사직의 명운을 걸고 전쟁을 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성단이 내려졌으니, 신등은 천황 폐하의 성단을 받들어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군부 인사들과 강경파 대신들은 내심 못마땅했지만, 천황의 ‘성단’ 앞에 드러낼 수는 없었다.

총리와 대신들에게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하라는 속으로 웃었다.

‘소수의 논자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내심 전쟁을 원치 않는다. 국민의 다수도 마찬가지. 시끄러운 소수가 제압됐으니 대세는 기울어졌다.’

일본은 비밀리에 한국과 방위조약을 계속 협의하는 한편, 영국에 한국을 포함시켜 삼국동맹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하는 친서를 보냈다.

영국은 일본의 제안에 바로 응답하지 않았다. 영국에 있어 훨씬 중요한 협상이 있기에, 극동 문제는 우선순위가 떨어졌다.

1904년 8월 8일, 런던.

영국과 프랑스는 마침내 역사적인 합의에 도달했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는 했다.

보어전쟁의 졸전 후 영국은 유럽에서도 새로운 동맹을 찾았으나, 영국이 당초 동맹을 맺길 원했던 독일과의 협상은 조속히 결렬되었다.

독일은 해군력 강화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영국이 프랑스-러시아와 오랜 숙적 관계였음을 감안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영국이 다시 독일에 매달리리라 생각했다.

불과 1898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 식민지 문제를 놓고 수단 파쇼다에서 군사적 충돌 직전까지 갔던 영국과 프랑스였다.

하지만 양국은 외교적 전환을 선택했다. 1903년 에드워드 7세가 프랑스를 국빈 방문하고, 프랑스 대통령 루베가 답방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1904년 러시아의 정치적 위기가 심화되자, 프랑스는 더욱 빠르게 영국에 접근했다.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영국과의 협상을 강력히 추진한 프랑스 외무장관 델카세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델카세는 러시아의 양해를 받는데도 성공했다.

"브리튼 연합왕국과 프랑스 공화국은 우애협약을 체결하였음을 공표합니다."

8월 8일, 런던에서 우애 협약(Entente Cordiale)이 체결되었다. 공표는 1주일 뒤인 15일에 이루어졌다.

‘협약’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동맹보다는 한 단계 낮은 협력 관계를 의미했다.

협약의 내용은, 이집트와 모로코에서 상대의 지배권을 인정하고,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식민지 국경선을 정리하며, 태국을 동남아시아의 완충지대로 삼았다.

표면적으로는 대립하던 식민지 이권 문제를 정리하고 세력권을 확립하는 협약이었다.

하지만 12세기 이래 오랜 역사의 숙적, 영국과 프랑스가 협약을 맺은 것만으로 대단한 진전이 아닐 수가 없었다.

18세기 외교혁명(Diplomatic Revolution), 동맹의 역전(Reversal of Alliances)에 비견될 만했다.

철천지원수였던 부르봉(프랑스)-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가 동맹에 도달한 것처럼, 그보다 더한 숙적이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손을 잡은 것이다.

결코 적을 표명하진 않았지만, 명백히 독일을 겨냥하여 맺은 협약이었다. 독일이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세계에 새로운 협력 체제가 도래했다.

* * *

‘결국 러일전쟁 없이도 영불협약이 체결됐군. 고맙네, 카이저! 믿고 있었다고! 독일이 어그로를 계속 끌어 주는 덕에 영불협상이 이뤄진 셈이니까.’

이선은 영불협상 체결 소식에 안도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협약 관계에 도달한 이상, 각자의 동맹인 일본과 러시아가 전쟁을 벌이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터였다.

이제 극동의 영불협약을 체결할 일이 남았다. 일본을 외교적 협약으로 묶어 두어야 했다.

러시아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차르를 다독여야 하는 선결과제도 남아 있었다.

8월 1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 러시아 한국 공사 이범진은 니콜라이 2세를 알현했다. 러시아 황실은 그토록 고대하던 황태자의 탄생으로 축제 분위기였다.

"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의 탄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는 대한국 황제의 전언과 친서를 삼가 봉정합니다."

"고맙소, 공사. 귀국 황제 폐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짐의 마음을 전해 주길 바라오. 아니, 아예 짐이 직접 친서를 작성해야겠군. 짐의 친우, 이선은 이미 황태자가 태어날 걸 예견하고 있었소. 로마노프 왕조의 진정한 벗이지. 짐은 정말로 기쁘다오."

이범진은 이선의 ‘예언’을 몰랐지만, 차르의 반응을 보고 자신도 덩달아 기뻤다.

"외신도 정녕 기쁩니다. 양국의 우호가 다음 대, 아니 만대에 이르길 바랍니다."

"그래야지. 그럼 친서를 읽도록 하겠소."

「친애하는 짐의 형제 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의 탄생 소식을 듣고 짐도 자신의 일처럼 기쁘게 다가왔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황후 폐하께도 짐의 축하를 전해 주십시오. 황태자 전하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할 것입니다.」

「……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최근 영국과 프랑스 간에 협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는 놀라운 정세의 변환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프랑스는 러시아의 동맹이고, 영국은 일본의 동맹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러시아와 일본이 극동에서 더 이상 대립을 할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양국 간에는 불신이 있으나, 짐이 직접 양국 관계를 중재하고자 합니다.」

「짐은 일본과 영불협상과 유사한 조약을 맺어, 일본 세력권의 한계를 규정하고 대륙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고자 합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그들을 위협한다고 생각했던 안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고, 한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아가 일본의 동맹인 영국에 의해 보증을 받게 하려 합니다. 그렇다면 일본에 이어 영국도 러시아 세력권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니 한국과 일본이 협상을 하여 조약을 체결하더라도 너무 괴이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는 결코 러시아에, 폐하께 적대하는 조약이 아닙니다. 동양의 평화와 전쟁 방지를 위해 꼭 필요한 조약입니다. 폐하께서 그 누구보다 평화를 사랑하심을, 짐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전쟁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합니다. 대외 문제가 안정되면, 작금의 혼란스러운 국내 사정도 자연스럽게 안정될 것입니다.」

「만주를 넘어 몽골 초원까지, 러시아는 아시아에서 평화적으로 세력을 침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룡의 운명을 갖고 태어난 황태자 전하의 미래가 보입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황태자 전하에게 번영과 평화의 제국을, 동방과 서방이 결합한 제국을 물려주실 수 있습니다. 폐하의 좋은 형제, 이선이 영원히 함께하겠습니다.」

꼼꼼히 살펴보면, 온갖 미사여구로 가득 차있을 뿐 구속력 있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차르는 깊게 살피지 않았다.

실제 역사에서도, 독일과의 동맹은 노불동맹과 분명히 상충되는데도 불구하고, 니콜라이 2세는 빌헬름 2세의 말발에 넘어가 1905년 비밀 군사동맹을 체결한다. 만약 그렇게 되면 프랑스와의 동맹이 깨지게 때문에, 비테와 대신들의 격렬한 반발로 비준 단계에서 결국 무산되었지만, 차르의 귀가 얼마나 얇은지 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하물며 지금의 니콜라이는 황태자가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상황이었다. 이선에 대한 신뢰도 최고조에 도달해 있었다.

"음, 좋소. 친서 내용은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리다."

- 4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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