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동맹의 역전
이선은 유럽 통신원의 비밀 전문을 읽었다.
광무 8년 현재 유럽에는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에 주재하는 통신원들이 있었다. 다국적 사회민주당 담당인 조한민은 예외적이었다.
‘처음에는 못할 것처럼 굴더니, 결국 잘하는군. 나폴레옹이 그랬던가? 제복이 사람을 만든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야. 아무튼 똑똑한 친구임에는 틀림없군.’
조한민은 여러 사회민주당과 선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특히 비합법 정당에 독립투쟁까지 벌여야 하는 폴란드 사회당이나 핀란드 사회민주당은 세계의 관심과 지원을 호소하는 만큼, 동양인의 협조도 반가워했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일본 정보부의 지원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지. 실제 역사에서 폴란드와 핀란드 독립운동가들이 러일전쟁 때 일본 자금을 받았다거나, 1차 세계대전 때 레닌이 독일 지원을 받아 귀국하는 걸 보면 정말 거리낌이 없어.’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일본이나 독일의 스파이인 건 절대 아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은 상관없고, ‘적의 적은 아군’이란 논리에 충실하여 손을 일시적으로 잡았던 것이다.
폴란드의 유제프 피우스트스키나 블라디미르 레닌은 다른 혁명가들과 달리 손을 더럽히는 데 거리낌이 없었기에, 혁명을 성공시키고 권좌에까지 올랐다.
‘레닌, 아니 울리야노프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라. 내가 바꾼 역사의 나비효과로군. 사회민주당이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로 분열되지도 않겠어. 이들이 장차 독일 사회민주당처럼 의회제 국가를 확립할 수 있을까? 노동자의 지지를 받는 사회민주당과 농민의 지지를 받는 사회혁명당이 연립하면 러시아에 진보적인 정권이 수립될 수도 있지.’
이선이 ‘해방자’ 알렉산드르 2세 암살을 막고, 차르는 6년을 더 재위해 본래 구상대로 젬스트보(지방자치기구)를 국정자문기관으로 승격시켰다. 장차 대의제 의회 수립의 가능성이 엿보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르 2세는 결국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뒤를 이어 즉위한 알렉산드르 3세는 젬스트보를 무력화시키고, 철저한 반동정책으로 일관했다.
니콜라이 2세가 즉위하면 달라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역사가 바뀐 만큼, 차르의 관점도 달라질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느덧 즉위 10년, 니콜라이 2세는 시대착오적인 정책으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었다. 70년 전, 니콜라이 1세의 헌병통치로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려고 하니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친우 이선의 조언도 한계가 있었다. 국제 문제에 있어서는 이선의 조언을 기꺼이 수용하는 니콜라이였지만, 러시아 국내 문제는 일고의 여지도 없었다.
차르가 선제적으로 입헌군주정을 도입하고 개혁에 나선다면 혁명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겠지만, 이선은 이제 그런 기대를 접었다.
단순히 차르 1인의 책임이 아니었다. 지난 수십 년, 아니 제정 수립 후 수백 년간 누적된 문제가 마침내 폭발적으로 터지려고 하고 있었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 러시아에 혁명이 일어나긴 할 거다. 미리 대비를 해야 해.’
근래 이선의 생각은 바뀌고 있었다.
차르를 도와 혁명을 막는 게 아니라, 언젠가 도래할 혁명에 대비하는 방향으로.
1904년 9월 현재, 체제 안정성의 측면에서 볼 때, 일본은 기껏해야 폭탄 몇 개가 터지는 정도였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메이지 정부의 통치에 순응했다. 메이지 정부는 안정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일본은 휴화산이었다.
러시아 역시 대부분의 러시아인은 차르 정부의 통치에 순응했지만, 언제 활화산처럼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활화산 위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걸, 차르와 당국자들은 몰랐다.
"폐하, 영국이 동맹 조약 논의에 응하겠다는 답을 보내왔습니다. 구체적인 조건은 런던에서 함께 논의하자고 합니다."
외무대신 서광범의 보고에 각의가 술렁거렸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 그 콧대 높은 영국이 동맹에 응하겠다니.
이어서 총리 김옥균이 자리에서 일어나 설명했다.
"대한, 영국, 일본이 공동으로 상호방위조약을 맺어, 안보를 충실히 하고 동양 평화를 지켜 낼 수 있습니다."
"아주 좋습니다만, 그리되면 러시아가 반발하지 않겠습니까? 러시아를 겨냥한 조약으로 보일 터인데요."
신임 군무대신 한규설이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황제 시해 미수 사건 이후 개화당 내각은 총사퇴를 자처했지만 이선은 거절하고 유임시켰다. 다만 군무대신 윤웅렬은 몇몇 군인이 연루된 것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이선은 개화당에 속하지 않는 한규설을 군부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공격 목적이 아니라 상호방위조약입니다. 특정 국가만을 겨냥해서 맺는 조약이 아닙니다. 한국과 일본 상호 간의 안보 불안을 덜어 낼 수 있는 조약입니다. 안보 불안이 사라진다면, 러시아와 일본의 충돌도 막아 낼 수 있습니다."
"으음……."
"국제정세의 변화도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영불협상의 체결은 세계사적인 변화입니다. 일본의 동맹국인 영국, 러시아의 동맹국인 프랑스가 손을 잡은 이상, 그들 역시 동양에서 동맹국 간에 전쟁이 일어나는 걸 원치 않을 것입니다."
설명을 마친 김옥균은 황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폐하, 성단을 내리시어, 칙유(勅諭)를 내려 주시옵소서."
황제는 기꺼이 성단을 내렸다.
"동양과 세계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으니, 대한의 앞날을 위하여 외교 정책의 변화는 불가피하오. 영국 및 일본과의 방위조약은 대한의 안보와 동양 평화를 보장해 줄 것이오. 즉시 추진하도록 하시오."
"예, 폐하! 삼가 황명을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황제의 칙유에, 김옥균 이하 대신들이 일제히 예를 표했다.
사실 이미 이선은 김옥균과 논의해 결단을 내린 상황이었고, 각의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였다.
이선은 차르를 다독이는 역할을, 개화당 내각은 영국 및 일본과 조약을 맺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만약 일을 그르친다면, 김옥균은 모든 책임을 지고 총리에서 물러날 의사를 밝혔다.
대한제국 외교 정책의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 * *
9월 초, 박영효가 특사로 방일하여, 은밀히 일본에 삼국 상호방위조약을 조속히 확정하자는 제안을 보냈다.
제안을 받아든 총리 사이온지는 만감이 교차했다.
"메이지 7년(1873)의 정한론 정변 이래 어언 30년, 결국 돌고 돌아 이렇게 되는군."
"이로써 한국을 러시아에서 떨어트릴 수 있고, 일본을 향한 러시아의 전진기지가 되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하라가 사이온지에게 조약의 필요성을 새삼 상기시켰다. 그간 한국과 조약을 조율하고, 영국에 한국까지 동맹을 확대할 필요성을 설득한 것도 하라의 몫이었다.
"이미 천황 폐하의 성단이 내려졌으니, 신하된 처지로 당연히 따라야지요. 다만 춘산장 영감과 그 일당이 떠들어 댈 게 마음에 걸리는군."
테러 사건으로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회복된 외다리 이토와 외팔이 야마가타는 다시 정치에 개입하려 들었다. 이토는 자신이 지명한 후계자 사이온지를 지지했지만, 문제는 야마가타였다. 여전히 육군에는 조슈벌, 즉 야마가타의 추종자가 가득했다.
"야마가타 원수도 천황 폐하의 성단을 뒤집을 순 없습니다. 야마가타 원수와 조슈벌은 오야마 원수와 사쓰마벌이 적절히 견제해 줄 겁니다. 실질적으로 군부를 움직이는 고다마 대장도 조슈 출신이긴 하나 정부를 지지하니 걱정할 일은 없습니다."
"그래야지. 언젠가 군부 내 번벌은 해체해야겠어. 육군 요직은 조슈가, 해군 요직은 사쓰마가 독점하니 번벌 소리가 나오는 거 아니오. 특정 파벌이 군부를 독점 못 하게 해야지."
사이온지와 하라는 군부의 문민통제와 번벌 배제라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었다.
"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지면, 이제 정한론 광인들의 헛소리는 두 번 다시 안 나오겠군."
정한론은 메이지 일본의 일관적인 입장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변화에 따라 특정 파벌이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목표로 줄곧 사용되어 왔다.
1870년대에는 삿초 번벌의 권력 독점을 막기 위해 비(非)삿초 세력이 정한을 외쳤다면, 1880년대 이후에는 조슈벌이 육군 증대와 대륙 진출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한을 외쳐 왔다.
1890년대 초 오쓰 사건으로 야마가타가 실각하고 한국의 국력이 일신하면서 정한론이 잠잠해지긴 했지만, 1900년대에도 여전히 일본에는 ‘한반도 비수론’을 주장하며 정한을 정당화하는 자들이 있었다.
정계에 복귀한 야마가타와 조슈벌은 1차 만한교환론과 2차 대러개전론을 주장해 왔다.
1. 일단 러시아와 협상하여 러시아의 만주 점령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한국은 일본의 세력권으로 인정받는다.
2. 동맹 영국의 확고한 지지를 받아 한국에 친일 정권을 세우고, 한국군은 러시아를 향한 선봉으로 삼는다. 동양연대론을 외치며 청국도 끌어들여 총알받이로 내세운다.
3. 러시아가 혁명적 상황에 직면하여 혼란스러울 때, 선제공격하여 만주와 극동에서 몰아낸다.
4. 러시아를 몰아낸 후, 일본이 동양 삼국을 아우르는 맹주로 군림한다.
이런 허황된 주장이나 하니, 사이온지와 하라는 우익들이 한국 황제 시해 음모에 휘말려도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합리적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이 제안한 조건이 훨씬 합리적이었다.
1. 한국과 일본, 영국이 동아시아에서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다.
2. 적대국이 침략해 온다면, 공동으로 연합해 방어할 의무가 있다.
3. 만약 일방이 적대국을 향해 선제공격을 한다면, 나머지 조약 체결국은 우호적 중립을 지킨다. 만약 2개 이상의 열강이 적국으로 참전한다면, 중립을 지키던 조약국도 참전할 의무가 생긴다.
이로써 안보 문제가 해결되었고, 보다 중요한 건 세력권을 논의한 다음 비밀 항목이었다.
4. 한국은 일본의 남중국, 즉 복건·절강 진출과 세력권 확보를 지지한다. 일본의 아모이(샤먼)와 복주(푸저우) 조차를 인정한다.
5. 일본은 한국의 남만주, 즉 봉천·길림 진출과 세력권 확보를 지지한다. 한국의 남만주 자치령 지배를 인정한다.
6. 영국이 이를 보증한다. 한국과 일본은 영국의 중국 시장 우월권을 인정하고, 패권적 지위를 지지한다.
지난 10년 간 일본은 북수남진을 내세웠고, 대만 너머 복건과 절강으로 진출하겠다는 야심을 확고히 굳혔다.
다만 문제는 장강 이남을 자신의 세력권으로 인지하는 영국의 태도였다. 이로 인해 의화단 전쟁을 틈타 강행했던 일본의 아모이 점령은 좌절되었다.
일본은 영일동맹 체결로, 마침내 복건 진출에 대한 양해를 영국에게 받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영국의 하위 파트너라는 조건에서였다.
"다 좋은데, 영국이 일본의 절강 진출을 용인할 리가 있겠소? 절강은 남중국의 핵심에 가까운데."
사이온지의 의문에 박영효가 답했다.
"영불협상이 체결된 이상, 향후 영국은 독일 문제에 가장 신경 써야 할 겁니다. 이대로 가다간 영국은 독일과 전쟁에 휘말릴 지도 모릅니다. 그럼 중국은 부차적인 문제죠. 일본에 위임해야 할 겁니다."
"과연, 일리가 있군요."
"마찬가지로, 러시아도 한국의 봉천과 길림 진출을 용인하지 않을 겁니다. 당장은 그렇겠지만, 러시아도 만주보다 발칸 문제로 인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더 신경 쓰게 될 날이 오겠지요."
요컨대, 한국과 일본이 장차 러시아와 영국을 대리해 동북과 동남에서 중국 이권을 나눠 먹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니 일본이 한반도와 만주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남중국과 한반도 중에 어느 쪽이 더 구미가 당기냐고 묻는다면, 북수남진파는 당연히 전자였다.
일본이 복건을 넘어 풍요로운 절강의 이권을 확보할 수 있다면, 동맹국이 될 한국이 남만주를 통제해도 상관없었다.
"좋소. 동양 평화와 세력 균형을 위하여, 추진해 봅시다."
"좋습니다. 동양 평화와 세력 균형을 위하여!"
사이온지와 박영효는 뻔히 입에 발린 말을 하면서 술잔을 부딪쳤다.
영국, 런던.
주영 한국 공사 윤치호, 주영 일본 공사 하야시 타다스는 영국 외무장관 랜스다운 경과 본격적으로 동맹 조건에 대해 논의했다.
보수당-자유통일당 연립정부의 일각에서는 여전히 한국과의 동맹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 랜스다운은 한국이 합류할 필요성을 주장했다.
"한국을 러시아에서 떼어 낸다면, 러시아가 만주에서 철수하도록 더 강한 압력을 가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군은 여전히 만주에 주둔했다. 1901년 철군 조약의 3년 만기가 됐는데도 러시아군은 철군을 거부했다. 명분은 영국의 티베트 침공이었다.
9월, 영국군이 티베트에서 철군을 완료한 후에도, 러시아는 만주 철군을 거부했다.
「영국은 청나라의 주권을 무시하고, 티베트에 부당한 조약을 강요했다. 러시아가 만주를 청나라에 완전히 반환하려면, 이에 상응하는 조약이 필요하다.」
영국에서는 ‘러시아가 만주를 차지하게 내버려 둬라, 대체 그 지역이 영국의 이권과 무슨 상관이냐?’라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청나라가 성지로 여기는 만주를 되찾고자 했고, 자칭 ‘중국의 벗이자 보호자’인 영국이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독일이 모로코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도발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러시아보다는 독일을 견제하는 게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일본에 이어 한국마저 대영제국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극동에서 러시아가 모험을 벌일 가능성을 막을 수 있습니다."
독일의 위험성이 새로이 대두되자, 보수당 정부도 러시아를 주적으로 여기는 시선을 독일에 돌렸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를 풀어 둘 생각은 없었다. 러시아의 동맹인 프랑스에 압력을 행사하도록 하고, 일본과 한국을 통해 러시아의 남하를 중지시킨다는 것이, 랜스다운의 새로운 전략이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극동의 작은 친구들은, 대영제국의 따뜻하고도 우정 어린 지휘 하에 있어야 합니다. 이를 감안해서 조약을 추진하십시오."
총리 밸푸어는 조약 체결을 지지했다.
동맹의 역전은, 동아시아에도 목전으로 다가왔다.
- 52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