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372화 (371/812)

53화 동맹 후일담

한영일 상호방위조약 내용은 기존의 영일동맹에서 약간 내용을 수정한 것이었지만, 대한제국이 주장했던 바가 거의 관철되었다.

3·4·5조에 걸쳐 공격적 목적의 동맹이 아니라 상호방위조약으로, 방위전쟁에는 의무적으로 연합하지만, 선제공격 시에는 우호적 중립으로 한정되었다.

만약 러시아가 일본을 선제공격한다면 한국도 참전할 의무가 생기지만, 일본이 러시아를 선제공격할 경우에는 참전할 의무가 없었다.

비밀조약으로 묶여 절대 공개되지 않을 2조는, 영국의 동아시아 지도적 위치 하에, 일본과 한국이 각자의 세력권을 인정받게 되었다.

여기에 새로운 통상항해조약의 체결로 불평등 조약도 대체될 예정이었다.

대한제국이 세계 최강국 영국으로부터 동등한 동맹으로 인정받은 것만으로, 한국의 외교적 위상이 급등했음을 의미했다.

1904년 10월, 마침내 한국 역사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대한제국, 황성.

"마침내……."

"한영일 삼국동맹 체결!"

"드디어 해냈다!"

런던으로부터 보내온 긴급 전문을 받아 든 대한제국 정부 각료들은 감탄의 목소리를 냈다.

이선도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지난 20년 간 거듭 고민했던 안보 문제, 일본의 위협이 조약으로 묶이게 된 것이다.

‘일단 일본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데는 성공했군. 한반도와 만주 대신 남쪽으로는 얼마든지 이빨을 드러내도 좋으니, 그쪽으로 가라고.’

말하자면 일본과 한국은 영국의 보증하에, ‘북수남진’과 ‘남수북진’을 교환한 셈이었다.

일본은 북쪽의 위협을 덜어 낸 대신 남중국 방향으로, 해군력 강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영국이 바라던 대로 유사시 영국 동양함대를 대리해 동아시아 해역을 방위하는 역할을 맡게 될 터였다.

한국은 남쪽의 위협을 덜어 낸 대신 만주 방향으로, 육군력 강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영국이 바라던 대로 유사시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 제일선이 될 터였다.

"경들, 오늘만큼은 축배를 들어도 좋소. 다들 한잔합시다."

궁내부 시종들이 샴페인을 대신들의 잔에 따랐다.

"동맹 체결을 축하하며, 대한국의 자주독립과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이선의 선창에 대신들이 일제히 만세를 외쳤다.

술잔을 비운 후, 이선은 다시 주의를 집중시켰다.

"조약 체결은 기쁘지만, 무한정 기뻐할 수는 없소. 방위조약이 안전을 보장하기는 해도, 영원한 평화를 약속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오. 특히 조약에서 배제된 러시아를 잘 다독이는 게 중요하오. 러시아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있어 소중한 우방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소. 청국 또한 마찬가지이니, 영국과 일본으로부터 세력권을 보장받았다고 하여 바로 우월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오. 대한은 동맹국에 신의를 지키되, 근린에도 우호를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짐은 앞으로도 경들의 사려 깊은 조언과 도움을 바라겠소."

"지당하신 분부이십니다. 신등은 성상의 뜻을 받들어, 국가를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총리 김옥균 이하 대신들은 황제의 뜻을 받들 것을 천명했다.

10월 10일, 엠바고(embargo)가 해제되고 한영일 상호방위조약의 체결이 세계 각국에 통보되었다.

이날 아침, 경운궁 앞에 휘날리고 있던 태극기에, 유니언 잭과 일장기가 엇갈려 함께 게양되었다.

주영한국공사 존 조던과 일본특파대사 이노우에 가오루,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가 석조전에 초대되었다.

조던과 이노우에는 에드워드 7세와 메이지의 국서를 봉정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과 해외 영국 자치령의 왕, 신앙의 수호자, 인도의 황제인 에드워드 7세는 대한제국 황제 폐하께 친서를 보냅니다. 경애하는 벗이여, 대영제국과 귀국의 우의와 호혜의 관계를 촉진하는 조약이 체결되니 짐의 마음도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우리 대영제국은 귀국과 충실하게 교환될 모든 신임을 아끼지 않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빕니다!

1904년 10월 3일 버킹엄 궁전에서, 통치 제4년, 에드워드 7세.」

이선은 국서를 읽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러시아에는 이런 국서를 여러 번 받았지만, 그동안 영국에게는 형식적인 서신 외에는 그 어떤 친밀한 국서를 받은 바가 없었다.

1880년대에는 청나라의 종주권을 인정해, 다른 나라들과 달리 공사가 아니라 영사급 외교관을 보냈고, 1890년대 이후에는 공사로 격상시키긴 했어도 언제나 일본 편만 들었다.

이유인즉슨 이선이 러시아의 하수인이라고 오해를 오랫동안 했던 탓이니, 그 오해가 풀리고 대한제국의 국력이 상승한 현재에 이르러 영국은 더 이상 한국을 무시하지 않았다. 아니, 영국의 몇 안 되는 동맹국으로 인정했다. 비록 영국이 우위에 있는 동맹일지언정, 동등한 관계임을 인정한 것이었다.

‘언젠가 대한이 영국을 뛰어넘는 날이 올 것이다. ……앞으로 100년의 시간은 필요하겠지만. 애초에 양국 간에 100년의 격차가 발생했으니, 쉬지 않고 노력해도 따라잡는 데 근 100년은 필요하겠지. 나는 최대한 그 격차를 줄일 것이다.’

이선은 속내는 드러내지 않고, 우호적이고 친근한 태도로 영국 공사에게 화답했다.

"대한제국과 대영제국은 1882년에 통상조약을 체결한 이래 상호우의를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한영 양국이 특별한 우의를 맺게 되었으니, 짐은 기뻐 마지않는 바입니다. 공사는 연합왕국의 국왕이자 인도의 황제 폐하께 짐의 깊은 감사와 존경의 뜻을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선의 치하에 조던이 예를 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서 일본 특파대사 이노우에도 국서를 봉정했다.

「하늘의 도움을 받아 대대로 황위에 오른 대일본국 천황은, 위엄과 덕이 높은 좋은 벗인 대한국 대황제 폐하께 공손히 친서를 드립니다. 짐은 황조황종의 뜻을 깊이 생각하여, 이에 특별히 전권대사 후작 이노우에 가오루를 대한국에 파견하니, 대한국 대황제 폐하께 돈독한 우호를 진심으로 염원하는 조약이 체결된 것을 기뻐하며…….」

일본 황실 특유의 엄숙한 문어체로 작성된 국서는 이선에게 있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실제 역사처럼 한국 황실 수호니 국권 보호니 동양 평화니 입에 발린 말만 하다가, 강압적으로 한일의정서나 한일협약만 맺는 것보단 훨씬 좋긴 하군. 뭐, 적어도 메이지 본인은 진심이겠지.’

이선은 엄숙한 어조로 화답했다.

"대한국과 대일본국은 유사 이래 오랜 이웃이자 소중한 벗이니, 마침내 특별한 우의를 맺게 되어 짐은 기쁘게 생각합니다. 천황 폐하께 짐의 깊은 감사와 존경의 뜻을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황공하옵니다. 꼭 그리 전해 드리겠습니다."

이노우에도 이선에게 정중히 예를 표했다. 실제 역사에서 을미사변을 조종한 이노우에도, 바뀐 역사에서는 이선의 손바닥 안에 있는 정치가일 뿐이었다.

"대한, 영국, 일본 삼국 간에 조약이 체결되었으니, 마침내 동양 평화를 향한 오랜 염원이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짐은 각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환영의 뜻을 보냅니다. 동양 평화와 삼국의 영원한 우의를 위하여 건배!"

이선의 선창에 영국과 일본 대표단도 술잔을 높이 들었다.

이제 삼국은 동맹국이었다.

"세계 최강국, 영국과 동맹을 맺다니! 한국 외교의 승리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는 모두 대황제 폐하의 영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삼국 상호방위조약 체결이 알려지자, 언론과 국민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영국 언론의 치졸한 황제 비방에 분노했고, 불과 얼마 전 일본인의 황제 시해 음모 가담에 격분했던 국민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환호성을 내질렀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세계최강국 대영제국과 대등한 동맹을 맺다니. 이제 대한의 국력이 열강과 비등하게 되었음을 인정받은 게 아니겠는가!"

"암, 그렇고말고. 지난 20년 간 개혁에 몰두해왔고, 독립전쟁(청조일전쟁)과 북벌전쟁(의화단전쟁)으로 국력을 세계에 알리지 않았는가."

"영국이 청국보다 위에 있으니, 영국과 대등한 관계를 맺은 대한은 당연히 청국보다 위에 있는 거 아닌가?"

"그야 말이나마나! 이미 예전부터 그랬어. 애초에 우리 국군이 북경까지 진격하고 청국 황제를 권비로부터 구했는데."

"8개국 연합국과 함께 북경도 함께 함락시켰던 나라 아닌가! 이제 대한도 당당한 열강의 일원이다, 이거야!"

정치 성향을 막론하고, 국민들은 동맹 체결이 국력의 신장을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해 환호했다.

작년에 일본이 영일동맹 체결에 환호하여 전국이 난리가 났던, 그 이상이었다.

아직까지 약소국이란 열등감이 남아 있었던 한국인으로선, ‘열강의 최강인 영국의 대등한 인정’이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그게 현실을 가리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은 그렇다 치고, 왜놈은 어떻게 믿고 동맹을 맺나?"

"맞아, 임진년 이래 오랜 원수 아닌가."

"양놈도 못 믿는 건 마찬가지지. 영길리라 하면 청국에 아편을 풀어 전쟁을 도발한 흉악한 놈들 아닌가. 얼마 전에는, 그 어디야, 중국 서남쪽."

"서장(티베트)?"

"그래, 서장도 침략하여 불쌍한 사람들 죽이고 조약을 강요했다더니."

"흥, 우리 임금님도 아라사 밀정으로 몰아 모욕하지 않았나."

"아, 됐어! 언제 임금님께서 잘못된 일 하시는 거 봤어? 나라님이 어련히 알아서 조약을 맺으시려고. 우리 같은 아랫것들은 그냥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야."

"맞아, 뭐 동맹이라고 해서 우리 삶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이 일로 그 뭐냐, 동양 정세? 그런 게 안정 되서, 임금님이 하시는 일 방해 없이 하셨으면 좋겠네."

"땅 나눠 주는 거 말이지?"

"그래, 토지개혁. 북쪽에선 먼저 이뤄졌지. 그거나 계속됐으면 좋겠네."

"암, 그야 나라님 약속이니 이뤄지겠지. 임금님과 녹두장군이 불철주야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데."

대부분의 국민들은, 동맹 그 자체보다는 이로 인해 안정적인 평화가 이뤄져, 황제 이선과 농림대신 전봉준이 약속했던 토지개혁과 각종 사회경제적 개혁이 완수되기를 기대했다.

이들의 기대는 소박했다. 민족주의자들이 외치는 만주 정복보다는, 당장 내 눈앞의 땅과 농산물이 더 소중했다.

일본, 도쿄.

한국의 열렬한 반응과 달리, 일본에서는 무덤덤했다. 작년 영일동맹 체결 소식을 알렸던 때와 비교하면, 미미하기 짝이 없는 반응이었다.

"일영동맹에 굳이 조선이 왜 끼는 거야?"

"조선을 러시아로부터 떼어내기 위함이지."

"흠, 조선이 그동안 로탐 노릇하더니,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일본을 선택한 건가."

"늦게라도 정신 차려서 다행이지. 이제 조선, 청국과 함께 만주에서 러시아를 몰아내고 동양 평화를 이룩할 수 있네."

일본의 국력을 과대평가하는 여론과 달리, 총리와 정부는 조약 체결을 충분히 기뻐했다.

"이제 북방에서의 위협은 거의 사라졌소. 비록 가라후토(사할린) 방면에서 위협은 계속되고 있지만, 한국이 우리와 손을 잡은 이상 동양의 우위는 기울어졌소."

"이제 북방은 염려 놓고, 안정적으로 남방을 경영하면 됩니다."

일본은 그동안 추진해왔던 해주육종, 북수남진 정책을 안심하고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일한 양국 간에 우의가 영원하기를, 짐은 믿어 의심치 않소. 귀국 황제 폐하께서는 현명하시니, 짐의 뜻을 잘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짐의 감사를 전해 주시오."

"황공하옵니다. 황제 폐하께서도 천황 폐하께 깊은 감사와 존경의 뜻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방향성만 다르지 결국은 모두 제국주의자인 일본 정치인들과 달리, 보수적인 성향의 메이지는 진심으로 전쟁과 대륙 침략을 원치 않았다.

실제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메이지는 눈물을 흘리며 ‘짐은 결코 이 전쟁을 원치 않았는데,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다. 만약 차질이 생긴다면, 짐이 어떻게 조종에 사죄해야 할 것이며, 신민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겠느냐.’라고 이토에게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상호방위조약 체결로 러시아와의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아마도 일본에서 가장 기뻐할 사람은 메이지 본인이었다.

청국, 북경.

조약 체결에 관한 가장 의외의 반응은, 아마도 청국이었다.

"영국, 일본, 한국, 동양 평화를 위하여 동맹 체결!"

"삼국은 청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엄숙히 약속했다. 즉, 대청의 성지인 만주에서 러시아를 몰아내리라 약속한 것이다."

"대청 또한 조속히 동맹에 합류해야 한다! 삼국연대, 동양평화 만세!"

한영일동맹 제2조의 비밀조항은 모른 채, 대외적으로 공개된 제1조만 확인한 청국의 여론은 환호했다.

상호방위조약이 자신들을 위한 조약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조정을 주도하는 이들은 좀 더 현실적이긴 했지만, 한국과 일본에 강한 호의를 품고 있는 광서제도 크게 기뻐했다.

"러시아는 만주를, 영국은 서장을 침략하니 모두 믿을 수 없는 자들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모두 동양의 형제나 다름없으니, 어찌 형제를 저버리겠는가? 비록 짐의 뜻과 달리 10년 전에는 전쟁을 했다곤 하나, 이제 대청도 변화하고 있으니 저들도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리라."

의화단 전쟁 이후 권좌를 되찾아, 변법과 신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광서제의 모델은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한국의 광무개혁이었다.

특히 서태후의 손아귀에서 자신을 구해준 한국과 이선에게는 특별한 우의를 품고 있어, 그가 러시아와 결별하고 일본과 동맹을 맺었다는 소식에 더욱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광서제는 한국과 일본이, 러시아를 압박해 만주에서 철군시키고 청국에 되돌려 주리라 믿었다.

진정으로 소박한 믿음과 기대였다.

- 5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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