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근대 문명국가
현재 집권 개화당 지도부를 개화 2세대로 분류하고, 장차 개화 3세대가 국가를 이끌게 되리라는 이완용의 분석은 일견 타당했다.
이선 본인도 김옥균에게, 1895년 다음과 같은 구상을 밝힌 바 있었다.
‘개화 3기(1904~1914)에는 수성의 시대로 삼아 현명한 후속 세대를 양성하고, 4기(1914~1924)에는 후속 세대를 적극적으로 발탁하여, 장차 이들에게 국가를 맡긴다.’
하지만 ‘최초로 서양 유학을 떠난 후 전문가가 된 실무 관료들’, 즉 서재필·윤치호·이채연·이완용 등이 떠오르리라는 이완용의 계산과 달리, 이선이 염두에 두는 후속 세대는 달랐다.
개항 무렵에 태어나, 10세 무렵에 갑신경장으로 세상이 바뀌는 걸 체험하고, 국민교육과 국민개병을 실시한 1세대, 20세 무렵에 독립전쟁을 경험한 세대.
이전 세대와는 소년기부터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한 세대. 바로 1870년대생들이었다.
‘1870년대생이 사회에 진출할 1890년대 후반에 제한적인 헌정을 실시하고, 이들이 사회적 주류로 떠오르는 시기, 1910년대 후반에 보통선거권을 부여하고 1920년대에는 진정한 국민국가를 완성한다.’
1870년대생은 국민교육과 국민개병을 처음 체험한 이들로서, 말하자면 ‘국민 1세대’였다.
이들은 전통적인 유교적 관념을 벗어나 어릴 적부터 근대 문물을 섭취했고, 청년기에 진입했을 때 독립전쟁을 체험하며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열렬히 받아들였다.
이전 세대처럼 서양과 근대에 대한 막연한 공포도 덜했고, 새로운 질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1870년대생이 소년기에 근대의 문턱을 경험한, ‘조선인’과 ‘한국인’의 경계에 있는 과도기적 세대라면, 아예 태어날 무렵부터 혁명적 변화가 촉진되어 바뀐 세상에서 살아간 1880년대생은 더욱 진보적이고 혁신적이었다.
전국적으로 확대된 국민교육과 국민개병으로, 근대화의 정당성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고, 10대 무렵에 독립전쟁과 협회 운동, 헌법 제정과 의회 개설을 체험한 이들은 부모 세대와는 완전히 달랐다.
민족적 일체감과 강한 동질성, 평등 의식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은 새로운 ‘한국인’이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후일을 맡길 새로운 세대는 조선인의 잔재를 벗어난 한국인이어야 해.’
개화 이후 새로이 등장한 엘리트는 서울과 주요 도시들의 양반 계층 자제들이 많았고, 전통적 유교와 신분제의 관념도 적잖이 남아 있었다.
20세기 초,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신진 엘리트들은 지역과 신분을 초월하여 등장했다.
바로 이들이 미래의 주역이었다.
* * *
영국, 런던.
제국익문사 유럽 특파원 조한민은 한영일동맹 체결을 취재하기 위해 런던으로 왔다.
1900년부터 3년간 유학 생활을 보낸 런던에 대한 조한민의 감정은 애증이라 할 수 있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수도답게 화려하게 번영하는 런던.
세계의 부와 힘, 지식이 한자리에 모이는 런던.
처음 서양에 오게 된 동양 청년의 감탄은 멈추지를 못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부와 힘을 전혀 누리지 못한 채 어둠 속의 런던을 살아가는 빈민가의 노동자들.
대영제국의 빛을 쫓아 세계 각지에서 왔으나, 계몽과 멸시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유색인종’들.
이들은 제국의 영광에서 지워진 존재였다.
조한민이 런던에 도착했을 때는 하필 의화단 전쟁이 발발했을 무렵이었고, 중국과 동양에 대한 온갖 선정적이고 혐오스러운 보도가 나올 때였다.
"코리아? 뭐, 그런 나라도 있나? 그래 봐야 칭챙총 복서 무리랑 다를 바가 뭐지?"
"너희 황인종들이 감히 백인을 박해하고 있으니, 그 대가를 치러야겠다!"
자신은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고, 오히려 서양과 연합하고 있는 9개국의 일원이라는 주장은 무지한 자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양복을 입고, 양식을 먹으며, 양옥에 살면서, 서양학문을 익히고 영어를 구사해도, 결국에는 사람 흉내 내는 원숭이 취급을 받았다. 서양을 배우기 위해 온 유학생인 자신이 이런 대우를 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돌이켜 보면, 그래도 좋은 기억이 더 많았지.’
인종과 출신에 상관없이, 편견을 가지지 않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중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은 대개 기독교 박애주의자들, 혹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었다. 둘 다인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인간의 태생적 평등함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변혁을 꿈꾸는 젊은 유학생이 사회민주주의에 이끌리게 된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인종과 계급을 넘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모든 국가도 평등하다. 진정한 근대 문명국가의 완성은 자유와 평등을 모두 쟁취하는 것이다.’
사람 간의 관계도 평등해야 했고, 국가 간의 관계도 평등해야 했다.
바야흐로 20세기 초, 세계는 바뀌어야 했다.
"허, 참. 살다가도 이런 날이 다 오는군."
웨스트민스터 외무부 관저 앞에 유니언 잭과 일장기, 태극기가 동시에 휘날리고 있는 걸 보고, 조한민은 기묘한 기분을 받았다.
"저 빨간 원이 일본 국기라는 건 알겠는데, 그 옆의 이상한 깃발은 뭐야? 그리기도 힘들겠네."
"한국 국기라는군. 이번에 동맹을 맺은 아시아 국가일세.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나라지."
"대영제국이 일본 따위와 동맹을 맺은 것도 우스운데, 이제는 별 듣도 보도 못한 나라와도 동맹을 맺는군."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 데 필요하다고 하지 않나. 저들은 비록 유색인종이지만 똑똑한 민족일세. 터키나 아랍인들보단 차라리 황인종이 나을걸."
행인의 말을 듣던 조한민은 보이지 않게 웃었다.
일반적인 영국인의 인식은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영국 정부는 대한제국을 ‘동등한’ 동맹으로 삼았다.
웨스트민스터에 휘날리는 태극기는, 한국의 위상이 극적으로 변화했음을 의미했다.
"안녕하십니까."
"여어, 조 기자. 오늘은 공사관에서 축연이 있다니 함께 합시다. 친왕 전하께서도 친림하신다는군."
"하하, 영광이군요."
주영 공사관 참서관 이승만이 조한민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동안 조한민은 국영 통신사 특파원 신분으로 공사관 직원들과 친분을 맺었지만, 동시에 익문사 요원으로 은밀히 성향을 감찰하는 역할도 맡았다.
‘이승만, 유학생 출신 중에서도 가장 친미·친영 성향. 정말로 영국과 동맹을 맺게 되었으니 2천만 한국인 중에서 제일 좋아할 위인일세.’
인터뷰에도 꼭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는 윤치호 공사나 이한응 참서관과 달리, 이승만은 조한민에게 꽤나 친밀감을 보였다.
조한민의 외모가 말끔한 미남상이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호감을 주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승만은 그가 영국 유학파라는 점을 높이 평가한 듯했다.
"물론 윤치호 공사의 이름으로 서명했지만, 황명을 받들어 제일 먼저 동맹의 필요성을 영국인들에게 설파한 건, 바로 나 우남 이승만이오. 국영 통신사에서 그렇게 보도할 수는 없겠지만, 조 기자만이라도 알아 줬으면 합니다."
"이야,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군요. 기억해 두지요."
"20세기는 앵글로색슨 문명, 영국에 이어 미국의 세기가 될 거요. 문명국가의 반열에 올라선 대한이 나아갈 길은 영미와 친해지는 것뿐. 성상께서는 정확히 보고 계시니, 대한은 앞으로 탄탄대로요."
조한민의 생각처럼, 이승만은 영국과의 동맹을 2천만 한국인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친왕 전하 납시오!"
외침에 공사관 직원들이 일제히 기립했다.
"이야, 공사 이하 여러분, 노고가 많았소. 영국과 동맹이 체결되어 황제 폐하와 대한국민의 기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소. 자자, 그렇게들 긴장하지 말고, 다들 편하게 쉬시오."
의친왕 이강이 외교관들을 치하했다. 한동안 미국에 체류하던 이강은, 동맹 체결을 즈음하여 이선의 명을 받아 다시 영국행 배를 탔다. 이강이 작년까지 영국에 체류하며 왕실 외교를 해 왔던 만큼, 특사로 이보다 더 적절한 고위급 인사는 없었다.
"선배님, 간만에 뵙습니다.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오, 우사 아닌가. 자네도 왔군. 주미 공사관의 일은?
김규식은 이승만의 관립영어학교 후배이자, 미국 유학을 함께했다. 전공도 정치학으로 같았다.
"친왕 전하를 수행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렇군. 그간 우리가 학문으로 배운 걸, 현실에 옮길 수 있어서 기쁠 따름이야. 나는 영국과의 동맹이라는 역사의 현장에 함께할 수 있었으니, 자네보다 한발 더 앞서 나갔군."
김규식은 이승만보다 6살 어리지만, 오히려 어학적 재능이나 학문적 능력이 더 좋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승만은 그런 평가가 영 신경 쓰였고, 정치적 능력은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저야 선배님과 비교하면 한참 배울 게 더 많지요."
"아니, 그런 의미로 말한 건 아니고. 아, 여기는 제국익문사 특파원 조한민 기자. 서로 인사하시게."
김규식과 조한민은 정중히 인사를 나눴다.
"반갑습니다. 제국익문사 유럽 특파원 조한민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주미공사관 참서관 김규식입니다."
공사관 축연은, 그날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문자 그대로 축제 분위기였다. 세계 최강국, 영국과 동맹을 맺었다는 기쁨을 모두가 공유했다. 외교관인 이들에게 이만한 성과가 없었다.
그레이트 게임의 플레이어로 인정했다는 의미는, 한국이 1등석 객차의 마지막 자리에 앉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백인과 ‘명예 백인’ 외에는 앉을 수 없는 1등석 객차에.
대한제국, 황성.
황해도 해주에서 온 사내는 해군 관사를 찾았다. 곧이어 청년 장교가 반가운 얼굴로 나타났다.
"아니, 형님. 여기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오랜만일세. 황성에 갈 일이 있다고 하니까, 춘부장께서 전해주라 하실 게 있다고 하셔서."
"아니, 아버님께서도 참. 형님을 전령으로 부리다니. 아직도 군대 시절이라 생각하시는 겐가."
"한 번 상관은 영원한 상관이지, 하하."
두 사람은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고향이 같았다.
예비역 육군 부교 김창수는 해군 정위 안중근의 부친, 예비역 육군 정령 안태훈의 지휘를 받아 함께 청군과 싸운 전우였다. 김창수는 10년 전 독립전쟁 당시 대대장 안태훈의 전령이었다.
그 인연으로, 전역 이후에도 김창수는 안태훈과 친하게 지냈고, 세 살 어린 안중근과 친구가 되었다.
퇴근 시간이 된 안중근은 김창수와 함께 황성 시내를 걸었다.
"정위 진급 축하하네. 북경 공사관 전투의 영웅답게 진급도 빠르군."
"별말씀을요, 감사합니다. 형님은 학교 운영이 잘되 가십니까?"
"음, 그럭저럭. 요새는 애들 공부시키는 재미로 산다네."
"그러기엔 형님 나이가 너무 젊은 거 아닙니까? 아직 서른도 안 되셨는데."
"내년이면 서른일세. 그리고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후학을 양성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없지. 하물며 대한의 근간은 농촌에 있네."
김창수는 전역 후에 농업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는 단순한 교사가 아니라, 황해도 일대에서 농촌계몽운동을 이끄는 일원이기도 했다.
"모처럼 황성에 오니까, 분위기가 아주 좋군. 마치 10년 전 독립전쟁 승전이나 5년 전 헌법반포 때가 떠오르는데. 영국과 동맹을 맺어서 그런 건가?"
"그렇지요. 주민들 전부 좋아합니다. 발표 당일에는 거의 축제 분위기였어요. 특히 해군은 열광적으로 환영하죠. 영국 유학파가 많고, 뭐니 해도 해군이라면 영국이니까."
"근데 자네도 해군의 일원인데, 그 열광적 기쁨을 함께하지 않는 것 같군?"
김창수가 안중근의 속내를 읽었다. 안중근은 쓴웃음을 지었다.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요. 영국은 세계 최강국이고, 대한이 동맹을 맺었는데 어찌 안 기쁘겠습니까. 다만, 저는 서양 연합군의 북경 약탈을 경험하면서, 저들이 부르짖는 자유와 합리에 대한 기대를 접었습니다. 저들은 절대로 동양인을 동등한 대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필요하면 이용할 뿐이지요. 러시아 불곰을 몰아낼 사냥개로 고용한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 자네 분석이 맞겠지. 하지만 대한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혐오스러운 적과도 손을 잡아야 되는 게 아니겠나? 성상의 어심도 진정으로 영국을 좋아하시는 건 아닐 게야."
"형님 말씀이 옳습니다. 군인 입장에서야, 나라에서 명한 바 따를 뿐이지요. 특히 해군은 좋은 소식입니다. 영국에서 군함도 도입한다 하니, 전함 도입이라는 해군의 숙원이 달성될지도 모릅니다. 해군력이 막강한 일본과도 동맹의 일원이 되었으니, 한시름 덜었고. 최선의 한 수입니다."
안중근의 분석에 김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역시 국가의 공복다워. 훌륭한 자세일세."
"형님도 나라를 위해 일하지 않으십니까."
"그래, 뭐, 나라를 위해 기여하고 싶은 마음은 늘 있다네. 근래는 서북 일대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는 농촌계몽운동과 협동조합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네."
몇 년 전, 안창호와 계몽운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된 협동조합운동은, 평안도를 넘어 전국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정부는 자발적인 협동조합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아, 그 미국 유학파 안창호 씨가 이끈다는?"
"그래, 자네도 아는군."
"저야 계속 군대에 있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건 잘 모릅니다만, 안창호 씨야 워낙 유명하니까요."
"음, 도산은 정말 타고난 웅변가이자 지도자일세. 그 양반 연설에 감화되어서 운동에 뛰어드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하하."
김창수는 안창호가 연설 중에 보이는 힘찬 몸짓을 따라하며 걷다가 누군가와 부딪혔다.
그 바람에 상대방 청년이 들고 있던 보자기에서 책이 흘러나왔다.
"아, 이런 실례.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김창수는 미안해하며 떨어진 책을 주웠다. 안중근과 청년도 함께 책을 정리했다.
≪대한 청년에게 고함≫. 김창수는 자신이 주은 책의 제목을 읽고 반가워했다.
"아니, 이건 안창호 선생의 책이 아닌가. 학생도 도산의 책을 읽나보군요."
약관의 청년은 대학생을 의미하는 학생모와 제복을 입고 있었다. 체격도 좋고 인물도 준수해서, 딱 봐도 창창한 미래를 지닌 청년처럼 보였다.
"그렇습니다. 아까 잠깐 이야기를 들으니, 선생님도 도산 선생님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던데요."
"안 그래도 도산 흉내 내다가 이렇게 된 거 아니겠소. 도산에 대해 아시오?"
"그럼요. 저는 그 분 연설을 듣고, 장차 혁신운동에 뛰어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김창수는 반가워하며 청년의 손을 잡았다.
"내가 바로 도산과 함께 일하고 있다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합시다. 나는 황해도 해주 사람 김창수라 하오. 여기 이 친구는 해군 정위 안중근이라 하고."
김창수의 열렬한 반응에도, 청년은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반갑게 악수를 했다.
"경기도 양평 사람 여운형이라고 합니다. 황성대학교 예과 1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이때만 해도 아무도 몰랐지만, 장차 한국의 변화를 이끌어나갈 청년 세대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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