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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혁명의 시대-383화 (382/812)

64화 제국의 사생활

광무 9년(1905) 2월 4일 토요일.

이날은 음력으로 정월 초하루로, 을사년 원단(元旦)이었다.

공식적으로 태양력을 써도 여전히 민간에서는 태음력을 따랐으니, 황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가적인 신년 행사는 양력 1월 1일에 해도, 황실의 신년 하례는 음력 원단에 했다.

설날 아침, 황제 이선은 황후 아영과 자녀들을 대동하고 종묘에 배례(拜禮)를 올리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다음으로는 태상황과 황태후가 계신 창덕궁을 찾았다.

창경궁에 거주하는 순친왕 이척, 창덕궁 성정각(誠正閣)에 거주하는 영친왕 이영도 함께 태상황이 거처하는 희정당(熙政堂)에 도열했다.

희정당은 외관은 전통적인 조선식이나, 내부는 고쳐서 서양식 궁전처럼 만들었다. 조선과 서양, 전통과 근대의 조화에 태상황은 매우 흡족해하며 희정당에 주로 머물렀다.

"태상황 폐하. 을사년 원단을 맞이하여, 소자 선이 삼가 문안을 여쭙니다. 만수무강하시옵소서."

이선은 부친에게 절을 올렸다. 비록 16살 차이에 불과하고, 이선이 황제라 할지라도,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대한제국에서 이선의 절을 받을 수 있는 건 오직 태상황뿐이었다.

"고맙소. 황상의 배려 덕에 무탈하오. 황상께서도 옥체 보중하시길 바라오."

선위 후에 한동안 서먹했던 부자 관계였지만, 근래에는 많이 가까워졌다. 아무래도 손자 손녀의 역할이 컸다. 이선이 바쁜 국무로 인해 자주 창덕궁을 찾지 못하는 만큼, 황후가 황자와 황녀를 대동하고 매일같이 창덕궁을 방문했다. 태상황과 황태후는 예전에 대원군이 완화군을 총애했던 것처럼, 손자 손녀들을 예뻐했다.

태상황도 보령 50대를 넘기면서 거의 해탈한 듯 세상을 달관했고, 여러 취미 생활을 경험하며 은퇴 후의 인생을 즐겼다. 근래 태상황의 취미는 자동차 탑승이었고, 이선은 최고급 미제 캐딜락을 선물했다. 태상황은 크게 기뻐했다.

"황상, 내 가급적 국가의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려 하오마는, 꼭 물어볼 게 있소."

태상황의 말대로 드문 일이었다.

"하문하시옵소서."

"역적들에게 사형이 아니라 종신형이라니, 말이 되지 않소! 황상의 관대함은 내 잘 알고 있으나, 어찌 감히 시역(弑逆)을 꾀한 역적들을 살려 준단 말이오?"

대역 재판은 해가 바뀐 광무 9년까지 지속됐다. 특별법원 1심에서 주모자로 기소된 우범진 등 5인이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2심에서는 종신형으로 감형됐다. 감형 사유는 ‘역적들의 죄는 고금에 없을 정도로 흉악하나, 죄를 자복하고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통렬히 비판하고 반성하여, 황제 폐하께서 특별히 감형을 명하시어 종신형으로 판결하니, 종신토록 강제노역으로 죄를 갚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 말처럼, 재판 과정은 피의자들이 철저하게 자아비판과 반성으로 일관된, 일종의 전시재판이었다. ‘가장 흉악한 역적들조차 대한의 품으로 돌아왔고, 황제는 관용과 자비를 베풀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태상황 폐하, 관용과 자비는 강자의 여유입니다. 굳이 국사범을 죽여 순교자로 만들 이유가 없지요. 종신형이면 족합니다."

"역적은 삼족을 멸해도 시원치 않은데, 아무리 그래도 역적을 살려 준단 말이오!"

"대한은 이제 삼권분립의 근대국가입니다. 소자는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합니다. 아직 3심 판결이 있으니 좀 더 지켜보시지요."

말은 그렇게 해도, 기소와 재판 과정 전체가 이선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였다. ’대한국은 대역죄에게도 형법과 삼권분립이 존중되는 근대국가’라는 프로파간다 대로였다.

"황상,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황상께서 국무에 매진하는 바는 국가의 복이나, 옥체의 강녕하심이 우선입니다. 옥체를 보중하셔야 합니다."

이선이 더는 이 주제를 원치 않는 걸 파악한 황태후 김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선은 웃으면서 답했다.

"근래 중한 일이 많아 잠을 잘 들지 못했을 뿐, 소자는 건강합니다."

"저런, 침수(寢睡)에 들지 못하신다면 아니 될 일이지요. 곤전(坤殿)께서 신경을 쓰셔야겠습니다."

"송구하옵니다. 신첩이 부덕하여……."

황후가 송구스러워하자, 이번에는 이선이 화제를 전환했다.

"소자는 정말로 괜찮습니다. 그래, 영친왕은 영국 유학 준비가 잘 되어 가고 있는가? 여름에 떠날 예정이지?"

"그러하옵니다. 폐하의 배려 덕입니다."

영친왕 이영의 나이 열아홉, 이제 완연히 장성한 청년이었다.

황태후는 유일한 아들이 혼례도 올리지 않고 멀리 떠나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영국 유학은 정해진 일이었다. 의친왕 이강도 10대 때 미국 유학을 떠났고, 다음 차례는 이영이었다. 이영 본인도 유학에 대한 기대가 컸다.

"영친왕이 총명하니 황실의 홍복입니다. 동맹국인 영국에서도 크게 반길 것입니다."

"소제는 어리고 부족한 점이 많사오니, 황형(皇兄)의 빛나는 명성에 누라도 끼칠까 걱정이 됩니다."

어머니로부터 단단히 교육을 받은 만큼, 이영은 처신을 조심히 했다. 그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건 서양 학문과 예술로,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여 다양한 지식을 흡수했다.

이강이 다른 의미로 처신을 잘한다면, 이영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독서의 세계에 침잠(沈潛)하는 걸로 조용히 처신했다.

이선은 19살이나 어린 동생의 총명함을 아꼈고, 그가 부담을 갖지 않고 살기를 바랐다.

"그 무슨 말인가? 네가 영국에서 많은 걸 배우고 돌아온다면, 중히 쓰고자 한다. 의친왕도 겉으로는 유희나 즐기는 한량처럼 보이지만, 외국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일이 많다. 너 또한 국가를 위해 재능을 발휘하길 바란다."

"황공하옵니다. 신은 열심히 공부하여 지극한 황은에 보답하겠습니다."

이영은 이강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태상황과 황태후는 기쁜 얼굴로 형제의 우의를 지켜보았다.

오후에는 완화궁을 방문했다. 이선의 생모인 황귀비 이씨는 여전히 완화궁에 거주하고 있었다.

재작년에 환갑을 맞이하여, 이선은 모친을 정1품 황귀비로 올렸다. 태후 다음가는 위치였다.

"어머님, 을사년 원단을 맞이하여, 소자 선이 삼가 문안을 여쭙니다. 만수무강하시옵소서."

"고맙소. 이 어미는 황상 덕에 늘 건강하다오."

어느덧 예순셋, 황귀비 이씨는 노년에 접어들었다. 태상황이 소년 시절 반했던 아름다움은 흔적처럼 남아 있었다.

이선은 한동안 모친과 환담을 나눈 후, 저녁이 되어야 경운궁으로 돌아왔다.

"하루종일 따라다니느라 너희가 고생이 많았겠구나."

"아니옵니다, 아바마마! 조상님들께 배례하고, 할아버님과 할머님을 뵐 수 있어서 좋았사옵니다."

어느덧 아홉 살이 된 맏이 진이 의젓한 태도로 답했다. 관례대로 열 살 무렵에는 태자로 책봉될 예정이라, 이진은 슬슬 제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저도 아바마마와 하루를 같이 보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일곱 살 희(喜)도 이름처럼 기뻐했다. 본래 왕실에서는 공주로 정식 책봉하기 전까지 왕녀에게는 이름을 짓지 않고 ‘아가’, ‘아기씨’라고 부르다가, 책봉되면 명호(名號)로 불렀다.

이선은 관례를 개의치 않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기쁠 희라는 이름처럼, 사소한 일에도 잘 기뻐하는 아이였다.

"우리 공주님, 아비가 시간을 많이 보내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희야, 너는 아바마마께서 국무로 바쁘심을 모르니? 아바마마께서는 우리만의 어버이가 아니라, 만백성의 어버이시라고."

진이 수업에서 배운 말을 써먹으며 동생을 훈계하자, 희는 눈을 흘기며 토라졌다.

"오라버니, 나도 알아!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이선은 희를 위해 경운궁에 유치원을 만들었다. 역시 전례가 없는 일이나 개의치 않았다. 황족과 고관의 동년배 딸들이 어학우(御學友)가 됐다. 희는 친구들이 많이 생겨 특히 기뻐했다.

"하하, 그야 그렇다만, 나는 무엇보다 너희들의 아비임에 틀림없다. 설날만큼은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내자꾸나."

"예, 아바마마!"

밤이 깊어 아이들이 잠이 든 후에야, 이선의 설날이 끝이 났다.

"어른들 찾아뵙고 애들 놀아주는 게 새삼 보통 일이 아니군. 늘 노고가 많소, 황후."

"어인 말씀이십니까. 황상께서 국무로 잠시도 쉬지 못하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만분지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 말할 것 없소. 각자 맡은 역할이라는 게 있지요."

이선은 웃으면서 황후를 격려했다.

"혹여 나라에 큰일이라도 있는지요? 근래 어심이 불편하신 듯하여……."

"아, 늘 이웃나라들이 문제지. 황후가 걱정할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 마음 놓으시오."

이선은 피의 일요일 이후 러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일본의 동향을 확인하는 일, 유사시에 대비하는 일로 근 1주일간 정신없이 바빴다. 그나마 설날이라고 이틀 정도 쉬기로 한 것이었다.

"아무튼, 오늘은 이만 쉽시다. 새해 첫날이라도 숙면하고 싶군."

"예, 침수를 들 준비를 하겠습니다."

이선의 소박한 설날 소망과 달리, 그날 밤도 러시아에서 날아온 급전으로 인해 잠들지 못했다. 시차로 인해 부득이하게 발생하는 일이었다.

급진주의자들이 주도하는 테러가 격화됨에 따라, 페테르부르크 경찰청장이 백주에 대로에서 총격을 받고 살해당했다. 결국 1월 22일(그레고리력 2월 4일)을 기해 페테르부르크와 인근에도 계엄령이 선포되고, 군대가 동원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여전히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다음날, 2월 5일 일요일.

이선은 경운궁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일본의 동태도 심상치 않아, 회의는 그날 오후 늦게야 끝났다.

일요일 저녁이 돼서야, 이선은 자유의 몸이 되어 숭례문으로 향했다.

숭례문 인근에는 제중원이 건립한 세브란스 병원이 신축되었다.

황성대학교에 의과대학이 설립되고 국립 황성 의료원이 설립됨에 따라, 그동안 그 역할을 대신해 왔던 제중원과 제중원 의학교는 사립으로 전환했다.

운영권은 미국 북장로교선교회가 맡기로 했고, 언더우드 목사와 애비슨 박사는 미국의 독지가 세브란스(Severance)로부터 후원을 받아 염원이던 현대적 병원을 건립했다. 병원에는 후원자의 이름을 붙여 세브란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세브란스 병원의 건립 이후, 한동안 평양 흥경궁 의원으로 근무하던 마르가리타 얀코프스카도 세브란스 병원 부인과 전임의를 맡게 되어 황성으로 돌아왔다.

이선은 마르가리타에게 정동 인근의 양옥을 하사했다. 그녀의 집은 사람들 사이에서 파란양저(波蘭孃邸)라고 불렸다. 폴란드의 음역인 파란과, 양옥의 파란색 지붕이 공교롭게도 발음이 같아 불리는 이름이었다.

이선이 호위대장 장무영만 거느리고 ‘파란양저’를 방문했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파란양저에는 이선만 출입 가능한 통로가 있었다.

"나 왔소."

"오셨습니까."

마르가리타는 이선을 맞이했다.

처음 만난 지 20년이 지나, 두 사람 모두 나이가 들었지만 특별한 감정은 여전했다.

"가능하면 매주 일요일마다 오고 싶은데, 일이 바빠서 그러질 못하는구려."

"괜찮습니다. 공무다망하시니 이해합니다."

마르가리타의 한국어 실력은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이었다. 만 36세, 예전에 비하면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그녀는 아름답고 기품 있었다.

이선이 살피니 마르가리타의 하얀 얼굴에는 수심이 어려 있었다. 이선은 그 이유를 짐작했다.

"걱정이 많나 보구려."

"어찌 걱정이 안 되겠습니까? 아, 불쌍한 내 조국 폴란드! 언제 자유를 찾을 수 있을지!"

바르샤바 피의 일요일 사건이 전해진 후, 마르가리타는 분노와 비애로 손에 일이 잡히지 않을 지경이었다.

"폴란드 민족의 가열찬 투쟁이 계속되고 있으니, 결국 자유를 되찾게 될 겁니다."

이선은 실제 역사에서 1918년에 폴란드가 독립되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역사가 바뀌었기에 어찌 될지 모르지만, 현재의 러시아가 하는 짓을 보면 결국 폴란드 독립은 이뤄질 것 같았다.

"그리되리라 믿지만, 지금은 요원하지요. 저 악마 같은 차르와 러시아 군대의 총칼 때문에."

"니콜라이가 당신 생각처럼 악마는 아니오. 개인적으로는 선량하고 온화한 신사지."

"그 선량하고 온화한 신사가 비무장한 시민에게 발포 명령을 내려 수백 명을 살해했습니다. 여자와 아이들까지 있는 평화적인 시위대에!"

마르가리타의 파란 눈은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이선은 한숨을 쉬었다.

"개인의 성격이 군주의 성격과는 다르니까. 군주로서는 어리석기 짝이 없소. 니콜라이가 군주로서 실격이나 다름없는 행위를 저질렀다는 건 인정하오. 결국 그 자신이, 아니 러시아 제국이 책임져야 할 거요."

이선도 니콜라이 2세를 옹호할 생각은 없었다. 이선 자신도 니콜라이에게 큰 실망을 한 터였다.

"저는 폐하와 함께 한국에 온 지가 어느덧 9년이 지났군요. 폴란드를 잊으려고 노력해 봤습니다. 다 잊고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 보려고 했지요. 폐하께서 새로운 삶을 인도한 덕분으로, 한동안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마르가리타……."

"하지만 이제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조국을 그 무엇보다 사랑한다는 걸."

이선은 마르가리타의 그런 점을 언제나 높이 평가하고, 좋아했다.

"폐하께서 허락하신다면, 저는 이만 폴란드로 돌아갈까 합니다. 동포들의 투쟁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이선은 마르가리타의 손을 강하게 붙잡았다.

"마르가리타, 그게 무슨 소리요! 투쟁이라니, 현재 폴란드가 얼마나 위험한데! 당신이 이 나라에서 살아 온 삶은, 당신이 만들어 낸 것들은 어찌하고?"

이선은 마르가리타를 험지로 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실로 죽음을 각오하는 길이었다.

국가를 제대로 이끌어야 한다는 강한 압박감과 정신적 피로에 시달리는 이선에게, 그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어 주는 건 아이들과 마르가리타였다.

만약 마르가리타가 사라져 버린다면, 이선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폐하, 저는……."

"그래요, 다른 건 다 필요 없다고 쳐. 최소한 당신 아이만큼은 생각해야지. 엄마가 되어서, 아이를 저버릴 생각이오? 당신이 무엇보다 사랑하는 존재는 조국일지 몰라도, 당신 아이에게는 당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없어!"

이선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어조로 외치며 마르가리타의 가녀린 어깨를 잡았다.

마르가리타는 이선의 눈을 피해 시선을 떨구었다.

"나, 나는……."

- 6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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