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여인의 사랑
황제와 ‘파란양’의 관계는 황성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단지 이로 인해 황실의 존엄을 해치기에는, 국민이 황제에게 보내는 충성과 존경이 압도적이었으므로 감히 입 밖으로 드러내는 이는 거의 없었다.
"알고 있나? 정동 파란양저가 사실……."
"쉿, 조용히 해. 감히 황실의 일을 논했다간 불경일세."
"아니, 나는 감히 황실을 논하려는 게 아니야. 서양 여인이라니, 이건 중국 황제나 일본 왕도 이루지 못한 일이 아닌가."
"어허, 지금 우리가 이렇게 새로운 세상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도 다 지극한 황은 덕일세. 김씨, 알았으면 입 다물고 밥이나 계속 먹어."
언로의 제약이 없는 재한 서양인들은 비교적 자유롭긴 했다. 대놓고 떠들진 않아도, 흥미진진한 대화 소재였다.
"황제가 대단하긴 해. 서양인 애인이라니."
"뭐, 동양에서 이 정도면 소박하지. 시암(태국) 왕은 부인이 수십이오, 중국 황제는 후궁이 수백이라던가. 미카도(천황)라고 다르진 않을 걸."
"하긴, 후궁보단 애인이라니. 오히려 서양 군주랑 더 비슷하군."
사실 서양 왕실이라고 해도 기독교 교리상 대놓고 축첩을 못해서 그렇지, 왕의 정부(情婦)라면 예전부터 흔한 일이었다.
20세기 초 현재의 서양 군주들을 둘러봐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에드워드 7세는 공개적으로 정부를 데리고 다녔고, 당연히 왕비와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독일의 빌헬름 2세는 알려진 정부는 없었으나, 젊은 시절에 피학성애에 양성애 의혹까지 있어서 비스마르크가 소문을 잠재우느라 골치를 썩인 적이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애처가로 유명했지만, 정작 합스부르크 황실에 질린 황후 엘리자베트가 유명 배우를 황제의 애인으로 권하고 황실을 떠나 버렸다. 황제는 황후의 사후에도 재혼하지 않고 애인과의 관계로 만족했다.
기타 유럽 군주들도 대동소이했다. 결혼 후에 정부를 두지 않고 황후만 바라보는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였다. 다만 전제군주로서 황위를 이을 건강한 후계자를 얻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두고 멀리 떠나겠단 말이오?"
이선의 말에 마르가리타가 한숨을 쉬었다.
"조국이 외세에 짓밟히는데도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내 처지가 한심해서 그랬어요."
"안타까운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시기가 안 좋소. 아직 러시아 제국은 강대하고, 민중운동만으로 독립을 쟁취하기 어렵소."
"시기를 고려하면 아무것도 못해요. 그럼 폐하는 왜 이 나라로 돌아왔나요? 페테르부르크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으면서도."
"그때야말로 아주 적절한 시기였지! 외세가 개입하기 직전이었으니까. 내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조선은 청나라와 일본군의 각축장이 되고 말았을 거요."
서로 목소리가 높아지는 바람에, 잠들었던 아이가 깨어났다. 아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반가워했다.
"아빠, 아빠!"
"오, 우리 아들. 일어났구나. 늦어서 미안하다."
조금씩 말문이 트기 시작한 이안이 아비의 품에 안겨 재롱을 떨었다.
이선은 한동안 아이와 놀아 주며 시간을 보냈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이안은 곧 다시 잠에 들었다. 한창 잠이 많을 시기였다.
이선이 아이를 놀아 주며 잠을 재우는 사이, 마르가리타는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식사 아직 안 하셨죠?"
"아, 그럴 여유가 없어서. 점심도 간식으로 해결했소."
궁중 식단은 워낙 많고 번거로운지라, 실용을 중시하는 이선은 서양 식단을 도입해서 점심은 샌드위치와 커피 정도로 해결했다. 아침식사도 간단히 해결하는 편이라, 제대로 식사하는 건 저녁 정도였다.
이선의 입맛에 맞는 양식 스테이크에 와인이 곁들어졌다. 아마도 현재 대한제국에서 가장 양식에 익숙한 사람은 이선일 터였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군."
일요일 밤이 되어서야, 한 주 만에 처음으로 이선은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많이 바쁘셨나 봐요. 늘 그렇지만."
"이번 주는 특히 힘들었소. 러시아가 계속 사고를 치고 다니니까. 일본의 동태도 심상치 않고……. 국내 문제도 신경 쓸 게 많소. 하나 해결하면 계속 다른 일이 벌어지지."
이선의 얼굴에는 피로가 어려 있었다. 마르가리타는 걱정스러웠다. 4년 전 과로로 쓰러진 이후, 한동안 이선의 건강은 괜찮았지만, 다시 과로로 몸을 축내고 있었다.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는군요."
"오늘은 4시간 정도 잤소. 설날이라 푹 쉬고 싶었는데, 러시아가 페테르부르크에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전보가 와서."
"역시 러시아가 문제로군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내게는 일본이 더 문제요. 러시아의 혁명운동은 머나먼 이야기지만, 그 위기를 틈타 일본이 전쟁을 도발할 수 있으니까."
마르가리타에게 자세한 국정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이선은 곧 일어날 수도 있는 전쟁에 대비하느라 관료들을 들들 볶고 자신도 철야업무로 지쳐 있었다. 러시아와 일본의 정세는 그만큼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전쟁이 좋으면, 두 나라가 서로 총질하다 공멸했으면 좋겠다. 유탄이 한국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어.’
"일본, 그 일본인들이 폴란드 독립운동을 돕는다더군요."
"어찌 알았소?"
뜻밖의 말에 이선이 반문했다.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의 형인 브로니스와프가 일본에 와 있어요. 홋카이도와 사할린 원주민, 그 이름이 뭐더라……."
"아이누."
"맞아요, 아이누. 사할린에서 유배 생활하던 중에 아이누 여인과 결혼했거든요."
"연해주 유배 중에 부랴트 여인과 결혼한 당신 사촌오빠 미하우랑 비슷하군."
"그래요. 의식 있는 폴란드 청년들의 운명이 다 그렇죠."
폴란드 사회당 지도자 유제프 피우스트스키(Jozef Piłsudski)가 독립운동에 가담하게 된 건, 형 브로니스와프(Bronisław)의 영향을 받아서였다. 마치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가 형 알렉산드르의 영향을 받아 혁명운동에 가담한 것과 유사했다.
"잠깐, 브로니스와프 피우수트스키라면 알렉산드르 2세 암살 조직의 일원이잖소?"
"역시 알고 있었군요."
"어떻게 모를 수가 있나."
브로니스와프가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나게 된 것이 바로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와 연루되었기 때문이었다. 페테르부르크 대학 법학도였던 그는 동창 울리야노프와 함께 차르 암살을 모의하고, 1887년 마침내 차르 알렉산드르 2세 암살에 성공했다. 모든 죄를 자신이 뒤집어쓰려고 했던 울리야노프의 필사적인 보호 덕에 브로니스와프는 사형을 면하고 사할린 20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다. 동생 유제프도 연좌되어 시베리아 5년 유배형을 받았다.
브로니스와프는 사할린 유배 생활을 하며 운명에 순종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누 여인과 결혼해 자식을 얻고, 아이누 민족 연구를 이어 나가서 이 분야에서는 러시아에서 독보적인 위치였다. 제국 과학 아카데미에서 수여하는 상을 받을 정도였다. 15년으로 감형되어 형기가 끝난 후에도 사할린에 잔류했다.
하지만 그는 은밀히 머나먼 극동에서 폴란드 독립운동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작년 2월, 일본 첩보원이 사할린에서 공작을 벌일 때 협력했던 현지 요원이 바로 브와디스와프였다.
젠쇼마루 상선 침몰로 이어지는 떠들썩한 사건이 이어지면서, 신분이 드러난 브와디스와프는 일본으로 탈출했다.
일본으로 망명한 브와디스와프는 반(反)러시아 조직을 이끄는 한편, 아이누 보호 운동을 벌였다.
"연락을 받고 있소?"
"편지를 보내더군요. 내가 폴란드에 있었을 때 그의 동생 유제프가 이끄는 조직에 있었으니까."
"위험한 교류를 하는군. 러시아 입장에서 이들 형제는 최악의 정치범이오."
"그 말은 곧, 폴란드 입장에서는 최고의 혁명가란 의미겠죠."
"당신 마음이 어디로 기울어지는 잘 알지만, 9년 전에 당신의 사면을 청원한 건 나고, 사면한 건 니콜라이 2세라는 건 기억해 줬으면 하는군."
"그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해요. 폐하의 은혜는 결코 잊을 수가 없어요. 만약 폐하께서 돕지 않았다면 나는 시베리아에서 비참한 생활을 했겠죠. 어떤 모욕을 당했을지 모르고."
예컨대 유제프 피우스트스키가 시베리아에서 유배 생활하던 당시, 간수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해 이빨 두 개를 잃었다. 정치범의 권리를 요구하며 영하 40도에 단식운동을 하던 유제프는 건강을 크게 해쳤고, 평생 동안 그를 괴롭힐 질병에 시달렸다.
여성 정치범은 특히 성적인 모욕에 노출되기 일쑤였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 정치범은 보통 유배형을 함께 선고받은 동지와 결혼했다. 젊고 아름다운 데다, 귀족 출신인 마르가리타는 모욕을 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당신이 그런 일을 당하는 건 내가 참을 수 없으니까. 내가 모든 사람을 도울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친애하는 사람은 돕고 싶지."
"그래요. 나도 추상적인 조국과 민족보다는, 내가 아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내 동포들, 내 동지들."
"충분히 이해하오. 내가 당신 입장이었어도 마찬가지였겠지. 조국이 독립을 되찾을 수 있도록 뭐든 했을 거야."
"그럼 왜 나는 안 된다는 거죠?"
"미안하지만, 당신은 이미 나와 특별한 관계요. 대놓고 말은 안 해도, 주한 서양인들은 다 알지. 당신이 아니라고 해도, 당신이 하는 행동에서 나와의 연관성을 찾으려고 할 거요. 나는 대한제국이 반러시아 운동에 연관되기를 원치 않소."
이선은 일부러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그도 진심으로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었다. 조국 독립을 염원하며 노심초사하는 그녀에게 강한 동질감과 애정을 느꼈지만, 자신은 국가를 대표하는 황제였다. 감정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 그렇군요. 그럼 내 행동이 폐하를 움직여 한국을 러시아에 반대하는 거라고 외국이 여길 수 있다는 건가요?"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소."
한국이 영국과 동맹을 맺은 걸 가지고 그렇게 물어뜯는 러시아인도 있었다.
‘황제가 폴란드 애인에게 눈이 멀어 러시아에 맞서려 한다.’
이선으로서는 가당찮은 이야기였고, 진지한 외교관이라면 이런 저열한 모함에 동의하지 않았다.
"무슨 내가 나폴레옹이고, 당신이 마리아 발레프스카도 아닌데."
나폴레옹의 여인 중에서 가장 사랑받은 이가 폴란드 여인 마리아 발레프스카(Maria Walewska)였다.
나폴레옹은 폴란드 전역(戰域) 중에 마리아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문제는 마리아가 이미 유부녀였다는 점이었다. 프랑스의 힘을 빌려 폴란드의 독립을 쟁취하길 원했던 폴란드 애국지사들은, 마리아에게 제발 나폴레옹의 사랑을 받아들여달라고 청원했다. 심지어 남편조차 무릎을 꿇고 빌 정도였다.
애국자인 마리아도 끝내 제안을 받아들여 나폴레옹의 애인이 되었다. 정식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나폴레옹이 가장 사랑한 여인이었다. 마리아는 나폴레옹의 아들 알렉상드르를 낳았고, 적자인 나폴레옹 2세가 요절한 후에는 알렉상드르의 후손만이 나폴레옹의 직계 후손으로 남았다.
나폴레옹은 자신은 유럽을 평정하면 폴란드를 독립국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맹세했다.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이 여인과의 사랑 때문에 폴란드 독립을 추구했다기보다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 사이에 확고한 친불 국가를 만들 목적으로 폴란드를 독립시켰다는 게 맞겠지만,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다시 독립을 상실한 폴란드인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낭만적인 이야기로 회고되었다.
"마리아 발레프스카. 그래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마르가리타는 그동안 자신에게 왔던 편지를 이선에게 보여 주었다. 폴란드어라서 이선은 읽을 수가 없었고, 마르가리타가 번역해 주었다.
"이건 폴란드 민족민주연맹의 드모프스키 씨가 보낸 편지."
로만 드모프스키(Roman Dmowski)는 폴란드 우파 정치인으로,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은 당장 어려운 일이니 자치권 확보를 주장했다. 피우수트스키의 라이벌인 드모프스키는 무장투쟁을 불가능한 시도라고 보았다.
드모프스키는 마르가리타에게 편지를 보내, 마르가리타가 이선에게 청원하고, 이선이 친우인 니콜라이에게 청원해 폴란드 자치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기를 희망한다고 요청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래요, 말도 안 되죠. 자치라는 게 구걸해서 얻어지는 게 아닌데. 이런 편지는 드모프스키만 보내는 것도 아니에요. 작년 10월 이전에는 우파에서만 연락을 보냈지만, 10월 이후에는 좌파도 연락을 보내더군요. 이건 브와디스와프 피우스트스키가 보낸 편지."
한영일동맹이 체결된 후, 러시아의 압제에 시달리던 민족들은 곧 한일 양국이 러시아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리라는 기대를 걸었다. 폴란드 독립운동가들은 이미 일본과 접촉을 취하고 있었고, 한국에서는 마르가리타를 창구로 삼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폐하께 한 번도 정치적인 부탁을 해 본 적이 없지요."
"당신의 분별력을 높이 평가하오. 난 애초에 일본에 왜 이런 기대를 거는지 모르겠군. 더욱이 아이누 연구를 한다는 사람이. 일본의 아이누 탄압과 강제 동화 정책은 러시아의 폴란드 압제보다 더 가혹하오. 류큐와 타이완에서도 그렇지. 만약 일본이 한국을 지배한다면, 그들은 러시아가 폴란드에 저지른 것보다 훨씬 가혹하게 굴 거요."
실제 역사를 아는 이선으로선, 일본 제국주의의 악랄함이 서양 못지않다는 걸 간파하고 있었다.
"폴란드인이 진심으로 일본을 좋아할 리가 있겠어요? 적의 적은 아군이니까요. 폐하께서 러시아를 이용해 중국, 일본을 견제했던 것처럼."
이선은 웃음을 흘렸다. 과연 ‘적의 적은 아군’이었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못할 거요. 폴란드가 진짜 독립을 쟁취하려면, 러시아뿐만 아니라 독일과 오스트리아도 몰락해야 하오. 그런 전쟁은 세계대전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지."
"국제정세가 언제 바뀔지도 모르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나는 그렇다 쳐도, 내 아들에게 이런 현실을 물려 주고 싶지 않아요."
"의외로 빠를 수도 있소. 정세를 볼 때 세계대전은 필연이오. 낡은 제정은 결코 새로운 총력전을 견뎌 낼 수가 없소. 10년 뒤에는, 폴란드가 독립을 쟁취할 수 있을지도. 안이 컸을 때는 어머니의 나라가 독립되어 있음을 보게 될 거라 생각하오."
지금으로선 아무도 예상 못 할 일이지만, 이선은 필연적인 일이라 여겼다.
"그때는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니 때를 기다려주길 바라겠소."
마르가리타는 이선의 정세 예측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처럼 확신할 수는 없었다.
"나를 믿어주시오. 독립이라는 건 한순간에 쟁취할 수 없는 것이오. 나는 지난 25년 동안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소. 당신의 조국도 반드시 시기가 무르익을 때가 올 거요."
"…… 그럴게요."
마르가리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를 믿었다. 그는 그녀를 끌어안고 부드럽게 토닥였다.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광무 9년 2월 5일, 을사년 정월 2일.
이 해에 이선이 느낀 마지막 평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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