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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혁명의 시대-391화 (390/812)

72화 개전 전야

오후, 회의가 속개되었다. 예상대로 군사협력 문제가 제기되었다.

"일본군은 한국군이 동맹으로서 협력해 주길 희망합니다."

"동의합니다. 양국 간의 연결이 될 접반사(接伴使)와 관전무관을 파견해 일본군의 전쟁 수행에 도움이 되도록 하지요. 군수공업을 육성하여 군수품 보급에도 만전을 다하겠습니다."

"좋습니다만, 만주로 지원부대를 보내 주길 바랍니다. 요동도와 연길도는 귀국의 영토이기도 하잖습니까?"

근대적 편제를 갖춘 8개 상비사단의 대한제국군은 일본군 입장에서도 탐이 나는 전력이었다. 특히 육군은 한국군의 참전을 희망했다.

"우호적 중립에 따라, 전투병력 참전은 없습니다. 공병대, 치중대, 군의대 등 비전투요원을 파견해 귀국을 돕겠습니다."

군무대신 한규설의 단호한 태도에 이지치는 답답함을 호소했다.

"지원에는 감사드립니다만, 전쟁이 발발하면 결국 러시아군이 한국 영토와 중립을 침해하고 나설 것입니다.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요동도와 연길도에는 4개 사단을 주둔시켜 방위를 철저히 할 것입니다."

대한제국령 요동은, 청국령 요양과 해성 사이에 안산(鞍山) 돌출부가 형성되어 있었다. 안산은 봉천과 여순을 잇는 최단 코스였기에 동청철도 남만주 지선이 지나갔다. 동청철도가 부설될 때에는 한창 한러관계가 좋던 시절이라, 안산의 철도 연변(沿邊)은 정식으로 러시아 조차지가 되었다.

"그렇다면 안산 돌출부 방어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러시아가 대한의 중립을 존중해 준다면 다행이지만, 안산은 동청철도가 지나는 요충지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대한에게 있어 안산은 홀로 돌출되어 있는 데다 평지라 방어하기가 어렵습니다. 일시적으로 후퇴하고 마천령 이남을 지키려고 합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남만주 철도의 안전을 중시하는 러시아가 안산 돌출부를 점령할 가능성이 컸다. 이 지역을 확보하지 않으면 남만주 철도의 안전이 위태로웠다.

일본은 개전 시 러시아가 안산을 점령할 테니 이를 명분으로 한국도 참전하길 바랐지만, 대한제국은 여기까지는 묵인하고 개전 사유(Casus belli)로 여기지 않기로 결정했다.

만약 러시아가 천산산맥(千山山脈) 마천령 이남의 요동까지 침입한다면, 그때는 개전 사유로 충분했다. 하지만 러시아도 그 정도로 막 나가진 않을 터였다.

"귀국은 싸워 보지도 않고 전쟁으로 확보한 영토를 내줄 생각입니까!"

이지치의 외침에 대한제국 대신들은 불쾌감을 느꼈다.

애초에 전쟁을 일으켜서 문제를 만든 건 일본이 아니던가?

‘야전포병감 이지치 고스케, 이름이 익은데. 누구지? 아아, 3군 참모장! 여순 203고지의 참사를 이끈 장본인이 아닌가?’

이선은 실제 역사 속 이지치의 ‘활약’을 떠올리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지치는 3군 사령관 노기 마레스케를 대신해 여순 공방전을 실질적으로 지휘했다. 독일 유학을 다녀온 포병 전문가로 그동안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순 요새에 ‘반자이 돌격’으로 유명한 공격을 반복하다 수많은 희생자를 낸 장본인이었다.

"장군, 귀국도 10년 전에 러시아의 압력으로 전쟁으로 확보한 영토를 포기한 적이 있지 않소? 그때 왜 일본은 전쟁으로 맞서지 않았소?"

일본은 10년 전 러시아가 주도한 삼국간섭으로 요동반도를 다시 토해 낸 적이 있었다. 일본, 특히 요동반도 점령을 주도한 육군은 이로 인해 러시아에 깊은 원한을 품게 되었고, 결국 10년 후의 전쟁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 그건……."

"물론 그 당시 국력이 부족해서겠지. 대한도 그렇소. 아직 러시아에 맞설 때가 아니기 때문이오. 대한이 국지적 방어전이 아니라 전면전에 돌입할 능력을 갖추려면, 최소한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시간이 필요하오. 그러니 일단 기다려 봅시다. 때가 되면 대한도 국가 방위를 위해 나설 것이오. 그리되면 동양 평화를 위해 함께 싸울 수도 있겠지."

이선은 장차 한국군이 참전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었다.

"알겠습니다, 폐하. 대일본제국 육군은 단기간에 적을 제압하려 합니다만, 만약 전황이 불분명해지면 대한제국군도 참전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만약 방어전으로 전환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상호방위조약을 준수해 참전하겠소."

‘지금이야 일본 최고 지휘부는 자기들끼리 싸워도 된다고 여기지만, 6개월만 지나도 참전해 달라고 아우성을 칠걸. 섣불리 참전해 봐야 얻는 건 적다. 일본의 피해가 극대화됐을 때를 노려야지.’ 만약 일본이 무너질 기미가 보인다면, 그때는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일본뿐만 아니라 영국도 한국에 참전을 촉구할 수가 있었다. 때를 기다려 힘을 축적해야 했다.

"자, 그럼 군수지원 문제를 합의합시다. 접반사와 관전무관을 파견해서 전쟁 수행을 돕고. 공병대, 치중대, 군의대 등 비전투요원으로 구성된 혼성부대를 파병해 지원하겠습니다. 보급선은 짧을수록 좋으니까, 전장이 될 만주에서 가까운 평양에 군수사령부를 설치하도록 하지요. 평양 군수공업지대에 군수품 발주를 맡기면 신속히 보급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귀국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평양에 서경 신도시를 계획적으로 육성하면서, 도시 외곽에 조병창이 들어선 군수공업지대를 형성했다. 지금까지는 국내 물량을 댔지만, 최초로 국외 발주를 받아 활황(活況)을 노렸다.

일본 입장에서도 일본 본토에서만 생산하여 만주에 보급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었으므로, 전장에서 가까운 평양에서 보급하는 건 반길 일이었다.

‘일본이 6.25 전쟁으로 막대한 전쟁특수를 얻었다지? 패전국의 폐허에서 경제기적으로 향하는 길을 닦았지. 현재 일본은 1950년대 미국처럼 돈을 팍팍 대 줄 수 없으니 그 정도야 바라지도 않지만, 우리도 일본인의 피와 돈으로 전쟁특수 한번 누려 보자.’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일본의 재정파탄은 현실화가 될 것이므로, 일본이 대금을 내지 않고 빚으로 빌려 갈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그럼에도 개항 이래 불균형이었던 한일 간의 무역구조가 변화할 수 있는 기회였다. 지금까지는 한국이 대일 무역적자가 크고 차관을 빌리는 입장이었다면, 전쟁이 구조를 바꿀 수 있었다.

협의는 밤늦게까지 계속 이뤄졌다. 13일 자정을 넘기고 새벽이 되어서야, 마침내 한일 양국은 의정서에 합의했다.

제1조. 양국 사이의 항구적이고 변함없는 친선을 유지하고 동양의 평화를 확고히 이룩하기 위하여, 대한제국 정부와 대일본제국 정부는 협력을 약속한다.

제2조. 대일본제국 정부는 대한제국의 자주독립과 영토보전을 확고히 지지하며, 대한제국의 주권을 침해하지 아니한다.

제3조. 대일본제국 정부는 대한제국이 남만주에 특수한 이해관계가 있음을 인정하며, 전후 양국이 상호 평등한 통상조약을 맺을 것을 확정한다.

제4조. 대한제국 정부는 우호적 중립을 유지하며, 대일본제국의 전쟁 수행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군사 행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양국이 합의한 전략상 필요한 지점을 군사용으로 개방한다.

제5조. 전쟁 수행에 대하여 양국에 중대한 정치적·전략적 변화가 있을 때는 반드시 상대국 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제6조. 협약의 기한은 전쟁 종료로 한정한다.

제7조. 본 협약에 관련된 세부사항은 별도의 협정으로 합의한다.

광무 9년 2월 13일. 대한제국 황제 폐하의 위임을 받아, 내각총리대신 김옥균.

메이지 38년 2월 13일. 대일본제국 천황 폐하의 위임을 받아, 특명전권대사 이토 히로부미.

"대한제국의 협력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폐하. 일본국은 귀국의 우의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근린이자 동맹의 일원으로서 당연한 선택이지요. 귀국의 승전을 기원합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이선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선은 흔쾌히 악수를 청하며 승전을 기원했다.

당장 아쉬운 쪽은 일본이니만큼, 한국의 요구안은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전쟁 결과와 관계없이 남만주가 한국의 세력권임을 인정받았다. 사이온지와 하라는 이미 동의했지만, 가쓰라 내각 수립 후에 애매한 태도를 보였던 통상조약 개정도 전후에 확정했다.

일본으로서는 전쟁 수행에 즉시 도움이 되는 협정을 얻었고, 이제 안심하고 개전할 수 있었다.

전쟁이 눈앞이었다.

* * *

이토는 이선이 제안하는 만찬도 정중히 사양하고, 조약 체결 즉시 귀국길에 올랐다. 조속히 귀국하여 정부와 군부에게 결과물을 내밀어야 했다.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이토는 추밀원을 대표해 어전회의를 요청했다.

2월 15일 오후, 황거(皇居)에서 메이지 천황이 친림하는 어전회의가 개최되었다.

이토와 야마가타를 비롯한 원로들, 총리 가쓰라 이하 대신들, 군부 핵심 인사들이 어전회의에 배석했다.

"러시아가 만주를 점령하고 동양의 평화를 위협한 지 5년, 제국은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러시아는 끝내 비타협적인 태도로 위협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의 위협으로 동양 평화가 위태로워진바, 이제 간과(干戈)에 호소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신등은 엎드려 삼가 천황 폐하께 선전(宣戰)의 조칙을 청원하는 바이옵니다."

이토의 엄숙한 어조에, 메이지는 오히려 불편함을 느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토만은 전쟁에 반대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지지해 주리라 믿었다.

어전회의 전, 이토는 알현을 청하여 변명을 했다.

"승리를 위하여 최대한 외교적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부디 가납하여 주시옵소서."

"이 전쟁은 결코 짐의 뜻이 아니오. 경만은 짐의 뜻을 이해하리라 믿었소."

"지극한 성심을 신이 어찌 모르겠습니까마는, 이미 대세가 기울어져 신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반드시 승리하도록 만전을 다하겠사오나, 만에 하나라도 일이 틀어진다면, 신등이 모든 책임을 지고 죽음을 택하겠나이다!"

‘늙은 그대들이 죽는다고 해결될 일이란 말인가?’ 메이지는 이토를 꾸짖고 싶었지만, 결국 참고 말았다.

전쟁을 꾸민 건 야마가타와 군부였고, 가장 큰 책임도 그들의 몫이었다.

"정녕 전쟁 말고는 해결책이 없는 건가?"

"황공하오나 그러하옵니다, 폐하. 러시아의 야욕을 선제적으로 꺾지 않는다면, 저들은 장차 만주에 이어 한국, 한국에 이어 제국을 점령하려 할 것입니다. 러시아가 혼란에 빠진 작금이 실로 적기입니다. 러시아 정부에 단교를 통보하고 긴급히 군사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성단을 내려 주시옵소서."

야마가타가 일어서 결단을 촉구했다.

메이지는 더욱 불쾌했다. 이미 자기들이 판은 다 깔아 놓고 도장만 찍으라는 태도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지만, 국가원수로서 최종 결단은 메이지의 몫이었다.

"정부와 군부의 의견이 일치했다면, 오늘날의 상황과 정세의 면에서 달리 취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고 믿는다. 짐은 천황이자 육·해군 대원수로서 러시아에 단교를 통보하고, 필요한 군사행동을 개시하도록 명하노라."

"천황 폐하 만세! 대일본제국 만세!"

천황이 엄숙한 어조로 ‘성단’을 내리자, 어전회의에서 일제히 만세 삼창이 쏟아졌다.

그날 밤.

"짐은 결코 전쟁을 원치 않았건만, 결국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된다면, 짐이 어떻게 황조황종께 사죄해야 하는가? 신민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한단 말인가?"

개전 전야, 메이지는 오직 시종장에게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다.

전쟁은 천황의 이름으로 선포될 것이고, 병사들은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어 나가겠지만, 정작 천황 본인은 전쟁을 원치 않았다. 엄청난 모순이었다.

"이제 일본은 망했다. 저 어리석은 군인 놈들이 유신의 대업을 망치고 마는구나. 돌아가신 유신의 원훈들을 어찌 뵙겠는가!"

눈물을 흘리는 건 이토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협조를 얻었다지만, 그는 일본이 러시아를 이길 수 없다고 보았다. 이겨도 상처뿐인 승리가 될 것이다.

"각하, 설마 그렇게까진……."

"물론 그러면 안 되지. 만약 패전하게 되더라도, 나는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네. 어떻게든 러시아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하는 것만은 막게 해야지. 그러니 대영, 대미 외교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네. 외교에 만전을 기울여야 하네, 알겠나?"

이토는 앞으로 어떻게든 영국과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자 했다.

2월 16일. 영국, 런던.

영국 외무부는 주영일본대사 하야시 타다스로부터 대러 단교와 개전 방침을 통보받았다.

"결국 전쟁이로군요. 귀국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일본 정부는 영국 정부가 동맹국으로서 우호적 중립을 지켜 주고, 전쟁 공채를 매입해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국 정부는 일단 동맹으로서 지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지금 이 시기에 전쟁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고 그리 설득했건만,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마는군."

"기르던 사냥개가 주인의 뜻을 거스르고 날뛰는 격이로군요. 먹이를 덜 줬어야 했나."

영국은 일본이 섣불리 개전을 하는 걸 막기 위해 설득했다. 러시아의 동맹인 프랑스로부터도 중재 제안이 들어와 거듭 설득했지만, 일본 새 내각은 요지부동이었다. 러시아의 혁명적 위기를 틈타 만주에서 몰아낼 것이며, 그리되면 만주 이권을 영국에도 나눠 주겠다고 역으로 설득했다.

"작년만 되도 솔깃한 제안이겠지. 하지만 이 시기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독일이 가장 바라마지 않는 게 틀림없소."

영일동맹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정부의 치적으로 삼았던 밸푸어 내각으로선 일본의 폭주가 원망스러우면서도 저버릴 수가 없었다.

애초에 일본을 이용해 극동에서 전쟁을 일으켜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겠다는 건 밸푸어의 복안이었다. 일본이 전쟁까지 결심하게 된 건, 상당 부분 영일동맹과 밸푸어 내각의 고무 덕이었다.

하지만 끝내 독일이 건함경쟁을 포기하지 않고, 러시아보다 독일이 주적으로 다가오면서, 영국은 프랑스를 새로운 파트너로 선택했다. 프랑스는 러시아의 전쟁을 원치 않았다.

"전쟁 일어나면 자유당은 좋아하겠군."

"총선에 이용하기 좋은 소재니까."

바르샤바 피의 일요일 사건 이후, 영국 여론은 급격히 러시아를 비난하는 방향으로 쏠렸다.

여야와 좌우를 막론하고, 러시아 차르의 폭정을 비난하는 언설이 쏟아졌다. 소수 정당인 노동당은 물론이고, 제1야당인 자유당조차 러시아를 격렬히 비난했다.

전통적으로 보수당이 러시아에 훨씬 강경하고, 자유당이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점을 감안하면, 상황이 역전된 셈이었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 있는 보수당으로서는 반러시아 여론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프랑스와 협약을 맺었다고 러시아와 타협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단은 지지하는 입장은 보입시다. 민간에서는 알아서 하라고 하고, 정부 차원에서는 전쟁 공채를 매입하지 않겠소."

영국 정부는 표면적으로 일본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외교적 신뢰는 크게 떨어진 상황이었다. 더 이상 일본은 영국이 고용한 극동의 헌병, 주인의 뜻을 따르는 사냥개가 아니었다.

일본은 전쟁을 결정했다. 어떤 미래가 올지 알지 못한 채, 미지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 7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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