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393화 (392/812)

74화 러일전쟁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여순 사이에는 6시간의 시차가 있고, 긴급 전보가 페테르부르크까지 전달되는 데 시간이 소요되므로, 니콜라이 2세가 기습 소식을 전해 들은 건 현지 시각으로 심야였다.

이미 일본 함대가 여순을 기습한 지 6시간 정도 지난 뒤였다.

일요일 저녁에 여유롭게 마린스키 극장에서 오페라를 감상하고 밤늦게 겨울궁전에 도착한 니콜라이는, 그때야 비로소 기습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선전포고도 없이 공격했다고? 어찌 이럴 수가……. 주여, 러시아를 도와주소서!"

차르는 황당했다. 1905년 현재의 선전포고는 국제법상 의무가 아니었지만, 개전 시 선전포고는 관례적인 것이었다.

"피해는 어찌 되나?"

"전함 2척 대파, 순양함 1척 격침, 1척 대파라고 합니다."

"알겠다. 현지에서 오는 소식은 계속 보고하라. 내일 오전 즉시 군사 협의회를 소집한다."

2월 7일(20일) 오전, 겨울궁전에 육·해군 대신과 참모총장이 소집되었다. 차르는 밤새 잠을 못 이룬 듯 핼쑥했다.

"전함 레트비잔과 체사레비치 대파, 순양함 바얀 격침, 팔라다 대파입니다. 불행 중 다행히도, 대파된 3척은 2개월 정도의 수리면 복귀 가능하다고 합니다."

"비열한 일본 원숭이 놈들! 반드시 이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참석자 모두 선전포고도 없는 기습에 격분했지만, 좌중의 격분은 이내 가라앉았다.

‘주제도 모르고 건방지게 기어오르는 동양 원숭이’에게 마침내 뜨거운 맛을 보여 주리라는 기대감이 컸다. 기습을 당한 후에도, 여전히 러시아 최고 지휘부는 일본을 얕잡아보고 있었다.

먼저 독일 및 오스트리아-헝가리 전선을 살핀 후, 만주 전선의 상황을 살폈다. 만주에는 10만의 병력이 주둔 중이었다. 관동주, 요양, 봉천, 하르빈 등에 분할 배치되어 있었다.

극동군관구, 시베리아군관구에 동원령을 내리고, 사령관의 인선을 결정했다.

차르는 일단 극동총독 알렉세예프에게 총지휘권을 맡기고, 육군의 지휘권은 리네비치 대장에게 맡겼다. 기습을 당한 책임을 물어 태평양 함대 사령관 스타르크 제독을 경질하고, 마카로프 중장을 신임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승리를 기원하오, 장군."

"예, 폐하! 반드시 적을 무찌르겠습니다."

러시아 외무부는 차르 니콜라이 2세의 명의로 선전포고문을 작성해 발송했다.

「전(全) 러시아의 황제이자 전제군주인 짐 니콜라이 2세는, 짐의 충량한 모든 신민에게 선언한다. 짐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극동의 평화를 강고하게 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 짐은 즉각 일본의 기습에 군사력으로 답하라고 명령했다. 짐의 결의를 선언함에 있어, 짐은 흔들림 없는 하느님의 조력을 확신하며, 짐의 충량한 신민 모두가 함께 일치해 조국의 방위를 위해 일어설 각오를 다질 것을 기대하노라. 짐의 용감한 육·해군에게 하느님의 가호를 빈다!

서기 1905년, 치세 11년 2월 7일(20일)

니콜라이 2세」

오후, 황실 성당에서 승전 기도회가 열렸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르에게 일제히 만세가 쏟아졌다.

"러시아 제국 만세! 황제 폐하 만세! 하느님, 차르를 보호하소서!"

"주님의 가호가 러시아와 함께하리라!"

니콜라이는 만족감을 느꼈다.

바르샤바 피의 일요일 사건 이후, 페테르부르크에서도 불만과 분노가 횡행했다. 하지만 일본의 기습 소식이 전해지자 일제히 분노의 화살은 ‘야만적인 일본인’을 향해 돌아갔다. 모처럼 수도는 애국심으로 단결했다.

‘단기간의 신속한 승리는 신민의 충성을 되찾게 하고, 러시아 제국을 반석에 오르게 할 것이다.’

"지금이야 만세를 외치지만, 전황이 조금만 불리해지고 전선이 고착화되어도 만세가 저주로 바뀔 거야. 전쟁만은 피해야 했는데……."

국무회의 의장 비테만이 앞날을 우려하며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누구보다 전쟁을 원치 않았다. 만주를 군사적으로 점령할 필요 없이, 경제적 침투만으로 충분했었다.

하지만 결국 전쟁은 나고야 말았다. 당장은 굳건해 보이는 러시아인의 충성이, 얼마나 지속될지 의문이었다.

2월 21일, 일본 도쿄.

이틀간 보도 통제가 있다가, 마침내 이날 일본에는 ‘여순항 대첩’의 호외가 쏟아졌다. 기습은 성공적이었고, 일본의 일방적인 승리였음을 알리는 호외였다.

"여순 대회전 실황! 연합함대, 여순항에서 러시아 함대를 격파! 황해의 재해권이 제국해군에게!"

"러시아 침략자를 향해 국가 방위와 동양 평화를 위해 분연히 칼을 빼 들다!"

"천황 폐하 만세! 대일본제국 만세!"

도쿄는 축제 분위기였다. 시민 수천 명이 나와 만세를 외치며 환호했다.

언제 정부퇴진운동이 벌어졌냐는 듯, 호헌운동의 중심지였던 히비야 공원에도 만세의 함성이 드높았다.

일본인들은 지난 10년간 막중한 세금으로 군비를 부담하고 있었고, 전쟁은 울고 싶던 차에 뺨 때려 준 격이었다.

국민의 불만을 러시아라는 외세에 돌리는 데 성공한 정부와 군부는, 승리하면 전리품을 얻을 것이요, 실패하면 후폭풍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이날 저녁, 일본도 선전의 조칙을 공표했다.

「짐은 러시아에 대하여 전쟁을 선포하노라. 짐의 육·해군은 전력을 다해 러시아와 교전에 종사해야 하며, 짐의 모든 신료와 관리는 각각 그 직무에 따라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제국이 한국의 안전에 중점을 두어 온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만주를 점거한 러시아가 이를 끝내 병탄하면 청국의 안위가 위태롭고, 한국의 안전을 보전할 수 없으며, 제국의 방위와 동양의 평화도 불가능한 일이다.

제국의 방위를 위하여,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한국과 청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위하여 러시아와 싸울 것이다. 짐은 그대들의 충성과 무용에 의지해 신속하게 평화를 달성함으로써 제국의 광영을 보전할 것을 기대하노라.」

선전포고문만 읽으면, 마치 일본이 한국과 청국을 위해 싸운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일본은 ‘동양 평화’와 ‘한국과 청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전쟁명분으로 내걸고 포장했다. 순진한 일본 청년들이야 이를 믿고 싸울지 몰라도, 위에 앉아 있는 자들의 생각은 물론 달랐다.

"제국이 동양 평화와 한국과 청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명분으로 싸우는데, 마땅히 동양 삼국이 연대하여 함께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한국 육군과 청국의 북양군은 전력으로 삼기에 충분합니다. 이들과 손을 잡으면 러시아를 더욱 손쉽게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장파 장교들은 왜 한국과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고 우호적 중립으로 한정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국군 8개 사단은 전력으로 충분했다. 아무리 청군이 오합지졸이라곤 해도, 신정으로 거듭난 북양군의 전력만큼은 높이 평가받았다.

더욱이 ‘동양 평화’를 위해 함께 싸운다는 명분도 충분하지 않은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 만약 한국과 청국이 정식으로 참전한다면, 이들도 강화협상에 같이 앉아야 하지 않나? 러시아에 얼마나 많은 걸 요구하겠나. 제국이 차지할 몫까지 요구하겠지. 이들은 적대하지 않고 우호적 중립만 유지해 주면 충분하다."

야마가타와 육군 상층부는 전쟁의 결과를 독점할 생각이었다. 10년 전 청조일전쟁에서 조선만 이득을 봤다고 생각하는 야마가타로서는, 이번에는 주변국을 배제하고 독점적인 이익선을 구축할 생각이었다.

이는 당연히 이토가 한국과 맺은 조약, 문민파가 추진하는 외교 정책과 상충되는 바였으나, 군부는 일단 전쟁만 이기면 뒷일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이기기만 하면 된다. 신속히 러시아 극동군을 섬멸하고, 태평양 함대를 궤멸시키면 돼."

해군의 전함대, 상비사단이 모두 원정에 동원되었고, 후비군도 소집되었다.

일본 정부는 전시 특별예산 1억 엔을 추가로 집행하고, 영국과 미국을 상대로 국채 판매와 차관 도입에 나섰다.

일본은 전쟁 승리에 영혼까지 팔 기세였다.

* * *

대한제국, 황성.

2월 22일, 대한제국은 전시 중립을 각국에 통보했다. 잇달아 청나라도 전시 중립을 선언했다.

대한제국 13도는 중립 구역으로 선포되고, 요동도와 연길도는 전쟁 구역으로 허용되었다. 청나라도 요하 이동(以東)의 만주를 전쟁 구역으로 허용했다. 즉, 전장은 만주로 한정된다는 의미였다.

러시아를 제외한 주요 열강은 한국의 중립을 승인하겠다는 답변을 보내 왔다. 영국과 미국은 물론이요, 러시아의 동맹인 프랑스도 중립을 승인했다. 일본에 은근히 전쟁을 부추겼던 독일과 그 동맹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각국의 기자들이 황성으로 모여들었다. 황성의 호텔과 ‘구락부’에는 갑작스레 몰려든 서양인들로 북적거렸다. 서양인들에게 멀리 떨어진 동양의 전쟁이란 매우 흥미로운 기삿거리였다.

열강 중 유일하게 한국의 중립 표명에 대해 답변을 보내지 않은 러시아였다.

마지막까지 협상을 이어 나가려 했던 외무부는 일본군의 여순 공격 소식을 듣고 아연했다. 심지어 한국도 명백히 일본에 기울어진 ‘중립’을 선언했다. 청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는 순식간에 동아시아에서 고립되어 버렸다.

프랑스는 러시아의 동맹으로 협력했지만, 전쟁 공채를 매입하는 것 외에는 도울 수가 없었다.

오히려 독일이 협력할 의사를 보이고 러시아의 국채를 베를린에서 사들이기 시작했다. 일본에 전쟁을 부추긴 것과 달리, 독일은 막상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의 국채 매입은 단칼에 거부했다. 독일은 러시아의 ‘승리’를 기원했으니, 이는 러시아가 극동으로 대군을 파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말이 좋아 중립이지, 한국은 일본에 군사통행권을 부여하고 온갖 혜택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입니까?"

"본국의 일에 대해서 저는 잘 모릅니다. 황제 폐하께서 친서를 보내셨습니다."

외무대신 람스도르프의 힐난에, 주러시아 공사 이범진은 난처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황제의 친서를 전달했다. 차르가 알현을 허락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외무대신이 대신 친서를 접수하여 차르에게 전달했다.

「짐의 친애하는 형제, 황제 폐하! 짐은 평화를 중재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지만, 끝내 전쟁이 일어나게 되어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습니다.

일본은 한국의 참전을 요구했으나, 짐은 러시아와의 오랜 우의를 생각하여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한영일 삼국이 맺은 상호방위조약에는 전시 우호적 중립의 의무가 있으므로, 부득이하게 일본의 전쟁수행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게 되었음을 알립니다.

조약에 따라 부득이하게 일본에 편의를 제공했으나, 러시아에 보내는 호의의 뜻은 같습니다. 대한제국은 여전히 러시아의 우방으로, 안산 조차지를 전쟁 기간에도 러시아가 계속 보유하고 군사적으로 활용해도 무방합니다.

짐은 이 불행한 전쟁이 조속히 끝나길 바라며, 평화를 위해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러시아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황제 폐하께 신의 가호가 있으시기를! 폐하의 좋은 형제, 이선.」

니콜라이는 친서를 받아들고 입술을 깨물었다.

온갖 미사여구로 가득했지만, 결론은 ‘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하여’ 일본에 편의를 제공하는 중립을 지키겠다는 말이었다. 러시아에는 안산 조차지를 그대로 보유하고 군사적 활용을 허용하여 똑같은 조치임을 강조했지만, 일본에 제공하는 편의와 비견될 수는 없었다.

"짐이 이선과 한국을 위해 얼마나 많은 호의를 베풀었건만, 그간 보인 호의의 대가가 겨우 이렇단 말인가?"

니콜라이는 배신감을 느꼈다. 물론 이선이 할아버지의 테러를 막고, 일본에서 암살당할 뻔한 자신을 구해 주고, 유익한 조언들을 많이 해 온 것은 사실이었다. 그를 진정으로 로마노프 왕조의 벗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이런 선택을 하다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어쩔 수 없는 동양인이란 말인가? 이제 러시아의 이용가치가 사라졌으니, 영국과 일본에 붙어 그 이익을 누려 보겠다는 건가? 갑자기 이렇게 바뀌다니……."

이선의 선택을 놓고 이리저리 해석을 하던 니콜라이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아, 애인이라는 폴란드 여자 때문인가? 그렇군, 그 계집이 이선을 홀렸구나! 아들까지 낳아 줬으니 더 말할 것도 없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그 친구가 이렇게 돌변할 수가 있나. 바르샤바 진압으로 한을 품었겠지. 러시아에 맞섰던 폴란드 정치범인데 오죽하랴!"

니콜라이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바르샤바 학살에 분노한 ‘폴란드 애인’이 이선을 꼬드겨서 러시아에 맞서게 한 것이다.

이는 다분히 니콜라이 본인을 투영한 것이었다. 니콜라이는 실로 애처가였지만, 러시아 황실에서 전례가 없을 정도로 황후 알렉산드라에게 끌려다니는 공처가이기도 했다.

딸만 넷을 낳다가 마침내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기쁨이 말을 이루지 못했으니, 알렉산드라의 말이라면 뭐든지 다 들어줬다. 별 이상한 자칭 예언자, 온갖 사기꾼과 종교인들이 황후의 주위를 맴돌았지만, 니콜라이는 이런 행동이 내심 못마땅하면서도 눈감아 줬다. 황태자 탄생 후에는 황후가 온갖 문제에까지 개입하려 들었지만, 니콜라이는 이조차도 묵인하고 들어주었다.

"그래도 그렇지, 여자에게 넘어가서 러시아에 적대하다니……. 그 친구답지 않군. 하긴 뭐, 아들까지 낳았다면야. 그런 문제라면 이해의 여지가 없잖아 있지. 하필 시기적으로 바르샤바에서 그런 일도 터졌고. 이성을 되찾으면 곧 해결될 문제겠군."

니콜라이는 개인감정으로 국가 간의 문제를 치환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선의 ‘변심’이 여자 문제로 인한 일시적인 선택으로 오해했다.

그렇다면 대한제국과는 다시 협상의 여지가 있었다. 니콜라이는 결정을 내렸다.

"일단 한국의 중립은 존중한다고 전하되, 만주군의 안전과 동청철도의 보호를 위하여 안산 조자치는 신속히 점령하도록. 이는 한국도 허용한 바이다."

러시아가 의외로 선선히 중립을 승인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이선은 놀랐다.

"허, 참. 중립 승인하지 않고 그냥 안산을 점령할 줄 알았는데. 하여튼 니콜라이는 우리 입장에선 참 좋은 친구야."

이선은 친서를 보내긴 했어도, 격분한 러시아가 중립을 부정할 줄 알았다. 니콜라이가 ‘여자 문제’로 오해했다는 건 이선으로선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니콜라이의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폴란드 애인이 꼬드긴’ 바는 없었지만, 바르샤바 피의 일요일은 이선으로 하여금 니콜라이의 통치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품게 했던 것이다.

‘결국 러시아의 혁명은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전쟁으로 바르샤바 봉기가 페테르부르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러시아군이 일본군의 피를 최대한 많이 흘리게 해 주면 좋지만, 러시아에 협력할 이유가 없지.’

이선은 이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와 일본 모두가 극심한 소모를 벌이길 기대했다. 동양의 패권을 두고 싸우는 러일전쟁의 소모 뒤에서, 대한제국의 위치는 상승하게 될 것이다.

- 7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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