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지옥으로 가는 길
1898년, ‘전쟁의 종말’에 대해 언급한 이가 있었다. 유대계 폴란드인 금융가 이반 블로흐(Ivan Bloch)는 ≪이제 전쟁은 불가능한가?(Is War Now Impossible)≫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관총과 같은 새로운 군사 기술은, 보병의 총검돌격과 기병의 돌격 같은 개활지에서의 전투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앞으로의 열강 간의 전쟁은 참호전이 될 것이다. 참호를 방어하는 병력이 개활지에서 진격해 오는 병력에 비해서 4배는 강하다.
…… 지난 전쟁에서 단지 수만 명을 투입했던 것과는 다르게, 산업화된 국가 간의 전쟁이 될 미래의 전쟁에서는 수백만의 병력을 전쟁에 투입하게 될 것이다. 거대한 전선이 구축될 것이고, 이런 종류의 전쟁은 빠르게 종결되지 않는다.
…… 미래의 전쟁은 산업의 전쟁이 될 것이고, 전체 경제가 총동원되는 전쟁이 될 것이다.」
당대에는 단기전이 주류였으므로 지나친 과장이라고 무시당했지만, 20세기의 전쟁을 정확히 예측한 묵시록적 예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블로흐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전쟁의 종말을 예측했다.
군사 기술의 빠른 발달과 고도화된 산업국가의 대규모 전쟁은 상호 파멸로 이어질 것이고, 기존의 정치·경제·사회는 붕괴에 이를 것이다.
그러니 통치자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자발적으로 지옥으로 가는 길을 택할 리가 없었다.
과연 블로흐는 미래의 전쟁을 정확히 예측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대로 전쟁은 종말을 맞이하지 않았다.
합리적인 현실주의자는, 다른 인간들도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리라 생각하고, 인간의 광기를 과소평가한다.
합리성과 진보를 내세운 20세기 초의 ‘벨 에포크’는, 종말을 향해 돌진하는 광기의 시대이기도 했다.
러일전쟁은 동아시아에서 벌어졌기에, 서양인들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다. 호사가들의 흥미로운 관심대상 정도였다.
20세기의 묵시록적 세계가 바로 이 전쟁에서 태동하고 있음을, 사람들은 미처 몰랐다.
* * *
1905년 6월, 일본 대본영은 총공세 명령을 내렸다.
"제1군, 제2군, 제4군은 요양에서 적 만주군을 격파한다. 제3군은 여순 요새를 조속히 함락시키고 만주 전선에 합류한다. 연합 함대는 적 태평양 함대를 격멸한다."
대본영의 총공격 명령에 따라, 요양과 여순 2개 전선에서 공세가 준비됐다.
이미 우기는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인 장마철이 오기 전인 6월 하순에 총공세가 계획됐다.
개전 4개월 만에 어마어마한 군비를 쏟아부은 일본 군부는 조속한 승리와 종결을 희망했다.
하지만 20세기의 전쟁은 19세기와 달랐다. 계획적인 단기전을 희망하는 자들에게는 군신 마르스의 저주가 있으리라.
6월 초순, 제3군은 여순을 향해 진격하며 주변 고지들을 점령해 나갔다. 특히 여순 동쪽의 대고산과 소고산 고지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러시아군은 격렬히 저항했지만, 끝내 대고산과 소고산을 내주고 여순 요새로 퇴각했다.
"포트 아르투르의 태평양 함대는 속히 블라디보스토크로 항진하라."
일본 육군의 접근에 러시아 해군은 이대로 항구에 갇혀 전멸당할 것을 우려했다.
6월 12일, 태평양 함대는 황해 해상으로 나섰다. 일본 해군은 함대 결전의 기회를 포착하고 전투에 나섰다.
"적함을 섬멸하라! 태평양 함대를 해상으로 풀어 주면 안 된다!"
태평양 함대는 교전을 회피하고 도주하려 했지만, 연합 함대의 끈질긴 공격에 대규모 교전을 벌여야 했다. 반나절의 짧은 교전 동안, 양측은 1만 발의 포탄을 주고받았다.
태평양 함대 기함 체사레비치(Tsesarevich)가 대파당하고, 나머지 전함 5척도 소파됐다.
연합 함대 기함 미카사(三笠)도 대파되는 손실을 입어, 수리를 필요로 했다. 이제 당장 일본이 쓸 수 있는 전함의 전력은 3척 뿐이었다.
전술적으로는 무승부였지만, 전략적으로는 일본의 승리였다. 태평양 함대는 끝내 여순으로 회항하여 다시 나오지 못했다. 본국에서 수리를 받을 수 있는 일본 군함들과 달리 태평양 함대는 여순에 포위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수리도 할 수 없었다.
이로써 태평양 함대의 전략적 가치는 사라져 버렸지만, 전술적 가치는 남아 있었다.
"이제 어쩔 수 없다. 전함은 내항에서 해상 요새의 역할을 한다. 접근하는 육군을 향해 함포사격을 가하라!"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여순 요새에, 항구의 전함들까지 해상 요새로 더해졌다. 이들은 일본군에게 피 한 방울이라도 더 짜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일본군 사령부는 여순의 러시아군에게 항복을 권유한다. 요새가 항복한다면, 군대와 민간인들의 안전한 퇴거를 약속한다. 이는 최후통첩이다."
일본군은 총공세를 앞두고 항복을 권유했다. 물론 러시아군은 단호히 거부했다.
"주님과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러시아의 깃발이 한 번 게양된 곳은 결코 내려갈 수 없노라!"
항복을 거부하리라 예상했던 일본군은 계획대로 공세를 준비했다.
제3군은 보병 3개 사단(1사단·9사단·11사단), 후비 보병 2개 여단, 포병 1개 여단으로 6만 명이었다. 중포 200문을 포함해 약 400문의 대포를 보유했다.
"6월 22일, 모든 전선에서 포격을 개시한다. 서부 방위선의 진지에 양동공격을 가한다. 24일 새벽에 주력이 동부 방위선을 돌파한다. 전군이 일제히 공격하여 요새를 조기에 함락시킨다!"
3군 사령부는 여순 요새의 동쪽이 취약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동부전선에 전력을 동원하기로 결정했다.
"친애하는 외빈 여러분, 전쟁을 직접 목격하고자 원로에 고생이 많았습니다. 여러분의 고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일본군이 불굴의 정신으로 승리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세 전날, 3군 사령관 노기 마레스케 대장은 외국 관전무관과 종군기자 앞에서 승리를 다짐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노기 장군의 자신감이 대단하군요. 하지만 요새 포위전이 그리 쉬운 게 아닐 터인데."
"호오. 포위된 북경 공사관을 지켜 낸 영웅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관전무관들 중에는 대한제국 육군 참령 이갑과 해군육전대 정위 안중근도 있었다.
"으음, 북경 공사관 구역의 방어와 여순 요새의 방어는 차원이 다르지요. 물론 공격자인 의화단과 일본군의 차원도 다릅니다만. 요새 내부의 정보가 별로 없어서 뭐라 말하기 어렵습니다만, 일본군에게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것 같습니다."
"육군대학에서 참호와 요새에 대한 강의를 들었소. 강의로만 들었을 때는 체감이 되지 않았는데, 금주 전투에서 직접 보게 되니 기관총과 지뢰로 방어되는 참호의 위력은 대단하더군. 여순은 금주보다 몇 배는 강력하오. 일본군이 금주 전투에서 전훈을 배우지 못했다면, 희생이 엄청날 거요."
"과연……."
이갑은 일본군에게 비관적인 전망을 했다. 육군대학 스승 팔켄하인의 이론은 러일전쟁에서 현실로 드러나고 있었다.
이갑과 안중근은 20세기의 전쟁 현실을 똑똑히 보고 가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지난 시간 동안 요새 방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 비겁한 기습을 가한 일본군에게 똑똑히 대가를 치르게 해 주자!"
요새 방위 사령관 스미르노프 중장과 부대 지휘를 맡은 제7동시베리아 보병사단장 로만 콘트라첸코(Roman Kondratenko) 소장이 방위군을 격려했다.
콘트라첸코는 실질적인 요새 방위전의 지휘관으로, 여순의 요새화를 위해 노력했다.
본래 포트 아르투르 요새는 1898년 처음 건설된 이래, 1909년까지 완공될 예정이었다. 1905년 현재는 미완공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역사보다 개전이 1년 늦춰지기도 했고, 개전 이래 필사적으로 요새를 보강한 결과 장기간의 포위를 견딜 수 있는 강력한 요새로 변모했다.
"요새 방위에는 부족함이 없다."
방어선은 30km에 달했으며, 요지마다 콘크리트로 건설한 포대와 보루가 설치되었다. 포대와 보루 사이에는 철조망과 참호가 구축되었고, 곳곳에 지뢰가 깔렸다.
요새 외곽에는 고지대마다 전방 진지가 설치되어 주 방어선을 보호했다.
요새 내부에는 거대한 요새포 수십 문이 배치되어 유동식으로 회전사격을 가할 수 있었다.
전방 진지를 빼앗기면 요새 방위가 어려워진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완벽한 요새라고 할 수 있었다.
"족히 6개월 이상, 내년 초까지는 버틸 수 있다."
유일한 단점은 식량과 포탄이었다. 여순은 육해상이 모두 포위되었기 때문에, 요새 내에 비축된 식량과 포탄만으로 버텨야 했다. 아껴서 분배한다면 6개월 이상은 버틸 수 있겠으나, 포위가 풀리지 않는다면 더 버티기 어려웠다.
일본군이 요새의 사정을 알았더라면, 요새를 포위한 채로 고립시켜 식량 고갈을 기다리는 게 현명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일본군은 전쟁의 조기 종결을 원했기 때문에 공세에만 몰두했다.
그나마도 잘못된 정보에 의존하고 있었으니, 일본군은 러시아군이 지난 몇 년간 요새를 얼마나 강력하게 바꿨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군이 러시아군의 취약지점으로 지목한 동부 방위선은, 실상은 가장 강력한 방위선이었다.
일본군은 지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전군, 포격 개시!"
6월 22일 새벽, 전 전선에서 일제히 포격이 개시되었다.
콰앙! 콰아아앙!
격렬한 포성이 요새 외벽을 두드렸다.
이틀간의 치열한 포격으로, 일본군은 러시아군의 방어선 일부를 무너트렸다고 믿고 돌격을 명령했다.
"全軍, 突擊!"
"天皇 陛下 萬世!"
24일 오전, 일본군 5만 명이 일제히 러시아군 진지를 향해 돌격 구호를 외치며 돌격했다.
"В БОЮ(전투태세)!"
"ПЛИ(발사)!"
콰앙! 콰앙!
타다다다다다당!
포탄과 총탄이 전선을 향해 빗발처럼 쏟아졌다.
"돌격! 돌격!"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전우들, 비록 한 줌의 흙이 되더라도 야스쿠니에서 다시 만나자!"
"천황 폐하 만세!"
장교들은 돌격을 채근했다. 전장의 격렬한 포탄 소리에 명령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고, 병사들은 감각만으로 돌진해야 했다.
9사단 소속 사토 히로시(佐藤博) 소위는 이번이 첫 전투였다.
그는 러시아를 증오했다. 중학교 시절, 사토는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돕기 위해 청나라를 무찌르고, 마침내 일본군이 요동과 대만을 획득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던 수많은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비보를 전해 왔다.
"러시아, 독일, 프랑스가 요동을 빼앗아갔다. 일본은 아직 저들 서양 열강에 맞설 힘이 없다. 와신상담하여 원수를 갚자."
사토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지도의 요동반도를 검게 칠하며, 러시아에 원수를 갚을 날을 기다렸다. 그 순간, 사토는 진로를 사관학교로 정했다.
사토는 소원대로 군인이 되었다. 삼국간섭을 주도하고, 만주를 점령하고, 북방에서 일본을 위협하는 러시아를 징벌해 대륙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고, 제국의 국위를 만방에 떨쳐야 했다.
여순 공략전에 투입된 9사단의 일원으로, 사토는 요새에 일장기를 꽂는 용맹한 위업을 이루고 싶었다.
그런데…….
"연대장님! 철조망을 뚫어야 합니다!"
"공병대는 뭐하고 있는 거야! 제기랄!"
"빨리 철조망 절단해! 지뢰 조심하고!"
"돌격, 돌격! 물러서지 말라!"
적의 포탄을 뚫고, 지뢰밭과 철조망을 넘으면 참호의 기관총이 기다리고 있었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당!
적의 기관총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눈 먼 총탄에게 자비란 조금도 없었다. 총탄이 어지러이 쏟아질 때마다, 수많은 병사가 쓰러져 나갔다.
지뢰밭과 철조망을 뚫고, 수많은 전우들의 시체를 딛고서, 적 참호에 접근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사토 소위의 소대도 그중의 하나였다. 척탄병이 총알 세례를 맞으면서도 폭탄을 적 참호를 향해 던졌다.
콰앙!
"着劍!"
"ПРИМКНУТЬ ШТЫКИ!"
알지 못하는 말과 함께 위압적인 러시아 병사들이 참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죽여라!"
참호의 좁은 통로에서, 피와 살이 튀는 격렬한 육박전이 벌어졌다.
총검으로 찌르고, 군도로 베고, 개머리판으로 찍어 내리고, 그조차도 없으면 야전삽을 휘두르고 돌멩이를 던졌다.
이성 같은 게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살기 위해 적의 살을 도려내고 피를 뒤집어써야 했다.
"죽고 싶지 않아!"
"이건 미친 짓이야, 빌어먹을!"
양측 장교들은 권총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도망치는 병사들을 향해 위협사격을 했다.
"도망치지 마라! 죽을 때까지 싸워!"
"За дезертирство- расстрел на месте(탈영병은 현장에서 총살이다)!!"
지휘관들에게 병사란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죽을지언정 의무를 다해야 했고, 적전도주는 용납할 수 없었다.
"허억허억허억……."
사토 소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들고 있던 장교용 사브르는 어디로 갔는지, 그는 노획한 야전삽을 들고 휘둘렀다. 삽에는 피와 살점이 튀어 있었다. 군복도 피로 칠갑되어 있었지만, 부상으로 흘린 피인지 적의 피인지 알 수 없었다.
참호에 러시아군이 보이지 않았다. 오직 시체만이 있었다. 나머지는 도망간 게 틀림없었다.
이겼다. 이긴 것이다. 그 지옥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이긴 것이었다.
"흐흐흐……."
사토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일장기는 없었다. 야전침대용 시트인지, 대신 하얀 천이 보였다.
사토는 군복에서 묻은 피를 하얀 천에 닦았다.
하얀색 천이 서서히 피로 물들었다. 붉은색 피로 물든 원형이 보였다.
병사들의 피로 만들어진 깃발. 이보다 일장기로 더 어울리는 소재가 없었다.
사토는 참호에 깃발을 내걸었다.
시체의 산 위에, 피로 물든 일장기가 휘날렸다.
1차 공세는 6월 28일까지 지속되었다가 중단되었다.
이 기간 동안 일본군의 전사자는 약 6천, 부상자는 1만 2천에 달했다. 단 1주일 만에, 일본군은 1개 사단 이상의 병력을 상실했다.
3군 지휘부는 광신적인 돌격을 반복했지만, 이 정도 피해를 입으면서 얻은 성과는 전방의 고지 몇 개를 점령한 게 전부였다.
일본군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적을 과소평가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비로소 여순 요새가 단기간에 함락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지만, 수많은 병사들의 희생으로 얻은 교훈이라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러나 공세가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급히 후속 부대가 편성되어 큰 피해를 입은 3군에 보강되었다. 전략적 이유에서라도, 체면 때문에라도 여순은 반드시 함락되어야 했다.
2차 공세가 다음 달로 예정되었다. 아니, 여순이 함락될 때까지 공세는 계속될 것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활짝 열려 있었다.
- 88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