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408화 (407/812)

89화 요동 전역(戰域)

1차 여순 공방전의 결과, 일본군의 만주 진격, 러시아의 정치적 변동 등이 이선에게 보고되었다.

이선은 정보 확인을 위해 세계 곳곳에 정보망을 깔았다. 여순, 요양, 북경, 도쿄, 페테르부르크, 런던, 파리, 베를린, 워싱턴 등에서 극비 전문이 한국으로 전해졌다.

"단 5일 만에 사상자가 1만 8천이라. 요새 공격의 특성상 방어 측은 사상자가 훨씬 적을 거고."

공세 5일 만에, 제3군 병력 중 30%의 사상자를 냈다. 개전 초기 일본군 상비 병력이 20만이었으니, 그 손실이 결코 적다할 수 없었다.

"홋카이도 7사단이 여순 공세에 투입. 8사단은 만주 작전에 투입. 그야말로 모든 패를 걸었군."

일본군은 본토에 남아 있던 상비 병력을 모두 전선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후비군도 속속 소집되어 만주로 향했다. 이제 본토 방위는 국민군과 신병에게만 맡겼다.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은 최대한 만주에 투입한 것이다.

"러시아 내무대신 플레베 암살. 대로에서 폭사. 탄압밖에 모르는 강경파에게 어울리는 죽음이군. 니콜라이가 이제라도 정신 차려야 할 텐데……."

수도의 대로 한복판에서 벌어진 내무대신 암살은 전 러시아를 놀라게 했으나, 슬퍼하고 애도를 표하는 사람은 니콜라이 2세와 몇몇 인사뿐이었다.

러시아인들 대부분은 철권통치의 상징과도 같았던 인물의 죽음을 내심 기뻐했고, 폴란드와 핀란드에서는 사람들이 암살을 공개적으로 축하할 정도였다.

차르도 이제 탄압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전제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들에게 타협책도 내놔야 했다. 후임 내무대신으로는 온건 개혁파 인사가 고려되었다.

"이제 요양 전투의 결과에 향후 전쟁의 형세가 달렸군."

일본군 1,2,4군은 러시아군의 방어를 뚫고 요양 주변에 집결했다. 러시아군의 병력 집결도 마침내 이루어져, 양군이 그토록 고대하던 회전(會戰)의 요건이 무르익었다.

요양 회전에 전쟁 초반기의 성패가 달려 있었다.

그 무렵, 일본의 여론은 들끓고 있었다.

여순항 해전에서 전함 2척을 상실하고, 1차 여순 공방전에서 1만 8천의 사상자를 냈다는 상황은 보도 통제로 인해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 대중이 직접 만주로 가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위협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러시아 순양함대가 일본해(동해)를 제멋대로 헤집고 다니는데, 대체 2함대는 뭘 하고 있는 거냐!"

블라디보스토크의 태평양 분함대는 여순 본대와의 합류에 실패하자, 사령관 카를 에센(Karl Jessen) 소장의 지휘 아래 통상파괴전에 나섰다.

분함대에는 본래 순양함 3척이 있었고, 개전 이전에 발트 함대에서 여순으로 보냈다가 전쟁 발발로 인해 도착하지 못한 군함이 추가로 합류했다.

순양함 6척으로 구성된 순양함대는 분산되어 동해 곳곳을 헤집고 다니며 일본 선박들을 공격했다.

본래 목표대로 기선이나 어선만 제압하는 게 아니라, 일본을 출발해 원산으로 향하던 일본군 수송선까지 공격하는 일이 발생했다.

수송선 4척이 항복을 끝내 거부하여 격침되고, 후비 근위보병 1연대 병력 2천여 명이 모조리 수장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후비군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이 본래 근위사단 소속인 점을 감안하면 뼈아픈 손실이었다.

"해군의 무능으로 육군 2천 명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대체 이 책임은 누가 질 거냐?"

"2함대 사령관은 책임지고 할복하라!"

군중은 2함대 사령관 가미무라 히코노조(上村彦之丞) 중장의 자택을 습격하여 돈을 던졌다. 심지어 ‘할복하라’는 의미로 단도를 꽂아 두고 가는 자도 있었다.

이런 흉흉한 분위기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블라디보스토크 순양함대가 소야 해협을 돌파하여 기선을 격침시키고, 도쿄만 근처까지 나타났다 유유히 귀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가뜩이나 ‘로탐(러시아 스파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2함대는 일명 로탐함대(露探艦隊)로 찍혀 버렸다.

"2함대는 무능한 거냐? 로탐인 거냐?"

러시아 순양함이 도쿄만까지 나타나자 여론은 격노했다.

2함대 담당 해역이 워낙 넓었고, 통상파괴전으로 치고 빠지는 순양함을 잡기 쉬운 게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런 사정은 대중이 알 바 아니었다.

해군이 당장 순양함대를 때려잡지 못하면 격노한 여론에 의해 해군성까지 공격당할 분위기였다.

"해군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잡고야 만다."

가미무라는 이를 갈았다. 여순을 포위한 연합함대에서 순양함을 추가로 내줘 2함대는 순양함 10척으로 구성됐다.

치고 빠지는 순양함대를 추격하던 2함대는 마침내 울릉도 앞바다에서 교전하게 되었다.

순양함 8척과 4척의 대결, 2함대는 4시간의 교전 끝에 순양함대를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순양함대는 장갑순양함 류리크와 바랴크가 분투에도 불구하고 격침되었고, 2척은 중파를 당한 채 블라디보스토크로 퇴각했다.

더 이상의 손실을 두려워한 상부의 명령으로 순양함대도 결국 블라디보스토크에 틀어박히고 말았으니, 서해에 이어 동해의 제해권도 일본 해군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과정이야 어쨌건 해군은 결국 제해권을 확보하지 않았나! 육군도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

해군의 승리는 육군에게 질 수 없다는 자극을 주었다.

6월 한 달 동안, 남만주 곳곳에서 일본군과 러시아군의 교전이 이루어졌다.

천산산맥을 넘어 요양을 향해 진격 중인 제1군, 금주에서 남만주 철도를 따라 북상 중인 제2군, 1군과 2군 사이에서 북상 중인 제4군의 목표는 모두 요양 평야였다.

러시아 만주군 남부지대가 주둔하는 영구(營口), 대석교(大石橋), 해성(海城)에서 잇달아 전투가 벌어졌다.

결과는 번번이 일본의 승리였다.

러시아군이 제대로 교전도 하지 않고 퇴각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군이 목표한 승리는 아니었지만, 어쨌건 러시아군을 계속 북쪽으로 몰아내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결국 안산과 요양까지 퇴각했다.

"요양에서 러시아군을 격파한다. 빠른 양익 기동으로 적을 포위 섬멸한다. 요양은 이 전쟁의 스당이 될 것이다."

청년 장교 시절,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관전무관으로 스당 전투를 참관한 일본 만주군 사령관 오야마는 몰트케의 전략을 우상으로 삼았다.

프로이센군이 프랑스군을 스당에서 대파해 초기에 승리를 거뒀듯이, 일본군도 소극적인 러시아군을 격파하고 요양 요새에 가두는 게 목표였다.

"도대체 만주군은 뭘 하고 있는 거야?"

페테르부르크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만주군 총사령관 쿠로파트킨은 소극적인 전략으로 퇴각만을 거듭하고 있었다.

쿠로파트킨의 전략은 단순했다. 그는 일종의 내선작전(內線作戰)을 계획했다.

"아군의 집결이 완성될 때까지, 일본군의 피해를 누적시켜 지치게 하고 북쪽으로 끌어들여 격퇴한다."

쿠로파트킨은 1812년 ‘조국전쟁’ 당시 쿠투조프의 전략을 모방하고 있었다. 시간과 공간을 활용해 병력의 우위를 점하고, 힘이 빠진 적을 상대로 최후의 승리를 거둔다. 바로 쿠투조프가 조국전쟁에서 나폴레옹을 격퇴한 전략이었다.

일본군이 몰트케를 모방하는 데 골몰하고 있었다면, 러시아군은 쿠투조프를 모방하는 데 골몰했다.

전쟁의 변화 양상을 생각하면 양군 모두 시대에 뒤떨어졌지만, 쿠로파트킨의 시대착오가 더 심했다.

"이미 아군의 병력이 우세한데, 언제까지 퇴각만 할 건지."

개전 4개월이 지나, 요양과 봉천 일대에 집결한 러시아군은 20만에 달했다. 극동 군관구, 시베리아 군관구, 바이칼 군관구에 속한 병력이 모두 집결했고, 유럽 러시아의 병력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동쪽으로 향했다.

비록 시베리아 철도가 단선으로 인해 수송력이 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러시아군의 집결 속도는 생각만큼 느린 게 아니었다.

문제는 러시아군 지휘부가 일본군 병력 규모를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적의 공격 추세를 보건대, 예비대가 넉넉한 게 틀림없다. 적 병력은 대략 18만 이상으로 추정된다."

러시아군의 전쟁 수행은 여전히 1877년 러시아-튀르크 전쟁에 머물러 있었다. 병력의 절반을 예비대로 돌려,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병력을 투입시키는 방식이었다.

그에 비해 일본군은 특유의 ‘공격 정신’으로 전투마다 예비대 없이 전 병력을 투입시켰다.

러시아군은 일본군이 자신들처럼 넉넉한 예비대가 있다고 착각하고, 더욱 소극적으로 응했다.

"적의 방위 추세를 보건대, 병력이 부족한 게 틀림없다. 적 병력은 대략 15만 이하로 추정된다."

일본군은 러시아군의 집결이 끝나지 않았다고 착각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섰다.

러시아군은 일본군이 18만 이상이라고 추정하고, 일본군은 러시아군이 15만 남짓이라 추정했다.

실상은 요동 전역(戰域)에 일본군은 13만 명이 있었고, 러시아군은 20만 명이 넘었다.

이처럼 일본군은 러시아군의 수송 능력을 과소평가했고, 러시아군은 일본군의 동원 능력을 과대평가했다.

"철도 간선은 아군이 장악하고 있고, 적 1군과 2·4군의 전선이 요양을 사이로 나뉘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남부지대가 적을 요격하며 시간을 벌어 주는 동안 본대와 동부지대가 1군을 격멸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군 참모장교 안드레이 알렉세예비치 브론스키(Andrei A. Vronsky) 대령은 사령부에 공세를 건의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적 1군은 5만 이하였다. 2군 및 4군과 합류하기 전에 충분히 격퇴할 수 있었다.

"안되네. 만약 한국군이 일본 1군과 연합하고 있다면? 적 병력이 5만 이하라는 보장이 없어. 기껏 아군이 점한 방어선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

"전쟁은 톨스토이의 소설이 아니라네, 대령. 하하하."

브론스키의 건의는 사령부에게 무시되었다.

하필이면 그의 성이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브론스키 백작과 같은 바람에 놀림을 받기가 일쑤였다. 더군다나 그의 이름도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과 같았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두 인물의 직업은 모두 장교다.

톨스토이의 소설은 이미 당대에 러시아인들에게 필독서나 다름없었기에, ‘장교 안드레이 브론스키’라는 이름을 대면 사람들의 첫 반응은 대개 비슷했다.

"호오, 안나 카레니나와 열렬한 사랑을 나눈 바로 그 사람이군요!"

브론스키 자신도 톨스토이 소설을 즐겨 읽었지만, 30년째 따라다니는 소설 캐릭터 꼬리표에 질려 있었다.

브론스키는 전쟁대학을 졸업한 유능한 참모장교였다. 40대 중반에 대령 계급을 달아 진급도 비교적 빨랐지만, 그의 이름이 주는 각인 효과는 상당했다.

브론스키가 아무리 유능한 참모라 할지라도, 기라성과 같은 5-60대 ‘똥별’들이 장성 직을 독점하고 있는 이상 발언권은 거의 없었다.

‘하, 독일군이었으면 전쟁대학 나온 참모장교가 이렇게 무시당하지 않았을 텐데.’

브론스키는 투덜거리며 자신의 막사로 돌아온 뒤, 그 못지않게 특이한 성을 가진 부하 장교를 막사로 불러들였다.

"김 대위,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음. 어서 오게, 빅토르 김 대위."

러시아군에서 드문 동양인 장교가 브론스키에게 경례를 올렸다. ‘김’이란 성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한국계 러시아인, 즉 고려인이었다.

"대위는 얼마 전까지 한국에서 근무했지?"

"예, 작년까지 주한 공사관 주재무관으로 있었습니다."

"현재 한국은 중립을 자처하면서 일본에 협력하고 있지. 러시아한테 그렇게 신세를 많이 졌는데 말이야."

빅토르 김은 순간 움찔했다. 전쟁으로 인해 혹여 고려인 전체의 충성심이 의심받을지, 개전 이래 늘 고민이었다.

"대령님, 저는 고려인이기 이전에 황제 폐하께 충성을 맹세한……."

"알아, 아네. 나는 고려인의 충성심은 믿어 의심치 않아. 제국에 충성스러운 소수민족이지. 하물며 장교까지 된 사람을 누가 뭐라 하겠나.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닐세."

브론스키는 빅토르 김을 안심시켰다. 그는 러시아 귀족 출신으로는 드물게 인종적 편견이 없는 사람이었다.

"한국 황제는 러시아에 적대할 뜻이 없다고 들었는데, 맞나? 자네는 황제를 여러 번 봤을 것 같은데."

"제가 지켜본바, 한국 황제께서는 러시아에 언제나 우호적이었습니다. 현재의 협력은 일본과의 동맹 관계로 인한 부득이한 조치로 사료됩니다."

본래 이선은 고려인의 우상이었다. 빅토르 자신도 어렸을 때 연해주에서 이선을 직접 본 사람이고, 고려대대를 시작으로 군 생활을 하게 됐다. 상관으로부터 유능함을 인정받아 정식 사관학교에 입교했고, 고려인 최초로 대위를 넘어 영관까지 진급할 인재라고 평가받았다.

다민족국가인 러시아 제국은 의외로 인종 차별이 적었고, 특히 군대는 더욱 그랬다.

"그런데 한국 여론은 러시아와 싸우는 쪽을 선호하는 것 같더군. 소위 자치령은 더욱. 한국군 7사단이 자칭 의용군이 되어 방위에 나섰다는데. 사령부는 7사단뿐만 아니라 한국군이 위장하여 일본군과 함께 진격 중이라고 의심하고 있네."

러시아군은 여전히 무순과 본계를 점거하고 있었다. 남만주 철도와 지선으로 이어진 무순과 본계는 봉천 방어에 필요하다는 명분이었다.

러시아군 사령부는 한국을 의심했고, 한국군이 일본군의 우군으로 봉천을 공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렇기에 봉천-무순-본계 일대에 3만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했겠지요. 7사단이 자치령 의용군 소속으로 들어간 건, 한국이 러시아와 적대하는 상황을 피한 채로 자치령을 방어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 추정합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네. 사령부는 자신들이 빌미를 주어 한국 여론을 격동시켜 놓고선, 한국군이 적 1군과 합류하여 공세를 하리라는 상상을 하고 있어. 그러니 제대로 된 평가를 할 리가 있나."

브론스키는 혀를 찼다. 그가 보기에 사령부는 한국군이 유령과도 같이 러시아군의 배후에 나타나 기습하리라는 피해망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귀관이 자치령과 한국을 정탐했으면 하네. 귀관은 한국어가 모국어고, 생김새도 똑같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겠지. 한국군의 참전 여부,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확실히 파악하게."

"예, 알겠습니다."

"한국이 참전으로 기울 것 같으면 중립 공작을 벌이게. 현지 정보원들이 협력할 거야. 한국을 중립으로만 묶어도 충분해. 할 수 있겠나, 대위?"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빅토르가 순순히 임무를 받아들이자, 브론스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귀관의 유능함과 성실함을 높이 평가하네. 임무를 완수한다면, 중령까지는 내가 책임지고 진급할 수 있도록 하겠네. 그 이후는 귀관에게 달렸지만, 어쩌면 고려인 최초의 장군도 가능하겠지."

"러시아 제국을 위하여 이 한 몸 아끼지 않겠습니다!"

"좋아, 그럼 즉시 임무에 나서도록."

빅토르는 거수경례를 하고 막사에서 나왔다.

장군이라니, 소수민족 출신인 그로서는 바라지도 않는 자리였다.

러시아 제국에서 장군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치를 감안하면, 출세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최대까지 오르는 것이다.

그 자신과 고려인 전체를 위해서라도, 그는 성공해야만 했다.

- 90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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