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423화 (422/812)

104화 만주의 언덕에서

러일전쟁의 가장 결정적인 지상전이 될 봉천 회전은 러시아군의 승리로 끝났다.

실제 역사와 달리 러시아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 개전이 1년 늦어지면서 발생한 변수.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바이칼 구간이 부설 완료됨에 따라 운송 능력이 크게 개선됐고, 여순 요새를 충실히 보강함으로써 방어 태세를 완비했다.

둘째. 이로 인해 여순 공방전에서 일본 3군의 피해가 훨씬 늘어났고, 일본군은 그 피해를 결국 메꾸지 못했다. 오히려 러시아군은 철도로 더 많은 병력을 보강 받을 수 있었다.

셋째. 소극성과 무능함 일색이었던 러시아군 사령부에 브루실로프를 비롯한 새로운 지휘관들이 합류하여 활기를 부여했다. 대반격은 브루실로프의 공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넷째. 반격이 가능할 수 있었던, 정보 비대칭의 해결. 병력이 적은 만큼 일본군은 정보 획득에 훨씬 노력했고, 기만전술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그에 비하면 러시아군은 제대로 된 정보를 확보하지 못한 채 늘 끌려다니는 쪽에 가까웠다. 한국 ‘스파이’가 비밀리에 제공한 정보 덕에 러시아는 비로소 전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고, 반격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봉천 회전은 러시아군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다.

봉천 회전이 2주 동안 치열하게 전개되는 동안, 전선 최우측에 있던 자치령 의용군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하면-.

의용군은 지금껏 제자리만 지키면서, 형식적인 공격만 몇 번 해 왔을 뿐이었다. 러시아군 역시 굳이 어떠한 반격도 하지 않았다.

"사령관 각하! 저 청국 마적 무리들조차 의군을 자처하며 러시아의 배후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용군을 자처하면서 어찌 동맹군의 고난을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합니까?"

북진파 장교들이 일본군의 붕괴 위기에 우려를 표했다.

장작림이 이끄는 만주 의군은 러시아군의 후방에서 계속 유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교활한 마적 두목 장작림은 일본군이 패배해도 계속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는 일본군이 퇴각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장 먼저 발을 빼려 들 터였다.

"지금이라도 공격에 가담해 우군의 위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과 같이 죽자는 말인가?"

"황명이다. 섣불리 나서서 피를 흘리지 말라!"

권동진과 노백린은 황명을 내세워 북진파를 잠재웠다.

이미 의용군은 언제든지 전선에서 빠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군사지원단장 이동휘는 은밀히 전선 너머의 관전무관 유동열과 내통 중이었다. 유동열이 극비정보를 러시아군에게 넘겼다는 걸 확인한 이동휘는, 러시아군의 정보 비대칭성이 해결되길 바랐다.

과연 러시아군이 목표대로 반격으로 돌아서자, 이동휘는 노백린에게 사람을 보내 속히 퇴각할 것을 권했다. 노백린은 즉시 받아들였다.

"사령관 각하, 러시아군이 공세로 전환했습니다. 이제 철수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그래, 결국 일본이 졌군. 입맛이 쓰지만, 애초에 공세에 가담하지 않은 게 현명한 선택이었네. 전군, 본계로 퇴각한다."

결국 의용군 2만은 싸우지도 않고 본계로 빠르게 퇴각했다.

이제 후일은 정부의 몫이었다.

"바카야로(馬鹿野郎)! 대본영과 사령부의 미친 새끼들이 결국 이렇게 만들 줄 알았어. 대체 어떤 새끼의 대가리에서 나온 작전이야? 이 개새끼들이 직접 전방에서 총을 맞아 봐야 하는데!"

최전방에 고립되었다가 간신히 살아남은 9사단 35연대 사토 히로시 중위는 나직이 욕설을 내뱉었다.

히로시는 여순 공방전에서 지금까지 멀쩡하게 살아남은 드문 하급 장교였다.

그의 동료들, 전우들은 대부분 다 죽거나 부상당했거나 병에 걸려 쓰러졌다. 그 자신도 몸과 정신에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한겨울 영하 40도의 혹한을 겪을 때는 진짜로 미칠 것 같았다.

히로시는 대본영과 사령부를 저주했다. 대본영은 만주군을 끊임없이 닦달하고, 만주군은 3군을 끊임없이 닦달하고, 3군은 9사단을 끊임없이 닦달하고, 9사단은 예하 연대를 끊임없이 닦달했다.

언제나 말은 똑같았다.

「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빠른 공세만이 살길이다! 조속히 적을 무찌르고 고지를 함락시켜라!」

그게 지도상에는 쉬워 보일지 몰라도, 최전방의 병사들에게는 지난하고도 어려운 길이었다.

"칙쇼(畜生)! 내가 그 새끼들보단 오래 살아야겠다. 살아서 이따위 명령 내린 놈들 낯짝 좀 보자.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단 말이다!"

여순에서도, 봉천에서도 최전방에 돌격하다 무의미한 죽음을 무수하게 봐 온 히로시는 이제 사령부의 명령만 떠올려도 신물이 났다.

"최소한 내 소대만큼은 개죽음은 사양이다. 소대원, 나를 따르라! 내가 책임지고 너희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겠다!"

히로시는 반 이하로 줄어들은 소대원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이미 사단은 총체적으로 궤주 중이었다. 최전방에서 악전고투한 9사단은 이미 총원의 4분의 1까지 줄어들어 있는 상황이었다. 33연대처럼 통째로 전멸한 연대도 있었다.

히로시는 이를 앙다물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생각이었다.

히로시의 소대는 칼을 빼들고 총을 쏘며 후방으로 나아갔다. 아군이 흘린 피와 적군의 피로 피칠갑을 하며, 지난한 퇴각의 길을 걸었다.

"코, 코삭이다!"

"교전하지 말고 도망쳐!"

카자크는 특히 무서운 적이었다. 이들은 항복조차 받지 않았다. 항복하겠다고 손을 번쩍 든 일본군의 손을 베어 버리고 그대로 앞으로 돌진했다. 항복은 차후에 보병이 도달한 후에야 받았다.

3월인데도 만주는 여전히 추웠다. 마치 1812년 나폴레옹 군대의 러시아 퇴각과 유사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추위, 추격해오는 카자크.

힘겨운 퇴각을 하면서, 히로시는 적을 저주했다. 하지만 대본영이 더 저주스러웠다.

무수히 많은 시체를 넘고, 히로시는 마침내 사하를 건너 9사단 본대에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기적적인 생환이었다.

그러나 소대의 생존자는 자신을 포함해 겨우 네 명뿐이었다.

9사단은 잔해만 남아 있었다. 이제 사단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정도였다.

"악마 같은 러시아 놈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대본영 놈들! 전우들의 원한은 반드시 갚고 말겠다."

히로시는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천황의 장교로서 충만했던 애국심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남은 건 분노와 원한뿐이었다.

결코 이 전쟁의 교훈을 잊지 않을 것이다. 살아서 일본으로 돌아간다면, 이 미친 전쟁에 병사들을 내몬 윗대가리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다.

만주군 사령부는 사하에서 남만주 철도를 따라 요양까지 퇴각했다. 요양에서 군이 재편되고, 방어 태세로 돌아섰다.

전사 1만 8천, 부상 6만 7천, 포로 1만 5천, 실종(낙오) 1만에 달하는 결과가 사령부에 정확히 집계되어 보고되진 않았지만, 그들은 패배를 절감했다.

이제 전선에서 싸울 수 있는 병력은 15만 이하였다. 포탄도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이것만 봐도 봉천 회전의 결과가 뼈저리게 느껴졌다.

"일단 요양에서 방어하겠지만, 만주군은 더 이상 싸울 여력이 없소. 강화를 요청해야 하오."

"만주에서 방위전이라도 펼치려면 새로 6개 사단은 편성해야 하는데, 본국에 그럴 여력이 있을 리가 없지요. 파멸만은 막아야 합니다. 제가 직접 도쿄로 가서 전황을 알리고, 정부에 강화를 요청하겠습니다."

만주군 총사령관 오야마 원수와 총참모장 고다마 대장은 현실을 인정했다. 일본군은 재기할 힘이 없지만, 러시아군은 앞으로 계속 보강될 것이다.

대련에서 도쿄로 돌아가는 배에 올라탄 고다마는 참담했다. 애초에 그는 대만 총독을 지내며 육군 내에서도 북수남진론자였고, 러시아와의 전쟁은 위험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국 육군-조슈 번벌의 영수인 야마가타를 따른 결과, 40년 동안 쌓아 올린 ‘유신의 대업’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업보다. 국익이 아니라 파벌을 따른 육군의 업보야.’

일본 육군은 패퇴했더라도, 제국이 멸망할 수는 없었다. 이제 남은 건 해군의 승리를 통한 외교적 해결이었다.

더 이상 육군과 해군의 갈등도 무의미했고, 육군의 대륙 확장욕구는 더더욱 무의미했다.

이제 육군 중심의 대륙정책은 끝이었다.

"Ура! победа! (만세! 승리다!)"

"Ура!!!"

마침내 승리를 거둔 러시아군은 만세를 외쳤다. 개전 이래 1년, 패배만 거듭하다 마침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오늘의 승리는 전우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대들은 머나먼 만주에 몸을 묻게 되었지만, 영혼은 영원히 함께하리라!"

봉천 회전은 예술에 있어서도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여순에서 살아남은 전쟁화가 베레샤긴은 봉천 회전에 종군해 전쟁을 화폭으로 담았다. 베레샤긴의 장대한 전쟁화(戰爭畵)에는 ‘묵던(Mukden, 봉천)의 영웅들’이 포함되었다.

봉천 회전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보이며 고지를 지켜 낸 보병 214연대는, 탄약이 떨어지자 총검 돌격으로 일본군의 공세를 거듭 격퇴했다. 전투가 끝나자 4,000명 중 단 700여 명이 살아남았지만 이들은 끝까지 고지를 사수했다.

전투 내내 연주하며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한 군악대도 찬사를 받았다.

살아남은 214연대의 군악대 지휘자가 이 처절한 전투를 한 곡의 음악으로 담았으니, 바로 후대에까지 사랑을 받을 「만주의 언덕에서(На сопках Маньчжурии)」였다.

이 곡의 아름답고도 애처로운 가락은,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머나먼 이국땅에서 만주에서 싸우다 죽어 간 병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것과 같았다.

"알렉세이 알렉세예비치, 장군의 공이 컸습니다. 페테르부르크에서도 장군의 공을 크게 치하할 겁니다."

"하하, 모두의 공이 컸지요. 어찌 나 한 사람의 공이겠습니까?"

브루실로프는 겸손한 태도로 답했지만, 내심 동료들의 찬사를 즐겼다.

"근데 왜 공세는 금지시킨 겁니까? 적 기병의 기만책에 넘어갔다는 걸 깨달았다면, 공세를 재개해야지요!"

"총사령관의 소심증이 승리에도 낫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제 4월이 오면 도로도 진흙탕으로 변할 터인데, 더 늦기 전에 공세를 해야 할 텐데."

"5월이면 1차 수송이 완료되어 50만 대군이 모일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리려는 게 아닐까요?"

쿠로파트킨이 남진을 명령하지 않고 사하에서 전선을 구축한 건, 특유의 완벽주의가 발동한 것으로 여겨졌다. 비록 승리는 했지만 러시아군의 피해도 8만에 달했다.

그런데 이보다 결정적인 요인은, 유럽에서 날라 온 소식 때문이었다.

페테르부르크는 봉천의 승리에 크게 기뻐했지만, 공세 연기 명령을 내렸다.

군사적 요인이 아닌, 정치적 요인 때문이었다.

* * *

봉천 회전에서 러시아가 일본을 격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질 무렵, 유럽은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4월에 스페인 알헤시라스에서 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지만, 독일과 프랑스의 갈등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로 간에 퍼붓던 비난은 갈수록 거칠어져 갔다.

3월 20일, 독일은 부분 동원령을 내려 예비군을 소집했다. 프랑스도 곧바로 같은 조치를 내렸다.

독일과 프랑스 간에 전쟁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폐하, 러시아가 일본과의 전쟁을 끝내서 혁명적 위기를 극복하기 전에 서둘러야 합니다! 참모본부는 4월 초를 목표로 전쟁 준비를 마쳤습니다. 전쟁 개시를 명령해 주십시오!"

"영국이 프랑스를 확고하게 지지한다는 의사를 전달했소. 지금은 전쟁을 해야 할 때가 아니오."

슐리펜의 거듭된 요청에도 카이저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프랑스는 필사적으로 동맹 러시아와 옛 숙적 영국에 매달렸고, 영국 자유당 정부는 독일의 전쟁 시도를 묵과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일본과 전쟁 중인 러시아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였는데, 봉천 회전의 승리로 한숨 돌린 후에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았다.

피의 일요일 이후 국내 사정도 심상치 않은지라, 만주로 계속 보내던 병력도 일시적으로 수송을 연기시켰다.

「일단 현 전선을 유지할 것. 정세가 완화되면, 제2태평양(발트) 함대의 블라디보스토크 도착에 맞춰 공세를 준비한다.」

봉천 회전의 승리에도, 러시아가 원하는 만주 대공세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

봉천 회전에서 일본군이 패퇴하여 요양까지 퇴각했다는 소식은 제일 먼저 한국에 전해졌다.

이선은 제국익문사를 통해 구체적인 피해 상황과 전황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이래서야 일본 육군은 재기불능이군. 마침내 숙원을 달성했다."

대한제국에 두고두고 해가 될 일본 육군이었다. 군사력과 침략 야욕이라는 이빨과 발톱을 모두 뽑아 버린,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그렇다고 러시아의 일방적인 승리도 곤란하지. 그럼 만주는 확실하게 러시아의 지배권역으로 들어갈 테니까."

때마침 유럽 정세가 격화되는 덕에, 러시아군의 만주 공세는 지연되었다.

그 사이에 일본의 요청이 이어졌다.

"정녕 이대로 동맹의 패배를 지켜만 보고 계실 생각이십니까? 만주가 러시아의 군홧발에 짓밟히면 가장 곤란한 건 귀국이 아닙니까? 부디 지원군을 파견해 주십시오."

일본은 한국의 참전을 거듭 요청했다. 이선이 그때마다 거절해 왔지만, 이번에는 영국과 미국이 나섰다는 점에서 달랐다.

"영국과 미국, 두 나라는 러시아의 만주 지배를 결코 용인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은 파멸하고, 러시아가 득세할 상황입니다. 미국이 강화를 중재하겠으니, 한국도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조치를 취해 주십시오."

"대한제국은 러시아에 적극적으로 강화를 중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승리에 도취된 러시아가 순순히 강화에 응하겠습니까? 귀국이 단호한 의지를 보여 주길 바랍니다."

"익히 말씀드렸다시피, 만약 러시아가 장차 대한국이 지배하는 남만주를 향해 진격한다면, 이에 단호히 맞설 것입니다."

"영미가 저렇게 나오니 성의를 보이긴 해야겠군."

한국은 끝까지 중립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동원령을 선포하여 영미가 원하는 한국의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이미 북부 지방에 부분 동원령이 내려진 상황이지만, 광무 10년 3월 25일을 기해 전국 동원령이 내려졌다.

"3월 25일을 기해 전국에 동원령을 발효한다. 국토방위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이다."

이선은 당근과 채찍을 모두 준비했다.

먼저 페테르부르크에 은밀히 봉천 회전의 승리를 축하하는 ‘개인적인’ 전문을 보냈다.

니콜라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몰라도, 최소한 브루실로프와 승리의 공로자들은 ‘한국 스파이’들의 도움을 잊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한국은 유사시를 대비해 동원령도 내렸다.

"역시 귀국은 동맹의 위급을 저버리지 않으리라 믿었습니다! 일본은 결코 적에게 굴복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만주에서 동양의 공적 러시아를 몰아낼 것입니다!"

한국의 동원령 선포에 일본은 즉각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한국군과 함께 만주에서 러시아를 몰아내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일본의 허세와 달리, 이선은 일본이 미국에 강화 중재를 애걸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국은 결코 일본을 위해 러시아와 싸워 줄 생각이 없었다.

‘동원령이 곧 전쟁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 어차피 니들도 빨리 전쟁 끝내고 싶잖아. 마지막으로 해군이 활약해서 전쟁의 저울추를 맞추는 정도지.’

이제 남은 건 강화조약을 체결하여, 전후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균형이 필요했다.

전쟁의 종반부, 러시아 발트 함대와 일본 연합 함대의 결전이 남아 있었다.

- 10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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