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외교 전쟁
7월 중순 미국 포츠머스에서 강화 회담이 시작되기 전, 외교적으로 중요한 사안들이 잇달아 발생했다.
7월 4일, 모로코 문제를 놓고 시작된 알헤시라스 회담은 3개월 만에 프랑스의 외교적 승리로 끝이 났다. 서명에 3개월이나 걸렸지만, 회의 기간 내내 독일은 외교적 고립만 확인했다.
프랑스의 모로코 독점을 여러 국가가 반대해 주리라는 독일의 기대와 달리, 독일을 온전히 지지해 주는 나라는 오스트리아-헝가리뿐이었다. 독일과 동맹관계인 이탈리아조차 중립을 지키는 데 그쳤다.
영국은 확고하게 프랑스를 지지했고, 러시아는 애매한 태도를 보이긴 했지만 결국에는 동맹인 프랑스의 편을 들어주었다. 독일이 주장한 ‘기회 균등과 문호 개방’에 지지를 보여 주리라 생각했던 미국조차 프랑스의 편을 들어주었다.
독일의 체면을 살려 주기 위해, 모로코의 주권과 술탄의 통치권을 보장해 주고, 경찰권을 다시 돌려준다는 조항이 삽입된 걸 제외하면, 모로코는 프랑스의 세력권으로 인정되었다. 프랑스는 사실상 정치·경제·군사적으로 모로코를 장악했다.
독일의 완전한 외교적 패배였다.
독일에 외교적 고립을 안겨 준 영국은, 유럽 문제에 한숨 돌리고 다시 아시아를 바라보았다.
"비록 만주에서는 패했지만, 해군의 압도적인 승리는 일본이 대영제국의 동맹이 될 자격이 있음을 입증했소."
"과연 일본 해군은 영국 해군의 충실한 제자답군요."
"일본이 만주를 지배하겠다는 헛된 생각을 저버리고, 해군력을 충실히 다져 대영제국의 척후가 될 수 있다면 지원해 주지 않을 이유가 없소."
7월 12일, 영국과 일본은 동맹을 갱신했다.
쓰시마 해전의 압승으로 인해, 일본은 세계 5위의 해군력을 갖고 있다고 인정받았다. 영국은 유사시 일본의 해군을 동원할 생각이었다.
육군의 참패와 해군의 압승은 일본 정계에 해군과 친영파의 득세를 야기했고, 일본도 동맹 연장을 원했다.
1차 동맹에 이어, 2차 동맹은 일본이 영국의 하위 파트너임을 인정했다.
동맹 범위는 기존의 동아시아에서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대되고, 전시 중립 의무에서 참전 의무로 바뀌었다. 일본은 영국이 전쟁에 돌입할 시, 함대를 파병할 의무가 있었다. 영국도 일본이 ‘침략’당할 경우에 참전할 의무가 있었지만, 현 정세상 대륙에 손을 뻗지 못하는 일본을 침략할 나라는 없다시피 했다.
사실상 일본에만 의무를 부여한 것이었지만, 이미 일본은 영국에도 적잖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거절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전쟁이 끝나는 대로, 영국은 한국에도 2차 동맹에 합류할 것을 제안하기로 했다.
동맹의 재편은 기이한 형태로 일어났다. 영일동맹의 갱신은 예상된 바였지만, 독일과 러시아의 동맹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터이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끝내 프랑스와의 전쟁을 강행하자는 참모총장 슐리펜을 은퇴시키고 외교적 해결을 모색한 빌헬름 2세이지만, 결국 외교적 고립만을 확인했다.
군부와 외무부의 강경파들이 펄펄 뛰며 알헤시라스 회담을 부정하자고 주장했다.
"이런 조약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프랑스를 공격해야 합니다! 러시아가 일본과의 전쟁을 끝내기 전에 예방전쟁 개시를!"
"영국과 러시아가 프랑스 편을 들고, 동맹이라는 이탈리아조차 발을 빼는 걸 보지 않았습니까? 만약 우리가 먼저 전쟁을 시작하면 완전히 고립된 채로 전쟁하게 될 겁니다!"
온건파는 전쟁을 만류했다.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 이래 대륙의 분쟁에 얽히고 싶지 않았지만, 자유당 내각은 진지하게 프랑스를 도와 대륙 원정군 파병을 고려하고 있었다.
카이저는 모로코에서 외교적 패배를 겪었기에 위신의 손상을 느꼈지만,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작년 카이저의 지중해 여름휴가가 모로코 위기를 불러일으켰듯, 올해 카이저의 여름휴가는 발트해였다.
"짐은 외교적으로 역전할 수 있는 기회를 쟁취할 것이다. 러시아만 동맹으로 끌어들이면 된다. 그럼 전쟁할 필요도 없이, 독일의 적은 고립될 것이다."
7월 10일, 카이저의 요트 호엔촐레른은 러시아령 핀란드의 비보르크(Vyborg)만 비외르쾨(Bjorko)섬에 정박했다.
비공식 방문이었지만, 카이저 빌헬름 2세와 차르 니콜라이 2세의 단독 회담이 있었다.
먼 친척 간인 두 사람은 서로를 영어식 애칭인 ‘니키’와 ‘빌리’라고 부르는 사이였다.
"친애하는 짐의 형제 니키, 얼마나 고심이 많으셨소? 저 간악한 일본 원숭이들에게 맞서 백인 기독교 문명의 일원인 러시아가 싸우고 있는데도, 오히려 영국과 미국은 일본의 편을 들었으니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이오!"
"친애하는 짐의 형제 빌리, 짐의 고뇌를 알아 주는 건 역시 폐하뿐이오. 저 앵글로색슨인들은, 돈만 되면 뭐든지 팔아먹는 배신자 유다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자들이오."
빌리는 한껏 니키의 비위를 맞춰 주며, 아첨을 계속했다. 해전의 대패, 함대의 반란, 혁명적 위기로 극도로 의기소침해 있던 니콜라이는 빌헬름의 교언영색(巧言令色)에 넘어가 버렸다.
"프랑스는 러시아의 동맹이거늘, 어찌하여 동맹의 위급을 지켜만 보고 있단 말이오? 영국이 일본을 지원해 준 것과 비교하면, 프랑스는 그저 빨리 전쟁을 끝내려고 획책할 뿐이오!"
"뭐, 지켜만 본 건 아니지요. 전비의 상당 부분은 프랑스가 부담했으니까."
"그건 독일에서도 하고 있소. 독일도 전쟁 공채를 매입하고, 차관도 제공하고 않았소? 독일은 동맹이 아닌데도, 오직 러시아에 대한 호의만으로 도왔소. 러시아는 기독교 문명의 일원이자 폐하는 짐의 형제이니, 어찌 돕지 않을 수가 있겠소!"
빌헬름은 은근히 프랑스-러시아 동맹을 이간질했다. 그리고 독일이 러시아에게 새로운 힘이 될 수 있음을 수차례 강조했다. 귀 얇은 니콜라이는 서서히 카이저의 화술에 넘어가고 있었다.
"빌헬름 1세와 알렉산드르 2세, 우리의 위대한 선제들께서 그러하셨듯이, 독일과 러시아 두 강대한 제국이 연합하면, 세계에서 두려울 게 하나도 없소. 우리 두 제국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오."
삼제동맹을 맺었다가 베를린 회의에서 비스마르크에게 외교적 농락을 당한 알렉산드르 2세가 이 말을 들으면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마 ‘그럴싸한 말을 하는 독일 놈은 절대 믿으면 안 된다, 손자야!’라고 외치지 않을까.
하지만 니콜라이는 여지없이 넘어가고 말았다.
"그렇긴 한데, 그리되면 프랑스와의 동맹이 문제인데……."
"그건 염려할 것 없소. 프랑스가 일방적으로 독일을 싫어하는 거지, 독일은 프랑스에게 감정이 전혀 없으니. 러시아가 중재하여 삼국이 동맹을 맺으면 될 일이 아니겠소?"
"으음……."
때린 놈은 잊어도, 맞은 놈은 잊지 않는 법이었다. 독일은 프랑스에 원한이 없을지 몰라도, 프랑스는 1871년의 악몽을 잊지 못했다. 그런데도 카이저는 ‘대륙 동맹’이 가능하리라 믿었다.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오. 1895년 일본의 요동 점령에 맞서 삼국이 단결한 것처럼, 반영(反英) 동맹으로 단결하는 것이오."
"흠, 과연 그렇군요."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 이후 프랑스-독일-러시아가 연합했던 때로 돌아가자.
일본에 맞서는 것과 영국에 맞서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지만, 니콜라이는 빌헬름의 주장에 넘어가고 말았다.
"저 영국 놈들은 만악의 근원이오. 어쩌면 러시아에서 일어나는 사회주의자들의 반란도 영국 정보부가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오. 사실, 빨갱이들의 반란이 아니면 러시아가 어찌 전쟁에서 물러나려 했겠소? 일본 따위야 한주먹거리도 안 되지."
"옳은 말씀이시오! 짐이 세계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것이외다!"
빌헬름은 니콜라이의 간지러운 곳을 정확히 긁어 주었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혁명이 외국 스파이의 조종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니콜라이는, 혁명의 배후에 러시아의 국력을 갉아먹으려는 거대한 음모가 있으리라고 믿었다.
합리적 의심은 러시아와 전쟁 중인 일본이었지만, 일본에 그럴 능력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 역시 답은 영국뿐이었다.
"우리 두 제국은 황인종들과 빨갱이들로부터 신성한 유럽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소. 우리 두 제국이 연합하면, 세상에서 무서울 건 하나도 없소! 자, 내가 초안을 준비해 왔으니 검토해 보시오."
1. 독일과 러시아, 두 제국 중 한 나라가 유럽 열강의 공격을 받으면, 동맹은 군대를 동원해 유럽의 육지와 해상에서 함께 싸운다.
2. 조약 당사국은 공동의 적과 별도의 평화를 맺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3. 이 조약은 러시아와 일본 간의 평화가 체결되는 즉시 발효되며, 1년 전에 해지를 통보하지 않는 한 유효하다.
4. 조약의 발효 후, 러시아 황제는 프랑스를 동맹국으로 참여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다한다.
동맹 범위는 유럽으로 제한하고, 러시아가 프랑스를 끌어들여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방적으로 독일에 유리한 조약이었다.
니콜라이는 누구의 조언도 받지 않은 채 단독으로 검토한 후에, 바로 다음날 요트 위에서 조약에 서명했다.
니콜라이가 조약에 서명하자, 빌헬름은 엄청난 기쁨과 만족감을 느끼며 ‘친애하는 형제’를 끌어안았다.
"됐소! 이제 독일과 러시아, 우리 두 위대한 제국이 함께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오. 폐하의 영명한 결단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바이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소, 폐하."
엄밀히 말하면, 이 밀약은 독일과 러시아 양국 정부의 비준을 받아야 했지만, 카이저는 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독일은 말만 입헌군주국이지 사실상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생각했고, 러시아는 차르가 모든 걸 결정하는 전제군주국이니 말할 것도 없었다.
"거봐, 니키는 정말 순박하고 좋은 친구라니까. 짐이 직접 설득하면 들어줄 거라 하지 않았나? 짐의 즉위 이래, 아니 독일 제국 선포 이래 가장 큰 외교적 성과일세."
카이저는 조약서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귀국길에 올랐다.
불가능해 보였던 독일-러시아 동맹이 현실로 이뤄지는 것이니, 독일은 더 이상 동부전선의 걱정 없이 마음대로 ‘세계 정책(Weltpolitik)’을 펼칠 수 있었다.
러시아가 얻은 게 대체 뭐냐고 한다면, 차르의 심리적 안정이라 할 수 있었다. 영국과 일본에 대한 증오, 혁명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던 니콜라이는 밀약을 맺어 심리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러시아의 동맹, 프랑스가 알게 되면 이 동맹을 결코 승인하지 않으리라는 걸, 니콜라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프랑스와 독일 중 양자택일만 있을 뿐이었다.
프랑스가 러시아에 얼마나 막대한 빚을 지우고 있는지를 감안할 때, 일부 친독파 귀족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고위관료도 프랑스를 선택할 게 현실이었다.
당장 이 밀약은 차르와 카이저 두 사람만의 비밀이었지만, 이선이 곧 알게 된다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하리라.
"역시 이래서 내가 직접 러시아에 가야 하는데! 그동안 너무 거리가 멀었기에 양국의 관계도 멀어진 거야. 나도 니콜라이와 직접 담판하면 유리한 조약을 따낼 수 있다."
포츠머스 조약이 한국에 유리하게 체결되더라도, 러시아와 후속 조치를 논의해야 했다. 이선의 유럽행이 필요한 때가 오고 있었다.
* * *
1906년 7월 15일, 미국 북동부의 군항 포츠머스에 러시아와 일본 대표단이 모였다.
러시아는 국무회의 의장 비테가 전권대표를 맡았고, 일본은 외무대신 고무라가 전권대표였다.
실질적인 권력에서 소외되고 있던 비테는 차르를 설득하여 ‘전권’을 받아 냈다.
다만 차르는 ‘만주에서 철수하는 건 받아들여도, 한 푼의 배상금도, 한 치의 영토도 내줄 수 없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미국은 러시아의 만주 점령에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일본에 승리의 영광을 안겨 주려는 것도 아니다. 알헤시라스에서 미국이 프랑스 편을 든 걸 보면, 미국은 카이저의 모험적인 정책을 싫어한다는 의미다. 일본의 모험적인 주장에도 마찬가지겠지. 이를 지렛대로 삼아, 미국을 움직이자."
비테는 국제정세를 정확히 읽고 있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며칠 전에 독일과 러시아 간에 밀약이 맺었으리라곤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비테와 러시아 대표단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능수능란한 언론 플레이로 러시아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러시아는 전쟁의 원인이 된 문제를 정확히 직시하고 있다. 우리는 병합과 배상이 없는 합리적인 조건으로, 이 전쟁을 끝낼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과도하게 배상금과 영토를 주장한다면, 어찌 될지 모르겠다."
비테는 일본에 악역을 떠넘겼다. 러시아는 ‘무병합 무배상’의 조건으로 전쟁을 끝날 생각이지만,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으로 인해 협상이 결렬될 수 있다고 암시했다.
"러시아 놈들, 우리가 배상금과 영토를 요구할 걸 미리 차단하려고 하는구나. 그럴 수야 있나?"
일본 대표단은 미국에 매달렸다. 만약 배상금과 영토를 받아 내지 못한다면, 대표단은 귀국 후에 분노한 일본 군중들에게 살해당할 판이었다.
비록 봉천에서 패배하기는 했지만, 해전에서는 압승을 거뒀다. 러시아령 사할린도 일본군이 점령 중이었다.
최소한 ‘러시아군의 만주 철수, 관동주 조차지와 남만주 철도 이양, 사할린 할양, 군비 배상금 지불’은 받아내야 했다.
"대통령 각하, 부디 도와주십시오. 러시아를 극동에서 몰아내려면 각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정직한 중재자를 자처했으니 직접적인 개입은 어렵겠지만, 최선을 다해 보지요."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정직한 중재자를 자처했지만, 일본에 더 우호적이리라는 암시를 주었다.
하지만 이는 고도의 술책이었다. 루스벨트는 ‘승자 없는 평화’를 원했다. 러시아도 일본도 승자가 될 수 없었다. 은밀한 승자는 오직 미국이어야 했다.
"김 공,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일본과 한국은 동맹입니다. 일본이 한국을 옵서버로 동의한 건, 한국은 일본이 동양 평화를 위해 싸웠음을 이해해 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부디 우리에게 힘을 실어 주십시오."
"옵서버에게는 참석 외에는 특별한 권한이 없는지라, 별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당연히 동맹을 도와드려야지요."
옵서버인 대한제국 전권대표 김옥균은 표면적으로 일본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이미 미국과 말을 맞춰 놓은 상황이었다. 김-태프트 밀약의 당사자, 김옥균은 루스벨트와 직접 대면하여 전후 처리를 논의했다.
"한국은 러시아가 합리적인 조건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도록, 최선의 중재를 다하겠습니다. 미국은 일본을 잘 설득해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일본이 적당히 만족할 수 있는 선에서 중재해야지요. 사할린은 일본이 차지한다고 치고, 러시아가 조차한 관동주는……."
"당연히 원주인인 청국에 돌아가야지요. 일본이 차지한다면 새로운 분쟁의 원인이 될 뿐입니다."
대한제국은 만주에서 일본을 완전히 축출할 생각이었다.
"한미 양국 공통의 관건은, 러시아가 만주에서 철수하고 이권을 포기하여 일본이 아닌 제3국에 문호를 개방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동청 철도가 되겠지요. 동청철도 북부 횡단 구간은 러시아가 포기하지 않겠지만, 여순-하얼빈 종단 구간의 철도는 중립화해야 합니다."
"중립화라. 국제 신디케이트의 형태가 되겠군요. 근데 일본도 지분을 요구할 터인데요?"
"물론 배제하진 않겠습니다. 단, 신디케이트에 자본을 출자할 수 있는 나라만 운영에 참여해야지요."
전후에 출범할 가칭 ‘남만주 철도 주식회사’는 단순한 철도회사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남만주를 경영할 거대 기관이었다.
한국과 미국은 ‘청국의 만주 주권’은 존중하되, 철도회사를 통해 남만주를 실질적으로 지배할 계획을 세웠다.
일본도 참여하고 싶겠지만, 파산 위기에 몰린 국가가 자본을 출자할 여력이 어디 있겠는가?
루스벨트와 김옥균은 동아시아 지도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여러 논의를 한 끝에 손을 맞잡았다.
"아주 좋습니다. 우리 두 정직한 중재자들이 포츠머스에서 동양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봅시다."
"적극 협력하겠습니다, 각하."
총성(銃聲) 없는 외교 전쟁이, 유혈의 전투 대신 새로운 국제질서를 창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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