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포츠머스 회담
7월 15일, 포츠머스 강화 회담이 개최되었다.
러시아와 일본 양측 대표단, 회담 개최국인 미국 대표, 옵서버인 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회의의 공용어는 영어로 설정되었다.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자, 첫 포문을 연 건 일본이었다.
"일본 제국은 러시아 제국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합니다."
1. 청국과 한국의 주권을 존중하고, 그 영토를 보전함.
2. 일정 기한 내에 러시아군과 일본군은 만주에서 철수함.
3. 만주는 청국에 환부(還付)함.
4. 만주에 있어서 각국의 상업상 기회균등주의와 문호개방을 확인함.
5. 가라후토(사할린) 및 그 부속 도서를 일본에 할양함.
6. 관동주(요동반도)의 조차권을 일본에 양여함.
7. 동청철도 하르빈(하얼빈)-여순 구간을 일본에 양여함.
8. 동청철도를 상업적 목적에 한하여 사용함.
9. 러시아는 전쟁 실비를 일본에 지급할 것. 그 금액은 쌍방의 합의로 정함.
10. 중립항에 피신한 러시아 군함을 일본에 인도함.
11. 극동 해상에서 러시아 해군력의 제한함.
12. 일본해(동해), 오오츠크해, 베링해의 러시아 연안에서 일본인 어업권을 인정함.
일본의 요구를 읽어 보던 러시아 전권대표 비테는 헛웃음을 흘렸다.
"일본은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이건 완전한 승자의 요구요."
"육지에서는 만주 전역 대부분에서 일본군이 승리했고, 여순 요새와 러시아령 사할린도 점령했으며, 바다에서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니 당연한 요구 아닙니까?"
일본도 정신이 나가서 과도한 요구를 한 게 아니었다. 일단 최대 요구치를 불러 본 후, 협상으로 핵심 사안을 얻어 낼 생각이었다.
일본 정부가 대표단에게 요구한 핵심 사안은 ‘러시아의 만주 철수, 관동주 조차지와 남만주 철도 양여, 사할린 할양, 군비 배상금 지불’이었다. 배상금과 영토를 받아 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은 미국에 의존했다. 배상금 문제가 협상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루스벨트는, 특사 가네코 겐타로를 불러 ‘배상금(indemnity)’이란 용어를 대신해 ‘군비 상환(reimbursement)’이란 표현을 쓰게 했다. 전승국으로 받아 내는 배상금이 아니라, 러시아 포로 수만 명의 관리비용과 전쟁으로 인한 손실을 지급해 달라는 명목이었다.
비테는 일본의 과도한 요구를 비웃으며 거절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만주에서 승리한 건 일본이 아니라 러시아요! 그리고 이 정도 요구는 일본군이 만주를 넘어 시베리아까지 점령한 상황에서나 내놓을 법한데? 결코 용인할 수 없소."
이미 차르로부터 ‘배상금과 영토 할양 절대 불가’라는 지침을 받은 비테였다.
"일본의 거듭된 승리를 부정하는 겁니까?"
"도대체 누가 이겼다고 그러는 겁니까? 그럼 휴전을 중단하고 만주에서 전투를 재개할까요? 50만 대군이 전쟁 재개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테의 강경론에 일본 대표단은 움찔했다. 만약 이대로 전쟁이 지속되면 파산이었다. 해군은 이겼지만, 육군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러시아 대표께서는 진정하시지요. 협상은 계속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우리는 협상을 하러 왔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요구는 협상에 방해가 되지요."
루스벨트의 중재에 비테도 한발 물러섰다.
강경하게 전쟁 재개를 외치긴 했지만, 현실적인 정치가 비테는 타협을 할 생각이었다.
"1조에서 4조까지는 러시아도 이의가 없습니다. 하지만 5조에서 12조는 말도 안 되는 요구입니다."
"일본은 이 전쟁을 위해 엄청난 군비를 소모했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보상을 요구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누가 들으면 전쟁을 러시아가 일으킨 줄 알겠군요? 전쟁을 일으킨 건 일본이 아니오!"
"러시아가 만주를 점령했으니까 문제가 된 게 아닙니까!"
"그럼 만주 문제와 전혀 상관없는 조항들은? 중립항에 피신한 군함의 인도와 해군력 제한 운운은 대체 무슨 요구란 말이오?"
"쓰시마 해전의 승리로 인한 당연한 귀결이니, 도망친 군함들은 마땅히 일본에 인도되어야 합니다."
결국 첫 회담은 러일 양측의 평행선만 확인하고 중단되었다.
상황을 말없이 지켜보던 김옥균은 일본의 요구가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도 6조와 7조는 받아들일 수 없었고, 10조는 제주로 피신한 러시아 군함들을 모두 일본에 넘기라는 의미였다.
결국에는 이권 문제였다. 일본은 요구하고, 러시아는 거절하는 식으로 회담이 과열되어 중단되었다가, 미국의 중재로 재개되기 일쑤였다.
‘본국에서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잖아. 이러다 결렬되면 뒷감당은 어찌하려고? 전쟁을 계속할 순 없어. 그건 미친 짓이야. 국민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선에서 적당히 타협해야 한다.’
일본 대표 고무라는 내심 식은땀을 흘렸다. 러시아는 배상금을 지불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영토 할양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20억 엔의 전비를 쓰고, 30만의 사상자를 낸 전쟁에서 얻어 내는 게 없다면 분노한 국민의 봉기로 대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적당한 선에서 결과를 얻어 내야 했다.
‘본국에서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잖아. 배상금은 그렇다 쳐도, 조금의 양보 없이 전쟁을 끝낼 수 있겠나?’
러시아가 만주에서는 승리했어도, 그 이상은 무리였다. 해군이 전멸한 시점에서 사할린 섬을 탈환하거나, 일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다.
무엇보다 국내의 혁명적 위기가 일본보다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비테로서는 어떻게든 전쟁을 빨리 끝내야 했다.
비테는 사할린을 포기할 수 있겠냐고 본국에 문의했다.
어차피 사할린을 탈환할 방법이 없을 바에야, 적당히 타협의 조건으로 내걸 생각이었다. 사할린은 면적은 넓어도 인구는 3만에 불과했고, 러시아 입장에선 죄수들의 유형지로 쓰이는 오지의 섬에 불과했다.
「다시 말하거니와, 단 1루블의 배상금도, 단 1베르스타(=1.067km)의 영토도 내줄 수 없다.」
독일과 ‘동맹’을 맺어 기세등등해진 차르는, 국내 상황이 어쨌건 무조건 강경론만 내질렀다. 본국의 답변을 받아든 비테는 한숨을 쉬었다.
「일본의 요구와 러시아의 생각 사이에 간극이 너무 크다. 그렇다면 본인은 더 이상 회담을 수행할 수가 없다. 결렬을 선언한 뒤 철수하겠다.」
회담 1주일 만에 결렬이 선언되자, 루스벨트는 즉각 중재에 나섰다. 이대로 회담이 결렬되는 건 누구도 원치 않는 일이었다. 심지어 결렬을 선언한 비테조차도.
"협상이 이대로 결렬되어선 안 되오. 일본은 사할린과 배상금, 둘 중 하나만 선택하시오."
루스벨트의 중재안을 받아든 고무라는 수정 제안을 했다.
"일본이 점령한 사할린 중에서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만 할양하는 조건으로, 북부 사할린을 환부하는 대가로 러시아는 일본에 6억 달러(12억 엔)를 지급한다. 그 외에는 모든 군비 상환 요구를 철회한다."
일본 입장에서는 사할린 남부와 배상금을 모두 받아 내는 ‘합리적인’ 해결책이었지만, 재정 전문가인 비테로서는 돈을 내줄 수는 없었다. 러시아도 경제 위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러시아는 원거리에서 전쟁을 치르는 만큼 일본보다 훨씬 많은 군비를 썼고, 전쟁공채와 차관도 프랑스와 독일에서 7억 루블이나 빌렸다. 국내 공채도 6억 루블에 달해, 13억 루블이 다 갚아야 할 빚이었다. 재정 상황이 최악인데, 더 이상 돈을 쓸 수는 없었다.
"러시아는 결코 배상금을 지불할 수 없소이다. 만약 사할린을 전부 할양한다면, 배상 요구를 철회하겠습니까?"
"으음……."
비테는 즉석에서 역제안을 했다. 사실 사할린보다 돈이 더 중요한 건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러시아가 배상금을 완강하게 거부한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사할린이라도 확보해야 했다.
그럼에도 배상금을 포기했다가는 엄청난 국민적 분노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한국이 중재에 나섰다. 김옥균의 보고를 받은 이선은, 사할린 할양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하는 전문을 비테에게 전달하게 했다.
「1조에서 4조는 양국 모두 합의했고, 문제가 된 조항 중에서 6조에서 8조는 러시아에 유리한 조건으로 타협할 수 있도록 미국과 함께 중재해 보겠습니다. 9조에서 11조는 일본이 철회하게 만들 터이니, 5조는 받아들이십시오. 한국은 결코 중립항(제주)에 있는 군함을 일본에 넘겨주지 않을 것입니다. 사할린은 일본군 점령하에 있고, 함대도 없는 러시아가 탈환하기 곤란한 상황입니다. 사할린 전체를 일본에 양도하는 조건으로, 더 유리한 결과를 얻어 내면 됩니다.」
비테는 이선의 의견과 일치했다.
비테가 거듭 설득하고, 이선과 루스벨트가 직접 중재하자 차르도 사할린 할양은 양보하는 수순으로 넘어갔다. 다만 배상금은 절대 용인할 수 없었다.
"러시아는 사할린을 양보할 용의가 있다. 러시아가 만주와 사할린 문제에서 양보하겠다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이 끝끝내 배상금을 요구한다면, 일본은 양국 군인의 피를 대가로 돈을 갈취하려는 날강도나 다름없다. 배상금 때문에 회담이 결렬된다면, 이는 전적으로 일본의 책임이다."
비테는 전제군주국의 정치가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능수능란하게 언론을 활용했다. 만약 배상금 때문에 결렬된다면, 일본은 돈 때문에 전쟁을 벌이고 지속하려는 후안무치한 집단이었다.
그동안 친일적이었던 미국의 여론이 러시아로 기울자, 루스벨트도 일본에 배상금 철회를 요구했다.
「만주와 영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배상금을 철회하더라도 강화 협상을 성사시켜라.」
결국 일본 정부는 고무라에게 배상금 철회의 훈령을 보냈다.
배상금을 얻어 내지 못하면 국민적 분노에 부딪히겠지만, 회담이 결렬되어 전쟁이 재개되는 건 파산을 의미하는 일본으로선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일본은 사할린 할양을 대가로, 9조·10조·11조를 모두 철회했다.
강화 회담에서 가장 치열한 문제였던 배상금 문제가 해결되자, 이후의 협상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러시아가 만주 문제에 있어 의외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역설적으로 만주전선군 총사령관 쿠로파트킨 덕이었다.
봉천 회전의 승리로, 쿠로파트킨의 위상은 러시아 국내에서 크게 올라갔다. 그전까지 그가 소극적인 지휘로 군대를 패전 직전까지 몰아넣었다는 건 잊혀졌다. 어찌 됐건 결국 승전은 총사령관의 공이었다.
만주 전선에서 휴전이 체결되자, ‘승리자’ 쿠로파트킨은 ‘관대한 평화’를 제안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전시 상황에서 남만주의 방위가 어렵다는 건 분명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우려하는 건, 러시아가 극동의 전쟁에 휘말려서 유럽에서 독일이 전쟁을 도발하는 것인데, 이는 모로코 위기로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봅니다. 분쟁지역이자 방어하기도 어려운 요동반도와 남만주는 포기하고, 러시아에 인접한 송화강 이북의 북만주와 몽골을 지켜야 합니다. 관동주는 청국에 돌려주고, 남만주는 중립지대로 만든다면 러시아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고, 주변 국가에도 납득이 되는 결말일 것입니다.」
야전지휘관으로서는 심각한 무능함을 보인 쿠로파트킨이지만, 참모이자 전략가로서는 예리한 냉철함을 보였다.
‘한국 외교관과 군인이 제공한 극비정보’로 봉천 회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브루실로프의 보고를 받은 쿠로파트킨은 한국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한국과의 관계를 회복해서 완충국가로 두는 게 좋다는 의견도 첨부했다.
비테의 의견은 불신하는 차르였지만, ‘만주 전역을 승리로 이끈’ 쿠로파트킨의 의견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러시아는 남만주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았다.
"만주에서 철수하고 청국에 환부하는 건 동의하겠는데, 6조와 7조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관동주는 러시아가 청국에 조차한 곳이니만큼, 원주인인 청국에 돌려주면 됩니다. 동청철도 남만주지선은 청국의 동의를 얻어 러시아가 부설했는데 왜 일본에 양여 해야 합니까?"
"지난 1년간, 일본은 수십만 대군을 동원해 만주에서 싸웠습니다. 10만이 넘는 일본 청년들이 요동반도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바로 청국에 만주를 돌려주기 위함이었지요. 그 목표를 달성했으니, 마땅히 청국도 일본에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들으면 일본이 청국을 위해 전쟁하겠다고 생각하겠군요? 설령 그렇다 해도 그건 일본과 청국 간의 사정이지, 러시아와 일본 간의 사정이 아닙니다. 러시아는 관동주를 청국에 돌려주겠으니, 뒷일은 알아서 하십시오. 동청철도 운영권은 양여 하지 못합니다."
러시아는 내놓더라도 원주인인 청국에 돌려주겠다는 태도였다.
일본은 필사적이었다. 수십만 청년들이 만주에서 불귀의 객이 됐는데, 만약 요동반도를 얻어 내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전쟁을 했냐는 불만이 폭주할 터였다.
"일본의 전쟁은 동양 평화, 만주 수복을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일본군이 만주 수복을 위해 싸웠는데, 청국이 이 정도 배려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일본군이 요동반도에 주둔해야 러시아가 다시 남하를 노리지 않을 것이고, 동양 평화가 유지됩니다."
일본은 미국에 이어 한국에 매달렸다. 김옥균은 애매한 태도로 답했다.
"충분히 일리 있는 의견이지만, 청국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귀국 황제 폐하와 청국 황제 폐하는 친밀한 관계가 아닙니까? 조약 체결 후에 잘 설득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친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일단 보고는 올리도록 하지요."
이미 미국과 밀약을 맺고 남만주 이권을 나눠 갖기로 결정한 한국으로선,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동맹’ 일본의 요청을 무조건 일축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선은 절묘한 대책을 내놓았다.
"만주의 중요성은 한청 양국이 모두 사활로 생각하니 일본에 넘겨줄 수 없다. 그렇다고 일본이 전리품을 모두 포기하진 않을 터이고. 적당한 대가를 지불하여, 갈등의 씨앗은 남겨 놓아야겠다."
어차피 근대 일본은 열도 안에서만 틀어박혀 있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전후 일본은 북수남진과 해주육종을 택하는 해상국가가 되어야 했다. 만주에서 완전히 결별하고, 복건과 남중국을 노려야 했다.
이선의 지시를 받은 김옥균은 일본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일본이 동양 평화와 청국의 만주 수복을 위해서라는 전쟁 명분을 내걸어 놓고서 러시아로부터 관동주 조차권을 넘겨받길 원한다면, 일본에 큰 기대를 걸었던 청국 조정과 인민은 크게 실망할 터입니다. 진정 일본이 동양 평화와 삼국 연대를 원한다면, 이는 소탐대실입니다."
"그럼 일본 청년들의 희생을 무위로 돌려야 한단 말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요동반도를 청국에 환부하는 조건으로, 복건(福建, 푸젠성)의 아모이(廈門, 샤먼)와 복주(福州, 푸저우)를 일본이 조차하는 겁니다. 이는 예전부터 일본이 원했던 바가 아닙니까?"
한국의 새로운 중재안에, 일본은 빠르게 손익계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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