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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혁명의 시대-430화 (429/812)

111화 불타는 도쿄

8월 11일 오후. 김옥균이 보낸 극비 전문이 황성에 도달했다. 시차와 통신 소요시간을 생각하면 빠른 수신이었다.

이선은 만족감을 느끼며 짧게 평했다.

"좋아, 마침내 해냈군."

포츠머스 조약은 한국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았다. 말미에 중립국으로서 조약의 성실한 이행을 지지하고 보장한다는 말이 전부였다.

한국이 얻은 유무형의 이득은, 결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는 많은 것을 쟁취했다. 미국과 맺은 밀약에는, 대한제국이 남만주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됨을 인정받았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외교만으로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으로 국력을 깎아먹는 동안, 한국은 충실히 국력을 신장시켰다. 한국이 남만주의 지배자가 될 자격이 있음을, 미국에 이어 열강들의 동의를 얻을 차례였다.

"러시아와도 최대한 빨리 합의를 이뤄야겠다."

북위 44도, 장춘-길림 이북의 선을 경계로 만주의 세력권이 남북으로 분단된 이상, 북만주의 세력권을 유지한 러시아와는 별도의 타협을 이뤄야 했다.

러일전쟁과 국내 혁명으로 인해 러시아가 동아시아에서 공격적인 태도를 저버리게 된 이상, 앞으로는 보다 수월한 타협이 가능했다. 이선은 직접 러시아로 가서 차르를 회담하는 걸 고려했다.

"무엇보다 일본의 피와 돈으로, 대륙 침략 야욕을 좌절시켜서 만족스럽군."

일본의 당초 목표는 러시아를 굴복시켜 한국과 청국을 일본 세력권으로 묶어 두고 만주까지 지배하려는 것이었겠지만, 참담하게 실패하고야 말았다.

오히려 한국에 막대한 빚만 지고 대륙에서 퇴각하는 상황이었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이래 30년 만에 한국은 만성적인 대일(對日) 적자에서 벗어나, 정치와 군사에 이어 마침내 경제에서도 자주의 길로 접어들었다.

일본은 인력과 재정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고, 국운을 건 도박에 실패하고 말았다.

도박 실패의 후폭풍은, 목전에까지 닥쳐 있었다.

* * *

포츠머스에서 보내온 조약 전문을 읽은 일본 정부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조약을 맺은 일본 대표단도 침울한 표정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국민들이 우리를 죽이려 할 거야. 다들 유서 써 두게."

전권대표로 서명한 고무라는 침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대표단은 바로 일본으로 귀국하지 말고, 청나라로 가서 복건 아모이와 복주의 조차를 마무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일단 쏟아지는 분노의 화살은 피해야 했다.

8월 11일 오후, 호외로 포츠머스 조약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왔다. 일본 정부에서는 보도관제로 며칠간 더 덮어 두려 했으나, 이미 미국에서 조약 체결에 대한 뉴스가 나왔다. 외신을 번역한 호외가 도쿄 시가지에 뿌려졌다.

"호외요! 호외! 포츠머스 조약 체결! 전쟁 종결!"

마침내 전쟁이 종결됐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기뻐하며 신문을 읽었다. 하지만 조약의 골자를 적어 놓은 내용에 충격에 빠졌다.

"러시아가 할양하는 영토는 가라후토(사할린)가 전부라고? 그럼 요동은?"

"청국이 요동을 내준다는 말이 없다던가?"

"어디에도 없어. 아니, 그보다 배상금이 없다고?"

"배상금이 없다고! 이게 무슨 소리야?"

"일본이 이긴 전쟁 아니었나? 해군이 대승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이따위 조약이 맺어진 거야!"

"설마, 거짓 정보 아닌가? 호외가 잘못된 거 아니냐고!"

"그래, 이건 잘못된 정보야! 이런 조약을 맺었을 리가 없어!"

이튿날, 8월 12일 일요일.

결국 포츠머스 조약 내용이 사실이라는 게 밝혀지자, 일본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조약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일본인들은 히비야 공원에 모여 정부 규탄 시위를 열었다.

내무부와 경시청은 불온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집회 금지 명령과 언론 통제에 나섰지만, 이미 국민적 분노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따위 거지같은 조약이 말이 되냐!"

"군대가 목숨을 바쳐 거둔 승리, 국민들이 후방에서 굶어 가며 거둔 승리를 정치가 놈들이 다 말아먹었다!"

대본영의 정보통제로 일본이 완승을 거뒀다고 철석같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일본인들은 완전히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졌다.

"매국역적 고무라와 그 일당들을 죽여라!"

"이게 다 가쓰라 때문이다! 그놈부터 죽여라!"

"러시아와 전쟁을 재개해라! 배상금을 받기 전에 휴전은 없다!"

개전 이전 대러 강경론을 주도했던 도쿄제국대학의 ‘7박사’는 시급히 성명문을 발표했다.

「우리는 정부에 엄중히 경고한다. 러시아로부터 전비 배상금 30억엔을 받아 내든지, 러시아가 배상금을 지불하지 못하겠다면 연해주와 캄차카를 할양받아야 한다! 즉시 전쟁을 재개하라!」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강경파들은 선동을 쏟아 냈다.

일본 국민이 분노한 원인은 단순히 강경파들에게 동조해서가 아니었다. 지난 10년간 과도한 세금에 시달려 가며 군대를 양성해 왔던 일본 국민, 수십만의 청년이 목숨을 잃어 가며 18개월의 전쟁을 치러 온 일본 국민은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배상금을 얻어 내지 못할 거라면, 대체 이 전쟁은 무엇 때문에 했단 말인가?"

"요동도 얻어 내지 못한다면, 대체 여순에서 그 많은 병사들은 왜 죽어 나간 거냐!"

수만의 시위대가 정부를 규탄하며 행진을 개시했다. 2년 전 러시아 규탄 시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분노한 군중은 끝내 폭도로 돌변했다. 밀려오는 인파를 감당하지 못한 경찰은 퇴각했다.

"어용신문부터 때려 부셔!"

"이 개자식들이 지금까지 속여 오고 있었던 게 아니냐!"

정부 어용신문 ≪고쿠민(國民)신문≫이 군중의 첫 표적이 되었다. 조슈벌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고쿠민신문은 일본의 승리만을 보도하더니, 이제 와서 강화 조약 결과에 만족하라며 훈계했다.

신문사는 문자 그대로 박살이 났다. 군중은 신문사를 박살 내는 것만으로 만족 못했다.

"국민을 괴롭히던 내무부를 공격하라!"

"순사놈들, 다 어디로 도망친 거냐!"

군중은 내무대신 관저를 습격했다. 내무대신은 이미 몸을 피한 뒤였다.

국내 행정과 치안의 총책임자인 내무대신 관저조차 습격당할 정도니, 국민의 혐오대상이었던 순사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도쿄 곳곳에서 경찰서와 파출소가 불타올랐다. 뜨거운 열기가 도쿄의 하늘을 감돌았다.

도쿄는 완전히 무정부 상태였다.

"러시아 정교회부터 박살 내라! 놈들은 로탐이다!"

러일전쟁 기간 내내 숨 죽여 살아 왔던 정교회 신자들을 향해 칼날이 돌아갔다. 군중은 성 니콜라이 성당에 불을 질렀다. 신부와 교인들은 군대의 보호를 받아 안전히 피신했지만, 성당은 끝내 화마(火魔)를 피하지 못했다.

"이게 다 미국 놈들 때문이다! 미국 놈들이 강화를 중재해 준다고 해 놓고선 승리를 빼앗아 간 거다!"

"동맹국이면서도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채 돈만 빨아먹은 조선 놈들도 배신자다! 조선이 미국과 내통하여 일본의 승리를 팔아먹었다!"

"조선 따위가 그럴 능력이나 되나? 미국이 조선을 조종했겠지!"

분노의 화살은 강화를 중재한 미국과 한국에도 돌아갔다. 한국을 여전히 몇 수 아래로 여기는 일본인들은 한국보다 미국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돌렸다.

"미국이 빼앗아간 승리를 되찾아오자!"

"백인 예수쟁이 놈들은 모두 적이다!"

이미 군중은 이성을 상실한 상태였다. 미국 공사관으로 달려가 돌을 던지고, 미국계 교회들을 공격했다. 마침 일본을 여행 중이던 루스벨트 대통령의 장녀 앨리스도 황급히 피신했다.

급히 군대가 파견되어 공사관과 교회들을 보호했지만, 주일 미국공사 이하 미국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What the hell is that?!"

"Holy shit!! Fucking Japs!!!"

미국이 일본의 승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줬는지 생각한다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미국은 일본에게 4억 달러라는 거액을 빌려주었다. 미국이 없었더라면 일본은 벌써 파산했을 터였다. 하지만, 일반 국민은 그런 사정까지는 몰랐다. 그저 미국이 중재랍시고 승리를 팔아먹었다고만 생각했다.

"이런 미개한 놈들! 꼭 복서(의화단) 놈들의 난동을 보는 것 같군!"

"중재를 해 준 루스벨트 대통령의 은혜도 모르는 놈들! 미국이 아니었으면 일본은 벌써 파산이야!"

"일본은 그나마 문명화된 줄 알았는데, 역시 유색인종의 야만적인 본성은 어쩔 수 없는 건가?"

"교회를 공격해 불태운다는 건 도저히 이성적인 인간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일본이 외치던 문명화는 거짓이다. 이놈들은 여전히 야만인이다!"

미국의 격렬한 비판에 원로 이토 히로부미가 직접 나서서 외교관들에게 사과했다.

"여러분, 일본 정부는 귀국의 협력과 중재에 감사하고 있으며, 일부 폭도들의 망동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정부는 무정부 상태를 진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폭동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는, 혼란이 수습 되는대로 책임지고 보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토는 허리를 굽히며 사과했다. 막대한 외채를 지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열강과의 협조가 필요한 일본으로선 서양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외강경파들이 ‘굴욕외교’라고 비난한다고 해도 그게 일본의 현실이었다.

"박 공, 일부 정신 나간 재야인사와 폭도들이 한국을 배신자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디 귀국 황제 폐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해 주시길 바라며, 앞으로 양국 간의 우호가 변함없기를 바랍니다."

일부 폭도들이 한국 공사관에도 돌을 던지며 공사관 유리창이 파손되는 손실이 있었다.

전쟁 기간 동안 특파대사로 일본에 머물다 귀국길에 오르는 박영효에게 이토가 직접 고개를 숙였다.

"후작께서는 개의치 마십시오. 설마 이런 일로 양국의 우호가 깨지기야 하겠습니까? 황제 폐하께서는 관대하시니, 귀국의 사정을 이해해 주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복건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예, 물론입니다."

박영효는 대범한 태도로 말했지만, 내심 기분은 통쾌했다. 일본 정계의 최고 실력자인 이토가 고개를 숙일 정도니, 한일관계에서 일본의 우월한 위치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이보다 더 상징적으로 나타날 수 없었다.

이토는 굴욕감을 느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는 하다하다 못해 제국이 조선에도 빚을 지고 호의를 구걸하는 처지가 됐단 말이냐! 저 멍청한 육군 놈들이 일을 이따위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실 총리 가쓰라는 강화 조약 이전에 진작 사임하려고 했지만, 이토와 마쓰가타가 주저앉혔다.

"총리가 전쟁을 주도했으니, 끝까지 책임져야지. 난장판은 그대가 만들어 놓고선, 후임자가 치우게 할 셈인가?"

결국 가쓰라는 포츠머스 조약을 발표할 때까지 버티다가 사임해야 했다.

8월 13일, 가쓰라 내각은 최후의 조치로 도쿄와 주요 도시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총사퇴 의사를 밝혔다.

전쟁 기간 동안 계엄령은 해제됐지만, 혼란을 제어하려면 계엄령 외에는 답이 없었다. 후비사단이 도쿄 주요 지역을 엄중히 지켰다.

"중의원은 계엄령에 동의합니다. 단! 총리대신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가쓰라 총리는 사퇴가 아니라 탄핵되어야 마땅합니다!"

"가쓰라 총리,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야마가타 원수! 그들은 항상 입만 열면 충군애국을 외치면서, 마치 충군애국은 자신들이 특허를 낸 것처럼 굴고 있소! 하지만 폐하를 기망하고, 국가를 농락한 건 바로 그들이올시다! 언제까지 충군애국을 방패삼아 국가를 속일 터인가! 야마가타와 가쓰라, 조슈벌과 육군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으라!"

"옳소!"

"번벌 독재 타도하자!"

일명 ‘헌정의 신’, 호헌 운동을 이끈 오자키 유키오 의원이 통렬하게 가쓰라 내각, 그 뒤에 있는 야마가타와 조슈 번벌을 비판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번 기회에 번벌 정치를 완전히 끝장낼 생각이었다.

8월 15일. 중의원은 제1당 입헌정우회와 제2당 헌정본당의 연합으로, 압도적 다수로 가쓰라 내각의 불신임안을 통과시켰다.

"제기랄, 어차피 그만두겠다는 사람을 상대로 탄핵을 해! 전쟁 책임이 나한테만 있냐?"

아마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조슈와 육군은 총칼을 믿고 끝까지 버티기 작전으로 들어갔을 터였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정당 정치인들은 물론이요, 조슈-육군의 오랜 숙적인 사쓰마-해군도 조슈벌을 끝장내길 원했다.

가쓰라 내각은 자진사퇴가 아닌 의회의 불신임이라는 형태로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가쓰라, 아니 조슈벌의 정치생명은 사실상 끝이었다.

"자, 이제 조슈벌에게 휘둘리지 않는 내각을 만듭시다. 역시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는 후임자는……."

"황실과 원로, 의회와 정당에 모두 말을 통할 수 있는 사람은 사이온지 후작밖에 없지."

조슈-육군에 의해 실각당했던 사이온지 긴모치가 부활했다.

정권을 잃는 과정에서는 허무하게 무너졌던 ‘도련님’ 사이온지였지만, 내심 칼을 갈고 있었다.

명문 귀족의 특권을 활용해 메이지 천황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 오며, 전쟁을 원치 않아 했던 메이지의 마음을 움직였다.

"두 번 다시 군인과 번벌 정치가들이 폐하의 어진 마음과 성명(成命)을 왜곡시키고 멋대로 전쟁을 벌이는 일이 없게 해야 합니다. 일군만민(一君萬民)의 대업을 진실로 이룩할 때가 되었습니다."

"짐은 결코 이 전쟁을 원치 않았는데, 결국 일부 군인들이 주도하여 이런 참사를 내고야 말았다. 위로는 황조황종에게, 아래로는 참화를 겪은 신민에게 부끄럽고 죄스러워 고개를 들 낯이 없도다. 경이 짐을 대신하여 그릇된 정치를 바로잡으라."

오랫동안 정치에 개입하지 않으며 입헌군주의 역할을 충실히 해 오던 메이지는, 마침내 정치의 배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 국민들이 전쟁 결과에 분개하여 정부에 반대하는 폭동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여전히 천황은 그들에게 신성한 군주였다. 천황의 칙어 반포면 충분히 국민들을 달랠 수 있었다.

사이온지는 조슈벌을 숙청해 문민통제를 확립하고, 군비를 축소하며, 국민들에게 정치적 자유를 확대할 개혁을 준비했다.

"사이온지 후작의 의지를 믿기 어렵지만, 폐하께서 후작을 지지하시니 따르는 게 좋겠습니다."

"좋소. 일단 조슈벌을 제압하는 게 우선이니까."

입헌정우회 간사장, 전 내무대신 하라 다카시와 헌정본당 총재, 전 총리 오쿠마 시게노부도 사이온지와 협력했다.

하라는 사이온지의 오른팔이었으나, 사이온지가 육군의 압력에 너무나 쉽게 권력을 내놓는 걸 보고 실망하여 결별하였다. 결국 다시 손을 잡고 내무대신으로 입각하여 개혁을 진두지휘하게 되었다.

"정녕 이대로 당하고만 계실 겁니까?"

"유구무언일세. 육군이 패배한 전쟁을 해군이 대승으로 살렸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야마가타는 의외로 순순히 참모총장에서 사직, 대본영을 해체하여 권좌에서 내려왔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이미 나이 70이 눈앞인 야마가타는 육군 붕괴의 충격으로 노회한 판단력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조슈벌 권력의 원천이었던 육군이 힘이 빠진 상황에서, 의회와 해군의 지지를 받는 문민 정치가들과의 정치력 싸움에서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전쟁 결과에 책임지고 은퇴를 하게 된 가쓰라와 데라우치는 이를 갈았다. 하지만 성난 민심 앞에서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일단은 납작 엎드려 정세의 변화를 기다려야 했다.

1906년 8월, 도쿄는 한여름 날씨보다 더 뜨거운 분노의 열기로 타올랐다.

당장은 계엄령으로 잠재워진 것처럼 보였지만, 한 번 타오른 불이 그렇게 쉽게 잠재워질 리가 없었다.

불씨가 다시 점화된다면, 불길은 언제든지 대화재로 번질 수 있었다.

- 11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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