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만주 삼분 계획
일본 내각총리대신 사이온지 긴모치는 의학박사이자 위생·철도 행정의 전문가인 고토 신페이(後藤新平)를 대동하고 대한제국을 방문했다.
비공식적으로, 극비리에 진행된 방한이었다. 방한 루트도 인천-황성이 아니라 부산을 통해 들어왔다.
김옥균이 부산항에서 사이온지와 고토를 직접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사이온지 후작. 대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고균께서 직접 맞이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사이온지는 김옥균과 동시기에 주불 공사로 재임하여 친분을 맺게 되었고, 고토는 김옥균이 1882년 처음 방일했을 때부터 친분을 맺게 되어 오랫동안 절친한 사이였다.
사이온지는 한국을 영일동맹에 끌어들인 장본인이자, 주한공사를 지낸 내무대신 하라를 통해 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왔다. 이선은 사이온지가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인물이라 여겼다.
사이온지 일행은 1907년 4월 시점에서 아직 공식적인 시행운전도 하지 않은 광무호의 귀빈석에 탑승해 경부선으로 상경했다.
외부의 간섭이 없는 열차 귀빈석 안에서 김옥균과 사이온지의 회담이 시작됐다.
"근래 일본에서 험난한 일이 많았는데, 각하의 영단으로 반란 세력을 진압할 수 있었으니, 참으로 귀국의 복입니다."
운이 따랐다고는 해도, 사이온지 내각이 육군-조슈벌의 반란 계획을 진압하고 문민통제를 확립한 것에 김옥균이 찬사를 보냈다.
"파벌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도발하고, 정부를 종속시키려 한 군부 일부를 다행히도 신속하게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북진과 대륙 정벌이라는 허황된 꿈을 품고 일본을 위기에 몰아넣은 자들입니다. 그들의 제거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지요."
대만총독부 민정장관에 오랫동안 재임하며 대만 개발을 주도한 고토는 대표적인 북수남진론자였다.
"과연 그렇습니다. 두 분께서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국제정세를 잘 읽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남수북진과 일본의 북수남진은 양국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길입니다. 각자 동맹을 믿고, 만주와 민절(閩浙, 복건·절강)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 세력권을 확보하는 것이지요."
사이온지 내각과 해군은 북수남진과 해주육종에 동의해 절강-복건-대만-하이난을 잇는 중국 남부에 세력권을 확보하는 걸 목표로 일치했지만, 여론을 생각하면 만주를 아예 방기(放棄)할 수가 없었다.
"고균의 말씀에 동의합니다만, 일본 청년 12만 명이 만주에서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이를 잊지 못하는 국민이 대부분입니다. 총리로서 국내 여론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대한국은 귀국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물론이요, 미국도 일본의 만주 진출을 원치 않는 듯합니다."
김옥균이 교묘하게 화살을 미국으로 돌렸다. 사이온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이 유일하게 얻은 만주 이권인 남만주 철도 지분 33%를 미국이 차관 변제를 명목으로 가져가려 합니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만."
"미국은 이미 국제 신디케이트도 지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약 미국이 일본의 지분까지 인수하게 된다면, 만철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는 셈이지요."
"그렇습니다. 일본 정부는 미국의 간섭을 물리치고, 채권 모집을 통해 자본금을 확보한 상황입니다."
전적으로 영국 자본에 의존하는 상황이었지만, 사이온지는 짐짓 허세를 부렸다.
"곧 자본금 납입 만기일이 다가옵니다만, 아직 일본의 납입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혹여 자본 확보에 문제라도 있는 게 아닌지요?"
김옥균이 정곡을 찌르자, 결국 사이온지도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천만 달러, 2천만 엔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만기일까지 확보할 수 있겠습니까?"
"……귀국에서 도움을 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이용하고 있는 경부선과 경의선을 부설할 때, 귀국의 요청에 일본이 차관과 기술을 제공한 바 있지요. 이번에는 귀국이 일본을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1890년대 조선이 경의선과 경부선을 부설할 당시, 일본은 조선의 공채 모집에 응하여 차관과 기술을 제공했다. 물론 조선이 아니라 일본의 이익을 위해 제공한 거지만, 경부선과 경의선의 부설은 조청일전쟁에서 조선군의 승리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물론 그렇습니다만, 그 대가로 한국은 귀국에 운행 개시 후 10년간 운영 이익의 일부를 지불하지 않았습니까? 러일전쟁에서도 귀국 군대와 병참 운송에 큰 도움이 되었고."
김옥균의 말은,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것이었다. 사이온지도 그걸 못 알아듣진 않았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먼저 이걸 분명히 해야지요. 귀국은 한국에 무엇을 원하십니까?"
"알겠습니다. 1천만 달러, 즉 2천만 엔을 귀국이 차관으로 제공해 줄 수 있겠습니까?"
"허허, 아시다시피 한국이 타국에 차관을 제공할 재정적 여유가 있는 나라는 아니라서. 우리도 5천만 원은 철과 석탄이라는 현물로 대신하지 않았습니까. 차관이라면 영국에 요청을 하시는 게……."
김옥균이 짐짓 겸양을 부리자, 사이온지가 한숨을 쉬었다.
"영국은 이미 차관 6천만 엔을 제공했습니다. 프랑스와 접촉해 보고 있긴 합니다만……."
"프랑스라면 대외투자가 활발한 나라가 아닙니까? 1천만 달러 정도야."
"프랑스의 동맹국인 러시아가, 일본에만은 돈을 빌려주지 말라고 막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미 일본은 프랑스와 접촉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지만, 일본에 앙금이 남아 있는 러시아가 프랑스에게 절대 대일 차관은 허용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결국 프랑스는 동맹 러시아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럼 독일은 어떻습니까?"
"독일도 프랑스와 태도는 비슷하지요."
"오, 저런 저런. 프랑스나 독일도 그럴진대, 재정이 허약한 한국에서야……."
김옥균이 계속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태도를 보이자, 고토가 대신 목소리를 높였다.
"각하, 사이온지 총리를 초청한 건 귀국입니다. 초청에는 그에 따른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다만 초청을 명한 건 제가 아니라 황제 폐하이십니다. 폐하께서 직접 여러분과 논의하실 겁니다."
"그렇군요. 황성에서 폐하를 알현합니까?"
"아닙니다. 극비리에 진행되는 비공식적인 면담이니까요. 황성역에서 이 열차에 오르실 겁니다."
황제가 직접 열차에 올라타 회담을 이어 나간다는 말에 사이온지와 고토는 놀랐다.
밤늦은 시간에, 광무호는 잠시 황성역에 정차했다. 김옥균이 열차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이선이 제복이 아닌 양복 차림으로 호위대장 장무영과 소수의 궁내부 직원만 거느리고 열차에 탑승했다.
"황제 폐하 납시오!"
이선이 황실 전용 귀빈석에 들어서자, 일본인들도 일제히 기립했다.
"외신 사이온지, 대한제국 황제 폐하를 알현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반갑습니다, 사이온지 후작. 후작을 만나게 되어 짐도 기쁩니다."
"대일본제국 천황 폐하를 대리하여 외신이 폐하께 최상의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고맙습니다. 귀국 천황 폐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 주십시오. 자, 공식적인 석상이 아니니 너무 격식을 차릴 것 없습니다. 편히 앉읍시다."
이선은 일본인들과 악수하고,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최상급 샴페인과 포트 와인, 위스키가 귀빈석에 제공됐다.
의례적인 이야기가 오간 후에, 이선-김옥균-사이온지-고토 4인만 남고 모두 귀빈석에서 물러났다. 프랑스 유학파인 사이온지와 독일 유학파인 고토는 모두 외국어가 가능했으므로, 영어로 회담이 진행됐다.
열차가 평양을 향해 움직이자, 이선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탄 이 광무호는, 장차 부산에서 황성을 지나, 만주까지 직통으로 이어지는 특급열차가 될 겁니다. 일본도 이 열차를 통해 대륙으로 이어질 수 있겠지요."
"과연 그렇습니다. 일본 역시 동양의 번영과 상호 이익을 위하여, 무기가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기여하고 싶습니다. 동양 평화의 상징인 만철은 한국과 청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일본제국이 ‘무기가 아닌 평화’로 동양의 번영에 기여한다는 말이 역설적이긴 했지만, 일본의 의도야 어쨌건 간에 무기로 제패할 수 있는 힘이 빠진 것은 사실이었다.
"고균과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들었습니다. 한국이 귀국을 어찌 도우면 되겠습니까?"
"만철 자본금 납입에 필요한 1천만 달러, 2천만 원을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선은 역설감과 우월감을 동시에 느꼈다.
실제 역사에서 1907년이면, 일본이 한국에 강요한 차관 천삼백만 원을 갚기 위해 전국민적인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다. 그런데 정반대로 일본이 한국에 구걸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동맹국인데, 기꺼이 도와드려야지요. 전쟁 공채로 일본이 갚아야 할 2천만 원을 변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은 러일전쟁 초반에는 한국에 군수품을 돈을 주고 구매했지만, 중반 이후에 재정이 부족해지자 전쟁 공채로 대신했다. 그렇게 쌓인 빚이 5천만 원이었다.
"대한에 있어 2천만 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만, 동맹국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폐하의 후의(厚意)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일본은 결코 후의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사이온지는 감사를 표했지만, 아직 부족했다. 갚아야 할 빚이 2천만 원 줄어든 건 기쁜 일이지만, 당장 필요한 돈이 확보된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왜, 부족합니까?"
"아니, 그게 아니오라……. 폐하의 후의에는 거듭 감사드립니다만, 차관 변제는 당장 자금 확보로 이어지는 게 아니므로……."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우리도 당장 현금 2천만 원이 있는 건 아닙니다. 대신……."
사이온지와 고토는 초조하게 이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프랑스가 차관을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이미 주한 프랑스 공사 플랑시와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오! 기쁜 소식입니다. 하온데 러시아가 압력을 행사하지 않던가요?"
"아, 물론 프랑스는 러시아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러시아는 자신이 부설한 남만주 철도를 전쟁으로 내놓아야 했고, 그 지분 일부를 일본이 확보하겠다는데 동맹국 프랑스가 차관을 제공하는 걸 좋아하겠습니까?"
"그, 그렇지요……."
이선은 일본인들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씩 웃었다.
"프랑스가 일본으로 직접 차관을 제공하는 형태가 아닙니다. 프랑스가 대한제국 국채 2천만 원을 구입하고, 그렇게 받은 돈을 비밀리에 귀국에 제공하는 거지요. 이러면 러시아가 반대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폐하!"
사이온지와 고토가 자리에서 일어나 감사를 표했다. 한국이 일본을 위해 그렇게 번거로운 일까지 해 준다는 데 감읍할 따름이었다.
"귀국에 도움이 돼서 기쁩니다. 그런데 대한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다."
세상에 공짜란 없었다. 이제 청구서가 갈 차례였다. 사이온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일본이 귀국을 위해 무얼 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동맹이라면, 불평등조약을 완전히 철폐해야지요. 영사재판권과 최혜국 대우는 해결됐으니, 남은 건 관세자주권입니다. 일본이 한국에 먼저 관세자주권을 돌려준다면, 일본이 서양에 요구하는 관세자주권 회복이 더욱 명분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한일 양국이 서양에 관세자주권 회복을 공동으로 협조할 수도 있고."
한국에 남은 건 이제 관세자주권의 회복이었다. 서양 열강은 영사재판권은 돌려줘도, 관세자주권만은 넘겨주지 않으려 했다. 특히 무역이익에 집착하는 영국과 미국이 강경했다. 일본도 아직 완전한 관세자주권은 쟁취하지 못했다. 일본 정부의 최우선 과제도 관세자주권 회복이었다.
"폐하의 말씀은 지당하십니다. 일본은 한국과 쌍무적이고 호혜적인 새 관세 협정에 동의합니다."
사이온지는 현실을 인정했다. 한국에 이런저런 신세를 지고 있는 상황에서, 관세자주권을 계속 반대할 순 없었다. 차라리 한국에 관세자주권을 넘겨주고, 서양과의 외교에 필요한 지렛대로 삼는 게 낫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렸다.
"아주 좋습니다. 그럼 1년 이내로 새로운 관세 협정을 체결합시다. 비준에서 발효까지 최대 3년이면 충분하겠지요?"
"3년이라, 충분합니다."
새 협정 체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으나, 한일 양국의 최고 권력자인 이선과 사이온지가 동의했으니 남은 건 절차상의 문제였다.
한국은 마침내 숙원이던 관세자주권을 회복했다.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30여 년 만의 일이었다. 비록 대일 관세자주권 회복에 국한됐지만, 장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서양 열강도 포기하게 될 터였다.
"자, 관세자주권 문제는 2천만 원 채무 변제와 관계가 있고, 프랑스를 통해 제공할 차관 2천만 원은 만철 지분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선의 청구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관세자주권 문제로 퉁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사이온지는 낙망했다.
"그럼……."
"2천만 원을 제공하는 대신에, 당분간 일본 지분의 일부만 한국이 행사했으면 합니다. 국제 신디케이트가 34%를 차지하는데, 여긴 실질적으로 미국 정부 소유란 말이지요. 즉, 미국 정부가 대주주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일본이 2%만 제공하면 한국이 35%로 실질적인 대주주가 됩니다. 어떻습니까?"
이선의 요구는 합리적인 수준이었다. 지분을 영구히 넘기라는 것도 아니고, 미국의 독주를 막기 위해 한국이 일시적으로 일본 지분의 일부만 행사해서 대주주가 되겠다는 의미였다.
"좋습니다. 프랑스에 빌린 차관을 갚는 시점까지, 귀국에 일본 지분의 일부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담보로 제공하겠습니다."
"역시 후작은 말이 잘 통하는군요. 아주 좋습니다."
이선은 사이온지에게 건배를 권했다. 사이온지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술잔을 부딪쳤다.
이로써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지분은 정리됐다.
일본은 미국에 지분을 넘기는 대신에, 한국과 손을 잡고 만철 경영에 합류하는 길을 택했다.
대한제국 정부 33%(일시적으로 35%), 국제 신디케이트 34%, 일본 정부 33%(일시적으로 31%).
역설적인 건, 국제 신디케이트 지분은 다국적을 빙자한 미국 정부 소유였고, 일본 정부 지분은 실질적으로 영·불 자본 소유였다는 점이었다.
만철의 삼분 균형이라는 이선의 구상은 유지됐다.
이제 만주의 삼분 계획을 이룩할 차례였다.
‘주권국가’ 청국을 내세워, 한국과 러시아가 남북 만주를 통제하는 만주 삼분 계획을.
차르와의 담판이 필요했다. 이선은 친히 러시아 방문을 고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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