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제국의 비밀
1907년 9월 2일(율리우스력 8월 20일).
대한제국 황제 이선과 러시아제국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정상회담이 페테르고프 여름궁전에서 이뤄졌다.
"신의 은총에 의해, 전(全) 러시아의 전제군주, 폴란드의 국왕, 핀란드와 리투아니아의 대공, …… 체르케스와 투르키스탄 제후들의 보호자, 기타 등등이신 니콜라이 2세 폐하!"
입헌군주국으로 전환되었음에도, 차르를 수식하는 호칭은 여전히 길고도 복잡했다.
"대한제국 황제가 좋은 형제이신 러시아 황제 폐하께 인사드립니다."
"전러시아의 황제인 짐은 좋은 형제이신 한국 황제 폐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선과 니콜라이는 반갑게 악수를 했다.
두 사람으로서는 11년 만의 재회였다. 1896년 니콜라이 2세 대관식 이후로 첫 만남이었다. 이선이 대등한 황제의 신분으로 만나는 것도 처음이었다.
동갑내기 두 황제는 20대 후반의 청년에서, 40대를 바라보는 불혹의 중년이 되어 있었다. 니콜라이는 여전히 잘생긴 용모였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는 듯 양쪽 이마가 M자로 깊게 파여 있었다.
"폐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덕분에 평안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어떠십니까?"
"폐하의 염려 덕에 무탈합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온갖 일이 쏟아져서 강녕하고 평안할 리가 없겠다마는, 두 황제는 의례적인 인사로 의식을 시작했다.
국서 봉정에 이어, 제복과 훈장 교환이 이뤄졌다.
니콜라이는 이선에게 제1근위보병사단 제1여단 프레오브라젠스키(Preobrazhensky) 연대 대령 제복과 ‘제1사도 성 안드레이 훈장’을 수여했다. 표트르 대제가 창설한 러시아의 가장 오래된 근위대이자, 러시아제국 최고 훈격의 훈장이었다.
이선은 니콜라이에게 근위사단 제1보병연대 정령 제복과 대훈위금척대수장을 수여했다. 역시 대한제국 최고 훈격의 훈장이었다.
"근위대 제복이 잘 어울리십니다."
"폐하야말로, 하하."
이선과 니콜라이는 교환한 근위대 제복으로 갈아입고 훈장을 가슴팍에 달았다.
상대방에게 근위대 명예 대령의 지위를 부여하고 제복과 최고위 훈장을 교환하는 건 정상회담을 하는 유럽 군주 간의 관례였다.
대한제국 황제인 이선 역시 유럽의 군주를 대하는 예법으로 존중받았다. 1873년 페르시아 황제 나스르 알딘 샤와 1897년 시암 국왕 라마 5세에 이어 아시아의 군주로서는 세 번째인 유럽 방문이었다. 이선이 방문할 예정인 국가들은 모두 이에 준하는 예우를 준비했다.
"두 분 폐하, 이쪽을 보십시오. 네, 좋습니다. 잠시만 대기해 주십시오. 사진을 찍겠습니다."
이선과 니콜라이는 사진기 앞에서 군도를 짚고 근엄한 자세를 취했다. 황실 사진사가 연방 사진을 찍었다. 양국 군주가 상대국 근위대 제복을 입고 찍은 사진은 신문에 실려 한러 우호의 상징이 될 터였다. 이건 군주만이 할 수 있는 외교였다.
"자, 사진 촬영도 끝났으니, 다과와 함께 이야기합시다."
"바라던 바입니다."
격식과 절차를 벗어나 편안한 분위기가 필요했다. 니콜라이는 외무대신 이즈볼스키, 이선은 비서원경 김학우만 대동하고 회담에 나섰다.
"먼저 헌법 반포와 두마 개설을 축하드립니다. 헌법과 의회는 폐하의 치세를 빛내고, 로마노프 왕조의 영속을 보장하게 될 것입니다."
니콜라이 입장에서는 그다지 축하받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헌법과 의회는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후퇴였고, 가능하다면 당장 해산시켜 버리고 싶었다.
"고맙습니다. 폐하의 조언이 적절했습니다."
그래도 니콜라이는 점잖게 화답했다. ‘자유주의자들을 반대파에서 분리해 사회주의자들을 제압하라’는 이선의 조언이 유용했던 건 틀림 없었다. 10월 선언으로 혁명이 잠잠해진 건 분명했다.
다만 비테나 스톨리핀과 달리 니콜라이는 자유주의자들도 ‘반역자’라고 생각하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일단은 인내하고 있었다.
"영국이 배후에서 조종한 일본과의 전쟁이 없었더라면, 작년과 같은 신민의 대규모 소요가 과연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짐은 영국과 일본에서 소요를 조종한 게 아닌가 의심합니다. 짐이 원하지 않았던 전쟁으로 인해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단 말이지요!"
니콜라이는 아직도 혁명의 배후를 의심했다. 그동안 오랫동안 누적되었던 러시아 사회의 모순이 피의 일요일로 폭발되었다는 인식이 없었다.
여전히 절망적인 인식 수준에 이선은 한심함을 느꼈지만,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폐하, 짐은 영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좀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러시아 혁명을 조종할 의사도 능력도 없습니다. 아니, 그 어떤 군주국도 러시아제국이 혁명으로 무너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그 여파를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그래요, 폐하께서는 영국과 일본에 대해 잘 알겠지요. 그들과 동맹을 맺었으니까. 짐과 러시아가 한국에 얼마나 호의를 베풀어 왔는지는, 다른 사람도 아닌 폐하께서 가장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러시아의 적과 손을 잡은 겁니까?"
외무대신 이즈볼스키가 당혹감을 느낄 정도로, 니콜라이는 외교적 언사를 접고 이선을 공박했다. 니콜라이는 여전히 앙금이 남아 있었다.
"폐하, 서한으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한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만약 영일동맹에 합류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을까요? 러시아가 한국을 지배하고 선제공격할 것이라는 망상 속에 있던 일본이, 한국을 끝내 침략했을 겁니다. 당시의 국력으로서는 막기가 어려웠습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 부득이한 선택이었습니다."
"러시아가 한국을 지배하고 일본을 공격한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들은 정말로 그렇게 믿었습니다. 지금은 좀 치료됐지만, 심각한 러시아 공포증 환자들이었지요."
"설령 만약 일본이 귀국을 침략했더라도, 짐이 대군을 파병해 도와줬을 겁니다. 그럼 일본의 침략을 더욱 쉽게 막을 수 있었을 터. 결국 한국이 동맹이라고 일본의 전쟁수행에 도움을 준 덕에, 일본이 극동에서 우리 함대를 대파한 게 아닙니까?"
니콜라이의 힐난은 결국 한국이 먼저 방패막이 역할을 해 줬어야 했다는 말이었다. 만약 전선이 만주가 아니라 한반도에 국한되었다면, 니콜라이의 말대로 러시아가 완승을 거둘 수도 있었겠지만, 한국이 입었어야 할 피해가 막대했을 터였다.
이선은 굳이 이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대신 화제를 전환했다.
"묵던(봉천) 회전의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러시아군의 빛나는 승리는 일본의 만주 침략을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육군의 대륙 지배라는 망상이 물리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었지요. 이제 그들은 두 번 다시 대륙을 넘보지 않을 것입니다."
"흠, 과연 러시아 육군은 세계 최강이라고 칭송받을 자격이 있지요."
"총사령관 쿠로파트킨 장군이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할 수 있었던 건, 알렉세이 브루실로프 장군이 확보한 일본군 정보 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브루실로프 장군은 어떻게 극비사항인 일본군의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을까요?"
니콜라이가 알기로는, 러시아 귀족 여성과 사랑에 빠진 한국 외교관 이위종이 오흐라나에 포섭되어 정보를 전달한 것이었다.
분명히 독단적인 행동이었을 터였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이선이 알고 있단 말인가?
"설마……."
"지금부터 짐이 하는 이야기는 극비사항으로, 외부에 드러나면 안 됩니다."
이선은 김학우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김학우가 문서를 가방에서 꺼내 이선에게 바쳤다. 이선은 그대로 니콜라이에게 전달했다.
극비라고 적힌 문서를 읽던 니콜라이는 놀랐다. 이위종이 브루실로프에게 전달하고, 니콜라이가 오흐라나를 통해 보고받은 일본군 극비 문서는 사본이었다. 원본은 바로 지금 이선이 보여 주는 것이었다.
"짐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러시아의 승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수단을 다 썼습니다. 일본에 대한 배신이라 해도 할 수 없겠습니다마는, 짐에게 있어 러시아는 깊은 은혜를 입은 나라이니, 패하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선이 제공한 정보 덕에 러시아군이 봉천 회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었다. 비로소 ‘진실’을 깨닫게 된 니콜라이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가만히 생각하면, 결국 한국은 러시아와 일본의 희생이 늘어나는 가운데서 이익을 얻은 셈이었다. 하지만 봉천 회전의 승리로 전세 역전의 기회를 얻고, 러일전쟁의 패전을 막아 끝내 혁명의 확산을 저지할 수 있었던 니콜라이로서는 그런 걸 따질 생각이 없었다.
"무수히 많은 자가 폐하를 일본과 결탁한 배신자라고 비난했지만, 짐은 폐하를 믿었습니다!"
"짐은 폐하와 로마노프 왕조, 러시아를 위해서라면 그런 오명을 얻어도 괜찮습니다. 폐하께서 짐을 믿어 주신다면, 그런 세간의 오명 따위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이선의 담담한 태도에, 단순한 니콜라이는 더욱 깊은 감명을 받았다.
‘허풍쟁이 사촌 빌리’, 즉 카이저라면 자신의 공로랍시고 한참은 으스대며 떠들어 댔을 것이다. 베를린에서 러시아 전쟁 공채를 사 줬다는 이유로 얼마나 공치사를 했던가. 카이저의 잘난 척이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던 니콜라이로서는, 이선의 겸손하고 담담한 태도가 훨씬 좋았다.
"짐이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전 러시아를 제일 먼저 방문한 건, 짐과 폐하, 한국과 러시아 양국에 모두 도움이 되고자 함입니다. 양국의 번영을 위하여, 외교적 협상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니콜라이가 감명을 받은 틈을 타, 이선은 본론을 꺼냈다.
"무엇이든 말씀해 보십시오."
"지금 러시아에 필요한 건, 무엇보다 안정입니다. 일본의 대륙 침략은 저지되었고, 극동의 위협은 사라졌습니다. 영국과 대립할 요인이 하나 사라진 거지요. 영국 신임 자유당 정권은 러시아와 계속 적대할 생각이 없습니다. 러시아의 동맹인 프랑스가 영국과 협상을 한 이상, 러시아도 영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합니다."
"정확한 분석이십니다, 폐하. 이제 러시아는 일본은 물론이요, 영국과도 대립을 이어 나갈 이유가 없습니다."
이선의 말에 니콜라이보다 이즈볼스키가 더 반색했다. 러시아 정부 내의 대표적인 친영파인 이즈볼스키는 진작부터 영국과의 협상을 추진해 왔지만, 차르의 반대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1906년 여름에 체결한 독일-러시아 밀약은 결국 무산되었다. 애초에 노불동맹과 독로밀약이 공존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카이저와 차르가 맺은 밀약을 알게 된 비테와 대신들이 결사반대해서 무산시켰다. 프랑스는 최대 투자국이었다. 프랑스가 자본이라도 회수하는 날에는 러시아 산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 것이었다.
밀약이 무산되긴 했어도, 차르는 여전히 독일과의 협력에 미련을 두었다. 차르와 수구파에게 있어 영국 자유당 정권은 혐오스럽기 짝이 없었다. 1906년 혁명이 영국 정보부의 조종에 의해 발생했다고 믿고 싶어 하는 차르로서는, 영국 자유당이란 곧 ‘유대인-프리메이슨-앵글로색슨 금권동맹’의 상징이었다.
"으음……."
"만약 폐하께서 그럴 용의가 있으시다면, 짐이 장차 프랑스와 영국을 방문하는 길에 협상 중재를 제안해 보겠습니다. 한국은 영국의 동맹이자 러시아의 우방으로서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당장 결정할 수 없으니, 대신들과 논의한 후에 결정하도록 하지요."
"예, 차분히 생각해 보십시오."
니콜라이는 특유의 우유부단함을 드러냈다. 이선도 재촉하지 않았다.
애초에 영러협상 중재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할 일이 아니었고, 그보다 중요한 건 만주와 몽골 문제를 놓고 한러협상을 체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비책도 세워 둔 터였다. 한 번에 모든 패를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이제는 예전처럼 편하게 이야기해 보세. 격식 차리고 말하려니 힘들구만."
"좋지, 이왕이면 술 마시면서 이야기하세. 이제 술 없이는 살 수가 없단 말이야, 하하."
"하하하, 역시 자네는 러시아인과 어울릴 자격이 있어!"
정상회담이 끝난 후, 이선과 니콜라이는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내실에서 동석한 사람 없이 술잔을 부딪치며 담화를 했다.
"건강은 요새 좀 어떤가?"
"예전만 못해.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건지. 큰 병은 없는데, 자잘하게 아픈 곳이 많네. 특히 허리, 목, 어깨, 손 등등. 내가 황제인지 사무직인지 모르겠다니까."
"저런. 너무 일을 많이 하는 거 아닌가? 나한테는 전제군주 하지 말라고 하면서, 나보다 더한 전제군주로군."
"폐하께서 다스리는 나라는 이미 강대국이 아닌가?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먼 약소국이네. 쉴 틈이 없지."
이제 대개혁 25년, 온갖 난제가 산적해 있는 대한제국과 달리, 러시아는 비테나 스톨리핀 같은 시대적 상황을 정확히 살피고 있는 유능한 관료를 믿고, 내각에게 통치권을 이양하여 입헌군주로서 살아도 충분할 터였다.
니콜라이는 입헌군주로서는 손색이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온화하고 점잖은 신사에, 의례에 능통한 군주이자, 가족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가장이었다. 입헌군주로서 최상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전제군주정에 대한 집착이 니콜라이를 망치고 있었다. 격동기의 대제국을 다스릴 능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그 자신도 능력 부족을 절감하고 있으면서도, 아집에 가까울 정도로 ‘신이 부여한 신성한 의무’에 집착했다.
"그 바쁜 와중에도 폐하께서는 3남 2녀나 두셨던데. 11년 전만 해도 결혼도 안 했었는데 말이야. 결국 그 폴란드 여인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럴 수 있겠다 싶었어."
니콜라이는 이선이 폴란드 독립운동가 여인에게 빠져 ‘일시적으로 러시아에 반대하는 정책’을 취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 오해는 이제 풀렸지만, 이번 유럽 순방에도 마르가리타를 대동한 걸 보면 여전히 오해하기 좋았다.
"어쩌다 보니 그리됐네. 폐하께서도 1남 4녀를 두지 않으셨는가. 똑같이 다섯 명인데."
"딸만 연속으로 넷을 낳아서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부담이 컸지. 아니, 그렇다고 해서 내가 딸을 바라지 않았던 건 아냐. 난 자식들을 모두 똑같이 사랑하네. 다만 아들만 계승할 수 있다는 계승법이 있으니까 문제지."
니콜라이가 애처가이자 자식들을 끔찍이 아끼는 가장이라는 건 유명했다.
아버지로서는 더할 나위 없었지만, 바로 그게 군주로서 그를 무너트리는 원인이었다.
"러시아 공주님들의 아름다움이야 유명하지. 어느 왕실에나 최고의 신붓감으로 여겨질 거야."
"뭐, 내 딸들이긴 해도 사랑스럽긴 하지. 하하하."
"한국에선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란 속담이 있다네. 그래도 똑같이 자식 키우는 처지에 그 마음은 이해가 되는군."
이선과 니콜라이는 다섯 아이의 아빠라는 공통점으로 환담을 했다. 어쩔 수 없는 중년 가장들의 대화 소재였다.
"황태자께서는 건강하신가? 얼마 전에 세 살 생일이었던 걸로 아는데. 나도 한번 만나 보고 싶군."
"음? 아아, 건강하고말고. 사랑스러운 아이라네. 암, 내 벗인 자네도 만나 봐야지."
말은 그렇게 해도, 니콜라이의 표정은 예사롭지 않았다.
알렉세이 황태자가 혈우병이라는 사실은, 러시아 내에서도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아는 극비사항이었다. 제국 최대의 비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연히 이선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선은 그 비밀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뭐라고 해야 할지도 준비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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