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계승의 문제
대한제국 국내에서 가지는 이선의 권위가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그 누구도 황위를 넘보진 않을 터였다.
다만 이선은 부친으로부터 강제로 선위를 받는 방식으로 즉위했고, 정통성에 의문을 가진 자들이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이선의 생전에 나서진 못하더라도, 훗날 이선이 죽고 그 권위가 사라진다면, 반대파들은 어떤 황족을 내세워서 결집하겠는가?
‘태상황의 자식들 중, 순친왕 이척은 폐비의 소생이고 존재감도 없다. 의친왕 이강은 서자고 탕아로 알려졌다. 영친왕 이영은 태상황의 적자이자 총명하고 예법에 바르기로 이름 높다.’
본의에 상관없이, 좋든 싫든 이영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이척은 적자이자 왕세자였으나, 민씨의 실각 이후 정치적 생명이 끝나 버렸다. 본인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았다.
이강은 탕아 기질로 유명했는데, 그 나름대로의 처신이라 할 수 있었다. 정치적 야심이 전혀 없다는 걸 어필하기 위함이었다.
이영은 막내지만 태상황과 황태후의 적자고, 외가는 명문가인 광산 김문으로 근래 황후를 두 명이나 배출했고, 그 자신도 총명하고 처신이 훌륭했다.
그 자신이 걸어 다니는 구심점이 될 수 있었다. 국내의 반대파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한국을 흔들려는 세력이 눈여겨볼 수도 있었다.
"폐하, 영친왕 전하께서 해외 유학을 떠나시게 되셨으니, 의친왕 전하의 선례를 따라 학업을 마친 이후에도 유럽에서 대한 황실을 대표해 외교 활동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유럽으로 떠나기 전, 김옥균이 원훈들의 의견을 모아 건의했다.
"본래 그럴 생각이 있긴 했소. 헌데 벌써부터 논의할 일인가? 학업을 마치는 데 족히 3년은 필요할 터인데."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신등은 영친왕께서 당분간 외유(外遊)하심이 가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외유라, 얼마나?"
"최소 7년에서 10년은 되어야 합니다."
황자 이진이 장성하여 확고하게 대내외적 기반을 만들 때까지, 이영이 국내에 없기를 바랐다.
마침 황실 종친들이 태자 책봉을 건의하는 무렵에 이런 말이 나왔기에, 이선은 김옥균의 말에 담긴 속내를 파악했다.
"경들은 혹여 영이 문제가 되리라 생각하는 거요? 영은 내가 아끼는 아우요."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영친왕은 총명하고 처신이 바르십니다. 결코 국가와 황실에 누가 될 마음을 품지 않으실 겁니다."
김옥균도 이영의 충성심은 의심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자체였다.
"하오나 영친왕께서는 태상황의 적자이자, 외척도 명문가입니다. 광산 김문 주위에 유림들이 많이 있지요. 더욱이 태후전과 곤전(坤殿, 황후)은 인척 관계이기도 하오니……."
"듣기 거북하군. 황태후와 황후가 광산 김문이라, 영친왕이 유림들과 결탁이라도 한단 말인가?"
이선은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애초에 황태후와 아영을 택한 건 대원군이었다. 정치적 야심이 전혀 없는 유학자 가문에서 선택했고, 실제로 그녀들은 전혀 정치에 개입하지 않았다. 이선의 대한제국은 외척이 정치에 간섭할 수 있는 나라도 아니었다.
"폐하, 신의 불경을 벌하시옵소서. 하오나 건저(建儲)와 관련된 일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맞습니다. 조종(祖宗)의 고례를 살펴보면……."
김옥균은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조선왕조 500년 동안 반복되었던 ‘비정상적’ 왕위계승에 대한 암시였다. 정안공(태종)과 수양대군(세조), 그리고 그 이후에도 반복된 불행한 역사들.
"지나간 역사일 뿐이오. 황실 내부의 일은 짐이 알아서 할 터이니, 경들은 국무에 매진함이 좋겠소."
"건저는 결코 황실 내부만의 일이 아닙니다. 곧 국가의 일입니다. 신등은 국가의 일을 아뢰고자 합니다."
시대가 크게 바뀌었다는 건 황실도, 김옥균과 대신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불행한 역사에 계속 신경 쓰였다.
개화당 원훈들은 이영이 걸어 다니는 구심점이 되어 반대파가 형성되는 상황 자체를 우려했다.
결국 이선은 그들의 우려에 손을 들어주었다.
"의친왕도 유학 이후 귀국까지 10년이란 기한이 소요됐지. 영친왕이 그 전례를 따라도 이상할 일은 없겠지."
"지당하십니다, 폐하."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친왕이 짐의 대리인으로 유럽에서 외교 활동을 행하기 위함이지, 결코 다른 뜻은 없소."
이선은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영은 어디까지나 황실의 일원이자 황제의 대리인으로 유럽에 체류할 예정이니, 괜히 의심하거나 감시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김옥균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숙였다.
‘이 선량하고 순진한 녀석이 괜히 의심받을 일은 없으면 좋겠군.’
이선은 막내아우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품성은 선량하고, 처신도 바르고, 욕심도 없었다. 황태후나 외척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단지 태상황의 적자라는 이유만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이영이 러시아 귀족 영애에게 한눈에 반했다. 이영에게는 풋풋한 첫사랑의 시작이었지만, 이선은 순간적으로 정치적 계산을 했다.
‘외국 여성, 그것도 서양인과 결혼하면 황실 원로들과 보수적 유림들은 노발대발하겠지. 자연히 계승권 관련 논쟁에서 사라질 수 있다.’
11년 전에는, 바로 그 이유로 이강에게 혼인을 할 수 없다고 단언했던 이선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선은 자식이 없었기에, 만약 자신이 잘못되면 후계자로 이강을 염두에 둬야 할 상황이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선은 바로 이영의 첫사랑이라는 가치를 깨달았다.
그렇기에 이선은 일부러 ‘시험’을 한 것이었다. 의외의 면모를 발견하는 흥미도 있었지만, 이영의 진심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영이 정녕 아나스타샤와 혼인을 하길 원한다면, 이선은 지지해 줄 생각이었다.
‘미래를 생각하면, 이왕이면 러시아 귀족보다는 영국 귀족이 낫겠는데. 가능하면 왕족이 가장 좋고. 뭐, 영국 유학 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
이선의 모든 생각은 정치로 귀결됐다. 왕족으로서는 최초로 외국 여인과 결혼한다면, 이왕이면 정략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대상이어야 했다.
이미 자신은 니콜라이 2세를 통해 러시아와는 관계가 끈끈하니, 이영이 유학 중에 영국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 두면 미래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그래도 영에게는 외교를 맡겨선 안 되겠어. 너무 착해 빠졌으니. 겉으로는 웃음 띤 얼굴로 말해도 뒤로는 온갖 음모가 판을 치는 외교인데, 강처럼 능글능글하고 계산이 빨라야 살아남지.’
서자로 태어나 일찍 어미를 잃고 궁궐 밖에서 자란 이강이 본능적으로 생존법을 안다면, 적자이자 막내로 태어나 구중궁궐에서 자란 이영은 온실 속 화초나 다름없었다.
"영아, 너는 총명하고 배움이 빠르니, 영국에서 새로운 학문을 많이 익혀라. 특히 학문의 근원이 될 기초학문을 익히길 바란다."
"예, 폐하."
이영은 타고난 머리가 총명한 데다 성실해서,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아직 써먹지를 않아서 그렇지, 머릿속에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이왕이면 한국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져 주면 좋겠지만, 인문교육을 받은 이영의 관심사도 철학·역사학·법학·정치학 쪽이었다.
이선은 이영이 어떤 학문을 택하건, 학자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본래 조선 왕실은 유학자를 지향했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학문의 성격이 바뀌긴 했어도 호학적인 풍토였다. 전문 학자가 있어서 나쁠 건 없었다. 이영이 상아탑의 세계에 산다면,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터였다.
* * *
황실특별열차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정차했다. 여기서 포젠(포즈난)을 거쳐 베를린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이틀만 사적인 시간을 쓰겠소."
이선은 소수의 수행원만 대동하고 바르샤바 동남방의 루블린(Lublin)으로 향했다.
루블린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도시였다. 하지만 지금은 옛 영화의 흔적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는 마르가리타의 본가가 있었다.
루블린 역에 내리니, 플랫폼에 러시아 군인과 경찰들이 도열해 있었다. 이선이 내리자마자, 이들이 일제히 거수경례를 했다.
"황제 폐하! 본관은 루블린 주둔군 사령관입니다. 오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최상의 예로 모시겠습니다."
"고맙소. 노고가 많소."
말은 그렇게 해도, 군경들은 이선의 방문이 싫을 터였다.
‘정치범’이 귀국하는 바람에 그들의 일거리가 늘어나지 않았나? 상부에서는 마르가리타 얀코프스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고 명을 내렸다.
한국 황제는 ‘차르의 벗’이니 정중히 예의를 갖췄지만, 빨리 가 줬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이선과 수행원을 태운 특별 마차는 루블린 성으로 향했다. 옛 연합왕국 시절, 폴란드 공작이 살았던 성이었다.
폴란드 총독부 당국은 이선에게 루블린 성을 숙박지로 제공했다. 명목상 ‘우방국 황제 폐하를 누추한 개인의 집에 머무르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사적인 방문을 원치 않는다는 의미였다.
"폐하께서 머무시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의 준비를 해 놓았습니다."
"고맙소.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오."
"별말씀을요. 그럼 푹 쉬십시오. 여사님은 곧 모시고 오겠습니다."
"배려에 감사하오."
‘여사님(Madame)’은 물론 마르가리타를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그녀는 공식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신분이었지만, 알 사람은 아는 이야기였다.
"폐하."
"마르가리타!"
반가운 목소리에 이선은 즉시 일어나 마르가리타의 손을 잡았다. 이선의 눈짓에 그녀를 ‘호위’하던 러시아 헌병들이 물러났다.
"어머님께서는 괜찮으시오?"
"괜찮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많이 힘드세요. 아무래도 이별을 각오해야 할 것 같아요. 하아, 의사인데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네요."
마르가리타는 슬픈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선은 그녀를 끌어안고 위로했다. 상심한 탓인지, 한 달 사이에 마르가리타는 더욱 가냘파졌다.
"어머님께서 꼭 회복하시길 바라는데, 뭐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려. 미안하오."
"아니에요. 폐하께서 손을 써 주시지 않았더라면, 전 어머니 임종도 못 지켰겠죠. 폐하 덕분이에요."
마르가리타는 진심으로 이선에게 고마워했다. 1907년은 정치범으로 러시아에서 추방된 그녀가 귀국하기에 적당한 시기가 아니었다.
불과 1년 전, 1906년 혁명과 연계된 폴란드 봉기는 러시아군에 의해 진압됐다. 폴란드 봉기는 다수의 희생자를 내고 실패로 끝났다.
폴란드 전역에 워낙 봉기가 빈발했기에, 러시아는 무려 40만 대군을 폴란드에 파견해야 했다. 동시기 만주 전선에 보낸 병력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당국에서 귀찮게 하지 않소? 내가 차르에게 부탁을 했는데……."
"특별히 귀찮게 하지는 않아요. 단지 집 주위에 늘 경찰이 대기하고 있을 뿐. 가족 외에는 아무도 방문하지 못하도록."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일부러 한국어로 말했다.
총독부는 마르가리타에게 ‘옛 동지’들이 찾아올까 봐 감시했다. 실제로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다.
"주로 자치주의자들이에요. 폐하가 차르와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니까. 제가 폐하를 통해 차르 정부가 폴란드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주길 바란다는 거죠."
불행 중 다행인 건, 1906년 혁명에 놀란 러시아가 더 이상 탄압과 동화정책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는 점이었다.
독립운동가와 사회주의 계열 혁명가들은 가혹한 탄압을 받았지만, 러시아 당국에 협력하는 ‘자치주의자’들의 청원은 받아들여졌다. 폴란드에도 불평등하게나마 선거권이 부여되어 자치파 의원들이 국가두마에 대거 진출했고, 폴란드 자치주의 정당인 민족민주당이 국가두마 원내 4당의 자리에 올랐다.
국가두마에서 활동하는 민족민주당이 이선에게도 초청을 했으나, 이선은 정중히 사양했다. 러시아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폴란드 문제에 끼어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태의가 신비한 동양의학으로 황태자의 병을 치료했다면서요? 그분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줄이야. 대체 무슨 병이길래요? 어떻게 치료한 거예요?"
의사인 마르가리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의학의 환상에 빠진 여타 유럽인들과 달리, 한국서 황실 주치의를 역임한 그녀는 실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늙은 태의가 세계 기준에서 볼 때 그리 뛰어난 의사가 아니라는 건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숭앙을 하니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 그런 게 있소. 러시아 황실 내의 기밀이라 말해 주기가 어렵구려."
이선은 설명을 포기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마르가리타는 넘어가지 않을 터였다.
"그렇군요. 의사로서 궁금하긴 했는데."
"언젠가 말할 기회가 있겠지. 지금은 아니오."
마르가리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선이 곤란할 질문을 하지 않았다.
"당신이 그토록 원했던 폴란드에 돌아왔는데, 아쉽게도 행동의 자유라고는 없군."
"어쩔 수 없죠. 언젠가 폴란드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때, 그때 다시 와요."
이선과 마르가리타는 루블린 성의 정원을 산책했다.
당국이 이선이 마르가리타의 본가를 방문하는 걸 경호 문제를 운운하며 내키지 않아 하니, 이선도 방문을 접었다.
‘차르의 벗’인 이선에게 우호적인 러시아 본국과 달리, 폴란드 총독부는 묘하게 적대적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신경과민 상태였다.
"흠, 페테르부르크에서 어떤 일이 있었냐면……."
"정말요? 그 점잖은 왕자님이? 의외네요."
이선이 이영과 아나스타샤의 이야기를 전하자, 마르가리타는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폐하 생각은 어때요? 11년 전 강 왕자님이 떠오르네요. 그때처럼 영 왕자님의 첫사랑을 방해할 생각인가요? 그분은 폐하가 가장 아끼는 아우시잖아요."
"방해라니, 무슨 말을. 11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영이 원한다면 난 지지해 줄 생각이 있소."
이선의 말에 마르가리타가 미소를 지었다.
"잘 생각하셨어요. 사람은 자기 마음 끌리는 대로 살아야 해요. 결국 당신이 나와 이렇게 된 것처럼."
"그래, 그렇지. 근데 당신은 러시아 사람, 특히 귀족이라면 싫어할 줄 알았는데?"
"오해에요. 모든 러시아 귀족을 싫어하는 건 아니라고요. 사람마다 다 다른걸요. 단지 인민을 억압하는 자들을 싫어하는 것뿐이지. 그게 어린 귀족 아가씨 책임은 아니잖아요?"
마르가리타는 흔쾌히 말했다. 어쩌면 아나스타샤에게서 예전의 자신 모습을 겹쳐 보는 것일지도 몰랐다. 결국 동양의 왕자와 사랑에 빠지고만 자신의 젊은 시절을.
"참, 서울에서 전보 받았는데, 안과 라는 건강하답디다. 어서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군."
"다행이네요. 그래요, 내가 돌아갈 집은 결국 폴란드가 아니라 한국에 있죠."
마르가리타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아들과 딸을 떠올렸다. 결국 그녀가 살아갈 동력은 아이들에게 있었다.
"영 왕자님이 그 아가씨랑 결혼하게 된다면, 모두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결혼이면 좋겠어요."
‘기독교적인’ 일부일처제 결혼이길 바란다는 말이었다. 이영과 아나스타샤가 정식 결혼을 한다면, 그들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은 이안과 이라처럼 서자가 아니었다.
다만 마르가리타가 간과하고 있는 점은,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한국에서는 절대 환영받을 수 있는 결혼이 아니었다. 여전히 보수적인 조선 왕실을 생각하면, 왕위계승권을 포기한다든가 하는 조치가 있어야만 가능할 터였다.
‘앞으로 12년 정도……. 내 치세를 끝으로, 완전한 입헌군주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군주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아니한다면, 왕위계승에 대해 민감한 반응이 나오지 않겠지.’
앞으로 역사에 두 번 다시 왕위계승을 놓고 친족 간의 다툼이 없기를 바랐다.
왕권을 내려놓으면, 군주를 대신해 민의를 대변하는 정부가 통치를 도맡아 하면, 왕위계승의 문제도 사라질 터였다.
이선은 대한제국 초대 황제이자, 통치 전권을 행사하는 마지막 군주가 될 생각이었다.
그 기한은 예상대로라면 세계대전이 끝나고 국민국가 건설이 완료되는 시기, 1919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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