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세계사의 거인들
1907년 10월 중순. 이선과 대한제국 사절단은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입국했다.
"대한제국 황제 폐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런던 시내 곳곳에 유니언 잭과 태극기가 함께 게양된 걸 보고, 이선은 격세지감을 느꼈다.
예전에 조선 사절단이 영국에 도착했을 때는, 방문국가 중에서 가장 홀대했었다. 미국과 러시아의 환대와 비교하면 더 차이가 났다. 왕족이나 고위관료가 응대하기는커녕, 하급관료가 형식적인 응대를 했다.
영국이 조선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청나라의 종주권을 마지막까지 지지했던 나라가 영국이었고, 조선의 관세자주권 시도에 가장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나라도 영국이었다. 거문도를 불법 점령할 때도 조선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다른 열강이 자주국으로 인정하고 전권공사를 파견한 후에도 ‘조선은 청나라의 속국’이라며 북경 주재 공사의 지휘를 받는 영사 파견을 고집했었다.
대한제국 선포 후에도, 영국 언론은 이선을 ‘러시아의 앞잡이’, ‘러시아 스파이’라고 모욕했다.
한영동맹이 체결되기 직전까지, 영국에게 당한 푸대접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역시 국력은 강해지고 볼 일이야.’
이제는 달랐다. 유니언 잭과 태극기가 함께 게양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한제국은 대영제국의 동맹이었다.
영국이 손을 잡은 프랑스와도 협약을 체결했고, 이제 ‘협상국’의 일원이 된 한국은 동양 정책을 함께하는 파트너였다.
"황제 폐하, 어서 오십시오. 영국에 오심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총리 각하. 환대에 감사합니다."
이선이 총리 관저를 방문하자, 총리 헨리 캠벨-배너먼(Henry Campbell-Bannerman), 내각의 2인자인 재무장관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H. H. Asquith), 외무장관 에드워드 그레이(Edward Grey), 육군장관 리처드 할데인(Richard Haldane) 등이 맞이했다.
이들이 바로 ‘태양이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이끄는 핵심이었다. 영국은 완전한 입헌군주국이기 때문에, 선거로 집권한 정부가 모든 정책을 결정했다.
"러시아와 프랑스에서 외교적 성과를 거두고 오시는 길이라고 들었습니다."
"과찬입니다. 대한제국은 동맹으로서, 대영제국의 세계정책에 도움이 될 조치들을 취하고 왔지요."
"하하, 명성처럼 폐하께서는 과연 달변이십니다."
이선이 가장 익숙한 외국어는 영어였다. 이를 상징하듯 이선은 통역 없이 대화를 나눴다.
이선은 외교 공용어인 프랑스어도 익혀 곧잘 하는 편이었지만, 프랑스어 특유의 R 발음이 능숙하지 못해 프랑스인들이 들으면 어색한 감이 있었다. 딱 외국인이 제2외국어로 배워서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영어는 원어민처럼 구사했고, 영국인들은 동양 군주의 영어 실력에 감탄했다.
"국왕 폐하와의 회담은 사흘 후, 버킹엄 궁전에서 예정되어 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비공식 방문이지만, 이선은 에드워드 7세와 정상 회담 일정을 잡았다. 외교에 관심이 많은 에드워드 7세도 이선과의 회담을 기대하는 듯했다.
이런저런 환담을 나누다가, 이선이 갑작스럽게 화제를 전환했다.
"신사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짐은 오랫동안 암약해 왔던 러시아 스파이기 때문에, 러시아의 세계정책에 기여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이선의 갑작스러운 말에 영국 각료들은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가, 과거 영국 언론의 무례함을 꼬집은 블랙 유머라는 걸 깨달았다.
"특정 언론의 무례함을 대신 사과드립니다, 폐하. 하오나 이는 정부 입장과는 무관한 일로……."
"압니다. 자유 언론 국가에서 그럴 수 있지요. 짐은 지난 일을 들추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이선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러시아는 영국과 타협을 원합니다. 여전히 강경파들은 영국의 의도를 의심하고 있습니다만, 현재 정부를 이끌고 있는 이들은 영국과 계속 그레이트 게임을 이어 나갈 생각이 없습니다. 세력권에 대한 적절한 타협책만 제시된다면, 러시아는 협상에 응할 겁니다. 차르도 동의했습니다."
영국 각료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국의 대(對)러시아 정책을 전환할 중대한 결단의 시기가 다가왔음을, 그들은 인지했다.
"폐하의 중재에 감사드립니다. 충분한 논의 후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영 한국 공사관.
공사관에서 주최한 만찬에, ‘영한우호협회’ 인사들이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대표적으로 상무장관 데이비드 로이드조지, 자유당 하원의원 윈스턴 처칠은 의친왕 이강과도 친분이 있었고, 주영 한국공사 윤치호와도 가까웠다.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폐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데이비드 로이드조지입니다."
"반갑습니다, 장관. 짐의 아우 강으로부터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이선은 로이드조지와 반갑게 악수를 했다. 이어서 불독처럼 괄괄한 인상의 청년 의원이 고개를 숙였다.
"프린스 강께서는 참으로 유쾌한 분이셨지요. 그분이 그토록 극찬한 황제 폐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윈스턴 처칠입니다."
"오, 윈스턴 처칠 경이로군요. 역시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이선은 처칠과도 반갑게 악수를 하고, 이영을 소개했다.
"짐의 막내아우 영을 소개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영국에서 유학하게 됐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신사 여러분. 대한제국 황자 이영입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영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전하."
이제 이선과 이강을 대신해 이영이 영국 지배계급들과 친분을 맺을 계획이었다.
이들이 야당 의원 시절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건, 당연히 이선의 지시였다.
"장관께서는 새로운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들었는데, 잘되어 갑니까?"
"반대가 많습니다만, 반드시 관철하고자 합니다."
로이드조지는 현시점에선 자유당 소장파의 리더로, 복지국가의 초석을 닦을 개혁을 주장했다.
1908년 로이드조지는 애스퀴스 내각의 재무장관에 취임하고, 대대적인 개혁에 나선다.
‘빈곤의 참상을 근절하기 위한 전비(戰費)’로 규정된 인민예산(People's Budget)이 상정됐다. 노령 연금, 노동자 복지 등 사회보장제도가 실시됐다. 군비 예산을 줄이고, 소득세와 상속세율을 올리고, 누진세를 적용하고, 대토지 보유자에게 거액을 과세했다.
당연히 보수당과 귀족들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인민법안을 주도한 로이드조지에게 사회주의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귀족원(상원)의 거부권을 통해 서민원(하원)의 법안을 막으려 했지만, 애스퀴스와 로이드조지는 상원 개혁안까지 들고 나왔다.
이때 의회에서 인민예산이 통과되도록 정치적 수완을 발휘한 인물이 로이드조지와 처칠이었다.
‘클레망소와 비슷하지. 국내 정책은 진보적, 대외정책은 강경파.’
웨일스 출신 변호사 로이드조지는 2차 보어전쟁을 반대하는 연설로 명성을 얻은 ‘반(反)제국주의’ 정치가였다. 제국주의자들로부터 비애국적이라는 비난을 숱하게 받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켰고,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도 받았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로이드조지는 그 누구보다 단호하고 강경한 전쟁 지지파가 되었다. 로이드조지와 클레망소는 연합국의 승리와 전후 질서를 주도한 인물들이었다.
‘이들과 손을 잡아야 해. 교활한 제국주의자들이지만, 나름대로 뚜렷한 철학과 개혁 정신을 갖고 있는 이들이지. 이들이 추구하는 국익과 도덕성을 만족시킬 수 있다면, 얼마든지 충실한 동맹자가 될 것이다.’
이선은 협상국과 한배를 타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렇다면, 장차 협상국을 주도할 이들과 동맹 관계를 미리 만들어 놔야 했다.
"만약 이를 달성할 수 있다면 영국 역사의 신기원을 쓰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진정 인민을 위한 인민의 정부지요."
"격려 감사드립니다. 영국 내부에서도 반발이 큽니다만, 먼 타국에서 온 폐하께서 이해해 주시니 기쁠 따름입니다."
이선은 이미 ‘서양 정치가들보다 더 진보적인 동양의 계몽군주’로 포지셔닝을 잡은 상황이었다.
"짐과 한국인들은 지난 25년간 분투하여,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자주독립을 지킬 수 있는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합니다. 국가는 국민의 빈곤을 지켜만 봐선 안 됩니다. 국민을 외적뿐만 아니라 빈곤과 질병으로부터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의무입니다. 짐은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고, 자유당의 영국이 중대한 모범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승리를 기원할 수밖에요."
이번에도 이선의 말은 절반의 진심, 절반의 위선이 담겨 있었다. 이선은 궁극적으로 복지국가를 원했지만, 1907년 시점에서 미발달한 한국 자본주의는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니었다. 지금은 성장이 우선이었다. 자본의 지나친 탐욕을 억제하는 선에서, 최소한의 복지가 이뤄졌다. 복지국가는 그의 후속세대가 달성해야 할 목표였다.
"참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폐하께서 진보적이란 말은 익히 들어 왔습니다만,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이선의 표정과 어조가 워낙 진지해서, 로이드조지와 처칠은 진정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재정이 문제입니다."
"맞습니다. 재원과 예산이 문제지요."
"대영제국과 같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공업국가도 그럴 진데, 한국과 같이 작고 가난한 나라는 어떻겠습니까? 해야 할 사업은 많은데, 재정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국민에게 과중한 세금을 물리고, 차관을 도입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선은 재정 부족으로 인해 뭘 할 수 없다고, 일부러 앓는 소리를 냈다.
"영국은 자유무역의 나라니 이해가 잘 안 될지 몰라도, 저발전 단계의 한국에서는 관세가 중요한 소득원입니다. 주권국가에는 관세자주권이 꼭 필요합니다. 한국의 동맹인 영국이 먼저 모범을 보여 주십시오. 진정한 동맹은 대등한 관계에서 완성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동맹을 체결한 후에도, 자유무역을 부르짖는 영국은 관세자주권만은 돌려주지 않으려고 했다. 다른 열강도 마찬가지였다. 영사재판권과 치외법권이 폐지되고, 쌍무적 최혜국 대우를 승인해도 관세자주권만은 예외였다.
한국보다 먼저 조약을 맺은 일본에도 관세자주권을 내주지 않으려는 영국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일본은 무수한 노력 끝에 1911년에야 관세자주권을 회복했다.
그나마 한국은 수호통상조약이 더 유리한 조건으로 체결되었기에 망정이지, 청국과 일본은 5%에서 최대 10% 이상의 관세를 적용할 수 없었다. 한국도 5%에서 10%였지만, ‘사치품’에 한해 최대 30%까지 적용 가능했다.
"폐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관세자주권은 주권국가의 권리지요. 다만 이 문제는 보수당과 자유당이 모두……."
로이드조지가 말을 흐렸다. 특정국가의 관세자주권 회복이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영국은 불평등조약을 맺은 나라는 어디가 됐건 관세자주권을 절대 돌려주지 않으려고 했다. 여기에는 보수당과 자유당이 따로 없었다.
"지금 당장 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장관은 장차 상무부를 넘어 더 중요한 대업을 맡게 될 겁니다. 국민을 위해 예산을 확보하고자 분투하는 장관과 같은 분은, 짐의 입장을 이해해 주리라 믿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선도 방문 한 번에 관세자주권을 되찾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가 되어야 영국이 관세 압박을 포기하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미리 밑밥을 깔아 둬야 했다. 이선의 입장에 공감하는 로이드조지가 장차 재무장관이 된다면, 관세 정책을 바꿀 수 있었다.
"제가 장차 재무부를 맡게 된다면, 다른 나라는 몰라도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관세자주권 문제는 전향적으로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관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진정한 동맹을 위하여, 한국은 영국의 세계정책에 적극 협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다행히도 로이드조지는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권력의 정점에 오른 뒤에는 변하는 게 속성이었으므로, 더 지켜봐야 할 일이었지만.
만찬이 끝난 후, 이선은 주영 공사관 외교관들에게 보고를 받았다.
"근래 영국이 대한을 대함에 있어서 어떻소?"
"확실히 자유당 정부가 수립된 후, 대우가 훨씬 좋아졌습니다. 러일전쟁으로 일본이 타격을 입은 이후에는 대한의 가치가 그만큼 더 올라갔지요. 특히 폐하께서 프랑스와 협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에서도 크게 만족한 듯합니다."
주영 공사 윤치호의 보고에 이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공들여 왔던 대미, 대영 외교의 결실을 보고 있었다.
"공사, 노고 많았소. 미국과의 외교에는 송재(서재필)가 있다면, 영국과의 외교는 경이 있지. 앞으로도 활약을 기대하겠소. 때가 되면 경이 중책을 맡게 될 터."
이선은 윤치호의 야망을 자극했다. 현재 정국을 주도하는 개화당 2세대가 물러나면, 차기 지도자의 자리를 놓고 윤치호는 1살 위인 서재필과 경쟁하리라 생각했다. 주청공사 이완용도 내심 그 자리를 노렸지만, 윤치호는 경쟁자로 여기지 않았다.
"예, 폐하!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이선은 윤치호 뒤에 서 있는, 더 야심만만한 청년을 불렀다.
"이승만 참서관. 경의 보고서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점이 많더군. 짐도 흥미롭게 읽었네."
"황공하옵니다, 폐하!"
이승만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는 매킨더의 지정학 이론을 흡수하여, 동양식 지정학을 고안했다.
"하버드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고? 그래서 그런가, 이론을 현실에 접목하는 능력이 상당하던데."
"과분한 치하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폐하."
이승만은 일부러 겸손한 태도를 보였지만, 속으로는 승리의 기분을 맛보았다. 황제의 외교 참모로 승승장구하는 미래가 그려졌다.
"그래서 말인데, 다시 미국으로 가 볼 생각은 없나? 이왕이면 박사까지 공부를 마쳤으면 하는데. 프린스턴에서 한인 장학생을 받을 생각이 있다는군."
"예?"
"대한 최초의 정치학 박사가 되었으면 하네. 자네 학우, 김규식에게도 지시를 내렸지. 누가 먼저 박사 학위를 받을지 경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성싶군. 대한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투자야."
이선은 이승만에게도 경쟁심을 자극시켰다.
황제가 한국 최초의 정치학 박사를 원한다. 장차 중책도 암시했다.
그렇다면, 한국 최초의 정치학 박사는 김규식이 아니라 자신이 되어야 했다.
"폐하, 저는 언제나 학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만 국가의 일이 중하여 잠시 미뤄 두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하, 훌륭한 태도야. 이제 영국과의 외교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으니,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중시해야 하네. 미국은 장차 대한에 있어 중요한 나라가 될 터. 자네는 짐의 말을 이해하겠지?"
"예, 폐하! 삼가 황명을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폐하는 나를 높이 평가한다. 그렇다면 기대에 보답해 드려야지.’ 이승만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언제든지 미국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윌슨하고도 미리 인맥을 터 두면 좋겠지. 그렇다면 역시 경험이 있는 이승만과 김규식이 좋겠어.’
장차 미국의 대통령이 될 우드로 윌슨은 이때 프린스턴 대학 정치학 교수이자 총장이었다.
클레망소, 로이드조지, 우드로 윌슨.
장차 세계대전과 국제질서를 주도할 세계사의 거인들, 즉 ‘3거두’에게, 이선은 미리 손을 뻗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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