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보스니아 위기
"휘유, 어마어마하군."
대한제국 해군 제1함대 주임참모 신순성 부령은 탄성을 내질렀다.
대백색 함대를 맞이하기 위해 대한제국 해군도 가진 자원을 총동원했다.
미국 전함 16척에 대응하여, 한국 해군은 순양함 5척, 구축함 8척, 포함 3척을 동원했다.
해군은 언제나 육군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렸기 때문에, 이만한 전력을 갖추는 데도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러시아로부터 저가에 구매한 구식 장갑순양함 2척과 방호순양함 1척, 이탈리아로부터 구매한 가리발디급 신식 장갑순양함 1척, 근래 영국으로부터 구매한 몬머스(Monmouth)급 최신 장갑순양함 1척.
몬머스급 2번함인 HMS 베드포드(Bedford)는 50만 파운드에 대한제국 해군이 구매했다.
배수량 9,800톤, 주포 6인치 14문, 장갑 측면 4인치·포탑 5인치·사령탑 10인치, 최고속도 23노트에 달하는 베드포드는 당대 최고의 순양함 중 하나로, 대한제국 해군의 기함 김유신이 되었다.
"저걸 보십시오. 우리도 전함 한 척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빤한 소리 하지 말게. 예산이 있어야 사지. 순양함도 겨우겨우 허락받은 건데……."
제1함대 사령관 이규풍 부장이 고개를 저었다. 대한제국 군무부는 육군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고, 사실상 ‘육군부’라고 해도 될 지경이었다. 해군은 일본이나 영국처럼 독립을 기도했지만, 군부 수뇌부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대한국의 군사적 사활은 만주에 있다. 군은 청국의 동향에 대비해야 한다. 강력한 육군, 더 강력한 육군에 국가 안보가 달린 것이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해상 안보는 중요치 않단 말입니까?"
"해상 안보는 동맹국인 영국과 일본이 있는데, 굳이 비싼 돈을 들여가며 군함을 사야 할 이유가 뭔가? 전함 1척을 사서 유지할 비용이면 2개 사단을 더 운용할 수 있어."
군부 수뇌부의 인식이 이랬으니, 해군이 ‘돈 많이 드는 서자’ 취급받는 건 피할 수가 없었다.
해군이 대백색 함대 환영에 공을 들이는 건, 내심 여론에 호소하기 위함이었다.
아직 대한제국 국민은 막강한 대함대를 본 적이 없었다. 일본 연합함대가 진해만에 기항한 바 있었지만, 전시라는 특수 상황으로 인해 극비를 요했다. 이런 대규모 함대가 입항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국주의 시대, 해군은 국민의 민족주의적 여론에 호소했다. 거대한 전함의 위협적이고 웅장한 자태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로, 육군이 주도하던 프로이센에서 건함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여론을 동원했다. ≪전독일 해군연맹≫은 독일에서 가장 강력한 민족주의 여론단체 중 하나였다.
바로 이웃나라 일본은 해군이 승리의 우상으로 떠오른 만큼, 해군 숭배가 더욱 강해졌다.
그럴수록 한국군은 더욱 육군 강화에 매진했으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해군이 이벤트에 공을 들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퍼엉! 퍼엉!
입항하는 대백색 함대도 답례로 예포를 16발 쏘았다.
"우와와와!"
"이야, 저 군함 좀 보게."
"저게 대체 얼마나 큰 거야?"
"어디 보자, 신문에서 말하길, 기함 코네티컷은 배수량 1만 6천 톤이라고 하는군."
"직접 보니 더 어마어마하군. 저 옆의 우리 해군하고는 비교도 안 되잖아!"
"어허, 뭐가 중요한가. 강력한 육군이면 충분해."
"아니, 해군은 충무공의 후예 아닌가? 일본이 러시아랑 대등하게 강화회담에 들어간 것도 해군이 압승한 덕이 아닌가!"
"대한국은 만주로 뻗어 나가야지! 그러려면 육군이 우선순위인 건 당연지사라고!"
"자넨 장님인가? 미국 함대를 보게! 전함은 존재만으로 저렇게 위압감을 준다니까!"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일었다. 한국은 만주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강력한 육군을 지향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지만, 과연 해군의 예상대로 대백색 함대의 입항은 전함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역시 미국이란 나라는 엄청나게 크고 강하구나."
"영국이랑 비교하면 누가 더 세나?"
"그래도 아직은 대영제국이지. 미국이 감히……."
"맞아, 맞아."
"모르는 소리! 이미 경제력은 미국이 영국을 앞질렀어. 단지 군사력과 위신이 부족할 뿐. 보게, 저 함대가 미국의 위엄을 뽐내고 있지 않나?"
"이봐, 그쪽이야말로 모르는 소리. 영국은 저보다 더 훨씬 강한 함대를 거느리고 있어."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최소한 태평양에서는 미국이 더 우세라고. 대한은 미국과 친해져야 해."
한국인에게 주는 보다 큰 각인은, 미국이란 나라의 힘이었다. 오대양 육대주에 뻗어 있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과 달리, 미국의 힘은 국제 정세에 관심이 있는 한국인들 눈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대백색 함대의 출현은 미국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게 되는 것이었다.
대한제국은 10월 27일부터 한 주간을 ‘한미 우호주간’으로 선언하고,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
황제부터 국민에 이르기까지, 미국인들에게 최고의 환대를 선사할 예정이었다.
한국은 현재 ‘팍스 브리타니카’에 보조를 맞추고 있지만, 이선은 20세기가 ’팍스 아메리카나’가 되리라 확신했고, 장차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발을 맞춰 동아시아의 지배적 위치에 오를 복안을 가졌다.
이선의 적극적인 유치로, 미국의 자본과 신기술은 한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는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경제적·기술적 연대는 점차 정치적·군사적 연합으로 발전해야 했다. 장차 태평양의 패권을 놓고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미국과 대립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한국이 미국에 가장 유용한 아시아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걸, 이선은 계속 어필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사령관. 대한제국에 방문함을 환영합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황제 폐하! 미합중국 대통령 각하를 대리하여, 황제 폐하와 한국 국민에게 경의를 보냅니다!"
대백색 함대 지휘를 맡고 있는 대서양 함대 사령관 찰스 스페리(Charles S. Sperry) 제독이 장교단과 함께 이선을 향해 거수경례했다.
"먼바다를 항해한 여러분을 위해 축연을 준비했습니다. 아무쪼록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서양식 저택인 부산행궁에서 미 해군 환영 축연이 열렸다. 이선의 축사에 이어, 스페리 제독이 답사를 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짐과 사절단은 미국을 방문하여 진보적이고 발전한 이 나라를 본받겠다고 결심한 바 있었습니다. 25년이 지나, 개혁과 자주독립을 이룩한 한국은 당당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미국 함대가 우호와 평화의 상징으로 오게 되니 짐의 마음은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대한제국과 미합중국의 영원한 우호를 위하여!"
"감사합니다. 미합중국 해군은 우방국 국민을 만나기 위해 머나먼 길을 항해했습니다. 마침내 그 숙원을 이루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미합중국과 대한제국의 영원한 우호를 위하여!"
한국인들과 미국인들은 함께 어울려 술잔을 부딪쳤다.
이선은 신임 주한 미국 공사 에드윈 모건(Edwin V. Morgan)과 환담했다.
"공사, 곧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군요. 어떤 후보가 승리하건, 양국 간 우호가 영원하길 바랍니다."
"물론 그리될 것입니다, 폐하."
11월 초, 미국 대선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선의 예상대로라면 루스벨트 행정부를 계승할 공화당 후보 태프트가 무난히 승리할 터였다.
태프트는 김옥균과 밀약을 맺은 당사자였고, ‘선물’을 단단히 먹여 놓은 만큼, 영리하고 기민한 제국주의자 루스벨트보다는 상대하기 쉬울 터였다.
"루스벨트 대통령께서는 근간 유럽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위기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보스니아 합병 선언 이후, 당연히 오스만은 반발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격렬하게 반발하는 나라는 세르비아였다. 세르비아는 ‘종교는 달라도 같은 언어를 쓰는 남슬라브 민족의 보스니아’를 수복해야 할 영토라고 생각했고, 슬라브 형제국인 러시아의 지지를 호소했다.
"발칸 문제는 발칸 내부의 일로 끝나야 한다는 게 미국 정부의 입장입니다. 열강들이 개입하여 분쟁이 가속화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짐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유사시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합리적인 조정이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보스니아 위기와는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았다.
‘보스니아 문제로 벌써부터 독일-오스트리아와 러시아-세르비아가 대립하는 건 곤란해. 적절한 타협이 필요한데, 러시아에 그럴 외교적 역량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선은 보스니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니콜라이에게 친서를 보내야겠다고 판단했다.
* * *
1908년 10월 이후, 보스니아 문제는 위기로 발전하고 있었다.
당초 러시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보스니아 합병을 반대하지 않았다. 이면계약을 맺었기 때문이었다.
청년 튀르크당 혁명 직후, 9월 러시아 외무대신 이즈볼스키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외무대신 에렌탈(Alois von Aehrenthal)은 모종의 합의를 했다.
「러시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합병을 지지한다. 대신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러시아가 다르다넬스 해협을 군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베를린 조약을 수정하는 데 협조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도 1878년 베를린 조약을 수정해 보스니아를 합병하려고 하니, 러시아도 조약을 수정해 군함이 흑해에서 지중해로 진출할 수 있도록 상호 합의한 것이었다.
러시아 함대의 지중해 진출은 영국이 가장 크게 반발하는 일이지만, 이즈볼스키는 영국과 협상이 된 상황이니 당연히 해결되리라 믿었다.
"프랑스는 동맹이니 우리를 지지할 것이고, 영국과도 협상을 이뤘으니 반대하지 않을 겁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지지하면 그 동맹국인 독일도 반대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마침내 다르다넬스 해협의 군사적 이용을 획득하는 겁니다."
이즈볼스키의 낙관론에 니콜라이 2세도 반색했다. 러시아의 오랜 숙원인 보스포루스-다르다넬스 해협의 통제와 지중해 진출을 이룰 수 있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세르비아에 자중하라고 압박을 보냈고,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보스니아 합병을 묵인했다.
「짐의 친애하는 형제이신 황제 폐하, 보스니아 문제에 대해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영국은 결코 다르다넬스 해협의 진출을 허용하지 않을 겁니다. 아직 러시아와 영국 사이에는 그만한 신뢰가 없습니다. 오스만을 영향권으로 두길 바라는 독일도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이를 계산한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기만책일 가능성이 큽니다. 바라건대 더 신중히 판단하여 대처하십시오.」
러시아의 외교적 참패를 염려하는 이선의 친서가 도착했지만, 이미 낙관론에 도취된 이즈볼스키와 니콜라이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하지만 이는 오판이었다.
보스니아 합병 선언은 베를린 조약 위반이었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는 공동으로 새로운 국제회의를 소집하자고 요구했다. 여기서 베를린 조약의 수정이 논의될 수도 있었다.
"영국은 베를린 조약의 수정을 원하지 않는다. 영국이 원하는 건 현상유지다."
러시아의 기대와 달리, 영국은 단호하게 다르다넬스 해협의 군사적 이용을 반대했다. 영러협상이 체결되었다곤 하지만, 영국은 아직 러시아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보수당은 러시아의 의도를 의심했고, 유화책을 쓰고 있는 자유당 정부도 동조했다.
영국의 반대로 인해 러시아는 난처해졌다. 세르비아는 당장이라도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전쟁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었고, 러시아의 범슬라브주의 여론은 세르비아를 지지하고 나섰다.
"슬라브 형제들이 맏형 러시아의 도움을 기다린다!"
"세르비아를 도와 오스트리아의 야욕을 격퇴하자!"
차르와 외무대신은 폭발하는 민족주의 감정과 범슬라브주의 여론을 너무 얕봤다.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상대로 일전을 벌이겠다고 각오했고, 국력이 상대가 되지 않으니 당연히 러시아의 지지를 호소했다. 러시아 여론은 자신들이 ‘이교도 튀르크의 압제’로부터 구원했다고 믿는 남슬라브 형제를 향해 나아갔다.
러시아 여론에 고무된 세르비아는 11월 동원령을 선포했다. 세르비아도 진지하게 전쟁을 하기보다는, 러시아를 등에 업고 오스트리아-헝가리로부터 적절한 보상을 받을 복안이었다.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국의 충실한 동맹국으로, 세르비아의 동원령을 묵과할 수 없다. 세르비아는 즉각 동원령을 취소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보스니아 합병을 승인하라."
상황이 이렇게 이르자,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적극 지지할 뜻을 밝혔다.
영러 협상은 독일로 하여금 반감을 불러일으켰고, 러시아에 적당한 보복을 해 줄 생각이었다.
빌헬름 2세는 여전히 ‘친애하는 니키’와 개인적인 서신을 통해 협상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문제는 카이저가 때마침 터진 ≪데일리 텔레그래프≫ 스캔들로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는 게 문제였다.
「영국인들은 발정 난 토끼마냥 미쳤다. 왜 독일을 그리도 적대하는가? 위대한 나라에 걸맞은 대우를 해 주길 바란다. 독일 국민은 대부분 반영적인지 몰라도, 짐은 친영이다. 일본의 부상하는 해군력을 생각해 보면, 언젠가 영국은 독일 제국의 해군이 필요할 것이다. 왜 게르만 형제 민족끼리 협력하지 않고, 황인종과 손을 잡으려 하는가?」
자기 딴에는 친영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보겠다고 떠들어 본 것이었지만, 카이저는 또다시 감정이 폭발하여 막말을 계속 쏟아 냈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카이저의 온갖 막말은 독일 국민에게 실망을 불러일으켰고, 특히 정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외무부는 노골적으로 카이저를 외교 정책에서 배제시켰고, 보스니아 위기가 전개되는 동안 카이저는 무대에서 강제로 퇴장 당했다.
「러시아는 양자택일하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보스니아 합병을 승인하고 세르비아를 주저앉히든지, 아니면 불가피한 상황을 각오하든지. 만약 후자를 택한다면, 독일은 외교적 중재에서 철수하고 국익을 위해 적절한 행동을 할 것이다.」
해를 넘겨도 상호비방이 쏟아지는 가운데, 1909년 3월 독일은 러시아에 최후통첩을 날렸다. 대놓고 전쟁을 암시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위협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이즈볼스키에 합병을 승인하지 않으면 이면합의를 폭로하겠다고 위협했다. 만약 러시아가 먼저 세르비아를 ‘배신’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밀약을 맺었다는 게 밝혀지면, 격노한 여론에 의해 이즈볼스키는 실각할 상황이었다.
"슬라브 형제를 저버리고 배신자 게르만과 손을 잡다니! 1853년 크림전쟁에서 오스트리아의 배신, 1878년 베를린에서 독일의 배신을 잊었단 말인가?"
독일의 최후통첩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위협을 받은 이즈볼스키는 결국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영국은 러시아를 위해 피를 흘려줄 생각이 없었고, 프랑스도 러시아가 물러서기를 요청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한발 물러서야 할 듯합니다. 보스니아 합병을 승인해야……."
"도대체 이게 뭔가! 얻은 건 없이 위신만 추락한 게 아닌가!"
니콜라이는 외무대신에게 분노를 쏟아 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1909년 3월 31일, 러시아는 결국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보스니아 합병을 승인했다. 오스만은 이미 ‘보상금’을 받고 보스니아 영유권을 매각했고, 러시아도 포기하자 세르비아도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러시아의 명백한 외교적 참패였다.
"두고 보자, 오스트리아 사기꾼 놈들! 배신자 게르만 놈들! 반드시 이 원한은 갚고 말겠다."
"다시 발칸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 독일이 저렇게 무례하게 구는 건 군사력을 믿고 저러는 것이다. 독일을 주적으로 삼고 군비 확충에 나서라!"
러시아와 세르비아를 위협해서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보스니아를 얻고, 독일은 국력을 과시했지만, 이로 인해 러시아의 불신과 세르비아의 증오를 얻었다.
이도 저도 아닌 외교정책으로 망신만 당하고 위신이 추락당한 러시아는 발칸 문제에서 더는 물러서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민족적 굴욕을 당했다고 여기는 세르비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보스니아 위기는, 결과적으로 대전쟁을 향한 불씨를 당기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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