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신해혁명
12월 12일 자정을 기해 무창 전역에서 일제 봉기가 결정되었다. 혁명파들은 갑작스러운 계획 변경에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급하게 혁명파 간부들이 신군의 군영으로 향해 봉기 계획이 당초보다 앞당겨졌음을 통보했다.
그 과정에서 정보가 샜고, 호광총독부도 단속에 나섰다.
"일부 군인들의 동태가 이상합니다! 반란이 의심됩니다!"
"시내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역도를 색출하라!"
11일 밤과 12일 오전, 무창의 거리는 혁명파를 색출하려는 군경들로 가득했다. 불심검문이 도처에서 이뤄졌다.
혁명파는 동지 간에 연락이 두절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정오 12시로 일제 봉기가 예정됐지만 연락에 시간이 소요되어 연기되었다. 그야말로 우왕좌왕, 혼란의 극치였다.
그럼에도 봉기는 진행되었다.
"일단 대포부터 쏘고 시작하자! 그럼 동지들이 일제히 기의할 거다!"
오후 4시, 혁명파가 장악한 공병 8영(營, 대대)에서 봉기가 개시되었다. 이들은 포대 하나를 점거하고 대포를 쏘았다.
퍼엉!
혁명을 알리는 첫 번째 포성이 울렸다.
포성은 신호가 되었다. 성내의 보병 29표(標, 연대)는 혁명파 장교들에 의해 장악됐고, 이들은 무기를 빼 들고 돌격했다.
"무기고부터 신속히 점령하라!"
무한삼진은 예로부터 양무운동의 중심지로, 군수물자가 가득 쌓여 있었다. 혁명군은 무창 무기고를 점거하고, 소총 수만 정과 다량의 탄환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혁명군은 단숨에 최신 무장을 갖춘 부대가 되었다.
"혁명 만세!"
"공화국 만세!"
성 밖에 주둔하던 포병 8표와 기병 8표도 혁명군에 의해 장악됐다.
봉기는 혁명파인 하급 장교들이 주도했지만, 상황에 유보적이던 고급 장교들이 지휘관으로 추대되어 군을 지휘했다. 혁명에 부정적이던 장교들도 혁명군이 확보한 무기와 탄약, 생각보다 많은 동조세력에 놀라 혁명에 가담했다.
"공격 개시하라!"
"총독 관저를 포격하라!"
콰앙! 콰아아앙!
포병이 봉기에 합류하자, 급격히 전세가 기울었다. 독일제 크루프 야포가 관저를 두들겼다. 기세등등한 혁명군은 시가전을 벌였고, 저항하던 헌병들도 백기를 들었다.
"총독 각하! 반란군이 성내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으으음……, 퇴각한다!"
아직까지는 봉기에 가담하지 않은 병사들이 더 많은데다, 혁명군은 급조된 데다 지휘권도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만약 총독이 단호하게 지휘하며 관저를 방어했다면 막아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호광총독 서징에게는 그럴 담력이 없었다. 총독은 포격에 놀라 관저를 포기하고 성 밖으로 탈출, 배를 타고 장강으로 도주했다.
"총독이 도망쳤다!"
"제기랄, 그럼 싸울 이유가 없지!"
총독의 도주 소식에 정부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투항하거나 도망쳤다.
13일 오전, 무창의 주요 지역이 혁명군에 의해 모두 함락되었다. 불과 하루 만에 호북성의 성도이자 교통의 요충지인 무창이 함락된 것이다.
"무창을 장악했지만, 혁명군을 대표할 지휘관이 부족하오."
"도통(장성)급 인사를 사령관으로 추대합시다."
혁명에 가담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진압도 가담하지 않았던 21혼성협(協, 여단) 통령 여원홍(黎元洪, 리위안훙)이 급거 추대되었다.
"나는 혁명을 지도할 그릇이 못 되네."
"장병들이 원합니다. 통령께서는 따르십시오!"
혁명파가 아니었던 여원홍은 난색을 표하며 고사했지만, 신군 지도자로서 장병들의 신망을 받았던 덕에 강권을 받아 사령관으로 추대되었다.
졸지에 혁명군 사령관이 되어 버린 여원홍은 역할을 수행하기로 했다.
바로 다음날, 혁명군은 정부군 수상함대를 격퇴하고, 장강을 넘어 한양(漢陽)과 한구를 점령하여 무한삼진 전역을 장악했다.
"호북 군정부 수립을 선언한다! 군정부는 호북성 유일의 정부 기관으로, 호북은 만청 조정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선언하는 바이다!"
"혁명 만세!"
"공화국 만세!"
호북 군정부 도독으로 추대된 여원홍은 호북 독립을 선언했다.
최초의 성 단위 독립 선언이었다.
태평천국이 망한지 47년, 남명(南明)이 멸망한 시점으로부터 따지면 어언 250년 만에 청조에 대항하는 한족 정부가 수립되었다.
신군의 봉기 이후, 무한삼진의 신상들은 환호하며 군자금을 댔다. 이윽고 호북 자의국의 이름으로 청조를 비난하고 혁명을 외치는 성명을 발표하고 군정부에 가담했다.
무창 봉기의 성공은, 곧바로 중국 전역을 급격한 혁명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호남 독립을 선언한다!"
12월 22일, 호북에 인접한 호남에서도 혁명이 성공했다. 성도 장사(長沙, 창사)가 혁명파에 의해 점령되고, 호남 군정부가 수립되어 독립을 선언했다.
"광동 독립을 선언한다!"
"군정부는 청조에 맞서 싸울 것을 맹세한다!"
이윽고 도미노처럼 각 지방의 청조 지배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1911년이 가기 전에, 즉 무창 봉기로부터 불과 3주 사이에, 호북·호남·광서·광동·강서·운남 일대에서 호광·양광·운귀 총독부가 무너지고 군정부가 수립되었다.
이 신속한 전개는, 교통 및 통신의 발달과 지역 엘리트의 이반(離反)이 결정적이었다.
"초(楚)는 우리 초인들이 다스려야 한다!"
"우리 월(粤)인들은 만주족의 지배를 거부한다!"
무창 봉기는 선례였고,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신군이 봉기하면, 지역 신상들이 자금을 대며 혁명을 지원했고, 신사 계급이 장악한 자의국이 이를 추인했다.
이들은 대개 입헌파였으나, 청조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 차 있던 상황에서 ‘천명’의 전환이 보이자 금세 말을 갈아탔다. 변발하고 청조의 관복을 입었던 자들이 단발하여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입헌과 충성 대신 공화와 자치의 이름을 들고 나왔다.
즉, 신해혁명은 군대-부르주아지-젠트리의 동맹이라는 부르주아 혁명과 분리주의적 성격을 동시에 보이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에 단기간에 중국 전역으로 혁명이 확대될 수 있었다.
혁명은 작은 불씨로 시작해, 전례 없이 큰불로 확산되어 중국 전역에 번져 나가고 있었다.
* * *
「중국에서 혁명 발생!」
「호북 독립 선언! 호남도 뒤따르다!」
「이대로 대청제국이 무너지는가?」
지역을 막론하고 혁명파의 정신적 수장으로 높이 떠받들어지고 있는 인물, 손문은 정작 혁명이 터졌을 당시 미국에 있었다.
미국을 열차로 횡단하던 중이던 손문은 신문의 호외를 통해 혁명 소식을 접했다.
"봉기는 2월로 계획되지 않았나? 아무튼 잘됐군!"
손문은 2월 봉기를 준비하기 위해, 세계를 돌며 화교들에게 혁명 자금을 모으고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있었다.
1895년 이래 무수히 많은 봉기를 계획하며 반청 혁명을 꿈꿨던 손문에게는, 마침내 꿈꾸던 순간이 도래한 것이었다.
"손일선 동지, 즉시 중국으로 돌아가시지요. 온 중국이 동지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오, 유럽을 경유해서 귀국하겠소. 지금 당장 내가 돌아가 봐야 할 일이 많지 않을 거요. 무엇보다 열강이 청조를 지원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손문은 즉시 워싱턴으로 향해 미국 정치인들에게 호소했다.
"중국은 과거 미국이 영국의 압제로부터 독립혁명을 이루던 역사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새로 태어날 공화국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국가, 동양의 미합중국이 될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전반적으로 혁명파에게 동정적이고 우호적이었다. 미국 유학파로 영어가 유창한 손문은 미국에서도 지지자가 여럿 있었다.
중국 시장 진출의 후발주자였던 미국은 ‘중국의 문호개방’이 이뤄질 수 있다면, 공화국 체제여도 상관없다는 분위기였다.
물론 현실 정치가들은 중국 혁명에 대해 어떠한 확답도 해 주지 않았다. 미국은 당분간 상황을 관망할 생각이었다.
"청조에 대한 차관을 중단해 주십시오. 만약 귀국이 청조에 차관을 제공한다면, 이는 중국 인민을 살상하는 포탄과 총알을 지원하는 셈입니다."
영국으로 건너간 손문은 대청 차관 중단을 요청했다. 영국은 혁명 이전에 요청했던 청국의 600만 파운드 차관을 제공할 예정이었다.
중국 시장의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영국은 늘 그렇듯이 현상유지를 원했고, 특히 자신들의 세력권으로 생각하는 장강 중하류에서 혁명이 일어나 전투가 반복되자 사태 해결에 골몰했다.
"대영제국은 귀국의 사정을 동정하는 바이나, 이미 정해진 사안을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더 큰 미래를 보십시오. 청조는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새로운 중국 정부도 기존의 조약을 존중하고, 귀국의 이권을 침해하지 않을 겁니다."
영국 자유당은 손문이 주장하는 중국의 ‘자유주의적’ 혁명에 동정적이긴 했으나, 국익이 우선이었다.
새로운 공화정부가 친영적이더라도, 혁명가들은 강렬한 민족주의자였기에 영국이 누리고 있는 특권적 지위를 빼앗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지금 당장은 독립선언이 이어져 혁명이 우세해 보이나, 주청 공사 조던의 보고에 따르면 핵심은 청조의 북양군입니다. 중국에서 북양군을 막을 수 있는 군대는 없습니다. 혁명군은 북양군을 결코 당해 낼 수 없을 겁니다."
"일단 누가 이길지 지켜봅시다. 차관 집행은 잠시 연기하도록 하고."
영국 정부와 자본가들도 일단 관망을 선택했다. 그들은 여전히 청조에 기울어져 있었지만, 만약 혁명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얼마든지 패를 바꿀 생각이 있었다.
"손일선 선생, 한국의 독자들을 위하여 말씀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우리 중국 혁명가들은 여러분 한국인들의 역사를 존중하고, 여러분이 근래에 이룩한 성과에 진심으로 찬탄을 보냅니다. 본래 중국과 한국은 오랫동안 같은 문화를 공유한 형제와도 같습니다. 단지 침략자 만주족이 우리의 사이를 갈라놓았을 뿐입니다. 중국 혁명은 아시아 변혁의 첫걸음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동지들도 중국 혁명의 대의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지지와 협력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손문은 런던에 체류하던 중 한국 관영통신사의 유럽 특파원 조한민과 인터뷰를 했다.
"한국인들이 청조로부터 자주독립을 쟁취한 것처럼, 중국인들도 청조에서 독립을 원한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각 성이 독립을 선언하는 것인가요?"
"바로 그렇습니다. 청조, 만주는 중국이 아닙니다. 우리는 중국인의 국민국가, 중화민국을 원합니다."
손문은 단호하게 답했다. 그에게 ‘중국인’은 곧 ‘한족’뿐이었다.
"그렇다면 청조를 구성하는, 중국이 아닌 외부의 민족들은 어떻게 됩니까? 만주, 몽골, 티베트, 무슬림……."
"물론 그들 또한 그들의 국민국가를 건국할 권리가 있습니다. 만주인이 중국을 포기하고 만주로 돌아간다면, 우리 중국인들은 기꺼이 손뼉을 치며 환송할 것입니다. 만주인 여러분, 안녕히 가십시오!"
손문은 중국 18성 외부의 지역들이 별도의 국가를 건설하는 데 반대하지 않았다. 만약 만주족이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생각이었다.
"아마 한국인 여러분도 그걸 원하겠지요? 만주는 한국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까요."
손문은 ‘한국인이 원하는 대답’을 해 주었다. 그 자신도 송교인을 통해 김옥균과 밀약을 맺은 바였다. 관영통신사 특파원이라면, 한국 정부와도 연이 닿는 인물이라 짐작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문제지요."
"북경에 중국의 수도가 있는 이상, 만주는 국가 안보를 위해 필수 불가결인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공화국의 수도는 남경이 유력합니다. 만주하고는 멀리 떨어져 있지요."
강남에서 머나먼 ‘만주국’이 한국과 러시아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는 위성국이 된다고 해도, 광동 출신의 혁명가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손문과 조한민은 한동안 인터뷰를 계속하다, 시간이 되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생의 말씀대로 중국 혁명이 아시아 변혁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될 겁니다. 한국인 여러분도 함께 새로운 아시아를 만들어 나갑시다. 새로운 중국에서 다시 만나길 바랍니다."
혁명가와 특파원은 우호의 감정을 담아 악수했다.
「중국 혁명의 지도자, 손문은 훌륭한 기품과 설득력 있는 웅변 실력을 지닌 인물이다. 한 인간으로의 그는 정말로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일국, 특히 중국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나라를 다스릴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사람이며, 혁명의 단꿈에 빠져 있다. 냉정하고 단호한 러시아 혁명가들과 비교하면 순진한 이상주의자로 보일 지경이다. ……」
조한민은 제국익문사 유럽지부 혁명 담당으로, 여러 혁명가와 접촉해 왔다. 그래서 더욱 냉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중국 혁명의 상징인 손문은 실제 권력을 얻지 못하더라도, 상징으로서 중국의 방향성을 제공해 주리라 본다. 손문은 한국에 상당히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설령 말뿐일지라도, 우리는 그의 우호적인 관점과 순수함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
조한민이 보내온 비밀 전문을 읽은 이선은 빙긋 웃었다.
‘그리도 서생 같더니, 이제는 냉철한 정보부 요원이 다 됐군.’
이선은 손문에 대한 조한민의 평가에 대부분 동의했다. 워낙 극비라 익문사 요원인 조한민도 미처 모르고 있었지만, 이미 손문과 동맹회는 김옥균과 밀약으로 꿰인 상태였다.
‘레닌이 그랬던가, 손문은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처녀다운 순진함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치인의 순진함은 대개 포장된 것이었지만, 냉정한 혁명가 레닌의 관점에서 볼 때 손문은 ‘진정으로 순진한’ 사람이었다.
손문은 조직가라기보다는 웅변가였고, 지도자라기보다는 이데올로그에 더 가까웠다.
‘뭐, 그 레닌도 이 세계에서는 볼셰비키 당수가 아니라 사회민주당 지도부 울리야노프지만.’
조한민이 여러 차례 접촉한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는, 이 세계에서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을 둘로 쪼개지 않았다.
청소년기에 망명하여 베를린과 빈에서 공부한 울리야노프는 ‘정통 마르크스주의’ 노선을 추종했고, 제2인터내셔널의 주류에 가까웠다. ‘정통’ 노선에서 이탈한 급진파 볼셰비키는 없었다.
볼셰비키는 러시아어 뜻으로 ‘다수파’를 의미했고, 울리야노프는 문자 그대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다수파 지도부에 속했다.
‘볼셰비키 당수 레닌이 없으니, 러시아 혁명의 방향성이 달라지겠지.’
혁명은 민중 운동의 결집으로 추동되는 역사의 변혁이기 때문에, 지도자 한 사람의 변화만으로 일어날 혁명이 일어나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 방향성을 바꿀 수는 있었다.
‘역사가 바뀌었으니 신해혁명의 방향성도 틀어질 가능성이 농후하지. 자, 그럼 혁명의 시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계속 지켜볼까.’
이선의 명령을 받는 이들이 중국 대륙 곳곳에서 암약 중이었다. 최고위에는 청 황실의 지근거리에서부터, 저 멀리 혁명파의 최전선에 이르기까지.
물론, 역사의 신은 얼마든지 변덕을 일으킬 수 있었다.
신해혁명의 역사가 어떻게 바뀌어 전개되더라도, 이선은 대비할 준비를 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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