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북경 정변
1912년 3월 1일, 중화민국이 대내외적으로 선언되었다. 연호가 민국 원년으로 바뀌고, 태양력을 사용하였다. 전통적으로 책력이 천자의 특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이었다.
3일, 임시대총통 손문은 국무원(國務院) 10부 총장을 임명해 내각을 구성했다.
정부가 구성되었으니, 그다음은 의회였다. 18성 대표회의는 해산하고, 임시참의원이 구성되었다. 참의원 45명 중 33명이 혁명파로 구성되어, 실질적으로 혁명파가 의회를 장악했다.
"미합중국 연방의회 제도를 모범으로 삼아 양원제를 채택합시다."
"상원인 원로원은 각 성이 동등한 인원을 선출하고, 하원인 대의원은 인구비례 원칙으로."
"삼민주의 원칙의 임시약법을 속히 제정합시다."
참의원은 미국식 연방제를 모범으로 삼아 임시약법(헌법) 제정에 돌입했다. 이들은 ‘동양의 미국’을 건설하고자 했다.
"역적놈들! 앞에서는 화의를 하면서 뒤로는 국가를 참칭하다니!"
"대청은 역도들이 자칭한 소위 중화민국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역도들의 소굴인 남경을 타격하라!"
중화민국 건국 선언에, 북경의 청조는 격분하여 화의 결렬과 전쟁 재개로 맞섰다.
"현실적으로 저들을 완전히 진압하는 게 어렵고, 서양 열강이 싸고도는 이상 더욱 어렵습니다. 저들 또한 내전이 장기화되는 것은 원치 않을 터……."
"그걸 누가 모르오? 저 역적들이 대청에 18성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잖소?"
"현실적으로 장강을 넘어 진격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장강을 경계로 남부의 분리를 인정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예전 금나라와 남송의 선례를 따르는 거지요."
남북화의 청조 대표 당소의(唐紹儀, 탕사오이)가 분할을 골자로 한 타협안을 제기했다. 남북조 병립의 재현을 의미했다. 여진족의 금나라는 만주족의 선조이기도 했다.
"역적들과 타협이라니, 그 무슨 가당치도 않은 말인가? 중화민국을 자칭하는 역적들도 강남만으로 만족할 성싶은가? 중국의 천명은 오직 하나뿐이니, 한쪽이 죽어야만 끝나는 싸움이다!"
조정의 여론은 격앙된 만주 강경파가 지배했다. 이들도 현실적으로 태평천국 때처럼 반란 토벌과 재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앞장서서 싸우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러나 반란군과 중국을 분할하자는 말은 감히 나오지 않았다. 열성조의 위업을 물거품으로 돌리는 일이었다.
"북양군은 속히 남경을 향해 진격하여 역적들을 토벌하라!"
3월 5일, 15일 정전이 종료되었다. 북양군에게 남경으로 진격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명령을 받아들인 장훈은 하남에서 안휘 방향으로 진격을 재개했다. 현재 동부에서 청조와 민국의 경계는 대략 회하(淮河)에서 갈라져 있었다. 안휘성의 성도인 합비(合肥, 허페이)가 북양군의 1차 목표였다.
"중화민국을 수호하고 북벌을 완료하자!"
신생 중화민국군으로 재편된 혁명군도 출진했다. 남양군과 강남 각지의 신군이 주력이 된 혁명군은 회남과 합비에 전선을 구축했다.
건곤일척의 대전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 * *
신해혁명의 소식은 시시각각 이웃나라 대한제국으로 전해졌다. 한국이야말로 현재 전세계에서 중국 관련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곳이었다. 쉴 새 없이 전문과 급보가 서울로 전해졌다.
이선은 방대한 정보망을 중국에 구축했고, 끊임없이 들어오는 정보를 살폈다.
이선은 혁명이 터진 이후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과도한 업무로 고질적인 불면증이 재발한 것도 있었지만, 신해혁명이야말로 그가 생각하는 동아시아의 질서를 완전히 재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니 쉽게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중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역사가 바뀐다. 이번에 중국을 분열시키지 않으면 앞으로 기회가 손쉽게 오지 않으리라.’
중화 애국주의가 한족 민족주의에서 범중화주의로 전환되기 전인 지금, 중국 본토 18성을 제외하고 분리를 용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지금이야말로 만주-몽골-신강-티베트의 분리를 쟁취할 때였다. 이들은 독립국이자 완충국이 되어야 했다.
중국 본토에서도, 전통적으로 중국이 지향했던 강력한 통일국가가 아닌 성 단위의 일성지력(一省之力)이 힘을 얻고 있었다.
중화민국 임시정부 자체가 각자 독립을 선포한 18성 대표회의의 연합에 불과했고, 남경은 결코 지방에 대한 확고한 통제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손문과 임시정부 지도부는 중앙집권적 통일정부를 세우고 싶을지 몰라도, 각성의 실권을 장악한 실력자들은 각성자치(各省自治)를 내세워 중앙정부의 통제를 피하려고 했다. 혁명의 중요한 축인 광동, 호남, 사천 모두 자치론이 대세였다.
‘지금 중국은 잠들어있으나,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 통일된 중국은 대한의 미래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중국이 전국시대처럼 분열이 되어야 주변 민족 모두에게 안전이 보장된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중국의 분할과 변방 이권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러시아와 일본도 그러했다. 러시아는 만주-몽골-신강-티베트의 분리를 부추겼고, 일본은 남경 임시정부를 지원해 복건과 절강으로 세력권을 확대하고자 했다.
‘청조에는 미안한 일이지만, 만주족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분리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 날이 오겠지.’
만주족에게도 만주에서 독자적인 국민국가를 수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중국 통일에 집착하다가, 실제 역사처럼 모든 걸 잃을 수 있었다. 이선은 기꺼이 만주국의 수립에 도움을 줄 생각이었다.
‘이제 북경에서도 움직일 때가 왔군.’
그러기 위해선 마지막 한 수가 필요했다. 이선은 극비 전문을 북경으로 보냈다.
"공사. 대청은 귀국을 형제지국으로 여겼거늘, 어찌하여 역도들을 감싸는 소위 5개국 공동선언에 동참했단 말이오? 특히 귀국 황제 폐하께서는 그토록 선제의 신뢰를 받았으면서, 어찌 그럴 수가 있소?"
섭정왕 재풍은 주청 한국공사 이완용을 초치하여 항의했다. 5국 공사 모두에게 항의를 했지만, 특히 일본과 한국에는 더욱 실망감을 표했다.
"전하. 아뢰옵기 황공한 일이나, 대한은 영국의 동맹입니다. 하물며 영국은 작금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나라로, 영국이 주도하는 질서를 거역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어찌 동맹이자 최강대국의 요청을 아국이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러시아와 프랑스, 일본이 함께하였는데 아국만 다른 태도를 보일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완용은 천연덕스럽게 모든 책임을 영국에게 떠넘겼다. 영국이 주도해서 일을 꾸몄고, 한국은 손만 들어줬을 뿐이라는 해명이었다.
실상하고는 한참 거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재풍도 한국이 배후에서 판을 주도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반란군 일부에 한국인들이 동참하고 있다는 정보도 들어와 있으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일부 아시아주의자들의 망동’으로 정리되었다.
재풍은 더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이완용을 부른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대청은 귀국이 형제지국이자 우호국이라 믿어 의심치 않소."
"그렇사옵니다. 믿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대청은 전력을 동원해 역적들과 일전을 벌이고자 하오. 영국이 저리 나오고 있으니, 귀국이 지지해 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소. 다만 중립이라도 지켜 주길 바라오."
"중립이라 하오시면……?"
"전황이 시급하여 동삼성의 신군도 불러들일 생각이오. 그렇다하여 지난 의화단의 난처럼, 아라사와 귀국이 대청의 위급을 틈타 만주에 병력을 파견하는 일은 없길 바라오."
청국의 동삼성, 즉 만주 봉천-길림-흑룡강에는 신군 3진(사단)이 주둔 중이었다. 러시아의 남하를 우려해 위급상황에도 여전히 만주에 배치하고 있었으나, 결국 병력을 불러들일 생각이었다.
"외신이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 확답은 드리기 어렵습니다만, 대한은 결코 대청의 위급을 틈타 군대를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좋소. 귀국 황제 폐하께 우리 조정의 요청을 꼭 전해 주길 바라오."
"예,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이완용은 예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지금껏 무수히 많은 거짓말을 늘어놓았지만, ‘대청의 위급을 틈타 군대를 보내지 않을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얼마 뒤, 대한제국은 ‘군사적 협의’를 위해 군무대신 박유굉 대장을 북경으로 보내겠다고 통보했다.
러일전쟁 이후 한국과 청국은 공동으로 안보협의를 수차례 가졌고, 군부 요인의 북경 방문도 선례가 있는 만큼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다.
"하필 이 시점에 한국군의 수뇌인 박유굉이 직접 북경으로 온다는 말은, 곧 한국이 청국의 위급을 틈타 군대를 만주로 보낼 생각이 없으며, 오히려 군사적으로 지원할 용의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과연 그렇겠군."
청조는 박유굉의 북경 방문을 받아들였다. 입국 허가를 받자마자, 박유굉은 즉각 북경으로 향해 섭정왕을 알현했다.
"섭정왕 전하. 외신은 삼가 대한 황제 폐하의 특명을 받고 경사(京師)에 왔습니다. 대한은 결코 근린(近鄰)의 위급을 틈타 만주에 병력을 보내지 않을 것이며, 러시아 또한 그리할 것입니다."
"오오, 고마운 말씀이오."
"대한은 대청의 사직 보전을 위하여 도움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염려 마시고 군대를 동원하십시오."
"귀국의 호의에 감사드리오."
박유굉의 다짐에 재풍은 감사를 표했다.
한국의 다짐을 받은 청조는, 봉천의 신군 2진을 빼서 북경으로 집결시켰다. 이들도 북양군과 함께 남경 진격의 명을 받았다.
"결국 내전이 장기화되는군. 이런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건만……."
청군 참모총판 겸 포병사령 단기서는 씁쓸한 어조로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내전의 장기화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특히 북양군과 혁명군이 충돌하는 안휘성 합비는 단기서의 고향이었다. 그의 부친은 이홍장 휘하의 회군(淮軍)이었다.
안휘 출신 이홍장이 회군을 기반으로 북양군을 건립한 이래, 안휘 파벌은 북양군의 양대 파벌이었다. 출신으로만 놓고 보면 안휘 파벌은 회군의 직계였다.
안휘 파벌에 속한 장교 대부분은 단기서처럼 내전의 장기화에 부정적이었다. 하필 전선이 안휘에 형성되면서 불만은 더욱 커졌다.
"저 무지막지한 장훈이 합비도 무한삼진처럼 파괴하려 들면……."
단기서는 좌불안석이었다. 한야평 제철소 파괴처럼, 중국의 잠재력을 내전으로 계속 깎아먹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장군, 무엇을 그리 걱정합니까? 전황은 여전히 청군에게 유리합니다만."
단기서를 찾은 박유굉은 속 편한 소리를 했다. 두 사람은 모두 프로이센 전쟁대학 유학파로, 말하자면 단기서는 박유굉의 선배 격이었다. 두 사람의 국적은 달라도 동양인 유학생으로 함께 고생했기에 친분도 있었고, 독일어로 스스럼없이 대화했다.
하지만 박유굉은 의화단전쟁 당시 승리자로 북경에 입성하고 단기서는 패배자로 퇴각해야 했다. 연합군에 의한 북경 함락은 큰 충격이었고, 단기서는 강력한 중국의 건설을 위해선 청조도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품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박 장군은 파괴적인 내전을 겪어 보지 않았으니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귀국에서 한성과 평양으로 갈라져 전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시오. 마음이 편할 수 있겠습니까?"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만약 그렇다면 내전을 끝내기 위해 무슨 수라도 썼겠지요."
"내 상황이 딱 그렇습니다. 내전을 끝낼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싶소."
단기서는 어쩌다 거대한 중국이 이 지경에 됐나 한숨을 푹 쉬었다.
‘저 작은 소국조차도 열강에 버금가는 지위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게 다 청조가 무능한 탓이다. 중국에도 한국 황제와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있어야 해.’
단기서는 강력한 지도력을 열망했고, 그 자신에게 국가를 재건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군인으로서 국가를 지킴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프로이센에서 군사학을 익혔습니다. 프로이센도 왕조의 군대에서 국민의 군대가 되면서 프랑스를 무찌를 수 있었지요. 대한도 국민의 군대를 건설함으로써 대청이라는 거대한 국가와 대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도 그리될 수 있을 겁니다."
왕조의 군대에서 국민의 군대로.
은유적으로 말했지만, 박유굉의 말은 단기서의 심중을 정확히 뚫고 있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단기서는 예전부터 생각해 오던 결심을 굳혔다.
바로 군사정변이었다.
3월 내내, 전선은 합비에서 교착 상태였다. 북양군은 ‘역적의 소굴’을 갈아 버릴 기세로 합비를 향해 맹포격을 단행했다. 합비가 뚫리면 남경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혁명군도 결사적으로 방어했다.
만주의 신군이 남하하고, 북경에는 병력이 계속 집결 중이었다.
북경에는 금위군 1,2협(여단)이 자금성을 방위했다. 여기에 금주의 제1,2 혼성협이 배치되었다. 이윽고 봉천의 20진도 북경에 도착했다.
군대의 지휘권은 참모총장 격인 황족 재도가 맡고 있었지만, 그는 피상적인 군사교육만 받았기에 차장인 단기서가 실무를 맡고 있었다.
선통 2년 음력 2월 15일, 1912년 4월 2일 새벽.
단기서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그는 정예부대인 제1혼성협에 안휘파 장교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친애하는 장병 제군! 우리의 조국, 중국이 미증유의 위기에 빠져 있다. 내전의 장기화는 태평천국이나 의화단처럼 중국을 파멸로 몰아 버리고 말 것이다. 여러분은 조국을 지키는 군인으로서, 중국의 파멸을 원하는가?"
"아닙니다!"
"단지 한 사람만 바뀌면 되는 일이다. 1인을 위해 4억을 희생시키겠는가, 4억을 위해 1인을 희생시키겠는가?"
"4억을 위해 1인을 희생시켜야 합니다!"
사전에 협의된 대로,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안휘파 장교들이 우렁차게 외쳤다.
4억은 중화민족을, 1인은 곧 황제를 의미했다.
"그렇다! 우리의 조국 중국을 위하여, 나는 제군에게 비상한 방법을 호소하는 바이다!"
"중화민족 만세!"
오직 황제에게 향할 만세가 ‘중화민족’에게 향했다. 황제의 군대가 황제를 거부하는 순간이었다.
"전군, 자금성으로 진격!"
"북양의 용 단기서 장군이 우리를 이끈다!"
청조의 운명을 결정지을 북경 정변이 발발하였다.
300년 대청제국의 운명은 경각에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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