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전함 충무공 이순신
건함은 20세기 초, 열강들의 국력을 건 자존심 대결과도 같은 것이었다.
유럽에서는 영국과 독일이 사활을 걸고 건함경쟁을 벌였고, 이는 영독 대립의 주된 요인이었다.
군사력 확장에 거리를 두던 미국도 대백색함대를 결성해 단숨에 세계 3위의 해군력으로 뛰어올랐다.
일본은 세계 4위의 해군력을 갖추려고 온갖 무리수를 두다가, 뱁새가 황새 다리를 쫓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격으로 재정이 고갈되고 말았다.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와 같은 열강들은 물론이고, 발칸의 숙적인 그리스와 오스만도 건함경쟁에 뛰어들었다.
심지어 남미 국가들 간에도 건함경쟁이 벌어져, 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 간에 치열한 ‘ABC(ARG·BRA·CHL) 건함경쟁’이 벌어졌다. 이는 천연자원 수출에 의존하는 남미 국가들에게 과욕이나 다름없었으나, 남미의 최강을 가리려는 자존심 싸움 때문에 계속되었다.
"쯧쯧, 저러다 경제 파탄 나지. 모름지기 군비 확충도 실속이 있어야."
"부국강병이어야 하지, 빈국강병이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대한제국은 이러한 건함경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유사시 중국 대륙에 개입할 육군력 확장에 몰두했고, 동양 최강의 육군을 목표로 했다.
해군은 연안방위를 위한 연안함대로 충분했다. 중국의 군벌들이라는 가상적이 존재하는 육군과 달리, 해군은 별다른 적이 없었다. 유사시 독일 동양함대는 동맹국인 영국과 일본이 처리할 계획이었다.
해군에 전함은 아직 없었고, 순양함, 구축함, 어뢰정으로 구성된 상비함대가 구성됐다. 예외가 있다면 황명으로 잠수함 도입에 박차를 가했다는 점이었다.
해군은 나름대로 착실하게 전력 확보에 나섰다. 그래도 전함만큼 해군의 위용을 상징하는 군함은 없었다. 일본 해군의 막대한 건함에 부러움을 느끼던 한국 해군은, 드레드노트급 전함 도입에 목소리를 냈다.
"일본은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무려 8척이나 새로 도입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제 대한도 전함을 확보할 때가 되었습니다."
광무 17년, 육군 산하에 항공대가 출범하면서 해군은 더욱 조바심을 느꼈다. 이러다가 육군은 물론이고, 신생 항공대에까지 우선순위가 밀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일본이야 섬나라고, 그 세력권이 해양으로 연결되니 해군력이 중요하지. 하지만 대한은 대륙국가고, 세력권도 대륙으로 연결되오. 열강에 버금가는 육군력 확보야말로 시급한 과제요."
육군 중심의 군부와 원수부는 해군의 전함 도입 계획에 퇴짜를 놨다.
해군은 이번에도 전함 확보에 실패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다.
영국에서 한국을 향해 전함 인수를 타진하는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 * *
1913년 9월, 러시아 체류와 유럽 여행을 마친 대한제국 황태자 이진과 영친왕 이영은 영국에 도착했다. 영국 왕실은 동맹국 황태자의 방문을 환영했다.
"짐과 대영제국 정부는 대한제국 황태자의 방문을 환영하는 바이외다."
"크나큰 영광입니다, 폐하."
조지 5세는 이진과 이영을 왕궁으로 초대해 환영했다. 영국 유학파이자, 에드워드 7세의 장례식과 조지 5세의 대관식에 대한제국을 대표해 참석한 이영은 ‘친영파’로 분류되었다. 영국은 이영을 통해 황태자에게 친영 의식을 불어넣으려고 했다.
예전부터 의친왕 이강과 친분이 있던 윈스턴 처칠이 대한제국 황실의 ‘친우’를 자처했다. 처칠은 자유당 내각의 상무장관을 거쳐 이 당시에는 해군장관이었다.
10월, 처칠은 이진과 이영을 영국 해군의 관함식에 초대하여 그 위용을 감상하게 했다.
"저 끝없이 펼쳐진 군함들의 행렬이라니. 정말로 엄청납니다. 과연 대영제국은 세계 최강에 손색이 없습니다!"
이진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카이저도 제국해군의 위용을 보여 주었으나, 영국과는 비교될 수 없었다.
육군강국인 독일이 근 15년 동안 해군력 확장에 몰두했다지만, 전통적인 해군강국인 영국을 따라잡을 순 없었다.
영국은 이미 전력화됐거나 건조 중인 드레드노트급 전함만 29척이었고, 군함 총 배수량을 합치면 220만 톤으로 독일의 2배에 달했다. 압도적인 우위였다.
"저 많은 전함 중에 단 1척이라도 대한이 보유할 수 있다면……."
이진이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진심으로 원한다기보다는, 10대 소년다운 순수한 찬탄에 가까웠다.
처칠은 이영에게 황태자가 무슨 말을 했냐고 통역을 부탁했다. 이진의 말을 확인한 처칠이 껄껄 웃으면서 권유했다.
"한국은 동양의 신흥강국이자 영국의 동맹이니,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보유할 자격이 충분합니다. 전하, 이번 기회에 귀국에서도 전함을 구매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네? 그건 제가 감히 결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물론 그렇겠지요. 자세한 설명을 드릴 터이니, 귀국 황제 폐하께 건의를 드려 보십시오."
처칠의 권유는 농담이 아니었다. 진지한 제안이었다.
1911년, 남미 ABC 건함경쟁을 주도하고 있는 브라질은 영국 암스트롱사에 슈퍼-드레드노트급 전함 건조를 의뢰했다. 기존의 드레드노트급을 뛰어넘는, 영국 최신 전함 퀸 엘리자베스(Queen Elizabeth)급 전함의 하위호환이었다.
리우데자네이루라고 명명된 전함은 12인치 주포 7문을 갖춘 배수량 3만 톤급 대형 전함이었다. 건함비용 300만 파운드를 분할 지불하는 조건으로 건조가 시작되어, 1913년 9월에 진수까지 이뤄졌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여름이면 취역할 수 있었다.
「브라질 정부, 디폴트 선언! 국제 고무 시세 폭락과 연관?」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브라질이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발칸전쟁 이후 유럽에 불황이 왔고, 브라질의 주 수출품인 커피와 고무 가격이 폭락했다. 특히 영국령 동남아시아에서 고무가 대량생산됨에 따라 브라질의 고무 독점이 붕괴했고, 브라질의 외화 획득은 급감했다. 차관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게 된 브라질은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이 지경에 이르자, 브라질은 애물단지가 된 전함 인수도 당연히 포기했다. 암스트롱사와 영국 정부가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브라질은 영국에게 떠넘기려고 했으나, 영국은 이미 건함 계획이 다 짜여 있는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건함 예산에 대해 의회의 불만이 많은 상황에서, 예정에도 없는 전함 구매를 위해 추가 예산을 요구하면 의회가 동의할 리가 만무했다.
10월이 되자, 브라질은 공식적으로 전함 인수를 포기하고 영국은 제3의 구매자를 찾아 나섰다.
영국은 먼저 동맹인 일본에 제안했다. 일본은 영국에 은혜를 톡톡히 입은 데다 전함 건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만큼, 순순히 인수해 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일본은 독자적인 건조 계획에 있습니다. 예정에도 없는 지출은 불가능합니다."
지멘스 사건이 터져 야마모토 내각이 붕괴하기 전이었지만, 이미 일본은 경제 수준을 뛰어넘는 전함 건조로 인해 재정 파탄 위기였다. 영국의 갑작스러운 요구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들이겠소!"
제3의 구매자로 나타난 건, 뜻밖에도 오스만제국이었다. 발칸전쟁에서 그리스에게 해전에서 참패하여 에게해의 섬을 대부분 빼앗긴 오스만은, 취약한 해군력에 절망했다. 1911년에 오스만이 영국에 주문한 드레드노트급 전함 2척은 아직 건조 단계였고, 당장 해군력 확보를 원하는 오스만은 진수를 마치고 취역이 임박한 리우데자네이루를 사들이겠다고 나섰다.
암스트롱사는 새로운 구매자가 나타난 데 환영했지만, 해군장관 처칠은 떨떠름해 했다.
"오스만은 1913년 1월 쿠데타 이후 이스마일 엔베르 파샤가 실세로 떠올랐습니다. 엔베르가 친독파라는 건 유명한 사실. 친독국가의 힘을 키워 주느니, 동맹국에 전함 판매를 제안합시다."
"그런데 일본은 안 사겠다고 하지 않소?"
"동맹이라면 한국도 있지 않습니까?"
"한국? 지금껏 전함 한 척도 없던 나라인데, 슈퍼 드레드노트급을 살 용의가 있겠소?"
"밑져야 본전이니 제안은 해 봐야지요."
그리하여 한국에 제안이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영국의 제안을 전달받은 대한제국 정부는 갑론을박이 일었다.
"드디어 대한도 해군력 강화를 단숨에 이룰 절호의 기회입니다!"
"300만 파운드면 우리 돈으론 3천만 원인데. 올해 예산을 증액했음에도 1억 2천만 원이오. 1년 예산의 25%를 전함 구매에 쓰자고?"
"영국이 그보다는 저렴하게 해 준다고 합니다. 275만 파운드를 제안했습니다."
"그래도 비싼 건 마찬가지구만. 내년도 예산을 아무리 증액해도 무리요."
"연안함대에 전함이 도대체 왜 필요하오? 그 신형 전함 1척을 도입하고 유지하는 비용이면, 족히 2-3개 사단은 신설해 운용할 수 있소."
"일본이 언제까지 동맹으로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대한도 해군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영국의 제안에 해군은 몸이 달았지만, 군부와 정부 대부분은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최신 전함이 있으면 좋겠다.’ 정도의 인식은 있었지만, 무리한 지출을 해 가면서까지 사들일 생각은 없었다.
정부가 전함 구매 제안을 거절하려는 쪽으로 기울어지자, 황제 이선이 나섰다.
"근래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확보하는 게 세계적 추세가 되어 가고 있소. 육군 강화 5개년 계획이 완성단계에 접어들었으니, 해군력 강화에도 신경을 쓸 수 있겠소. 더욱이 동맹국의 제안이라면 고려해 볼 만하지. 275만 파운드, 즉 2,750만 원이라면, 5년 분할로 한다면 감당할 수 있지 않겠소? 황실 내탕금에서 550만 원을 내도록 하겠소."
황제가 이렇게 나서자, 해군은 열광하며 찬성했다.
"대원수 폐하의 혜안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대원수께서 성단을 내리셨으니, 어찌 신하된 도리로 따르지 않겠는가!"
전함 구매 계획이 나오자, 해군에서는 건함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장성은 20%, 장교는 15%, 하사관은 10%, 수병은 5%를 봉급에서 차감하여 건함비로 전용되었다.
그러자 애국주의 성향의 언론들도 바람을 집어넣었다.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역사상 최고의 해군 명장을 배출한 대한에서, 전함 한 척도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최신 전함은 곧 국력의 상징, 열강으로 들어가는 실질적인 증표!」
「정부의 예산이 부족하니, 황공하옵게도 황제 폐하께서 친히 내탕금을 열어 보태겠다고 하시었다. 이는 국방 강화를 위한 황제 폐하의 성단이시니, 우리 신민들도 마땅히 힘을 보태야 하지 않겠는가?」
「해군 장병들, 봉급을 차감해 건함비에 기부! 국민들이여, 성금에 동참하자!」
"암, 충무공의 나라가 전함도 없어선 안 되지."
"일본은 최신 전함 8척을 확보하려 한다며? 그럼 대한도 1척은 있어야지."
전함을 향한 야망은 강국으로 성장하길 원하는 모든 국가에서 있기 마련이었다. 한국보다 인구도 훨씬 적은 남미의 칠레조차 최신 전함을 보유한다는데, 한국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일본을 향한 경쟁심리가 작용했다. 막대한 건함 예산으로 인해 일본 재정이 파탄 지경에 이르고 있지만, 일반인들의 눈에 보이는 건 일본 해군의 위용이었다.
각지에서 해군을 향해 ‘건함 성금’이 답보하였다. 부호 중에서는 자발적으로 거액을 희사하는 이들도 있었으니, 애국심도 있었지만, 이번 기회에 황제의 눈에 들어 보려는 자들도 있었다.
"성상께서는 언제나 실속을 중시하셨는데, 이번 결정은 의외였소."
"그만큼 해군력 강화가 시대적 과제라는 점이겠지요."
원로 김옥균과 총리 박영효는 이선의 선택이 뜻밖이다 싶었다. 신해혁명 이후 대한제국은 오히려 군사력 강화에 몰두하고 있었다지만, 전함은 예정에 없었던 것이었다.
‘전함 리우데자네이루면 즉 애진코트잖아. 우리가 사 주면 언젠가 영국이 고마워할 날이 올걸.’
실제 역사에서 오스만제국이 인수하여 ‘전함 오스만 1세’가 되었다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이 압수한 바로 그 전함 HMS 애진코트(Agincourt).
영국의 강탈은 오스만의 여론을 격동시켰고, 오스만이 참전하는 한 원인이 된다.
‘명색이 동맹인데 강탈은 하지 않을 거고. 실제로는 처칠이 매일 1천 파운드씩 내는 조건으로 임대하려고 했다던가? 유사시 영국 해군에 임대하는 조건으로 단단히 대가를 받아 내야겠군. 실전 경험이 부족한 우리 해군은 경험도 쌓고.’
말하자면 이선은 해군력 강화와 대영국 협상용으로 쓸 목적으로 전함을 인수할 계획이었다.
한국의 5년 분할 제안에, 몸이 달은 오스만은 1년 내로 완납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조건대로라면 오스만에 판매하는 게 영국에겐 합리적 선택이겠지만, 러시아도 한국의 편을 들어주어 개입하였다.
"흑해함대에는 드레드노트급이 없는데, 오스만이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확보하면 흑해의 최강자가 됩니다. 러시아에 흑해 무역로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귀국도 잘 알 터입니다. 설마하니 귀국은 러시아와 협상을 맺어 놓고선, 친독으로 기울어진 오스만을 이용해 러시아를 견제할 목적으로 전함을 판매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동맹국인 한국의 구매의사, 러시아의 개입, 친독국가로 분류된 오스만에 대한 반대까지 포함되어, 결국 전함 리우데자네이루는 한국으로의 판매가 결정되었다.
1914년 1월 2일, 런던에서 한국-영국-브라질 간에 전함 인도 계약이 서명되었다.
한국은 영국에 275만 파운드를 5년 분할로 납부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확정지었다.
"전함의 함명은 뭐라고 명명할까요?"
"음, 지금까지는 고대의 인물이나 지명으로 명명했지만……."
지금까지의 군함 명칭은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김유신 등 주로 고대의 영웅들이나 지명이 선정되었다. 전통적인 피휘(避諱) 관습이 아직 남아 있어서, 조선왕조의 군주나 공신의 이름을 명명하는 건 가급적 피하고 있었다.
원수부 해군참모국장 이규풍 부장은 이순신의 10대 직계손이라, 충무공을 함명에 선정하자는 여론에도 더더욱 조심하고 있었다.
"대한 최초의 전함에 충무공보다 더 적절한 함명을 찾을 수 있겠는가? 전함 충무공 이순신으로 명명하라."
황제 이선이 나서 전함 이름을 『충무공 이순신(忠武公李舜臣)』이라고 명명했다.
이로써 전함 리우데자네이루는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이름으로 대한제국 해군 제1전함이 되었다.
기준배수량 27,850톤. 만재배수량 30,860톤. 전장 204.7미터, 전폭 27.1미터. 12인치 2연장 함포 7기 14문, 6인치 단장포 20문. 출력 34,000마력. 최고속도는 22노트.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당대 최고 수준의 전함 중 하나였다.
광무 18년, 1914년.
1904년부터 시작된 군비 강화 2차 5개년 계획이 종료되었다.
대한제국은 상비 13개 사단 체제를 갖추고, 마침내 20만의 상비군을 확보했다.
예비군은 43만으로, 전쟁이 발발하면 대한제국은 신속히 63만 대군을 편성할 수 있었다.
새로 도입된 전함과 잠수함, 동양 최초의 항공대는 해·공군 전력도 도외시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역사적인 1914년을 맞이하여, 대한제국은 동양의 새로운 군사강국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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