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화약고 폭발
세르비아와의 갈등이 일단락된 후,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이영을 자신이 거주하는 벨베데레(Belvedere) 궁전으로 초대하여 치하했다.
"대공의 조언이 아니었더라면, 어쩌면 총독이 아니라 내가 잔류한 암살자의 총탄에 맞았을지도 모르오. 대공께 진심으로 감사드리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이영의 동행이 결과적으로 황태자의 목숨을 살렸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이영에게 철왕관 제국훈장(Kaiserlicher Orden der Eisernen Krone) 1등급을 수여했다.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으로, 동양인 중에서는 이토 히로부미와 이선이 수훈을 받은 바 있었다.
"영광입니다, 황태자 전하."
"모름지기 진정한 제국이라면, 변방의 사나운 민족을 위엄과 덕으로 굴복시켜야 한다는 동양의 고사도 내게는 매우 흥미로웠소."
"저는 어디까지나 고사를 알려 드렸을 뿐, 진정 덕과 위엄으로 굴복시키신 건 전하이십니다."
"만약 세르비아와 전쟁을 했다면, 러시아와도 일전을 각오해야 했을 터. 그건 대공도 원치 않는 일 아니겠소? 부인을 생각하면."
황태자의 농담에, 이영도 빙긋 웃었다. 처가인 러시아와 자신이 호감을 갖게 된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전쟁을 해서 서로 죽어 나간다는 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미래였다.
"그도 그렇습니다만, 저는 진심으로 지금의 평화가 유지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나도 그렇소. 다민족 제국을 다스리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 청국이나 오스만의 몰락을 답습할 수는 없소. 진정한 연방으로 거듭나야지."
황태자는 웃으면서 이영과 악수를 했다.
걸핏하면 버럭 화를 내고, 쌀쌀맞고 무뚝뚝한 태도로 인기가 없는 황태자였으나,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따뜻했다.
마치 니콜라이 2세가 이선을 신뢰하듯, 프란츠 페르디난트도 이영에게 호감을 느꼈다.
오쓰 사건을 막아 로마노프 왕조의 후계자가 이선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 것처럼, 사라예보 사건에 관여해 합스부르크 왕조의 후계자가 이영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어쩌면 황형께서도 이런 결과를 기대하고, 나를 오스트리아 주재 공사로 보내신 걸지도. 황형께선 앉아서 천리를 내다보는 분이니까.’
이영은 만족감과 뿌듯함을 느꼈다.
* * *
그 무렵, 역사의 변화에 대해 이선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
"허, 참. 결국 이렇게 될 줄이야."
이선은 쓴웃음을 흘렸다.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암살이 미수로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세계대전이 예정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예감은 들었다. 황태자 암살 성공과 미수는 명분에서 차이가 컸다.
8월 15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을 전할 무렵, 세계에는 특별한 변화가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에 파나마 운하가 개통하여,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게 되었다.
운하 건설의 주도자이자 최대 수혜자가 될 미국은, 이로써 동부와 서부를 긴밀하게 연결할 수 있었다. 태평양과 동아시아로 진출하기도 더욱 유리해져,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예고했던 ‘태평양의 세기’의 전망이 한층 더 가까워졌다.
그에 비하면 지역적인 일이었지만, 대한제국에서는 한반도 종단철도가 완성되었다.
수요부족과 난공사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구간, 함흥과 경흥을 잇는 함경선이 완공된 것이다.
경원선을 통해 황성과 원산을 잇고, 마침내 두만강까지 이어진 함경선. 서로는 길림-회령을 잇는 길회선과 접속하고, 북으로는 두만강 철교를 부설해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하여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접속하는 게 목표였다.
대한제국의 최대 간선 철도인 경의선-남만주철도에 다음가는 장대한 북방계획이었다.
"이로써 대한의 남북, 동서를 연결하는 간선철도 계획은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철도는 대륙으로 웅비하는 대한의 탄탄대로가 될 것입니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8월 16일, 이선은 두만강을 바라보는 역에서 함경선 완공을 축하하는 연설을 했다. 강 건너편은 바로 러시아였다. 32년 전, 바로 저곳에서 고려인 의용군 부대를 이끌고 고국으로의 귀환을 꿈꾸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폐하, 유럽에서 보내온 급전입니다."
비로소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선은 함경선 개통행사에 초청한 극동총독 스톨리핀이, 국경 근처까지 왔다가 양해를 구하고 급히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간 이유를 알게 되었다.
‘20년의 평화를 부르짖는 스톨리핀은 무조건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을 받아들이라 촉구하라고 차르에게 조언하겠지. 비록 스톨리핀은 총리에서 경질되었어도, 아직 그의 사람들은 많으니…….’
이선의 예상대로였다. 암살을 피하고 살아남은 스톨리핀은 개혁에 상당한 성과를 냈고, 경질된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후임 총리인 코콥초프도 온건한 보수파였고, 주화파였다.
이미 은퇴하여 물러나 있던 초대 총리 비테도 복귀하여 차르에게 청원했다.
「설령 러시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상대로 단독으로 전쟁하여 승리할지라도, 중부유럽에 안정적인 노(老)제국을 대신해 혁명적인 민족국가들을 만들어 주는 셈입니다. 이는 러시아에 바람직한 미래가 아닙니다. 만약 독일이 개입한다면, 승리는 예상할 수 없습니다.」
코콥초프와 비테는 즉각 오스트리아와 일전을 벌여야 한다는 군부의 외침을 잠재웠다.
상황이 이럴 진데, 이선이 아무리 차르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더라도, 전쟁으로 가는 길을 조언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선은 관망을 택했다.
러시아의 충고는 세르비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결국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의 최후통첩을 받아들였다.
1914년 8월, 세계대전은 발발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군. 이번 기회는 빗나갔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다음 화약고가 터지는 순간, 전쟁은 일어날 수밖에.’
1914년 8월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선은 느긋했다.
양극화된 유럽의 동맹이 서로 총부리를 들이댈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를 굴복시키길 원하고, 세르비아는 유고슬라비아를 원하고, 불가리아와 오스만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길 원하고, 러시아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차지하길 원하고, 프랑스는 독일에 복수를 하길 원하고, 독일은 세계최강국으로 군림하길 원한다.
이를 위해 각국은 모두 전쟁을 각오하고 있었고, 수십만에서 수백만의 대군을 동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결국 전쟁은 언젠가 일어날 운명이었다. 단지 그럴싸한 명분이 필요할 뿐.
독일, 베를린.
러시아가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을 받아들이라 종용한 건, 이번에도 독일의 영향이 있었다.
"발칸의 국지적인 분쟁으로 끝나야 합니다. 러시아가 세르비아의 우방이긴 해도, 결국 참전하지 않을 겁니다."
제국재상 베트만-홀베크는 어디까지나 분쟁을 발칸의 국지적 문제로 국한시키려고 했다.
프로이센 육군대신 팔켄하인 중장이 군부를 대표하여 카이저에게 물었다.
"폐하. 강대국 간에 분쟁이 발생할 만일의 사태에, 어떻게든 대비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네. 세르비아 따위 소국이 오스트리아와 단독으로 싸울 거라 생각되지 않고, 러시아와 프랑스도 세르비아 때문에 독일과의 전쟁을 각오하리라고 생각하진 않네."
카이저의 자신만만함에 팔켄하인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는 카이저의 성격을 고려하여 즉시 반박을 하지 않았다. 팔켄하인은 카이저의 총애를 받아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급하여, 상관들을 제치고 육군대신에 오를 정도였다.
"저는 러일전쟁 직전에 군사고문관으로 한국에 있었습니다. 그때 정세를 살펴보면, 소국인 일본이 대국인 러시아를 상대로 먼저 선제공격하리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렇게 됐지요. 전쟁을 원하는 나라는 결국 전쟁을 벌입니다."
"그럼 세르비아가 전쟁을 원한단 말인가?"
"세르비아를 짓밟길 원하는 오스트리아만큼은 아니겠지만, 세르비아 극단주의자들도 러시아를 끌어들여 전쟁을 획책하고 싶어 할 겁니다. 이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합니다."
"흠, 알겠네. 그럼 짐이 직접 차르에게 친서를 보내도록 하지. 겨우 세르비아 따위 때문에 독일과 러시아가 전쟁을 벌일 이유가 없지."
카이저의 친서, 대신들의 조언을 받아들인 차르는 일단 세르비아에게 일보후퇴를 하라 요청했다.
일단 여름 위기는 일단락되었지만, 참모총장 헬무트 폰 몰트케(Helmuth von Moltke)나 육군대신 팔켄하인 모두 슐리펜의 정신적 후계자로, 예방전쟁 신봉자였다. 이들 모두 노불동맹과 언젠가 일전을 벌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오스트리아에 급박하게 끌려들어가서 전쟁을 시작하기보단 완벽한 기회를 포착하길 원했다.
"러시아가 군제개혁을 완성하는 1918년이 되면, 러시아와 독일 간의 병력격차는 더욱 커집니다. 일전을 벌일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엘자스-로트링겐(알자스-로렌)을 탈환하겠다고 덤벼드는 프랑스도 잠재울 필요가 있지요."
"그럼 이번 기회를 노렸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오. 이번엔 명분과 준비 모든 게 부족했소. 카이저께서도 전쟁을 원치 않으셨고. 하지만 머지않아 기회는 오게 될 겁니다."
"발칸에서는 결국 불이 붙게 되어 있어요. 언제든지 전쟁 발발을 대비해 두도록 합시다."
카이저와 달리, 프로이센 군부는 전쟁을 원했다. 이들은 적대적인 삼국협상국에 포위되어 있다는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에 시달렸고, 시간이 갈수록 러시아의 잠재력이 커져 협상국과의 격차가 커지리라 우려했다. 결국 이를 타개하는 건 전쟁이었다.
몰트케와 팔켄하인은 머지않아 다시 불이 붙으리라 예상했고, 그때를 대비하여 전쟁계획을 정교하게 준비해 두었다.
* * *
가까이는 프로이센 군부의 예상, 멀리는 이선의 예상은 결국 틀리지 않았다.
불씨의 폭발은, 결국 유럽의 화약고에서 터지게 되었다.
"이번 기회에 테러리즘의 본산인 흑수단을 뿌리 뽑는다."
총선 승리 후 자신을 얻은 파시치와 급진당 내각은, 흑수단에 대한 숙청에 나섰다. 오스트리아-헝가리에게 보여 주기라기보다는, 정권과 국가의 안정을 위해서였다.
물론 흑수단은 순순히 숙청당해 줄 생각이 없었다. ‘단결 아니면 죽음!’이라는 구호처럼, 이들에게는 승리 아니면 죽음뿐이었다.
"1903년처럼 정권을 전복해야겠소."
"그래도 1903년처럼 유혈 쿠데타는 피해야 하오. 러시아, 프랑스, 영국 모두 잔혹한 유혈극은 좋아하지 않을 거요."
"왕태자 전하를 내세워 정권만 장악한다면, 반대파들은 체포와 구금으로 끝냅시다."
흑수단은 이미 쿠데타 경력이 있었다. ‘아피스’ 디미트리예비치 중령을 비롯한 흑수단의 핵심인사들은 1903년 친오스트리아적인 국왕 부부를 잔혹하게 시해하고 오브레노비치 왕조를 멸망시킨 주역들이었다. 페타르 1세의 즉위와 카라조르제비치 왕조 수립은 자신들의 공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늙고 쇠약해진 페타르 1세를 대리해 정무를 수행하고 있는 알렉산다르 왕태자는 흑수단에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이들은 쿠데타에 성공한 후에 왕태자를 내세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러시아가 파시치 정권을 지지하는 게 문제요."
"상관없소. 우리가 정권을 잡는다 해도,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버릴 수 없소. 어차피 발칸에는 오스트리아에 맞설 러시아의 대리자가 필요하오. 그리스는 오스트리아와 이해관계가 없고, 이미 척을 진 불가리아를 대신 택할 순 없지 않겠소?"
세르비아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러시아 공사 가르트비크의 갑작스러운 사망도 흑수단에 도움이 되었다. 5월 쿠데타설 당시에도 급진당 내각을 확고하게 지지했던 러시아 공사의 부재는, 흑수단에 부담감을 덜어 주었다.
"오스트리아의 앞잡이들이, 적국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여 발칸전쟁의 영웅들을 숙청하려고 한다. 외세에 빌붙은 매국노가 애국자를 숙청하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또 어디 있는가!"
세르비아의 광적인 민족주의 여론은 최후통첩 수락을 굴복으로 받아들였고, 급진당 내각이 오스트리아의 요구를 받아들여 ‘애국자들’을 숙청한다고 하니 정부의 배신으로 여겼다.
"세르비아의 충성스러운 국민에게 알린다. 조국수호를 위하여 인내하고 있던 군부는, 마침내 궐기하여 매국적인 파시치 정권을 타도하였다. 군부는 외세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 모든 애국자와 단합하여 민족방위정부를 수립할 것이다."
"민족방위정부 만세!"
9월 1일. 파시치 총리의 그리스 방문을 틈타, 베오그라드를 지키던 근위사단이 쿠데타를 일으켜 급진당 정부를 전복시켰다.
내각 각료 대부분은 체포되어 구금되었고, 군부는 급진당이 ‘온건’하다며 갈라져 나온 강경 민족주의 정파 독립급진당과 연합하여 민족방위정부(Vlada Narodna Odbrana, VNO)를 수립했다.
"도대체 이 무슨 무례함이란 말인가!"
"국가를 외세로부터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전하, 근위사단의 궐기를 받아들여 주십시오. 국민을 이끌어 주십시오!"
알렉산다르 왕태자가 비록 흑수단에 우호적이라고는 하나, 11년 만에 재현된 쿠데타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대세가 결정된 상황이라 민족방위정부의 수장으로 추대되었다. 늙고 병든 페타르 1세를 대신하여 알렉산다르가 섭정으로 선포되었다.
26세의 젊은 알렉산다르는 국민적 인기도 좋고, 러시아 차르의 사윗감으로 여겨지고 있었기에 얼굴마담으로 적격이었다.
왕태자는 단결과 통합을 외치며 군부의 폭주를 막고, 러시아에 지지를 호소하는 친서를 썼다.
하지만 흑수단과 군부는 이미 계획이 있었다.
"매국적 파시치 정권이 수락한 굴욕적인 최후통첩을 묵살한다! 모든 세르비아인들이여, 오스트리아에 맞서 싸우자! 오직 전쟁만이 오스트리아로부터 남슬라브 민족을 해방시키고, 유고슬라비아를 건설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세르비아 쿠데타에 러시아는 당혹감을 느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만큼 당혹스러울 수는 없었다.
민족방위정부는 파시치 정부가 수용했던 최후통첩에 불응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위신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 민족방위정부란 놈들, 사라예보 사건의 배후가 아닌가? 이는 오스트리아에 대한 모욕이다!"
"내 이럴 줄 알았습니다! 세르비아에게 관용을 베푼 대가가 이겁니다! 그나마 대화가 통하던 파시치가 실각하고 무지막지한 자들이 집권했으니, 이제 어찌할 겁니까?"
"양국 간에 합의한 최후통첩도 찢어발겼으니, 이는 단교와 선전포고로 받아들여도 됩니다!"
"그렇다면 전쟁이지요!"
세르비아 쿠데타는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티서를 비롯한 주화파들의 논리를 일거에 무너트렸다. 협상의 결과 더 극렬한 강경파 정권이 들어섰으니, 주전파들이 기세를 올리는 것도 당연했다.
"짐의 이름으로 합의한 사항을 단 2주 만에 휴지 조각으로 만들다니, 이런 모욕이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황태자의 조언을 받아들여 협상을 택했던 황제 프란츠 요제프도 격노했다.
황제, 군부, 정부가 일제히 강경론으로 치달았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더 이상 평화의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마침내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이제 명분도 충분하다. 전쟁이다!"
참모총장 회첸도르프는 희희낙락하며 승리의 개가를 불렀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베오그라드와 빈의 소식을 전해 들은 베를린도 계획에 착수했다.
1914년 9월, 마침내 유럽의 화약고가 폭발했다. 유럽은 급속도로 전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190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