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525화 (524/812)

206화 황제를 꿈꾸는 자

중화민국 4년(1915).

2월의 군사 쿠데타로 국민당 정부를 타도한 원세개는, 점차 권력 장악을 강화했다.

"작금의 의회는, 중국의 현실과 동떨어진 공리공담만 늘어놓는 기관일 뿐이다. 국민당 정권은 의회의 전제정치나 다름없었고, 이들은 나라를 그르쳤다. 각성 도독들이 의회 해산을 연명으로 서명한 바이니, 이에 중의원과 참의원을 모두 해산한다."

군사정권은 국민당이 다수를 차지한 의회를 해산했다. 이로써 중국의 의회민주주의 실험은 2년 만에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대총통 손문은 의회 전제를 허용하여 국가를 혼란에 빠트렸다. 대총통으로서의 막중한 책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고 국경을 넘어 도주했다. 이에 대총통에서 탄핵하고, 재판에 소환한다."

손문이 영국령 홍콩으로 망명한 건 쿠데타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원세개 일당은 이를 명분으로 삼아 멋대로 궐석재판을 열었다.

"국무총리 송교인은 의회를 내세워 국민당 일당독재를 추구했고, 국가를 혼란에 빠트렸다. 이에 징역 10년을 선고한다. …… 전 참모총장 황흥, 전 강서도독 이열균, 전 경찰국장 진기미, 전 참의원 의장 장계, 전 민의원 의장 호한민 등의 체포령을 내린다."

군사정권은 국민당 요인에 대한 숙청에 나섰다. 체포된 송교인 이하 각료들에게 징역형을 선고하고, 망명길에 오른 국민당 요인들에게 체포령을 내렸다.

"대총통 각하 만세!"

국민당을 숙청한 원세개는 정식으로 대총통에 취임했다.

여기까지는 원세개의 뜻대로 됐다. 국민당의 민주주의 실험에 반감을 갖고, ‘강력한 지도력’을 열망하는 이들에게 군사정권은 필연으로 여겼다.

그러나 일본의 가혹한 14개조 요구를 겨우 한 조항만 철회시키고 13개 요구사항에 굴복한 이후, 원세개의 명성은 땅에 떨어졌다.

"강력한 중국을 만든다더니, 일본 속국으로 만들려고 했단 말인가?"

"굴욕적인 요구를 수락한 원세개는 일본의 앞잡이냐?"

"애초에 일본이 원세개의 배후에 있었다! 원세개는 한간이다!"

"한간 원세개 정권 타도하자!"

학생과 지식인, 국민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원세개 정권을 ‘한간(漢奸, 중국의 반역자)’으로 규정하고 타도 운동이 일었다.

군사정권을 강력한 중국으로 가는 일종의 필요악으로 여겼던 ‘비판적 지지자’들도 원세개에게서 등을 돌렸다. 대표적인 인물이 진보당의 당수 양계초였다.

무술변법의 실패 이후 언론을 통해 계몽운동에 종사해 왔던 양계초는, 신해혁명 이후 공화국을 거부하고 북청으로의 길을 택한 스승 강유위와 달리 중국에서 야당 활동을 했다.

개명전제(開明專制)를 지지하는 양계초는 국민당의 지리멸렬함을 거침없이 비판하며 등을 돌렸다. 강력한 지도력을 열망하며 군사정권을 잠시 지지했지만, 의회 해산에 이어 13개조 요구 굴복까지 발생하자, 양계초는 다시 정권 비판의 선봉에 섰다.

"굴욕적인 13개조 승인을 취소하라! 전국 총선거를 실시하여 의회를 복구하라!"

양계초는 워낙 거물급 인사라 원세개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지만, 군사정권은 언론을 통제하고 학생운동을 가차 없이 탄압했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학생놈들, 입만 산 지식인놈들은 하나도 두렵지 않다. 문제는 총을 가진 놈들이지."

군사정권 초기에는 그럭저럭 군벌 연립정권의 형태로 돌아갔다. 원세개는 직위와 뇌물을 팍팍 뿌려 가며 군벌들의 지지를 얻어 냈지만, 13개조 요구 굴복 이후 권위가 꺾이고야 말았다.

군벌들 대부분은 말로만 일본에 항쟁하겠다고 떠벌였고, 앞장설 생각은 전혀 없었다. 원세개도 그걸 파악했기에 일본에 맞서지 않고 굴복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예외적인 인물도 있었으나, 바로 안휘파의 수장이자 국무총리 단기서였다.

"이게 우리가 목표로 하던 강력한 중국인가? 천도 항전을 할지언정 어찌 일본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한단 말인가?"

단기서는 항의의 뜻으로 국무총리에서 사직하고 고향인 안휘로 돌아갔다.

북양군의 양대 파벌이자, 군벌 연립정권의 2인자나 다름없던 단기서의 사직은 군사정권의 불안정을 암시했다.

"지금 중국에 일본과 맞서 싸울 힘이 있는가? 와신상담의 각오로 힘을 키울 때이지, 분열할 때가 아니다."

원세개는 13개조 요구를 수락한 대가로 일본으로부터 5년에 걸쳐 2억 5천만 엔의 차관을 지원받기로 협정했다. 수많은 이권을 넘겨준 대가였다.

이 돈으로 호광파의 수장 여원홍, 직례파의 수장 풍국장, 각성의 군벌들을 매수하여 단기서의 이탈 파장을 최소화했다.

안정적인 권력기반을 확보했다고 자신한 원세개는, 대총통선거법을 개정했다.

"신해혁명 당시 국민들은 감정에 사로잡혀 국정을 미처 고려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공화국을 세웠다. 중화민국 건립 이후 나라는 많은 위험을 겪어 왔고, 국민은 극심한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이렇게 계속 나아간다면 국민의 고통은 끝이 없을 것이다."

"중국에 필요한 건 단호한 지도력이다. 대총통 중심으로 단결하여 강력한 중국을 건설하자!

「작금의 대총통제로는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보장할 수 없기에, 대총통선거법을 개정한다.

1. 대총통의 임기는 10년이며 연임할 수 있다.

2. 대총통 선거원은 입법원에서 50인, 행정부에서 50인을 호선(互選)한다.

3. 대총통은 민의를 대표하여 대총통에 선출될 자격이 있는 자 3인을 추천한다.

4. 대총통 선거원은 정치상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3분의 2 이상의 동의로 현임 대총통의 연임을 의결할 수 있으며, 대총통이 이를 공포한다.

……」

개정법에 따르면, 대총통은 임기 10년에 제한 없이 연임할 수 있었다. 간접선거를 수행할 선거단도 정부가 절반을 임명할 수 있었다.

심지어 대총통이 후임자를 추천하여 임명할 권한까지 있었다.

요컨대 ‘대총통 마음대로’, 초월적 대총통제였다.

"중화민국의 주권은 전체 국민으로부터 온 것이다. 나 원세개는 중화민국 대통총이자 육·해군 대원수로서, 국민의 총의를 받들어 중화민국을 세계에 군림할 강력한 국가로 만들겠다!"

"중화민족의 영도자, 대총통 각하 만세!"

12월 12일, 신해혁명 4주년을 맞이하여 원세개는 임기 10년 연임의 대총통에 새로 취임했다.

이제 원세개는 부동의 최고권력에 오른 것이었다.

"이는 원세개가 나폴레옹을 흉내 낸 것이다. 나폴레옹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먼저 제1집정에서 종신집정으로 임기 제한을 없앴다. 다음에는 국민투표를 빙자해 마침내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니, 원세개가 노리는 바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더욱이 나폴레옹은 공화국을 무너트렸을지언정 프랑스를 보호하고 영광으로 이끈 공로라도 있지, 원세개는 혁명을 파괴하고 중국을 굴욕에 빠트렸다!"

원세개가 나폴레옹 흉내를 내고 있다는 양계초의 비판 이후, 원세개의 황제 즉위 야망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원세개의 목표는 황제라더라."

"청국을 무너트리고 황제를 없앴는데, 이제 원세개가 황제가 되려 한단 말인가?"

황제 즉위 소문이 돌자 원세개는 즉각 부정했다.

"내가 청조를 무너트리는 데 앞장섰거늘, 이제 와서 황제를 꿈꾼다니 말이나 되는가? 이미 내 나이가 쉰일곱이다. 어찌 황위를 바라겠는가? 나는 오직 중국을 부강하게 만드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 없다."

공식적으로 부정했음에도, 의심은 더욱 커져 나갔다. 군벌 정권의 ‘삼두’인 직례파의 수장 풍국장조차 흔들렸다.

"저 영감탱이가 대총통 10년만 하고 내게 넘겨준다고 약속했는데, 황제가 되면 그 자식놈이 물려받는 거 아닌가? 그럼 나는 뭐가 되나?"

원세개에게 매수되어 충실한 개 노릇을 하던 풍국장도 이럴진대, 다른 군벌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초월적 권한의 대총통은 황제로의 길이다."

"원가 놈이 황제라니, 가당치도 않다."

"원가의 음모를 분쇄해야 한다!"

1915년 12월, 대총통 취임 며칠 만에 군벌들 사이에 반원(反袁) 연합이 결성되기 시작했다.

반원 연합의 근원이 된 황제 소문의 배후에는, 바로 대한제국이 있었다.

* * *

이선은 제국익문사를 움직여 중국에 반원 여론을 부추겼다. 신해혁명 이전부터 중국에 비선을 심어 온 제국익문사 동아국장 이회영과 중국지부장 신규식은 요원들을 움직여 반원 여론을 확산시켰다.

"원세개가 정말로 황제를 꿈꾸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이런 소문이 먹힐 정도로 원세개의 평판이 나쁘다는 게 중요하지."

실제 역사에서 원세개는 황제 즉위를 꿈꾸다가 전 중국의 반발로 무너지고 말았다.

실제보다 훨씬 취약한 기반으로 인해 원세개가 지금도 황제 즉위를 구상하고 있는지는 미지수였지만, 이선은 개의치 않고 익문사를 움직였다.

단순히 익문사의 공적이라기보다는, 원세개의 행보가 문제였다. 청조를 배신한 자가 다시 민국을 배신했다. 군사 쿠데타, 13개조 요구 굴복, 초월적 대총통제의 실시는 이미 원세개의 평판을 더럽혔다. 이 모든 행위의 궁극적 목표가 황제라는 소문은, 원세개에게 반감을 갖고 있던 중국인들에게 손쉽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군사정권의 중요한 축인 군벌들도, ‘여러 군벌 중의 1인자’는 받아들일 수 있어도, ‘여러 군벌 위에 군림하는 독재자’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제 중국은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반원 연합이 결성되어 원세개 타도를 부르짖는다면, 내전으로 확대될 것이다.

원세개가 열어 버린 판도라의 상자는, 결국 중국을 내전의 참화로 빠트릴 터였다.

"역적 무리는 민심을 잃었습니다. 중국의 신민들은 대청 황실을 그리워합니다. 대청이 중국을 수복할 수 있도록, 귀국이 도와주십시오."

‘황제 복권’을 꿈꾸는 이들은 만주에도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대청 황제 선통제의 복권을 꿈꾼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청국 일각에서는 중국 수복을 부르짖는 자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북양군 일부를 이끌고 만주로 향한 장훈으로, 그는 청국 군부의 수장이 되어 만주군을 조직했다. 만주군은 러시아군과 한국군의 지원을 받았다.

현실적으로 한국 군사력의 반도 못 미치는 청국이 단독으로 ‘중국 수복’을 할 능력은 없었으므로, 청국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한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청한 양국이 공동으로 원세개 정권을 공격한다면, 자칭 중화민국은 손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대청 황실이 중국에 복권된다면, 귀국은 재조(再造)의 은혜를 베푼 것이니 어찌 그 은혜를 잊겠습니까?"

"그건 어려운 일입니다. 중국인들이 복벽을 원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만약 중화민국이 만주를 침입한다면 대한은 적극적으로 보호하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도 안 됩니다."

당연히 이선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청국을 대중정책의 지렛대로 쓸 생각은 있지만, 만주-몽골-신강-티베트라는 범위를 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중국인들이 청조의 복벽을 원치도 않을뿐더러, 기껏 중국 본토와 변방을 분열시켜 놨는데 다시 합치게 놔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청조의 복벽은 불가능했고, 불필요했다.

이선의 관심사는 중국을 분열시키는 것이지, 재통일시키는 게 아니었다.

대한제국에 군사지원을 요청하는 세력은 청국만이 아니었다.

중화민국 정통정부를 자처하는 국민당 망명자들도 한국의 지원을 바랐다.

"일본이 원세개를 지원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에 맞설 수 있는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오."

"유럽 열강은 전쟁 중이라 정신이 없고, 미국은 중국 문제에 개입할 생각이 없소. 그럼 남는 답은 한국뿐이오."

"하지만 한국은 일본과 동맹 중이지 않던가요?"

"한국은 일본과 다르오. 한국은 원세개 정권을 승인하길 거부하고, 일본의 무도한 13개조 요구도 강력히 비난했소."

"한국은 혁명 이전부터 동맹회를 도왔소. 한국 정계의 실력자인 김옥균이 배후에 있소. 그는 국민당의 붕괴를 바라지 않을 거요."

혁명 이전 김옥균과 송교인 간에 밀약이 있었고, 한국이 비밀리에 중국 혁명을 돕는 조건으로 신생 중화민국은 본토 18개성 이외의 영유권을 포기했다.

국민당으로서는 유일한 해외 선택지가 한국이었고, 이번에도 한국의 지원을 바랐다.

홍콩에 망명 중이던 손문이 극비리에 한국을 방문했다.

1915년 연말, 인천의 모처에서 김옥균과 손문의 회담이 성사되었다.

"어서 오십시오, 대총통 각하. 대한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손문은 김옥균이 여전히 자신을 ‘대총통’으로 호칭하자 내심 기뻤다. 국민당 정권을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원세개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각하. 중국의 우방이자 자유의 나라인 한국에 오게 되어 기쁩니다."

"하하, 나 역시 중국 혁명의 영웅인 대총통 각하를 뵙게 되어 기쁩니다."

김옥균은 호쾌하게 웃으며 손문과 악수를 했다.

"신해혁명 이전, 나는 송교인 공과 만나 흉금을 털어놓았지요. 비록 국적은 다르나, 나 역시 한때 혁명을 꿈꾸던 혁명가였습니다. 동양 삼국의 협력은 나의 오랜 꿈입니다."

"아, 돈초(송교인)로부터 각하의 열망을 익히 들어 왔습니다. 우리 국민당은 각하의 호의와 협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옥균이 옛일을 상기시키자, 손문이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중국의 위대한 혁명가이자, 본인과 협상을 맺은 당사자인 송교인 총리께서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저 간악한 원세개가 합법적인 정부를 무너트리고 민의에 의해 선출된 합법 정부를 무너트렸기에 그리되었습니다. 중화민국의 반역자 원세개는 반드시 인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손문은 즉각 원세개를 강력히 비판했다. 김옥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청조를 타도하는 데 각하께서 도와주셨듯이, 이번에도 부디 국민당을 도와주십시오. 원세개는 청조보다 더 가증스러운 중국 인민의 적입니다."

"흠,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손문은 마침내 방문 목적을 꺼냈다.

"3개 사단을 무장할 수 있는 자금과 무기를 지원해 주십시오. 광동에서 기의(起義)를 일으키면, 중국 전역으로 확대되어 원세개를 타도할 것입니다."

"3개 사단을 무장할 정도라면, 막대한 자금과 무기가 필요할 터인데요. 현재 대한에는 그만한 능력이 없고, 설령 있다 해도 본인에게 그럴 권한이 없습니다."

김옥균은 어렵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각하께서 한국의 실력자이자, 황제 폐하의 오른팔임은 세상이 다 압니다. 일본은 중국의 이권을 탈취하는 대가로, 저 원세개 정권에 차관 2억 5천만 엔을 약속했습니다. 정녕 중국을 일본의 속국으로 만들기를 원하십니까?"

"일본에는 그런 무리수를 둘 이유가 있나 보지요. 대한에는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일본의 최대 관심사는 중국일지 몰라도, 대한은 만주와 몽골입니다."

김옥균은 일부러 중국에 관심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손문은 애가 탔다.

"군벌들은 힘을 얻으면, 협정을 무시하고 만주에 침입할지도 모릅니다. 국민당이 중국의 정권을 담당하고 있는 이상, 귀국과 영구히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북청의 영토를 결코 넘보지 않겠습니다!"

"그 말씀인즉슨, 청국 문제에 있어 중국은 영구히 어떠한 경우에도 개입하지 않겠다는 걸 약조하는 겁니까?"

김옥균이 눈을 번뜩이자, 손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국민당은 중화민국 본토를 제외하곤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 207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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