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529화 (528/812)

210화 전쟁의 수혜자

광동에서 호법정부를 이끌고 있는 손문은, 독립을 선포한 절강 항주로 이동하여 재차 호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원세개는 이미 길이 막혔음에도, 아직도 사태를 관망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론 죽어도 변치 않을 그의 권력욕 때문이고, 둘째는 지금까지 혁명을 창도해 온 사람들 간에 파벌이 존재하여 분쟁이 그치지 않고 상호 간에 시기와 다툼이 있기 때문에 전력을 다하여 적을 치지 못했음에 원인이 있다.

우리에게 있어 오늘은 마땅히 일치하여 나라를 구할 때일 뿐, 결코 군웅이 천하를 다툴 때가 아니다. 오직 무력으로써 흉적을 제거하고, 약법(約法)에 입각하여 사태의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

손문의 선언은, ‘군웅이 천하를 두고 다툴’ 것을 멈추고 통일된 민국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호소였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전국에 호소해야 할 정도로 중국의 분열상은 심각했다.

중국에 분열을 일으킨 장본인, 원세개는 궁지에 몰리고 있었음에도 권력을 내려놓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든 정전하여 대총통 지위만은 유지하려고 했으나, 헛된 몸짓일 뿐이었다. 이미 민심은 떠났고, 각성 대표들은 즉각적인 하야를 요구했다.

무엇보다 원세개의 지병인 방광결석이 울화병까지 겹쳐 요독증으로 악화되면서,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중화민국 5년(1916) 6월 6일.

아직 6월 초순임에도, 중국의 ‘4대 화로’라고 칭할 정도인 남경의 날씨는 무더웠다.

혼수상태에서 간신히 깨어난 원세개는 측근들을 불러 모았다. 끝까지 원세개에게 충성한 서세창(徐世昌, 쉬스창)과 단지귀(段芝貴, 단즈구이) 등이 임종을 지켰다.

"대총통선거법에 따라, 내 사후 후임은 부총통 여원홍이 계승한다."

죽음을 눈앞에 둔 원세개는 여원홍에게 대총통직을 넘겼다. 어떻게든 자파(自派)의 몰락을 막으려고 하는 선택이었다. 무색무취한 성격의 호광파 군벌인 여원홍이라면 남양파, 북양파, 호국군, 국민당, 기타 군벌 모두를 일단 만족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덥고 목이 타는구나. 꿀물을 한잔 다오."

원세개는 마지막으로 꿀물을 요구했으나, 갑작스럽게 임종을 준비하던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총통 관저에 꿀이 떨어졌다. 하인들이 급하게 꿀을 구하러 가네 실랑이를 하는 동안, 이미 원세개는 죽어 가고 있었다.

"꿀물 하나 구하지 못하다니, 천하의 원세개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단 말이냐!"

원세개는 신세 한탄을 하더니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놈, 그놈이 나를 해쳤어!"

사람의 마지막 순간에는 마음이 평안해진다고 하지만, 원세개는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누군가를 원망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죽었다.

원세개 혹은 위안스카이, 향년 58세.

그의 일생은 배신을 거듭해가며 권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마침내 쿠데타로 대총통 자리를 빼앗고 최고 권력에 오른 지 겨우 1년 4개월 만에 죽으니, 인생무상이었다.

원세개의 죽음으로, 원세개 정권 타도를 목표로 뭉쳤던 호국군이 계속 전쟁을 벌일 이유가 사라졌다.

후임 대총통에 취임한 여원홍은 임시로만 자신의 권력을 행사할 것을 천명했고, 여원홍-서세창의 남경정부, 손문-황흥의 호법정부, 채악-당계요의 호국군, 단기서-풍국장의 북양군 간에 타협이 이루어졌다.

1. 국가의 근본법은 국회해산 이전에 공포할 것을 기준으로 할 것.

2. 의회 양원을 소집하고 임시약법과 국회조직법에 따라 정식으로 국무원을 조직하고 국회 동의를 얻을 것.

3. 파병한 군대를 원래 주둔지로 철수시켜 충돌을 피하게 할 것.

4. 군사정변으로 체포된 이들을 석방하고, 정치적 보복은 최소화할 것.

5. 각성 특별회의를 소집하여, 중요 문제를 의결하여 시행할 것.

요컨대 원세개의 정변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6월 29일, 상호 간에 타협이 이뤄짐에 따라, 각성이 순차적으로 독립을 취소하면서 호국전쟁은 종결되었다.

타협 결과 손문이 대총통으로 복귀하고, 여원홍이 부총통으로 내려왔다.

원세개의 정변에 가담한 인물들에 대해 체포령이 내려졌으나, 정치적 보복을 최소화하자는 합의에 따라 피선거권 박탈이라는 상징적인 처벌만을 내렸다.

호국전쟁의 눈에 띄는 수혜자는, 국무총리로 선출된 단기서였다.

단기서는 만주군의 북경 공세를 무찌르고, 원세개에게도 최후통첩을 날려 호국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처음 호국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채악의 위상도 높아졌지만, 가뜩이나 좋지 못했던 그의 건강이 전쟁으로 더욱 악화된 상황이라 중책을 고사했다.

쿠데타 이전 총리였던 송교인도 수감기간 동안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에 들어갔다.

"중화민국의 수호자, 단기서 장군 만세!"

"국무총리 각하, 중국을 이끌어 주십시오!"

프로이센식 군국주의자 단기서가 졸지에 ‘중화민국의 수호자’라는 호칭을 얻었다. 손문과 국민당은 군벌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는 게 썩 내키지 않았으나, 단기서의 힘과 위상이 워낙 막강했으므로 어쩔 수가 없었다.

「단 장군은 신해혁명 때 공화를 찬성하여 대국을 안정시켰고, 호국전쟁 시에도 대의를 견지하여 시국을 구했습니다. 오늘날 혼란을 바로잡는 것은 오로지 총리에게 달렸으니, 원세개처럼 나쁜 말에 현혹되어 천하가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손문은 단기서를 국무총리로 임명하면서 편지로 당부했다. 단기서는 겸손하게 총리직을 수락했지만, 내심은 야심으로 가득했다.

‘의회제와 연성자치 따위로는 절대 혼란에 빠진 중국을 구원하지 못한다. 중국을 통일하려면,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하였듯이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해. 원세개처럼 사심이 가득한 위인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지도자가.’

바로 그 지도자가 곧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야심이었다.

그 무렵, 만주군은 북양군에 패배해 승덕에서도 밀려나, 개전 이전의 전선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늘이 끝내 대청을 저버린단 말인가!"

63세의 노장 장훈은 분통을 터뜨리며 무심한 하늘을 원망했다.

하지만 하늘이 청조를 저버린 게 아니라, 장훈이 이미 무너진 나라를 복벽시킨다는 무모한 전쟁을 벌인 게 잘못이었다.

이미 청조는 천명을 상실했고, 만주라면 모를까 중국에 다시 군림하는 건 불가능했다.

‘민국이 전국적인 내전에 빠진 절호의 기회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는데, 앞으로 대청이 중국 수복에 성공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하지 않겠는가? 아아,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만주군의 주력인 장훈의 변자군은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다. 무리하게 중국 수복을 부르짖다 패전한 책임도 그에게 있었다.

대청국 최후의 충신 장훈의 정치적 운명은 종말을 향하고 있었다.

"전쟁은 폐하께서 원해서 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군주에 대한 신등의 경외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지고 국가를 위기에 빠트렸으니, 신의 죄를 어떻게 씻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신에게는 죽음 말고 다른 길은 없습니다. 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이제 죽는다는 생각이나, 모든 걸 잃어서가 아닙니다. 신은 우리 황상께 해악을 끼쳤다는 사실 때문에 고통스럽습니다."

장훈은 패전을 인정하고, 자신에게 무거운 책임이 있다는 상소문을 쓰고 모든 지위에서 물러났다.

청국의 최고 실력자였던 장훈이 몰락하고, 북양군이 만주 국경까지 위협하자 청국 정부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단기서는 일전불사를 부르짖으며 봉천까지 진격할 기세였다.

"전쟁을 주도했던 장본인 장훈이 물러났으니, 민국이 대청과 협상할 수 있도록 귀국이 중재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민국이 귀국을 위협하는 건 대한 역시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한국은 청조가 중국에 복벽하는 것을 지원하지 않았지만, 중국이 만주에 침범하는 것은 더더욱 바라지 않았다.

호국전쟁이 종결되고 중화민국 신정부가 수립되자, 대한제국은 ‘합법적 정부 재건’을 축하하며 대사급 외교관계를 부활시켰다.

주중 특명전권대사로 부임한 김규흥(金奎興)은 중국통 관료인 동시에 제국익문사 비밀요원으로, 신해혁명 이전부터 국민당 지도부와 친분이 두터웠다.

호국전쟁에서도 김규흥은 신규식과 함께 익문사 중국지부를 이끌며 배후에서 반원 여론을 조장했다.

표면적으로는 외교관인 김규흥은 손문을 만나 김옥균과의 ‘밀약’을 상기시켰다.

"대총통께서는 약조를 지키시어, 만주에 대한 개입을 중단하십시오."

"물론이오."

손문은 흔쾌히 수락했다. 약속을 준수할 목적도 있겠지만, 단기서를 견제할 목적도 있었다. 만약 북양군이 청국 국경까지 넘어 확전시키려 한다면,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것이었다.

"쯧, 어쩔 수 없지. 아직은 한국과 일전을 각오하며까지 만주로 갈 때가 아니다."

손문의 진격 중단 명령을 받은 단기서는 순순히 응했다. 그도 자신의 기반인 병력을 소모시켜 가며 청국과 계속 싸울 생각이 없었다.

단기서의 목표는 중국 통일이고, 만주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이로써 중화민국과 대청국의 짧은 전쟁도 종결되었다.

1916년 여름, 표면적으로 중국의 내전은 종결되고 새 정부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중국의 분열은 심각한 수준이었고, 이미 각성은 군벌들의 지배하에 들어가 서로 간에 완전히 따로 노는 처지였다.

명목상의 중앙정부인 남경정부를 제외하고, 성 단위를 기반으로 독자적으로 세금을 징수하고 군사력을 행사하는 군벌이 13인이나 되었으니, 그야말로 군웅할거의 대군벌시대였다.

* * *

단기서는 자신이 호국전쟁의 최대 수혜자라고 생각했고, 중국 국내외의 관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진정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이는 따로 있었다.

"원세개의 정변으로 중국에 분열과 내전 발발. 더욱 취약해진 중앙정부와 군벌들의 난립. 무리한 13개조 요구 강요로 반일 감정을 촉발시킨 일본. 중국인들의 반일여론으로 한국제 수출이 늘어났고. 손문과 국민당은 실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대한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지. 청국 역시 복벽파의 몰락으로 대한이 더욱 다루기 쉬워졌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 정도면 대단한 성과가 아닌가?"

이선이 드물게도 자화자찬을 하자, 김옥균도 웃으면서 화답했다.

"앉아서 천리(天理)를 보시는 폐하의 성명(聖明)에 신은 새삼 감탄할 뿐입니다."

빈말이 아니라, 김옥균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한국이 그동안 드러나게 움직인 건, 기껏해야 다음과 같았다.

1. 군사정변과 원세개 정권을 부정하고 국민정부를 지지함.

2. 일본의 13개조 요구를 규탄함.

3. 청국의 북경 진격을 만류함.

4. 호법정부와 호국군을 외교적으로 지지함.

5. 중화민국 신정부와 청국의 휴전을 중재함.

표면적으로는 외교적 조치를 한 게 전부지만, 은밀히 다양한 방면에서 공작을 벌인 결과, 한국은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중국은 쿠데타와 내전으로 상처 입었고, 군벌 간의 분열과 중앙정부의 약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원세개의 과욕 덕에 내전이 일어나고 중국 중앙정부는 더욱 취약해졌소. 일시적으로 단기서가 대두하긴 했지만, 원세개의 폭주를 본 군벌들이 더이상 특정 군벌이 독점적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단속하겠지. 서로 간에 미친 듯이 물어뜯을 거요. 명분은 있어도 믿을 만한 무력을 지니지 못한 국민당은 친위군을 양성할 터인데, 대한의 자금과 조언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지."

일본은 복건과 절강에 이권을 얻기는 했어도, 외교적 무리수를 두어 중국에 반일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서양 열강들의 의혹도 샀다.

"일본은 그야말로 소탐대실이오. 손문이 됐건 단기서가 됐건, 원세개가 맺은 13개조 요구를 이행하려고 들까? 이행하지 않는다면 일본은 중국에 압박을 가할 거고, 중국은 더욱 반일 감정이 타오르겠지. 그 덕택에 대한은 대중 무역수출에서 이득을 봤지. 그렇다고 포기하자니 일본 국내 여론이 용인하지 않을 거고. 완전히 딜레마요. 열강, 특히 미국이 일본의 외교를 불신하게 된 것도 바람직하지."

청국은 한국이 다루기 까다로웠던 장훈과 복벽파가 몰락하고, 만주군은 손실을 입고 약화됐다.

"장훈은 의문의 여지 없는 청조의 충신이지만, 그만큼 대한의 입장에선 다루기가 까다로운 인물이었소. 강직하여 우리의 입김도 거의 닿지 않았고. 장훈은 대청국을 중국에 복벽하기 위해서, 중국과 분리된 만주국 구상도 부정했지. 청국 최고의 무력을 갖고 있던 장훈이 중국을 선제공격했다가 패배하고 몰락하였으니, 청은 이제 중국의 위협 때문에라도 더욱 대한에 의존할 수밖에 없소. 그게 실존하는 위협이든 아니든 간에 말이지."

러일전쟁, 신해혁명, 세계대전, 호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세계사적 전개는 대한제국의 만주 장악을 더욱 가깝게 했다.

이미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들로부터 남만주와 내몽골 동부 세력권을 인정받은 한국이었다.

한국의 만주 장악에 걸림돌이 될 중국은 자중지란에 빠졌고, 일본은 열강과 중국의 신뢰를 잃었으며, 청국 내부의 복벽-자주파도 몰락했다.

원세개의 몰락 이후 중화민국 대총통으로 복귀한 손문은 한국과 친밀했고, 장훈의 몰락 이후 청국의 최고 권력자가 된 숙친왕 산기와 군부 실세가 된 장작림은 한국과 더더욱 친밀했다.

북만주와 몽골에 세력권을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가 세계대전에 휘말려 아시아 문제에 신경을 못 쓰고 있고, 전쟁으로 한국과 더더욱 긴밀한 관계가 된 점을 감안하면, 만주 전역을 한국의 단독 세력권으로 둘 날이 멀지 않았다.

"이게 다 인간의 과욕 때문이오. 최고 권력을 넘어 황제까지 노렸을 원세개의 과욕, 복건도 모자라 중국을 보호국으로 만들려고 했던 가토의 과욕, 중국에 청조를 복벽하겠다는 장훈의 과욕. 결국, 과욕이 그들의 몰락을 이끌었지."

과욕을 부리지 않는 것이 장기적인 국익에 더 도움이 됨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개인적으로도 그들은 여전히 권좌에 남아 각국의 중책을 담당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대한에 반면교사가 아닐 수가 없소. 참으로 과욕은 금물이오."

이선은 만주 문제에 과욕을 부릴 생각이 없었다. 차근차근 만주로 잠식해 들어갔다가, 주변국과 열강의 지지를 받아, 명목상 주권국가이되 한국이 없으면 존립 자체가 불가능한 보호국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어차피 곧 윌슨이 됐건 누가 됐건, 세계대전의 결과로 민족자결주의가 득세하게 될 터인데. 심지어 프로이센 군국주의자들조차도 러시아의 피지배 민족을 상대로 독립을 약속하는 판이 아닌가. 구태여 병합과도 같은 제국주의 시대의 극단적인 방식으로 불만과 불신을 살 이유가 없지. 실질적으로 지배하면 그만이다. 과욕은 금물.’

대한제국은 1916년 현재, 동양에서 제일가는 전쟁의 수혜자였다.

어쩌면, 세계대전의 결과에 따라 세계에서 제일가는 전쟁의 수혜자가 될 수도 있었다.

이선의 시야는 이제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향했다.

- 21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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