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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혁명의 시대-531화 (530/812)

212화 제왕으로의 길

광무 20년(1916) 5월 31일, 황제의 49번째 탄일을 기념하는 건원절.

<大皇帝陛下 聖壽四十九年 御極二十年 慶祝乾元節(대황제폐하 성수사십구년 어극이십년 경축건원절)>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황성 곳곳에 휘날렸다.

동시에 <大朝鮮 開國紀元 五百二十五年(대조선 개국기원 오백이십오년)>, <大韓國 繼天紀元 二十年(대한국 계천기원 이십년)>이라고 적힌 현수막도 함께 휘날렸다.

요컨대 1916년을 맞이하여 이선의 49세 생일, 조선 개국 525년, 대한제국 선포 20년과 치세 20년을 동시에 기념하겠다는 의미였다.

"세계가 전화(戰火)에 빠진 지금, 대한은 태평성대를 누리고 호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로 대황제 폐하의 지극한 은덕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정부와 모든 국민은 우리 성상의 건원절을 맞이하여 하례(賀禮)하고자 합니다."

입헌개화당 정부는 광무 20년 건원절 칭경예식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려 했다.

당초 예정보다 늦게 작년 11월에, 교토황궁(京都御所)에서 거행된 일본 다이쇼 천황의 즉위식이 거창하게 이뤄짐에 자극을 받아서일 수도 있겠다.

허례허식을 꺼리는 다이쇼 본인은 즉위식 의식과 일정을 간소하게 하라 지시했지만 무시당했다. 일본 정부와 귀족원은 ‘전대미문’이라 불릴 정도로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 즉위식을 거행했다.

일본의 무리한 13개조 요구를 한국이 비판하면서 근래 한일관계가 악화되긴 했지만, 표면적으로 양국은 동맹국이었다. 황태자 이진, 순친왕 이척, 원훈 유길준, 총리 박영효 등이 즉위식 특사로 참석했다.

"허, 천황 즉위식이 과연 대단하긴 하더이다. 일본이 작정하고 돈을 쓴 것 같더군."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 300주년 기념행사에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그에 못지않았습니다."

"대한도 근래 국위가 크게 신장하고 있는데, 일본에 밀릴 이유가 없지 않겠소? 우리도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개최합시다."

"근데 딱히 즉위식이나 300주년 같이 내세울 명분이 없을 듯한데······."

"왜 없소? 올해는 마침 어극 이십 년이오. 건원절이든, 개국기원절이든, 계천기원절이든 뭐든 내세우면 됩니다."

"하긴 올해 5월에는 마침 총선이 있으니, 분위기를 띄우기에는 적절합니다."

즉위식 참석 이후, 박영효는 다가오는 광무 20년 건원절 행사를 성대하게 하자고 주장해서 관철했다.

칭경예식은 분명 황제와 황실의 권위를 빛내기 위함이 틀림없지만, 현 정부와 집권 여당에도 도움이 되는 이벤트였다.

호황과 축제 분위기 속에서 개화당은 총선에서 무난히 과반의석을 얻는 승리를 거뒀고, 서재필이 총리로 취임했다.

‘정말 번거롭게 하는군.’

정작 ‘모든 국민의 하례를 받는’ 당사자인 이선은, 별로 내키지 않았다.

매년 반복적으로 거행되는 건원절 기념행사를, 마침 세계대전을 명분으로 삼아 작년부터 간소화하였는데, 간소화 조치 1년 만에 정부가 다시 성대하게 기념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예식이 황실-정부-국민 간에 일체화된 환희의 기억을 부여한다지만, 군주로서 이런저런 예식을 진행해야 할 당사자인 이선으로선 슬슬 번거로워지고 있었다.

"우리의 연합국들이 전쟁으로 고통받는 작금의 현실에, 짐의 탄일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지는구려. 종전 이후로 미루는 게 어떻겠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대한의 국위를 빛내야 하옵니다. 중국에서 내란이 발생하고 서양 열강의 세력이 후퇴하고 있는 지금, 동양의 강국이 일본만 있는 게 아니라 대한도 있다는 걸 만방에 보여 주어야 하옵니다."

"모든 신민이 성상의 탄일과 어극 이십 년을 하례하길 희망하오니, 어찌 미룰 수 있겠사옵니까?"

"그럼 차라리 내년에 하면 어떻겠는가? 내년에는 마침 짐의 나이가 오십이 되고, 대한을 선포하고 만으로 이십 년이 된다. 기념하기에 좋지 않겠는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미 정부에서는 올해 칭경의례 예산을 책정하였사옵니다. 가납(嘉納)하여 주시옵소서."

내년으로 미뤘다가 없던 일로 하려는 이선의 고사 의사에도, 개화당 정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대외적으로 중국과 주변국에 대한제국의 위용을 뽐내겠다는 선전 의도, 일본에 밀리지 않겠다는 경쟁의식, 대내적으로도 국민의 단합을 불러일으킬 기회였다.

"좋소. 정 그렇다면, 대한국도 공식적으로 전쟁 중임을 감안하여 허례허식은 제하고, 군사적인 목적에 집중하도록 합시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결국 이선은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대한제국의 군사력을 주변국들에 보여 주어야겠다는 생각은 이선에게도 있었다.

광무 20년 건원절.

황성에서는 대규모 열병식이 거행되었다.

"독립전쟁과 북벌전쟁의 영웅들! 산동 전역의 공훈자들이여! 육·해군 대원수인 짐은 그대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대원수 폐하의 명을 받들어, 충용무쌍한 대한국군은 필승의 각오를 맹세하는 바입니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올해 열병식의 특이사항은 육해공이 총동원되었다는 점이었다.

육군 근위사단이 황성을 열병하는 건 매년 있는 일이었으나, 해군 군함들이 인천 앞바다에서 해상 관함식을 하고, 육군항공대 비행기들이 황성의 하늘을 누비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명분은 ‘전쟁 중인 자국의 군 현황을 검열’하는 것이지만, 실상은 일본과 중국에 보일 목적이었다.

‘이제 동양의 군사강국은 대한이다. 일본은 괜히 무리수 두지 말고, 중국은 맞설 생각을 하지 말라.’

건원절 당시는 아직 호국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나기 전이었고, 만주군이 북양군에 패배하여 밀려날 시기였다.

동원령 한 번 없이, 중국 군벌들에게 ‘만주를 건드리면 한국의 군사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라는 무언의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저 정예 장병들이 부황의 명 한마디에 움직인다. 암, 당연하지! 불과 35년 전에는 이 나라에 군대라곤 존재하지도 않았지.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궁궐을 점령하는 나라 아니었나. 그걸 나라라고 할 수나 있나? 그런 나라 같지도 않은 나라에서, 동양을 넘어 서양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를 만드셨다. 참으로 부황은 위대하지 않은가!’

부황의 곁에 서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던 이진은 속으로 전율을 느꼈다.

공식적인 황태자 이진의 정무 참관은 광무 20년 건원절을 기해서였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몇 달 먼저 시작되었다.

원수부 관제에 따라 성년이 된 이진은 황태자로서 명목상의 원수 계급을 부여받았고, 원수부 회의에 참관할 수 있었다.

물론 이진에게는 결정권도 발언권도 없었지만, 제복을 입고 부황과 같은 자리에 앉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웠다.

이진은 로마노프 왕조 300주년 기념행사, 다이쇼 천황의 즉위식에도 모두 참석하여 그 화려함과 장중함에 감탄한 바 있었다. 비록 대한제국의 칭경예식이 그처럼 화려하진 못해도, 차르와 천황조차 감히 부황과 비견될 수 없었다.

‘천황은 살아 있는 신으로 숭배받지만, 정작 아무런 결정권도 없는 상징적 존재 아닌가. 차르는 신의 대리인이자 전제군주이지만, 패전을 거듭하고 있고. 분명 좋은 사람들이지만 좋은 군주는 아니야. 하지만 부황은 국가와 신민에게 언제나 승리와 번영을 가져다주셨다. 외국의 제왕 중에서 누가 감히 부황과 비견될 수 있겠는가? 표트르 대제, 프리드리히 대왕, 나폴레옹이 아니고서야 비교가 불가능하지.’

이진의 ‘부친숭배’는 절정에 달해 있었다.

정작 당사자인 이선이 들으면 펄쩍 뛰며 손사래를 칠 일이었지만, 부자(父子)간에 감정표현이 극히 드물었으므로 이선은 알지 못했다.

이선은 차남 정친왕 이안이나 삼남 예친왕 이은에게는 너그럽고 다정했다.

황후 아영도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이었지만, 소생 이남 이녀 중에서 유독 이진에게만 엄격했다.

이진은 장남이자 황태자였고, 미래의 군주였다. 미래의 군주가 될 자식과 평범한 황족으로 자랄 자식들이 같을 수가 없었다.

장남에게는 형제자매들과는 다른 특별한 의무가 주어졌고, 이진은 의무를 마다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후계자로서 엄격한 교육을 받은 이진에게는 특별한 자의식이 생겼다.

‘나는 미래의 황제다. 위대한 부황을 계승하여 대한을 빛내고 번영시킬 의무가 있다.’

이진은 미래의 군주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부황이 정한 커리큘럼을 따라갔다.

나이 스물, 마침내 성년이 되어 이진은 정무에 참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부황이 친히 제왕으로의 길을 알려 주는 기회였다.

"태자의 나이가 어느덧 스물이로구나. 짐도 너만 한 시절이 있었지. 그런데 어느덧 내년이면 지천명이 되는구나. 세월이 무상하구나."

1주일간의 건원절 칭경예식이 모두 끝난 후, 이선은 경운궁 석조전에서 이진과 단둘이 술자리를 가졌다.

황제 이선의 나이 어느덧 마흔아홉, 조선의 군주로서 적지 않은 나이였다.

"황공하오나 부황께서는 이리도 강건하시니, 내년이면 지천명으로 보이지 않으십니다."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지, 나이는 속일 수가 없구나."

조선 군주들의 평균 수명은 40대 후반이었고, 이선에게는 법적인 고조부이자 모범 중의 한 사람인 정조 선황제는 과도한 격무와 스트레스 끝에 49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조선 군주 중에 이선과 가장 비슷한 스타일의 군주를 꼽으라면 정조였다.

그 어떤 신하들보다 박학다식하여 만기친람(萬機親覽)하였고, 다재다능하여 다방면에 업적을 남겼다.

정조가 조선 후기의 군주로서는 드물게도 뛰어난 백발백중의 활 솜씨를 지니고 무예를 강조했듯이, 이선도 직접 전장에 나가 군을 지휘하고 여러 근대 스포츠를 체험하며 한국에 도입하는 역할을 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음주와 끽연으로 푸는 것도 비슷했다. 정조는 과로의 스트레스를 술과 담배로 푸는 걸 즐겼고, 이선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선은 30대 중반에 한 번 쓰러진 이후, 건강을 위하여 과로를 줄이고 담배도 끊었다. 하지만 술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네가 성년이 되어 부자가 함께 술을 마실 수 있으니 좋구나. 자, 받거라."

"황공하옵니다, 폐하."

이선은 직접 아들의 술잔에 스카치위스키를 가득 채워 주었다.

조선에서는 관례적으로 16세 정도가 되면 성인으로 인정받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지만, 대한제국의 새로운 민법은 성인을 20세 이상으로 규정했다.

이선도 이진이 스무 살이 된 다음에야 술을 함께했으니, 비로소 부자간에 속을 터놓고 이야기할 자리가 마련된 것이었다.

"술맛이 어떠하냐?"

"좋사옵니다, 폐하."

말은 그렇게 해도, 고도수의 알코올에 익숙하지 않은 이진의 표정은 저도 모르게 찌푸려졌다.

"솔직히 말하거라. 이런 씁쓸하고 독한 걸 왜 마시냐고 생각이 들지는 않더냐?"

"아, 아니옵니다."

속내를 들킨 이진의 얼굴이 알코올 때문인지 금방 붉게 달아올랐다. 이선은 껄껄 웃었다.

"하하,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술을 마시면, 세상 시름을 잊고 잠시나마 즐거운 기분에 빠지게 해 주거든."

"시름이라 하오시면······."

"아, 별건 아니다. 목과 어깨의 통증은 갈수록 심해지는구나. 사무직으로서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마는."

다행히도 중병은 없었지만, 자잘한 통증들이 있었다. 근래 이선은 잦은 근육통에 힘겨워했다. 사무직에게 발현되는 통증, 수십 년에 걸쳐 누적된 업무의 일환이었다. 나이가 먹어 감에 따라 운동으로도 쉽게 극복되지 않았다.

"이는 과도한 업무로부터 비롯된 통증일 것입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업무를 조금 줄이심이······."

"그래, 지금까지는 나 자신을 옭아매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껏 마음이 여유롭구나. 국가는 안정되었고, 민의를 대표하는 정부도 확립되었다. 이제 후계자도 장성하였으니, 마음이 편하다. 예전처럼 과로에 시달릴 일은 없을 것 같다."

이선은 잠시 눈을 감고 옛 기억에 잠겼다.

"나를 힘들게 한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36년 전 경진년, 내가 이 나라를 떠났을 때, 그때는 희망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망국의 운명에 빠질 게 빤히 보였지. 나는 나라를 되살리기 위해 비상한 수단을 쓰기로 결심했다. 청국과 러시아에서 힘을 모으고, 마침내 다시 돌아와 동지들을 규합해 권력을 잡고 개혁을 시작했지."

이진은 부황의 업적에 대해 익히 배워 왔으나, 그걸 이선의 입으로 들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경장 이후 30여 년, 무수한 노력 끝에 대한은 과거의 조선과 다른 나라가 되었다. 망국의 운명을 피하고, 열강과 당당히 전쟁과 외교를 논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지."

"실로 위대하신 부황의 업적입니다. 부황이 아니셨다면, 대체 누가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이진은 술기운을 빌려 속내를 말했다. 그가 부황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정녕 그렇게 생각하느냐?"

"예. 소자는 부황이 아니셨다면,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할 업적이라고 생각하옵니다."

이선은 여전히 미소를 유지하면서 말했다.

"네 말은 고맙지만 그렇지 않다. 비유하자면 나는 대한제국이라는 이 거대한 배의 선장이다. 분명히 선장으로서 내가 방향을 잡았다. 항로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해도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암초는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 하지만 기관을 운행하고, 배가 항해하는 건 모두의 몫이었다. 정부는 항해사였고, 국민 모두가 선원이었다. 그들이 노력하여 합심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오늘날의 번영이 있겠는가?"

이선은 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국가를 배에 비유했다.

"하오나 선장이 없었더라면, 어찌 그 배가 제대로 움직였겠습니까?"

"물론 그렇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유능한 항해사와 헌신적인 선원들이 없었더라면, 선장이 어찌 홀로 배를 움직일 수 있겠느냐?"

이선은 보다 직접적인 예시를 들었다.

"너는 러시아에 가 봤으니 알겠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내게 있어 형제나 다름없고, 러시아는 대한에게 있어 소중한 우방이다."

"예, 러시아 황제 폐하께옵서도 소자를 마치 조카처럼 친절하게 대해 주셨사옵니다."

니콜라이는 이진을 조카처럼 대했고, 이진도 니콜라이에게 좋은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래, 니콜라이의 훌륭한 인격은 본받을 만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군주로서의 그는 본받을 사람이 되지 못한다."

이선은 전에 없이 단호하고 냉정한 어조로 니콜라이를 평했다.

"러시아의 국가운영, 전쟁, 군사반란, 시위, 혁명. 1906년 혁명은 차르의 통치에 따라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차르는 언제나 최악의 판단만 내렸지. 나는 그의 친우로서 할 수 있는 조언을 최대한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건 차르가 무능하다기보다는, 고집스러운 신념 때문이다.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신이 부여했다고 믿는 전제군주제를 끝까지 고수해야겠다는 신념이 차르를 위태로운 지경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제왕으로서 차르 니콜라이 2세, 카이저 빌헬름 2세가 이진의 반면교사가 되길 바랐다.

"대전쟁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전 국민이 동원된 전쟁은 필연적으로 사회변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앞으로 길어야 3년 이내에, 세계에 대변혁이 일어난다. 여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살아남는 정부만이 국체를 지켜 낼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세계사의 전개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보고 체험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르면 올해부터, 세계는 크게 뒤흔들 것이다.

역사의 변화로 인한 대변혁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 21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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