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533화 (532/812)

214화 대공세

1916년, 연합국은 독일이 동부전선에서 대공세를 벌이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 증거로, 여름으로 예정된 서부전선의 공세를 담당할 프랑스는 오히려 러시아에 파병을 제안할 정도였다.

"귀국의 병력 30만을 프랑스로 파병해 주십시오. 병력만 보내 주면, 군수품은 프랑스가 모두 부담하겠습니다."

러시아의 최대 강점은 교전국 최대의 인적자원이고, 약점은 부족한 군수품이었다.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로 인한 병력 열세를 체감하고 있는 프랑스는 러시아에 병력을 빌려달라고 했다.

스타프카(러시아 최고사령부)는 1915년의 ‘대퇴각’으로 제 코가 석 자인 상황에서 대군을 프랑스에 파병할 생각이 없었지만, 귀가 얇은 니콜라이 2세가 프랑스 대사의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다.

"프랑스는 우리의 소중한 우방이자 연합국이다. 동맹의 위급을 어찌 지켜만 보겠는가? 파병하도록 하라."

차르에게는 실제 전황이나 병력의 희생보다는 연합국에 보일 성의와 체면이 더 중요했고, 그렇게 파병이 결정되었다.

"폐하의 뜻이 확고하시니 파병은 해야겠지만, 보낼 병력은 최소화합시다."

니콜라이 2세를 명목상의 최고사령관으로 모시고 있는 스타프카는, 이제 차르를 다룰 줄 알았다. 적당히 체면만 세울 수 있다면 차르는 만족할 터였다.

‘러시아 프랑스 원정군단(Corps Expeditionnaire Russe en France)’이 결성되었다. 병력 규모는 4개 여단(8개 연대)이었다. 프랑스가 요구한 규모보다는 훨씬 적었지만, 체면치레는 할 수 있었다.

1916년 3월, 가장 먼저 편성된 제1특수보병여단 9천여 명은 프랑스를 향해 머나먼 장도(長途)에 나섰다.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을 잇는 육로와 해로가 모두 막혔으므로,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루트는 극동 방면이었다.

모스크바를 출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만주까지 이동, 대련에서 프랑스 해군이 제공하는 수송선을 타고 인도양과 지중해를 항해하여 마르세유까지 가는 머나먼 여정이었다. 지구 반 바퀴, 소요시간만 70일이 필요한 대장정이었다.

러시아 원정군단이 남만주에 진입하자, 이선은 직접 요동으로 향했다. 남만주는 청국령이지만 러시아와 합의한 대한제국의 세력권이었으므로, 일종의 주인 행세를 하기 위함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장군. 원로에 고생이 많습니다. 장군과 장병들의 무훈을 바랍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황제 폐하."

이선과 군무대신 박유굉, 극동총독 스톨리핀과 원정군단 제1여단장 니콜라이 로흐비츠키(Nikolai A. Lokhvitsky) 소장은 대련에서 회견했다.

대련(다롄, 달니이)의 경우, 러시아가 청국으로부터 조차하여 개발한 항구였다. 러일전쟁의 결과로 청국에 반환하기는 했지만, 신해혁명과 청국의 만주 천도 이후 러시아가 다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련-여순 전투에서 수많은 병력을 잃은 일본은, 아무리 러시아가 적이 아닌 연합국의 일원이 되었다 할지라도 대련을 다시 차지하는 건 심정적으로 용인할 수가 없었다.

"그럼 러시아도 일본도 아닌 대한이 차지하면 되겠네."

한국 역시 남만주를 독점적인 세력권으로 여겼으므로, 대련과 여순을 차지할 궁리를 했다.

마침 1914년 세계대전 발발로 산동 전역이 시작되자, 산동의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요동반도 대련의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한국은 청국과 협정을 맺고, 대련과 여순을 연합국이 군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러시아와 일본 모두 이 조치에 만족했다.

"남포-연대(옌타이)-대련을 잇는 삼각형으로 서해와 발해만의 제해권을 확실히 장악하고, 유사시 언제든지 북경을 타격할 수 있도록 한다."

한국군은 산동반도 연대와 요동반도 대련을 반드시 확보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로 판단했다. 아직은 연합국 공용으로 사용하는 군항이지만, 전후에 한국이 독점적으로 차지할 계획이었다.

"서부전선의 전황이 심각한 소모전이라던데 걱정입니다."

"그렇습니다. 연합국과 독일 모두 참호전을 거듭하고 있지요."

실제 역사에서는 서부전선에서 이미 베르됭 전투가 시작되었지만, 변화한 역사에서는 산발적인 소모전만 벌어지고 있었다.

"송구한 말입니다만, 1개 여단이 투입된다고 해서 서부전선의 전황이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연합국을 위해 헌신한다는 정치적 상징성은 충분하겠지요."

병력 규모와 소요시간에서 알 수 있듯이 전략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파병이었지만, 연합국 간의 연대가 굳건하다는 걸 보여 주는 정치적 의미의 파병이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귀국도 러시아에 병력을 파병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양국의 동맹과 전쟁 승리를 위해 헌신한다는 상징성이 충분할 겁니다."

"대한제국도 이미 항공대를 전선에 파병했지요."

"항공대 파병도 훌륭하지만, 지상군 1개 사단 이상은 파병해야 상징적인 의미가 확보될 겁니다."

스톨리핀의 제안에 이선은 잠시 생각을 했다.

스톨리핀과 이선 모두, 한국군 사단이 아니라 군단을 파병해도 전략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러시아가 프랑스에 파병하듯이, 정치적 의미를 담은 파병이었다.

스톨리핀은 러시아 국내의 사기가 계속 떨어지는 게 걱정이었다. 1915년의 대퇴각 이후, 러시아에 염전(厭戰) 정서가 확대되었다. 러시아인들, 특히 소수민족들은 더욱 그러했는데, 이들은 왜 막대한 희생을 치러 가며 독일과 싸워야 하는지 이해를 못 했다. 전선에서 탈영이 속출하고, 후방에서도 파업과 반란의 기미가 보였다.

러시아는 1916년에 자국의 무슬림에 대한 징집유예를 철폐하고 징병을 실시했다. 전선 투입이 아니라 전시근로역으로 쓰겠다고 발표했지만, 그동안 2등신민 취급받던 무슬림들의 반발은 엄청났다. 무슬림이 다수인 러시아령 투르키스탄에서는 반란이 싹트고 있었다.

‘한국의 참전이 이뤄지면, 극동의 동양인들조차도 러시아를 위해 함께 싸운다는 선전을 할 수 있다. 떨어진 사기를 조금이라도 끌어올릴 수 있겠지. 참전을 이끌어 낸 공로로 중앙에 복귀하는 기반이 될 수 있고.’

스톨리핀은 중앙 정계로 복귀하길 염원했다. 극동 총독은 러시아령 극동의 왕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막강한 권한이 주어졌지만, 총리까지 지낸 그로선 완전히 좌천이었다.

더욱이 조국이 위기에 처하니, 러시아 애국자이자 로마노프 왕조의 충신인 스톨리핀의 의무심을 자극했다. 한가롭게 극동 관리나 할 때가 아니었다.

"스톨리핀만은 절대 안 돼! 그자로 인해 손해 본 지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나?"

문제는 총사령부에 나간 차르를 대신해 섭정하고 있는 황후 알렉산드라가 스톨리핀의 복귀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황실과 대귀족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스톨리핀을 혐오했다. 기득권을 조금이라도 침해받기 원치 않는 대귀족들은, 농지개혁을 실시한 스톨리핀을 용납할 수 없었다.

"스톨리핀 시절에는 최소한 행정력이란 게 있었다. 대체 지금 정부는 하는 게 뭐냐?"

그만큼 스톨리핀의 복귀를 바라는 이들도 많았다. 실각 당시에는 모든 정파에 거부당한 스톨리핀이지만, 구관이 명관이라고 러시아 정부의 지리멸렬한 행태에 강력한 지도력을 그리워하는 정파가 갈수록 늘어났다. 스톨리핀에겐 중앙 복귀의 명분이 필요했고, 한국의 병력 투입은 성과가 될 수도 있었다.

‘동부전선에서 무의미하게 갈려 나가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지상군 파병은 고려해 볼 만하다. 전후에 열강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려면, 군수품 판매보다는 지상군 파병이 훨씬 가시적(可視的)이지.’

스톨리핀의 제안이 아니더라도, 이선도 지상군 파병을 고려하고 있었다.

1916년 현재, 대한제국이 연합국 군수품 보급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의외로 높았다. 특히 텅스텐 시장에서 한국의 위치는 중요했다.

‘유럽의 전쟁에 병력을 희생시키는 건 무의미하지만, 실제 역사의 일본처럼 얌체같이 이득만 노려서는 밉보일 가능성이 크지.’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파병은 필요했다. 전후 질서를 고려하면, 한국도 전선에 파병했다는 상징성과 명분을 부여해야 했다.

‘청국령 만주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를 약속받는 조건으로, 파병은 해 볼 만하다. 근데 겨우 사단이나 군단 파병 정도로 러시아가 북만주를 내주진 않겠지. 스톨리핀에겐 미안하지만, 러시아가 좀 더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해. 극동 총독이 아닌 러시아 정부가 정식으로 파병을 요청해야지.’

이선은 파병을 하더라도, 최대한 몸값을 올린 후에 파병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총독의 제안은 우리 정부에서 깊이 고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단, 귀국 정부의 공식적인 제안이 있어야 할 겁니다."

"물론입니다. 정식 파병 요청 절차를 거쳐야지요."

이선과 스톨리핀은 한국군 파병과 러시아의 운명에 대한 동상이몽을 하면서 악수를 했다.

그런데, 이선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러시아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 * *

1916년 3월 하순, 독일군은 서부전선에서 공세를 개시했다. 연합군은 독일군이 1916년에 서부전선에 주력을 투입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했다.

독일군은 프랑스군의 엄정한 방어 태세에 놀랐다는 듯, 시간이 갈수록 공세의 강도가 점차 떨어졌다.

"독일군의 공세가 지지부진한 것으로 보아, 예비대가 떨어졌다는 총사령부의 추측이 맞는 것 같다. 하계 대공세로 독일군을 점령지에서 몰아낸다."

영불 연합군의 대공세는 8월 1일로 결정됐다. 그때까지, 서부전선에서는 일진일퇴의 참호전이 계속되었다.

"적들이 기만작전에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병력을 동부로 이동시켜라."

독일군의 춘계공세는 기만작전이었다. 서부전선에 공세를 가하는 척하면서, 숙련된 병력을 빼돌려 동부로 보냈다. 서부전선에는 신병들이 배치되었고, 곧 방어로 전환했다.

1916년 5월 5일(율리우스력 4월 22일).

러시아의 봄은 해빙기가 오면 ‘라스푸티차(Распутица)’가 온다. 얼어붙은 눈이 녹으면서 거대한 진흙탕이 되어 도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즉, 이 기간에는 전투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

1916년에는 예상외로 예년보다 봄이 일찍 오면서 3월 중순부터 라스푸티차가 시작됐다. 한 달가량은 도로가 마비되었고, 양군은 타의로 인한 휴전 상태였다.

5월이 되자, 도로는 군사적으로 사용이 가능해졌다. 경계심이 극도로 높아졌을 때, 러시아 북부전선군 사령부에 독일군의 공세가 시작되었다는 보고가 쏟아졌다.

"독일군이 드비나(Dvina)강을 넘어 라트비아 방향으로 진격을 개시했습니다!"

"뭐라고? 병력 규모는?"

"약 20개에서 30개 사단 정도로 추정됩니다!"

"그래? 그럼 적의 주공은 역시 리가와 리보니아를 목표로 하는 건가?"

북부전선군 사령관 쿠로파트킨 대장은 러일전쟁의 ‘영웅’이었다. 사실 만주 전역에서 쿠로파트킨의 지휘가 답답했다는 것은 알 사람은 아는 이야기였지만, 결과적으로 지상전에서 승리했으므로 만주군 사령관인 그가 영웅이 되었다.

"역시 적의 주공은 리가와 레발(탈린)을 넘어 페테르부르크로 진격하려는 게 틀림없다. 스타프카에 보고하고 반격을 준비하라!"

"예!"

스타프카는 독일군이 공세를 계획한다면, 동프로이센과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잇는 가장 가까운 경로, 북부전선군이 담당하는 발트지역으로 공세가 집중되리라고 예상했다.

1915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점령한 독일군은, 1916년 5월 리가와 리보니아(라트비아 북부)를 향해 공세를 개시했다.

여기까지는 스타프카의 예상대로였다.

"적의 공세를 저지하고, 북부전선군과 서부전선군이 역공을 감행해 적을 포위한 후 빌나(빌뉴스)로 진격한다."

애당초 러시아군의 공세는 영불 연합군의 서부전선 공세에 맞춰 8월에 예정되었으나, 스타프카는 급격히 계획을 수정했다.

"적군이 정말로 30개 사단이라면, 주공이 맞는 건가? 독일군이 대공세를 벌이는 데 겨우 30개 사단만 투입한단 말인가? 혹여 기만작전이 아닌가?"

서부전선군 사령관 브루실로프 대장은 북부전선군의 보고와 스타프카의 계획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실제 역사대로라면 바로 이 무렵에 남서전선군 사령관으로 승진해야 했지만, 변화한 역사에서는 러일전쟁에 참전하여 공훈을 세우는 덕에 브루실로프의 주가가 역사보다 빠르게 올라갔다. 그 바람에 브루실로프는 ‘대퇴각’ 이후 독일군의 주력을 담당하는 중요한 지위인 서부전선군 사령관을 맡게 되었다.

"설령 독일군의 공세를 격퇴하더라도, 굳이 강고한 독일군의 방어선에 무익한 공격을 가하느니, 차라리 만만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공격해 독일군의 전력을 남부로 돌리게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브루실로프는 북부전선에서의 역공계획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대신 남부전선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공격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북부전선군이 독일군을 묶어 두는 동안, 서부전선군은 남서전선군과 함께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타격합시다."

"무슨 소리? 주적은 독일이다. 서부전선군은 북부전선군과 함께 독일군을 격파하고 빌나로 진격하라!"

명목상의 최고사령관인 차르를 대신해 전군을 지휘하고 있는 참모총장 알렉세예프 대장은 독일군에 대한 공세를 거듭 주장했다.

"알렉세이 알렉세예비치(브루실로프), 무슨 의심이 그리 많나? 적의 주력은 북부전선이 틀림없네. 독일은 리가와 레발을 점령하고 페테르부르크로 진격하려는 거야. 쓸데없는 의심 그만하고 당장 병력을 보내게!"

68세의 노장 쿠로파트킨은 옛 부하였던 브루실로프를 압박했다. 자신이 만주군 총사령관일 때, 브루실로프는 겨우 일개 기병사단장에 불과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은 자신과 동급인 전선군 사령관이라는 게 영 고까웠다.

"적의 공세가 격퇴되었습니다!"

"좋다! 역시 독일군의 예비대가 떨어졌다는 프랑스군의 추정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역공을 가해 빌나를 해방시킨다!"

5월 한 달 동안, 러시아군은 독일군의 북부 공세를 저지했다. 오래간만에 독일군을 상대로 거둔 승리에 차르는 크게 기뻐했고, 역공 제안을 승인했다.

1916년 6월 4일(율리우스력 5월 22일) 일요일.

남부전선, 우크라이나 갈리치아.

"심판 작전을 개시한다! 전군, 키예프로 진격하라!"

사령관이 카이저의 명령문을 낭독하자, 장교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며 외쳤다.

"Jawohl, mein Kaiser(명을 받듭니다, 폐하)!!"

"Gott mit uns!(신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과 함께, 독일군의 ‘심판’이 시작되었다.

- 215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