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4월 혁명
이번에도 발단은 식량 문제였다.
주요 대도시에서 배급제가 실시되기는 했지만, 러시아의 관료제와 철도 운송능력은, 효율적으로 전시배급을 실시하고 있는 독일과 비교될 수가 없었다.
4월에 비축한 식량이 떨어지고 춘궁기(春窮期)가 닥치자 수도의 식량부족이 현실로 다가왔다. 정부는 배급량을 줄였고, 그마저도 긴 줄을 서야 간신히 받을 수가 있었다.
"이놈의 줄, 지긋지긋해! 대체 언제까지 서야 하는 거야?"
"새벽부터 나와서 줄을 서도 겨우 빵 몇 조각이나 받고 있으니."
"제기랄, 대체 정부는 뭘 하고 있는 거야?"
페트로그라드 주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광범위하게 번져 나갔다.
하지만 정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식량 문제는 개전 이후 늘 있었고, 이번에도 별일 없이 넘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럼 짐은 스타프카로 돌아가겠소. 수도를 잘 부탁하오."
4월 28일(율리우스력 15일), 니콜라이 2세는 모길료프의 최고사령부로 향했다.
차르는 2월 선언으로 충분히 양보를 했다고 판단했고, 하계공세를 앞두고 최고사령관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겠다고 결심했다. 5월에 서부전선에서 프랑스군의 대대적인 공세가 예정되어 있었고, 러시아군도 7월에 서우크라이나 탈환을 위한 작전을 개시할 계획이었다.
알렉산드라는 섭정에서 물러났으므로, 내각이 차르를 대신해 통치에 나섰다. 니콜라이는 이만하면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부에 의한 통치’가 실현되었다고 생각했다.
"차르가 모길료프로 떠났다. 계획을 다시 재개할 때가 왔다."
차르가 페트로그라드를 떠나자, 음모자들이 미뤄 뒀던 계획을 즉각 실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놀랍게도 쿠데타를 주도하는 이들은 황실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이들이었다. 이른바 ‘대공들의 음모’라고 불릴 정도로 황족들이 다수 참여했다.
차르의 사촌이자 왕위계승서열 3위인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 역시 차르의 사촌이자 왕위계승서열 5위인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 차르의 조카사위이자 엄청난 영지를 보유한 대부호 펠릭스 유수포프(Felix F. Yusupov) 공작이 음모의 중심 역할을 했다.
결혼 문제로 차르의 미움을 사 추방당한 적이 있는 키릴 대공과 달리, 27세의 드미트리 대공이나 30세의 유수포프 공작 모두 차르 일가와 가까운 사이이자 사교계의 총아들이었다. 이들이 개혁적인 인사냐고 하면 전혀 아니었고, 아주 강경한 왕당파들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쿠데타를 모의하는 이유는, 2월 선언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차르의 통치력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다.
"독일 여자가 황후로 있는 이상 국민은 황실을 신뢰하지 않는다."
"현재의 무능하고 유약한 정권으로는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강력한 지도력을 세워야 한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군사정권을 세운다."
음모자들의 핵심에는 두마의원이자 극우조직 ‘러시아 인민연합(검은 100인단)’의 창시자인 블라디미르 푸리슈케비치(Vladimir Purishkevich)가 있었다. 이 극렬 대러시아주의자는 군사독재를 희망했다.
10월당의 지도자이자 군수산업의 핵심인 전시산업위원회의 의장인 알렉산드르 구치코프(Alexandr I. Guchkov)와 두마 의장 로잔코도 가담했다.
음모자들은 미하일 대공을 황제로, 전임 총사령관이자 현 캅카스 전선군 사령관인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을 총사령관이자 섭정으로 추대할 계획을 세웠다.
"며칠 뒤면 노동절이다. 분명히 노동자들은 파업과 시위에 나설 것이다. 수도가 일시적으로 혼란에 빠지면……."
"시위 진압을 명분으로 군대를 움직여 정부를 장악한다."
전임 남서부전선군 사령관이자 현 페트로그라드 군관구 사령관인 니콜라이 이바노프 대장이 쿠데타 계획에 동참함에 따라, 음모자들의 계획은 현실성을 띠기 시작했다.
"영국이 우리 계획을 지원한다. 서방 연합국의 지지를 받으려면 헌정 개혁을 약속해야 한다."
음모자들은 영국 비밀정보부(Secret Intelligence Service, SIS) 러시아 지부와 접촉했다. SIS는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가 러시아의 전쟁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했고, 쿠데타 성공 후 효율적인 전시 정부를 세우도록 지원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군대와 영국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 음모자들은, 황족들의 동의를 얻고자 했다.
"쿠데타라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모든 군인은 차르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전선의 병사들이 폭력적인 쿠데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게."
정작 총사령관이자 섭정으로 추대될 대상인 니콜라이 대공이 쿠데타 계획을 듣고 거절했다. 군인들의 신망을 얻고 있는 니콜라이 대공의 거절에 음모자들은 당황했다.
"현재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기는 하지만, 나는 형님을 대신해서 차르가 될 생각이 추호도 없소."
차르로 추대될 예정인 미하일 대공조차도 부정적인 의사를 밝혔다. 계획은 완전히 틀어지고 있었다.
"그럼 차기 계승 순위인 키릴 대공께서……."
"사양하겠소. 내가 전면에 나서면 명분이 뭐가 되겠소? 우리가 하려는 건 구국의 결단인데, 황위를 차지하려고 음모를 꾸민 것밖에 더 되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이미 계획을 물리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성공한 다음에 추대하면 누가 거절하겠소?"
"주사위는 던져졌소! 우리가 러시아를 구할 겁니다!"
음모자들은 우왕좌왕했지만, 결국 거사를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노동절 시위가 발생하면, 시위 진압을 명분으로 이바노프 장군이 군대를 움직여 정부를 타도한다."
"모길료프의 황제가 페트로그라드로 복귀를 시도하면, 북부전선군 사령관 루츠키(N.V.Ruzsky) 대장이 황제의 열차를 억류한다."
"황제는 퇴위하여 차르스코예 셀로로 물러나고, 황후는 체포하여 영국으로 추방하거나 수도원에 감금한다."
"미하일 대공을 새 황제로, 니콜라이 대공을 총사령관이자 섭정으로 선포한다."
"두마 의장 로잔코를 총리로 하는 내각을 구성한다."
"쿠데타 성공 후 전쟁 지속과 헌정 개혁을 천명하고, 연합국의 지지를 얻는다."
음모자들은 쿠데타 성공을 자신하며, 노동절을 기다렸다.
* * *
1917년 5월 1일(율리우스력 4월 18일), 페트로그라드.
노동계급의 최대 명절인 메이데이 노동절을 맞이하여, 총파업이 선포되었다.
러시아제국의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전쟁 발발과 함께 ‘독일적’인 이름을 버리고, ‘러시아적’인 페트로그라드로 변경됐다.
이 북방의 도시에도 봄은 찾아왔고, 따뜻한 봄 날씨는 대규모 집회를 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페트로그라드 최대의 중공업 공장인 푸틸로프 공장의 파업을 시작으로, 비보르그 공장지구에 소속된 남녀 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군중은 도심을 향해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기 시작했다.
"빵을 달라!"
"우리도 인간이다! 인간다운 대우를 해 달라!"
"임금을 인상하라!"
"부당해고 금지하라!"
"8시간 노동 실시하라!"
"노동조합 인정하라!"
15만이 넘는 노동자들이 파업에 동참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노동자들과 경찰들이 충돌했다.
다음 날 아침, 20만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다시 도심을 향해 행진했다. 노동자들은 어제와 달리 망치와 스패너 따위로 무장하고 있었다. 밤사이에 증강한 경찰과 싸우기 위함이었다.
노동자뿐만 아니라 차르 정부의 무능에 지친 일부 중산층들도 시위대에 합류했다. 수십만 군중에 놀란 경찰은 맞서 싸울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경찰은 이미 치안 수호가 자신들의 손을 넘어섰다고 판단했고, 도시 질서에 대한 책임은 군대로 넘어갔다.
"총파업!"
"차르를 타도하라!"
"전쟁을 끝장내자!"
즉각적인 탄압조치가 나오지 않자, 군중은 더욱 대담해졌다. 3일, 총파업이 선언되었다. 이제 시위는 더욱 정치적인 요구를 띄기 시작했다. 붉은 깃발이 도처에서 휘날렸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경제 문제였다. 시위는 자연발생적이었고, 정부의 의심과 달리 사회주의 정당이 시위를 주도하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이 시점에서도, 정부가 시위자들과 충돌을 피하고 양보를 했다면 상황을 억제할 수 있었다. 식량만 공급되어 배급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시위의 동력은 잃고 말 것이었다.
"차르 타도와 전쟁 종료를 외치는 저들의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자들은 평범한 노동자가 아니라, 독일의 선동을 받은 반역자들입니다. 단호히 진압해야 합니다!"
하지만 군부는 강경 진압을 선택했다. 페트로그라드 군관구 사령관 이바노프 대장이 치안의 전권을 맡았다. 시위 진압을 명분으로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었으므로, 음모자들에게는 시위의 격화가 필요했다.
결정적인 악수(惡手)였다.
5월 4일 금요일 아침, 수도를 향해 군대가 모여들었다. 군인과 경찰이 도처에 배치됐다.
정오 무렵, 노동자의 거대한 행렬이 집결해 다시 한번 도심으로 행진했다. 행렬이 상업 중심지이자 정부 청사가 밀집해있는 넵스키 대로에 도착한 순간, 발포 명령이 떨어졌다.
"부대, 거총!"
"발포하라!"
타다다다당!
"으아악!"
"저놈들이 총을 쏜다!"
"죽일 놈들!"
"도망쳐! 일단 피해!"
순식간에 50여 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시위대는 군인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퇴각했다.
이는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피의 일요일’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다. 시위대는 단순한 파업이 아니라 생사를 건 투쟁에 돌입했다는 걸 깨달았고, 동지들의 죽음으로 기가 꺾이기는커녕 더욱 대담해졌다.
"민중을 향해 총을 쏘다니, 이래도 되는 건가?"
"우린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잖아."
군인들은 차르에 대한 충성 맹세와 민중에 대한 도덕적 의무라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1906년에는 군인들이 전자를 택해 정권을 지켜 냈다. 만약 후자를 따른다면, 시위는 혁명이 되고 말 것이다.
페트로그라드를 지키는 부대들은 ‘근위연대’라는 이름처럼 본래 철저한 차르 충성파들이었으나, 이들은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 소모된 상태였다. 현재 근위연대를 구성하는 병사들은 대부분 개전 이후에 새로 징집된 농민 출신 병사들이었다. 이들이 차르에게 가졌던 소박한 충성심도, 페트로그라드에서 전해 듣는 온갖 소문과 정부의 난맥상으로 깨져 있었다. 특히 황후가 독일 간첩이라는 소문은 치명적이었다.
"나는 도저히 양심에 걸려서 민중을 향해 총을 쏠 수가 없어. 저들은 그저 빵을 달라고 할 뿐이야."
"우리가 사살한 시위대 중에는 내 어머니랑 똑같이 닮은 아주머니도 있더라. 미칠 것 같았어."
"저들도 우리 부모나 형제와 다름없다고. 우리가 조국을 지키러 왔지, 부모 형제를 죽이려고 군대에 온 건 아니잖아?"
"인정머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장교 놈들! 내일도 발포 명령 내려 봐라. 그놈 머리통을 향해 쏘고 말 테니까."
볼린스키 근위연대의 병사들은 분명히 심경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발포 명령을 내린 상관을 원망했고, 회의감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5월 5일 아침, 볼린스키 연대는 다시 출동하여 시위대 앞을 가로막았다.
"병사들이여! 너희들의 형제인 인민을 쏘지 마라!"
시위대의 외침에 병사들의 동공이 흔들렸다. 대위가 같잖다는 듯이 명령을 내렸다.
"저들은 반역자다. 부대, 거총! 발포하라!"
하지만 발포 명령에도 병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 하는 거야? 명령 못 들었나? 발포, 발포하라고!"
"우리는 더 이상 죽이지 않겠다! 피는 충분히 흘렸다!"
병사들은 시위대를 향해 겨누고 있던 총을 거두었다. 명백한 항명이었다. 대위는 분노보다는 공포를 느꼈지만, 짐짓 허세를 부렸다.
"이, 이놈들이 돌았나? 항명할 셈이냐? 항명은 총살이다!"
"총살은 네놈이 당해야지!"
탕! 탕! 탕!
병사들은 대위를 향해 총을 쏘아 쓰러트렸다.
세 발의 총성을 시작으로, 반란이 시작되었다.
"이제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동지들을 모아야지!"
볼린스키 연대의 병사들은 반란을 확산시키지 않으면, 자신들이 반란군으로 몰려 처형당하리라고 확신했다.
연대 병사들은 근처의 공병부대 병영으로 달려가 무기고를 확보하려고 했다.
"혁명 만세! 동지들, 무기를 들어라!"
"동지들, 우리와 함께 싸우자!"
공병부대도 반란에 가담했다. 무기고를 지키던 군수장교는 즉각 살해당했다.
삽시간에 반란은 빠르게 번져 나갔다. 러시아군은 상류층 출신 장교와 농민 출신 사병 간의 갈등이 심했고, 페트로그라드 주둔부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장교들을 잡아라!"
"혁명 만세!"
반란이 확산되면서 장교 살해가 빈번히 일어났다. 표트르 대제가 창설한,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연대인 프레오브라젠스키 근위연대에서도 반란이 일어나 대대장이 병사들에게 총검으로 살해당했다.
장교들은 공포에 떨며 도주했다. 혁명으로 넘어가는 군인들의 수는 갈수록 늘어났고, 민중은 군인들의 가담을 환호했다.
"카자크다! 카자크 기병대가 온다!"
그나마 충성심을 유지하고 있는 건 카자크 부대였다. 강경한 시위 진압으로 악명 높은 카자크가 출동하면 시위대는 도망치기 일쑤였지만, 이날은 달랐다. 군중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도로를 틀어막은 카자크 기병대를 향해, 시위대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나와서 카자크 군인들을 향해 걸어갔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아이를 향해 집중되었다.
소녀는 장교에게 붉은 장미꽃 한 다발을 건넸다.
장교는 말 위에서 몸을 구부려 소녀에게서 장미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제복의 단추 구멍에 붉은 장미를 꽂았다.
"와아아아아!"
"만세! 만세!"
이는 혁명의 승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군대, 그 악명높은 카자크조차도 더 이상 민중의 적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혁명의 승리를 확신했다.
"대체 어떡할 겁니까? 시내가 완전히 무정부 상태란 말입니다!"
"군, 군대를 동원하여……."
"바로 그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단 말입니다!"
군관구사령관 이바노프 대장은 완전히 자승자박에 빠지고 말았다. 시위 진압을 명분으로 군대를 동원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는데, 바로 그 군대가 반란을 일으켜 혁명에 가담한 것이다.
군인들의 반란은 시위를 완전한 혁명으로 바꾸어 버렸다.
"페트로그라드에서 정부에 충성하는 부대가 얼마나 됩니까?"
"현재 확고한 통제하에 있는 부대는 보병 6개 중대, 기병 2개 대대가 전부입니다."
"환장하겠구만! 주둔군 15만 병력 중에 정부 통제에 있는 게 그거밖에 안 되오?"
"저들이 아무리 오합지졸이라 해도, 반란을 진압하려면 최소 1개 여단은 필요합니다!"
정부는 완전히 패닉에 빠졌다. 당국은 사실상 수도에서 무력을 잃고 말았다.
속히 해결책을 요청하는 보고가 스타프카를 향해 쏟아졌다.
"어, 어쩌지?"
"북부전선이나 후방에서 병력을 차출해서 페트로그라드로 보냅시다!"
"그러다 그들마저 반란에 동참하면 어쩌려고?"
최고사령부도 수도의 반란 소식을 듣고 혼란에 빠지긴 매한가지였다.
차르는 즉각적인 진압을 명령했다. 스타프카는 병력을 차출해 수도 진격을 고려했지만, 그들 역시 반란에 동참할 수 있었다.
"수도 인근에 아직 믿을만한 군대가 남아 있지 않습니까?"
"무슨 부대 말이오?"
"한국군 말입니다! 이들이 혁명에 넘어갈 리가 없지요!"
"아니, 외국군에 진압을 맡기자고?"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리게 생겼습니까? 제국이 무너질 판인데!"
페테르고프에 주둔 중인 한국군 사령부에 페트로그라드 진입을 요청하는 전보가 날아 갔다.
갑작스럽게도, 한국군이 혁명의 향방을 가를 존재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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