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547화 (546/812)

228화 이중권력

"동지들! 마침내 해방의 날이 도래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역사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겁니다!"

러시아의 모든 정치범이 석방되었다. 시베리아에 유배되었던 정치범들은 귀환 열차를 타고 페트로그라드로 돌아왔다.

이제 이들이 4월 혁명 이후의 정세를 주도하게 될 터였다.

초기정세는 임시정부의 입헌주의자(10월당)와 자유주의자(입헌민주당), 노동자 소비에트의 사회민주주의자(사회민주노동당)와 농민 소비에트의 인민주의자(사회혁명당)가 주도했다.

소비에트를 주도하는 온건파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을 수호하는’ 조건부로 임시정부를 지지했다.

소비에트와 임시정부. 한 나라에 두 개의 권력, 이른바 ‘이중권력’ 시대의 개막이었다.

"마침내 러시아에 국민의 동의가 이뤄진 정부가 수립됨을 기쁘게 생각한다."

"러시아 혁명은 영국 명예혁명, 미국 독립혁명, 프랑스 시민혁명의 영광스러운 후계자다."

미국은 이때까지 중립을 유지하고 있지만, 러시아 혁명은 참전을 고민하는 미국에 긍정적인 소식임에 틀림없었다. 러시아 차리즘은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미국의 대의명분을 방해하는 마지막 요소였는데, 마침내 제거되었기 때문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도 혁명을 환영했으니, 혁명과 새 정부의 수립으로 전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괜찮은 결과라고 생각했다.

"자유, 평등, 우애의 정신은 러시아의 동토를 녹이고 해방으로의 길을 열었습니다."

"임시정부는 계급과 당의 이익이 아닌, 조국과 민족의 자긍심을 수호하는 전시 정부가 될 것입니다."

임시정부는 연합국의 빠른 승인과 환영을 받았고, 소비에트는 민중의 지지를 임시정부에게 안겨 주었다.

임시정부는 소비에트의 지지가 있어야 기능했다. 소비에트의 압력을 받은 임시정부는 개혁을 약속하고, 시급한 법령을 빠르게 통과시켰다.

열강 중에서 가장 전제적인 국가, 자유를 억압하는데 앞장섰던 유럽의 헌병, 러시아제국은 하루아침에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신분제가 폐기되었고, 집회·출판·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종교·인종·성에 대한 법적 규제가 철폐되었다. 온갖 휘황찬란한 정치개혁이 이루어지고, 자유와 평등의 문화가 확산됐다.

사회민주당 국제주의파 지도자 울리야노프는 이를 두고, 혁명이 하룻밤 사이에 러시아를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로 만들어 놓았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임시정부는 중요한 문제를 놓치고 있소. 정치개혁은 이미 약발이 다하고 있지. 인민들이 원하는 건 휘황찬란한 입헌적 자유가 아니거든.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혁명이지. 농민에게는 토지, 노동자에게는 공장, 병사에게는 전쟁이 최대의 관심사지. 하지만 전부 제헌의회 수립 이후로 문제를 미루고 있지 않소?"

울리야노프의 평가는 찬사가 아니라 비판이었다.

임시정부는 정치개혁에 몰두하고 있었지만, 근본적인 사회문제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토지개혁과 소수민족의 자결권과 같은 혁명의 중대한 논의는 제헌의회 이후로 미루자고 했다.

"농민에게 토지를 달라!"

"노동자에게 생산수단을 달라!"

"당장 전쟁을 끝내라!"

"우리는 자결과 독립을 원한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혁명과 민주주의는 억압된 이들의 목소리를 동시에 터지게 했다. 토지문제, 노동문제, 평화문제, 자결권문제는 임시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침략자로부터 조국과 혁명을 지켜 내고, 제헌의회를 선출하여 혁명을 완수합시다. 전(全) 러시아 소비에트는 혁명적 방어주의를 채택합니다!"

"소비에트는 무배상, 무병합, 자결권을 촉구하는 승리 없는 평화를 지지합니다. 전쟁 목적은 침략과 패권이 아니라 자유와 혁명의 방어에 있습니다."

‘노동자의 호민관’으로 불린 사회민주당 두마 의원, 차르를 비판하고 체포되어 시베리아 유배 생활을 하고 돌아온 이라클리 체레텔리(Irakli Tsereteli)가 소비에트를 주도했다.

체레텔리는 ‘혁명적 방어주의’를 제창했고, 연합국에 ‘승리 없는 평화’를 호소했다. 전쟁 종결을 원하는 러시아인들과 러시아가 계속 전쟁을 수행하길 원하는 연합국 사이에서의 타협책이었다.

‘승리 없는 평화’를 제창한 미국의 윌슨 대통령과 달리, 연합국은 독일이 패망하기 전까지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의 전쟁 수행을 이어 나가고, 러시아인들을 달래기 위해 정부 특사단을 파견했다.

동부전선에 군대를 파병 중인 대한제국도 최고위 특사단을 파견했다. 바로 황태자를 대표로 하는 특사단이었다.

* * *

4월 혁명 소식에 국외 망명객들도 속속 귀환했다.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인민주의, 아나키즘의 거물들이 환호하는 군중 앞에서 감격의 귀국 연설을 했다.

중립국인 스위스에 망명해 있던 울리야노프와 마르토프, 미국에 망명해 있던 트로츠키와 부하린 등 즉각적인 평화를 촉구하는 ‘국제주의파’ 지도자들이 속속 귀국길에 올랐다.

연합국은 즉각적인 평화를 촉구하는 국제주의자들이 썩 내키지 않았다. 연합국은 이들이 러시아를 전쟁에서 빠져나오게 할까 봐 두려워했다. 프랑스를 경유하여 귀국길에 오른 울리야노프와 마르토프 등은 프랑스 당국에 체포되었고, 대서양을 건너 귀국길에 오른 트로츠키는 영국 당국에 체포되었다.

「러시아 인민은 혁명의 투사들이 귀국하기를 열렬히 고대하고 있습니다. 임시정부는 혁명가들의 즉각적인 석방과 귀국을 보장해 주길 촉구합니다.」

소비에트의 강력한 압력을 받은 임시정부는 연합국에 석방을 촉구했다.

실제 역사와 달리 사회민주당 내의 결정적인 볼셰비키-멘셰비키 분열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 역사에서 ‘멘셰비키’로 분류될 정치인들도 ‘볼셰비키’의 귀국을 원했다.

러시아를 달랠 필요가 있었던 연합국은 혁명가들을 석방해 귀국시켰다.

대한제국도 임시정부의 호소를 받은 나라 중 하나였다.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부하린. 러시아 국적, 1888년생. 본인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대한제국 세관 임시구치소에 억류되어 있던 혁명가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부하린(Nikolai Ivanovich Bukharin)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일어섰다.

20대의 부하린은 사회민주당의 총아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이론가이자 혁명가였다. 부하린의 《제국주의와 세계경제》는 울리야노프를 비롯한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트로츠키와 함께 뉴욕에서 망명 조직을 이끌던 부하린은, 대서양을 건넌 트로츠키와는 반대로 태평양을 건너 러시아로 향했다. 가장 빠른 루트인 일본과 한국을 경유해 귀국하려던 부하린의 계획은, 부산항에서 내려 만주행 기차를 타려다 체포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부하린의 혐의는 합법적인 통과비자 없이 입국한 혐의였다.

"선생을 석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러시아로 가도 됩니까?"

"비자를 받아야 합니다. 외무부의 심사를 받아야 하니 서울에서 잠시 기다리십시오."

"빨리 좀 부탁합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부하린은 황성으로 호송되었다. 비자 발급을 초조히 기다리던 부하린은, 뜻밖에도 한국 외무부로 초청을 받았다.

"부하린 선생, 나는 대한제국 외무대신 이상설입니다. 주러시아 대사를 역임한 바 있지요."

"나는 내무협판 이회영입니다."

이상설과 이회영은 악수를 청했다. 부하린은 악수를 받았지만, 고위관료들이 직접 자신을 맞이하니 얼떨떨했다.

"장관과 차관께서 일개 망명객인 저를 만나려는 이유가 뭡니까?"

"아, 러시아 임시정부에서 선생을 석방하라는 요청을 보내왔습니다."

이상설은 부하린에게 임시정부의 호소문을 전달했다. 러시아 인민들이 귀국을 고대한다는 호소문에 부하린은 씩 웃었다.

"그럼 비자 발급도 허용되리라 믿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귀국열차도 제공해 드리지요. 지금 러시아 철도 사정이 엉망이라, 민간열차를 타면 오래 걸릴 겁니다. 한국정부가 제공하는 열차를 타시지요."

"호의는 감사드립니다만, 일개 망명객인 저를 이렇게까지 배려해 주시는 이유를 알아도 됩니까?"

부하린은 더욱 얼떨떨했다. 제국주의 러시아의 동맹인 대한제국이 혁명가인 자신을 이렇게 환대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가 듣기로, 부하린 선생은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 선생과 꽤 친분이 있다고 들었는데."

"블라디미르 일리치 동지를 아십니까?"

"아,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런 셈이지요. 아무튼, 한국정부는 울리야노프 선생과 약속을 했습니다. 망명객 중에 한국을 통해 귀국하려는 이가 있으면 특별히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더욱 의외였다. 멀리 떨어진 극동의 한국이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가와 접촉하다니.

"그거, 참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어떻게 약속을 하게 됐는지 더더욱 이야기가 궁금합니다만."

"그건 차차 들을 기회가 있겠지요. 먼저 우리가 선생에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선생의 혁명관, 전쟁관에 대해 듣고 싶군요. 귀국하면 전쟁에 대해 어떻게 주장할 겁니까?"

"대답 여하에 따라 비자가 발급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까?"

부하린이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자, 이상설이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선생의 귀국은 외무대신인 내가 직접 보장합니다. 약속대로 열차를 제공해 드릴 겁니다."

"그럼 대답해 드리지요. 이중권력은 사기입니다. 임시정부는 혁명을 대표할 수 없습니다. 오직 소비에트만이 혁명을 지도할 권리가 있습니다. 소비에트로 즉각 권력을 이전해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전쟁은 그만둘 겁니까?"

"아뇨. 여러분 생각과는 달라도, 독일 제국주의자들에 맞서 혁명전쟁을 지속할 겁니다. 러시아 제국주의가 아닌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위한 전쟁이지요. 베를린에 혁명의 붉은 깃발이 휘날려야 전쟁이 끝나는 것입니다."

부하린의 구상은 한국인들이 듣기에는 터무니없을 정도였다. 울리야노프를 능가하는 급진좌파였다.

"원, 선생의 포부가 대단하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편안한 여정이 되길 바랍니다. 아, 어차피 함께 가겠군요."

"함께 가다니요?"

"한국에서 러시아로 파견하는 대표단을 수행하게 됐습니다. 선생도 같은 기차를 타게 될 겁니다. 정부의 호의를 받아들이시지요."

"허허. 감사합니다만, 정부 특별열차에 동승이라니 가시방석이 따로 없군요."

대한제국 정부 특별열차에 동행한다는 말에 부하린은 헛웃음을 흘렸다. 예기치 못한 특별대우였다.

부하린이 감사를 표하고 물러난 후, 이상설이 이회영에게 물었다.

"제국익문사의 보고에 따르면, 부하린은 울리야노프의 계파에 속한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같은 파벌이라고 해서 주장이 같은 건 아닙니다. 트로츠키와 부하린이 주장은 가장 강경한 축에 속합니다만, 의외로 현실주의적인 면모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아까 말하는 건 완전 몽상가가 따로 없던데."

이회영은 내무협판 겸 제국익문사 독리로, 익문사 구주(歐洲)국을 이끄는 조한민의 직속상관이었다.

신해혁명을 배후에서 지원하고, 러시아 혁명조직을 조사하는 이회영은 국제혁명 정보에 대해 가장 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부하린은 젊은 만큼 패기가 넘치지만 그만큼 이론에 치중되어 있다고 합니다. 울리야노프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을 겁니다."

"황공한 말이지만, 난 성상께서 왜 이리 울리야노프를 과대평가하시는지 모르겠소. 그의 형이 차르를 암살한 적이 있다고 하지만, 일개 망명객에 지나지 않소?"

"만약 현재 러시아 임시정부와 소비에트를 주도하는 이들을 대체할 이가 있다면, 울리야노프가 유일한 인물일 수도 있다는 평가입니다."

"흠, 성상께서 그리 보신다면 이유가 있겠지……. 직접 러시아에서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소."

실제 역사와 행보가 크게 달라지긴 했지만, 이선은 여전히 소비에트가 임시정부를 대체할 상황을 고려했다. 아직까진 소비에트가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입장이었지만, 전쟁이 지속될수록 상황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몰랐다.

‘역사가 변화해서 인간의 주의 주장은 변해도, 그릇과 됨됨이는 변화하지 않더군.’

울리야노프가 ‘볼셰비키 레닌’은 아니지만, 특유의 카리스마적 조직력과 탁월한 연설력은 여전했다. 임시정부를 당장 뒤엎지는 않더라도, 혁명적 야당의 영수로서 정치적 영향력은 행사할 수 있었다.

‘가능하면 러시아가 자유주의 입헌군주국으로 남아 주는 게 가장 좋은데, 토지문제와 전쟁이 딜레마니……. 계속 정보를 획득하면서 빠르게 상황에 대처해야지.’

이선은 모든 경우의 수를 검토하려고 했다.

혁명 이후의 러시아는 어디로 튈지 몰랐다. 혁명 이전에는 차르의 심리만 꽉 쥐고 있으면 됐지만, 혁명 이후에는 터져 나온 민심에 달려 있었다. 이선이 차르를 조종할 수는 있었어도, 러시아의 민심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러시아제국 새 황제 폐하의 즉위를 축하하고, 유럽 전선에서 싸우는 우리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 특사단을 파견한다."

황실을 대표하여 황태자 이진, 정부를 대표하여 외무대신 이상설과 내무협판 이회영, 야당을 대표하여 신민당의 안창호와 진보당의 전봉준, 기타 실무급 인사들로 특사단이 구성되었다.

"러시아 국내 사정이 혼란스러운데, 황태자 전하께서 친림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니, 러시아는 우리의 동맹이자 연합국이오. 21년 전에 짐이 직접 갔듯이 황태자가 갈 필요가 있소. 하물며 원수(元帥)인 황태자가 직접 격려한다면 우리 군의 사기가 크게 오를 것이오."

정부 일각에서 우려를 표명했지만, 이선은 파견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소자에게 이런 대임을 맡겨 주시다니, 마땅히 황명을 수행하겠습니다!"

이진 역시 기쁘게 받아들였다. 부황의 명을 수행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고, 혁명이 일어났다는 러시아의 상황을 직접 살피고 싶었다.

"근데 특사단에 왜 야당 인사까지 낀 겁니까? 이런 전례가 있었나?"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노동당, 사회당이 대표단을 파견했다더군요. 그러니 우리도 야당을 대표하는 인사를 보내는 것이지요."

표면적인 이유는 영국과 프랑스의 사례를 따른 것이지만, 이선의 속내는 달랐다.

‘이상설과 이회영, 안창호와 전봉준이라면 진의 시야를 확 트게 해 주겠지.’

이상설과 이회영은 외교와 정보 계통에 있었음에도, 정부 여당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축에 속하는 입헌주의자였다.

계몽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을 이끌고 한국의 개혁적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안창호, 농민운동과 농지개혁을 지휘하고 한국적 농본주의를 대표하는 전봉준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들과 함께 혁명의 러시아를 시찰하면, 이진의 정치적 시야도 크게 달라지리라는 게 이선의 복안이었다.

"황제 폐하와 대한국 정부의 명을 받들어, 대표단은 러시아로 떠나겠습니다."

6월 21일, 대한제국 특사단이 황성을 출발했다. 만주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거쳐 모스크바로 가는 긴 여정이었다.

이들의 표면적인 목적은 미하일 2세의 즉위를 축하하고, 주러시아 한국군을 격려하기 위함이었다.

실질적인 이유는 러시아와 기존에 맺은 조약을 재확인하고, 러시아의 전쟁 수행에 지장이 없도록 하며, 한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성년이 되고 첫 임무구나. 부황께서 막중한 책무를 맡기셨으니, 반드시 완수해야지.’

러시아로 향하게 된 이진의 두 눈에는 기대와 의무감으로 가득 찼다.

- 229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