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혁명과 전쟁
자신의 속내를 처음으로 밝힌 날, 이진은 만취하여 이영의 저택에서 잠들었다.
"황태자 전하와 이야기가 길어졌군요."
"음, 그렇게 됐어요."
"전하께서 고민이 많으신가 봐요."
"부인, 미안하지만 오늘 일은 비밀입니다."
남편의 말에 아나스타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어를 이해하는 그녀는, 자세한 건 알지 못해도 뭔가 심각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는 걸 짐작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이진은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진은 별다른 말이 없었고, 이영도 굳이 간밤의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둘의 이야기는 숙질(叔姪) 간의 비밀로 남았다.
이진은 특사 본연의 임무로 돌아갔다. 러시아 황실과 정부 인사들을 회견하고, 특사단의 보고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그저 정중한 태도로 청취할 뿐이었다.
"특사단 방문은 러시아에서도 쌍수 들고 환영하는 일입니다. 임시정부는 국군 병력 증파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직 아군이 전과(戰果)를 보인 적은 없는데."
"믿을 만한 병력이 많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러시아군 상황이 그리도 안 좋소?"
"편제상으로는 수백만 대군이지만, 방어라면 모를까 공세에 나설 정도로 열의에 찬 부대는 손에 꼽습니다."
"꼭 공세를 해야 하나? 현 전선을 중심으로 방어를 충실히 하는 게 우선일 것 같은데."
"임시정부는 대규모 공세의 성공으로 분위기를 전환하고, 전쟁의 기세로 혁명을 제압하길 원하는 겁니다. 그 여세를 몰아 제헌의회 선거에서 사회주의자들보다 우세를 점하려고 하는 거죠."
대사 조한민과 공사 이위종이 러시아 임시정부의 속내를 분석하여 특사단에 보고했다.
"혁명을 막기 위한 공세라, 그럼 우리가 그 장단을 맞춰 줄 이유야 없지. 만약 증파를 한다면, 러시아가 충분한 대가를 지불한 다음이어야지."
이상설의 말에,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이진이 입을 열었다.
"판단은 성상께서 내리실 일이지만, 증파는 고려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외무대신의 말씀대로 충분한 대가를 받는 조건으로."
"그렇습니다, 전하."
"저들이 증파를 요청하면, 만주에 대한 자유행동을 대가로 요구하는 게 어떨까요?"
이상설은 잠시 고민했다. 이미 3차 한러협약에서 규정된 조항이지만 그 부분은 극비라서, 황태자도 알지 못하는 사안이었다.
다만 한국도 아직 조항을 실행으로 옮기진 않았고, 증파를 명분으로 더욱 확실하게 할 수는 있었다.
"예, 본국 정부에 그리 보고하겠습니다."
"그리고, 니콜라이 2세께서 일가의 한국 망명을 원합니다. 이도 조건으로 내걸면 어떨까요?"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 그건 신중히 판단할 일입니다. 전 황제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너무 안 좋습니다. 특히 소비에트가 강력히 재판을 요구하는데, 임시정부가 간신히 막고 있습니다. 심지어 왕당파들조차 니콜라이 2세에 대한 충성심을 잃은 상황입니다."
"연합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 프랑스, 덴마크 그 어디도 망명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러시아 여론을 파악하고 있는 조한민과 이위종은 망명 추진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대한 황실과 러시아 황실의 관계, 부황과 니콜라이 2세의 우의를 생각하면, 인도적인 측면에서 망명을 받아들여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때를 기다려 주십시오. 우리가 요청하는 게 아니라, 저들이 먼저 요청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여론 눈치를 보느라 이동을 막고 있지만, 임시정부도 전 황제를 애물단지로 여기고 있습니다. 제헌의회 선거를 앞두는 시기가 되면 사람들의 시야에서 안 보이는 곳으로 보내려 할 겁니다."
조한민의 분석은 충분히 합리적이라, 이진도 더 우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요청은 들어왔으니, 성상께 보고를 합시다. 대사관의 의견도 첨부해서. 판단은 성상께서 내리시겠지요."
"예, 전하."
회의가 끝나고, 이진은 태극기를 단 대사관 차를 타고 겨울궁전으로 향했다. 차가 넵스키 대로에 진입할 무렵, 시위 인파에 부딪히고 말았다.
"제국주의 전쟁 반대!"
"무배상, 무병합!"
"노동자, 농민, 병사는 콘스탄티노플이 아니라 빵과 토지, 평화를 원한다!"
시위 군중은 족히 수만은 되어 보였다. 도처에 붉은 깃발이 휘날렸다. 이진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오늘은 안 되겠군. 대사관으로 돌아가지. 왜 저러는지도 알아보고."
"예, 전하."
얼마 후, 이위종이 자초지총을 알아보고 보고했다.
"밀류코프 외무장관이 최근 영국과 프랑스 특사단 앞에서 한 말이 문제가 되어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도 혁명과 새 황제 즉위를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특사단을 파견했다. 실질적인 이유는 혹여 러시아가 전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하려는 목적이었다.
「러시아는 연합국에 대한 충심을 저버리지 않았으며, 영광스러운 최종 승리까지 분투할 겁니다. 러시아의 인력과 전의는 충분합니다. 다르다넬스와 보스포루스 해협의 통제, 즉 콘스탄티노플 수복이 러시아의 오래된 열망이며, 전쟁 목표로 연합국에서 합의된 사항이라는 것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외무장관 밀류코프는 혁명이 일어났든 간에, 러시아의 전쟁 의지와 목표는 변동이 없다고 역설했다.
러시아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밀류코프도 전쟁에 대한 국민의 혐오를 인식했으나, 단독강화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연합국의 지원이 없으면 가뜩이나 위태로운 국가가 파탄이 날 것을 두려워했다.
이 발언은 후폭풍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소비에트가 내건 ‘혁명적 방어주의’의 전쟁 목표, 즉 ‘무배상-무병합-자결권’이라는 원칙을 전면에서 부정하고, 콘스탄티노플 점령이라는 제국주의적 목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소비에트와 인민에 대한 모욕이다!"
"제국주의 전쟁을 지속하려는 밀류코프는 물러나라!"
"임시정부는 인민의 외침을 들어라!"
7월 14일(율리우스력 7월 1일), 프랑스 혁명기념일에 노동자와 병사의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그러자 그동안 기세에 억눌려 있던 우익들도 시위에 나섰다.
"러시아에 콘스탄티노플은 신성한 목표다!"
"임시정부의 전쟁 수행을 지지한다!"
"전쟁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소비에트를 타도하자!"
좌익과 우익은 거리에서 충돌하여 난투극을 벌였다. 이른바 ‘7월 위기’였다.
"이런 반역자 빨갱이 놈들! 수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해 버리지요!"
신임 페트로그라드 군관구 사령관인 라브르 코르닐로프(Lavr G. Kornilov) 장군은 시위대 진압을 요청했지만, 총리 리보프 공작은 거절했다.
"진압은 더 큰 혁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소. 지금은 소비에트와 맞설 때가 아니라 타협할 때입니다."
사태 이틀 만에, 임시정부는 타협을 택했다. 밀류코프가 외무장관에서 사임하고, 대중의 인기가 높은 케렌스키가 육·해군 장관을 겸임했다.
동시에 소비에트를 주도하는 온건파 사회주의자들 5인도 임시정부에 입각했다. 특히 농림부를 맡은 빅토르 체르노프(Viktor M. Chernov)는 사회혁명당의 지도자로 토지개혁을 추구했고, ‘혁명적 방어주의’를 대표하는 체레텔리가 체신부(遞信部)를 맡았다.
소비에트는 다시금 임시정부 지지를 천명했으니, ‘혁명의 방위’를 위한 거국내각의 출현이었다.
‘가관이군. 도대체 정부가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어. 무정부 상태, 무질서와 혼란의 연속이야.’
이진은 거리에서 벌어지는 난투극과 정부 교체를 보고 혀를 찼다.
그는 딱히 반동적인 권위주의자는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진보적인 교육을 받았고, 부황이 뭘 원하는지도 알았다. 본인도 20세의 청년으로서 피 끓는 혈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진이 혐오하는 건 자유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니라, ‘무질서’였다. 그가 보기에, 혁명 이후의 러시아는 무질서 그 자체였다.
‘부황은 무오류이어야 해. 부황께서 틀린 게 아니라, 러시아인들에게는 자유와 평등이 너무 일렀어. 자유와 평등은 영국, 프랑스, 미국 같은 나라나 하는 거지.’
이진은 이선의 ‘가르침’을 강박적으로 따르고자 했으므로, ‘자유와 평등’이 틀렸다고는 하지 않았다. 단지 그걸 운용하는 인간들이 문제였다.
‘대한도 마찬가지. 대한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에선 엘리트가 정치를 해야 해.’
이진이 중시하는 건 질서였다. ‘전위당’이라는 권위적 지도력이 특징인 실제 역사의 ‘볼셰비키’가 존재했다면, 이진은 이념적으로 상극일지언정 개중에선 차라리 볼셰비키가 낫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현재 러시아 혁명을 주도하는 건 실제 역사의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었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 원칙에 더 충실했지만, 그만큼 더 자유롭고 느슨했다. 이들도 민중을 통제하지 못했다.
이진이 혐오하는 권위의 파편화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억눌렸던 민중의 목소리는 한번 물꼬를 트자 거침없이 터져 나왔다.
페트로그라드에서 전 러시아 농민 소비에트가 개최됐다. 임시정부 농림부장관으로 입각한 사회혁명당 지도자 체르노프는 토지개혁을 약속했다.
"동지 여러분! 임시정부와 소비에트는 토지개혁을 약속합니다. 토지는 경작하는 이의 손에 들어가게 될 겁니다. 그러니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십시오. 제헌의회가 선출되면, 중요한 토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체르노프의 연설은 지도부의 박수를 받았지만, 일반 객석에서 야유가 나왔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요?"
"지주들이 마음대로 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우리는 수십, 수백 년을 기다려 왔소. 더 이상은 못 참아요!"
이미 농촌에서는 ‘토지혁명’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통적인 농촌공동체가 농민위원회로 전환했다.
농민들은 ‘농민들의 당’을 자처하는 사회혁명당의 요청도 무시했다. 귀족과 지주의 저택으로 몰려가 토지를 몰수하고, 지주의 곳간에 있는 곡물을 반출했다.
이는 수백 년 동안 누적된 울분의 폭발이었다. 농민들은 오랫동안 귀족-지주의 농노로 학대당했고, 알렉산드르 2세의 농노 해방 이후에도 대부분 지주의 소작농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뒤늦게 스톨리핀의 농지개혁으로 자영농 육성이 이뤄졌고, 실제로 그가 구상한 대로 ‘20년의 평화’가 이루어졌다면 러시아 농민들은 체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도중에 중단되어 일부 지역에서만 성과를 보였고, 무엇보다 대전쟁이 발발하여 위기가 극대화됐다.
「이 날강도 놈들아! 네놈들이 뭔데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다 뺏아 가느냐!」
「날강도라굽쇼, 나으리? 우리 조상들은 대대로 당신네 조상들을 위해 소와 말처럼처럼 일했지. 당신 할아버지는 내 할아버지가 생산량을 채우지 못했다고 채찍으로 패고, 가족을 농노시장에다 팔아먹었어. 개만도 못한 취급이었지. 날강도라는 건 바로 당신네 조상들을 지칭하는 말이야!」
각지의 농민 대표들은 농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토지혁명에 대해 발언하고, 열변을 토했다.
이어서 사회혁명당 좌파를 대표하여, 한 여성이 발언대에 올랐다.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스피리도노바(Maria alexandrovna Spiridonova) 동지!"
"와아아아아아!"
이름이 호명된 것만으로도, 농민 대표들 사이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겉보기에는 가냘프고 지적인 교사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유명한 혁명가였다.
1906년 혁명 당시, 하급귀족의 딸이자 의학을 공부한 21세의 여대생이었던 마리야 스피리도노바는 사회혁명당 전투조직에 가담했다.
스피리도노바는 극우파로 악명 높은 탐보프 주지사를 암살하는 임무를 맡았다. 테러가 횡행하던 시절이라 경비가 엄격했으나, 아무도 귀족 출신의 여대생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지사에게 접근하여 리볼버로 암살했다.
그때부터 스피리도노바의 고난이 시작됐다. 그녀를 체포한 헌병들은 나체로 구타와 성고문을 가했다.
아름답고 젊은 여성을 향한 끔찍한 고문 실태가 언론에 밝혀지면서, 대중의 격렬한 항의가 쏟아졌다. 스피리도노바는 단순히 사회혁명당만의 투사가 아니라, ‘혁명의 꽃’이 되었다.
당국은 스피리도노바에게 사형을 선고했지만, 그녀가 재판 당시에 보인 침착하고 당당한 태도는 대중을 열광시켰다. 당국도 결국 종신유배형으로 감형하여 시베리아 정치범수용소로 유배를 보냈다.
혁명으로 10년간의 악명 높은 정치범수용소 유배에서 석방되자, 스피리도노바는 거의 신화적인 존재가 되었다. 정파를 막론하고 존경을 받았고, 농민들 사이에서는 거의 성녀(聖女)처럼 숭배를 받았다.
스피리도노바는 실제 역사의 볼셰비키를 능가하는 급진파 ‘사회혁명당 좌파’의 지도자로 추대됐다.
"농민 동지 여러분. 농민의 대표라는 사회혁명당이 타협과 인내를 요구합니다. 귀족-지주들은 농민들을 수백 년 동안 착취해 왔습니다. 지주들은 남성 농노들을 개처럼 학대하고, 여성 농노들을 성노리개로 삼았습니다. 수백 년 동안 쌓인 그 모든 울분을 무시하고, 그저 타협하고 인내하라고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다릴 수 없습니다! 토지는 경작하는 농민의 소유가 되어야 합니다! 즉시 토지개혁을 실시하라! 토지를 농민에게로!"
"옳소!"
"즉시 토지개혁을 실시하라! 토지를 농민에게로!"
젊은 여성 혁명가는 침착한 어조로, 그러나 급진적인 끝맺음으로 연설을 마쳤다. 연설은 즉각 농민 대표들에게 불을 붙였다.
농민 대표들의 강경한 분위기는, 사회혁명당 지도부조차 토지 탈취를 승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전 러시아 농민 소비에트는 토지 탈취에 대하여 유사법적인 승인을 했다.
농민 대표들은 권위 있는 기관의 승인을 받았다고 여겼고, 농촌의 토지전쟁은 계속될 터였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군. 혁명이 절대로 도중에 멈추지 않겠어."
참관인 자격으로 농민 소비에트를 지켜보던 전봉준과 안창호는 전율을 느꼈다. 러시아어를 알지 못해 통역에 의존해야 했지만, 딱히 통역을 듣지 않아도 농민들의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전봉준은 오랫동안 농민운동을 이끌었고, 토지개혁을 지휘했다. 그는 농민들의 아픔과 설움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전쟁이 문제가 아니오. 토지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제2혁명, 아니 내전이 일어날 겁니다."
러시아 농민들의 외침은, 마치 토지개혁 이전 조선 농민들의 외침을 떠올리게 했다. 만약 개혁이 없었더라면, 조선에서도 대규모 농민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실제 역사에서 농민전쟁을 이끌었던 전봉준이 토지개혁을 완수한 자체가 한국사의 가장 중요한 변곡점 중 하나였다.
"시대가 변화했소. 만약 저 급진적인 외침이 주변국으로 뻗어 나간다면……."
"그러기 전에 변화해야지요."
전봉준과 안창호는 새삼 선제적 개혁의 필요성을 느꼈다.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 그들이 보고 경험한 것을 사람들에게 공유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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