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강철 폭풍
이선은 러시아군의 하계공세 계획에 우려를 가졌다.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유라시아 반대편에 있어서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수 없는 입장이었지만, 러시아군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파병군단과 특사단의 보고를 꾸준히 받고 있었다.
막 참전한 미국도 러시아에 지원을 약속하며, 지금 당장은 공세에 나서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임시정부와 스타프카는 공세에 나섰다. 국내의 정치적 압력, 영국과 프랑스의 압력 등 대내외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선택은 공세로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군. 이왕 시작해야 할 공세라면 성공적으로 완수해야지."
대한제국군 유럽 파병군단, 통칭 ‘한국군단’의 병력은 4만 5천으로, 전체 전세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전선의 한 부분은 담당할 수 있었다. 3년간 지속된 전쟁으로 지쳐 버린 러시아군과 달리 사기와 전의도 충만했다.
"북서전선군과 서부전선군이 적을 붙들어 매는 동안, 남서전선군이 적을 격파하고 우크라이나 서부를 수복한다."
"남서전선군의 8군이 독일 남부군을 상대로 버티는 동안, 7군과 11군이 양익을 맡아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격파하고 북으로는 로브노와 남으로는 카메네츠포돌스키를 수복한다."
참모총장 브루실로프 대장은 독일 남부군의 양익을 맡고 있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격파할 계획을 세웠다.
언제나 보병을 앞세워 희생을 자초했던 기존의 공세와 달리, 보병-포병-기병-항공대를 모조리 활용한 입체적 작전이었다.
러시아의 심각했던 군수품 부족은 1916년부터는 상황이 나아졌다. 대포와 기관총, 포탄과 탄환도 넉넉히 확보했다. 물자가 충분해진 것과 반대로, 역설적으로 병사들의 전의가 하락했다. 하계공세는 전의를 되살리기 위한 최후의 시도였다.
"귀국 군대가 길을 여는 중요한 역할을 맡아 주길 바랍니다."
"맡은 바 임무를 최선을 다해 수행하겠습니다."
남서전선군 사령관 브론스키 대장은 한국군단을 러시아 제7군 산하에 배치했다. 제일 남쪽의 7군은 전략적 역할 못지않게 정치적 역할도 중요했다. 카르파티아 산맥으로 가는 길을 열어 루마니아가 받을 군사적 압박을 줄이고, 연합국과 동맹국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루마니아가 연합국으로 참전하게 만드는 게 목표였다.
한국군단의 상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2군 산하 병력이었다.
"작전 개시!"
"전군, 포격 개시!"
8월 14일 새벽, 남서부전선 전역에서 공세가 개시되었다. 전군의 포대가 일제히 불을 뿜으며, 무수한 포탄이 적 참호를 향해 쏟아져 갔다.
사납게 빗발치는 한여름 밤의 뇌우처럼, 맹렬한 포격이 동맹군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항공대 출격!"
남서전선군 산하 러시아 제1항공대, 그리고 한국 육군항공대도 공세의 선봉에 섰다.
콰앙! 콰앙!
"휘유, 엄청나구만."
육군항공대 유왈보 참령은 참전 이래 최대의 공세에 휘파람을 불었다.
한국군단 참모장 노백린 부장은 국군 초대 항공국장을 맡을 정도로 항공대의 역할에 주목했다.
1910년대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항공대의 작전 범위는 제한적이었지만, 남다른 덩치와 폭장량을 자랑하는 일리야 무로메츠 중폭격기가 전선을 휘저으며 중부동맹군 진지에 폭탄을 쏟아부었다.
"계속 쏴라! 멈추지 마라!"
"발포!"
건군 이래 포병 전력을 중시해 온 대한제국 육군은 포격에 집중했다. 한국군단에는 한국에서부터 싣고 온 포탄이 넉넉히 준비되어 있었고, 포탄을 아낌없이 쏘아 댔다.
"우크라이나 전선에 적군의 공세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제기랄! 러시아가 공세에 나설 능력이 없다는 정보는 대체 뭐였단 말이야?"
동맹군 동부전선 사령부는 갑작스러운 러시아군의 공세에 당황했다.
독일군은 러시아군이 공세에 나설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혁명 이후 정치적 혼란에 빠져 있는 러시아가 자중지란을 겪다가 평화를 구걸하도록, 동부전선은 내버려 두었다.
"동부전선에서 공세라고? 아니, 러시아군이 공세를 벌일 역량이 남아 있었나?"
이 무렵, 독일군 총사령부도 잇달아 쏟아지는 소식에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8월 4일,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미국의 선전포고를 대가로 치른 무제한 잠수함 작전의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8월 7일,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플랑드르에서 대대적인 공세를 감행했다. 이른바 제3차 이프르(Ypres) 전투였다. 영국군이 주공을 맡았고,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항명이 속출했던 프랑스군은 사기를 회복하여 조공을 맡았다.
심지어 이탈리아도 이손초(Isonzo)에서 9차례나 전투를 치르고도 성과를 내지 못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를 끝장낼 기세로 10번째 대공세를 감행했다.
서부전선의 공세에 독일군은 동부전선 병력 일부를 빼서 보냈고, 오스트리아-헝가리도 정예부대를 이탈리아전선으로 병력을 돌린 상황이었다.
모처럼 손발이 맞은 연합군의 총공세에 동맹군은 혼란스러워했다.
"현 전선을 고수하고 물러서지 마라!"
참모차장 루덴도르프는 어떻게든 전선을 고수하고 반격할 계획을 세웠다.
독일 전쟁기계는 어느 전선을 우선순위로 두고 작전을 감행해야 할지 빠르게 계산에 들어갔다.
* * *
"독가스 발사!"
"방독면 착용하라!"
우크라이나 전선에는 수백만 발의 포탄과 함께 독가스도 살포되었다.
독가스의 원조인 독일군에 비해 현저하게 밀렸던 러시아군의 화학전 능력도 1916년 이후 많이 개선되었다.
한국군은 진작부터 화학전의 위험성을 깨달았고, 러시아군의 기존 방독면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방독면을 영국과 합작으로 생산해 유럽까지 수출했다.
한국군단은 거의 전원이 방독면을 보유하고 있었고,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영국군의 최신 방독면(Small box respirator)과 매우 유사한 형태였다. 방독면은 전장에서 군인의 호흡기 건강을 쉽게 보호하는 핵심 장비였다.
"돌격!"
대대적인 포격과 독가스 살포가 이뤄진 후, 보병 돌격이 감행됐다.
검은색 방독면을 뒤집어쓰고, 우크라이나의 초원과 유사한 초록빛이 감도는 카키색 군복의 한국군의 외양. 1894년 독립전쟁(조청일전쟁)과 1900년 북벌전쟁(의화단전쟁)을 기억하는 홍범도 정장의 눈에는 현재의 한국군이 완전히 다른 군대처럼 보였다.
"대한국 만세!"
"와아아아아!"
진흙탕을 넘어 한국군단은 적 참호를 향해 내달렸다. 병사 중에서 최정예로 선발된 돌격대가 제일 먼저 적 전선을 향해 파고들었다.
타다다다다다다당!
"돌격! 돌격하라!"
제2근위사단 제4연대 김좌진 참령은 직접 소총을 돌고 돌격대를 지휘했다.
"위험합니다, 참령님!"
"괜찮다! 지휘관인 내가 후방에서 구경만 하고 있을 생각이 없다!"
올해 스물아홉, 마침내 전선의 한복판에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김좌진의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적 참호에서 기관총 총탄이 빗발처럼 쏟아져 나왔다. 전방에서 돌진하던 병사들이 픽픽 쓰러져 나갔다.
그렇지만, 포격과 독가스에 잇달아 두들겨 맞은 적의 방어태세는 예전만 못했다.
"죽어라!"
돌격대 선봉은 적 참호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수류탄을 던진 병사는 그 직후 사살되었지만, 그가 던진 수류탄은 기관총을 향해 정확히 떨어졌다.
콰앙!
"돌격! 참호로 진입해!"
"백병전이다!"
검은색 방독면을 뒤집어쓴 카키색 군복과, 갈색 방독면을 뒤집어쓴 회색 군복이 충돌했다.
격렬한 백병전이 시작됐다.
소총 개머리판, 총검, 군도, 심지어 야전삽까지 손에 집히는 대로 휘두르고 찔렀다.
"Scheiße!"
"개씨발놈들!"
매캐한 연기가 어두침침한 참호를 뒤엎었다. 방독면을 뒤집어쓴 채 소총과 총검을 휘두르는 병사들의 모습은 어딘가 기괴하다 못해 초현실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지구 반대편, 평생 서로 볼 일도 없었을 한국인과 오스트리아인이 이국인 우크라이나 땅에서 서로를 향해 증오를 내뿜으며 총검으로 찔러 죽이는 건 과연 초현실적인 상황이었다.
"죽어라, 이 개새끼들아!"
참호의 백병전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김좌진은 정신없이 총을 쏘고 칼을 휘둘렀다. 그의 오른손에는 장교용 군도가, 왼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185cm에 달하는 당대 동양인답지 않은 거구, 무관학교 시절부터 알아줬던 김좌진의 사격술과 검술은 적군을 압도했다.
김좌진은 적의 머리를 쏘고, 목을 베고, 심장을 찔렀다. 돌격대도 지휘관 못지않은 용맹과 광기를 보였다. 한 끗 차이로 목숨이 오고 가는 참호에서 용맹과 광기는 한 몸이나 다름없었다.
짧지만 격렬했던 공방전 끝에, 오스트리아군의 참호에 걸려 있던 검은색 쌍두독수리 깃발이 꺾어지고 태극기가 휘날렸다.
"기병대, 돌격하라!"
전 전선에 참호를 파고 일진일퇴의 진지전이 반복되는 서부전선에서는 기병의 수명이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광활한 전선에서 기동전이 병행되고 있는 동부전선에서는 여전히 기병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군 제1기병사단은 러시아 7군 산하 카자크 기병부대와 함께 적의 측면을 질주했다.
"돌격!"
"와아아아아아!"
포탄과 탄환이 쏟아지는 초원을 지나, 기병대는 적 부대와 충돌했다.
빰빠라바바바밤!
나팔 소리와 함께 제11 혼베드(Honved, 헝가리군) 후사르 기병사단이 출진했다.
기병으로 유명했던 옛 마자르족의 후예답게, 헝가리 후사르의 명성은 여전했다.
남서전선군에는 여전히 러시아에 충성하는 폴란드인으로 구성된 제1울란 기병연대도 있었으므로, 러시아 카자크·폴란드 울란·헝가리 후사르라는 유럽의 대표적인 기병대가 모두 충돌하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기병의 역할이 훨씬 적었지만, 이들 또한 고구려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대한 기병대여, 고구려의 용맹을 떨치자!"
"대한국 만세!!"
제1기병사단 3연대 2대대장 김광서 참령은 백마에 올라타, 기병용 사브르를 빼 들고 부대의 선두에 섰다.
한국군에서 가장 유능한 기병장교로 평가받는 김광서는 자신의 임무를 알았다.
말 위에 승마한 채로 칼과 창을 휘두르건, 총신은 짧지만 기병이 쓰기 편한 카빈(Carbine, 기병총)을 쏘건, 기병대의 역할은 돌격이었다.
마치 나폴레옹 전쟁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우크라이나 초원에서 격렬한 기병전이 벌어졌다.
러시아군과 한국군단의 진격은 계획대로 이어졌다. 공세에 따라 치열한 전투는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아아, 이게 바로 전쟁이로구나!"
제9보병사단 27연대 산하 일선 소대의 지휘관인 신익희(申翼熙) 참위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인지 후회일지 모르는 탄성을 내질렀다.
황성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국비유학생으로 영국에서 대학원까지 유학한 신익희는 고등교육 이수자에게 주는 특혜인 1년 단기장교만 수행하면 됐다.
그렇지만 대전쟁의 애국적 프로파간다가 넘치는 영국에서 생활한 신익희는, 학위를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파병에 자원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인지라 사령부 통역장교로 배속됐지만, 신익희는 전선에 나가길 강력히 희망해 소대장이 되었다.
본래 신사적이고 온건한 성품으로, 동기들에게도 ‘영국 젠틀맨’이라는 칭찬인지 조롱인지 모를 평가를 받던 신익희였다.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은 용맹함을 증명할 수 있는 자리라고 판단했고, 그는 무훈을 세우길 희망했다.
‘전쟁이 이렇게 끔찍한 것이었단 말인가!’
신사복을 입은 허여멀건 한 지식인이었던 신익희에게 전장의 현실은 참혹하기 짝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 살아 숨 쉬던 청년들이 산산조각 난 고깃덩어리로 변했다. 선혈과 찢겨진 군복만이 인간이었다는 흔적을 남겼다.
그는 소대장으로서 병사들을 지휘해야 할 의무를 잊지 않았지만, 가끔 밀려오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전쟁은 지옥도 그 자체였다.
"소대장님, 괜찮으십니까?"
"아, 덕분에 괜찮소. 고맙소."
신익희는 선임하사 박대붕 정교에게 감사를 표했다.
소대원들은 신참 소대장보다 베테랑 하사관인 박대붕 정교에게 더 의존했다. 본래 박대붕도 헌병인지라 전선에 나올 필요가 없었지만, 그도 자신의 의무를 내세워 전방 부대로 나왔다.
"대원수 폐하의 군인으로서, 전장에서 싸우리라! 전장에서 죽는다 한들 지극한 황은에 충정으로 보답하는 게 아니겠는가?"
사병 시절부터 따져 군대 생활 20년 차인 박대붕에게도 이런 끔찍한 전투는 처음이었지만, 적응의 달인답게 그는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병사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되는 엘리트 출신 소대장을 대신해 병사들의 마음을 휘어잡고, 용맹하게 싸우도록 이끌었다.
"소대장님, 이런 말씀을 드려 송구합니다만……."
"아, 편히 말하시오."
"소관 생각에 소대장님이 계셔야 할 곳은 사령부지 전선이 아닙니다. 대한국에 소대장님처럼 영국에서 교육받은 지식인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만약 소대장님이 전사하면 그만큼 나라에 손실입니다."
박대붕은 돌려 말할 줄 몰랐고, 투박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신익희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답했다.
"영국에서 공부할 때 전쟁이 발발했소. 당시 영국은 징병제가 아니었지. 그런데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학생들이 장교로 자원해서 나갑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소. 그들은 그걸 노블리스 오블리주, 위에 서는 자의 사회적 의무라고 하더군. 그들 중 상당수가 죽거나 불구가 됐소. 전쟁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영국을 대표할 인재가 되었을 사람들인데."
신익희는 담배를 박대붕에게 권하고, 자신의 입에도 담배를 물었다. 박대붕이 성냥으로 불을 붙여 주었다.
과거의 엄격한 반상구조에서는 양반 출신 장교와 상민 출신 하사관이 맞담배를 핀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이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풍토였다.
"글쎄요, 그들이 현명한 선택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그들을 본받고 싶었소. 허약한 지식인이었던 내가 이 강철 폭풍에서 살아남는다면, 다른 인간이 될 수 있으리라 믿고 싶소."
가방끈이 짧은 박대붕은 신익희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무슨 심경인지는 대충 이해가 됐다.
"알겠습니다. 그럼 소관이 소대장님을 보좌할 터이니, 끝까지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고맙소. 박 정교와 함께라면 죽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아요, 하하하."
신익희는 웃으면서 박대붕과 악수했다.
「쑥대밭이 된 전쟁터는 끔찍했다. 살아 있는 방어군 사이에 죽은 자들이 누워 있었다. 참호를 팔 때 우리는 그들이 겹겹이 층을 이루며 쌓여 있다는 걸 알았다. 한 중대의 뒤를 이어 또 다른 중대가 배치되고, 그 병사들은 집중포화 속에서 한꺼번에 몰살당했던 것이다. 시체들은 포탄이 터질 때 치솟아 올랐다가 쏟아져 내린 흙더미에 덮였고, 그 전사자들이 싸웠던 자리는 다른 병사들이 메웠다. 이제는 우리 차례였다.」
같은 시간, 서부전선에서는 동년배의 젊은 독일 중대장이 담담히 전쟁을 기록했다. 그의 이름은 에른스트 윙거(Ernst Junger)였다.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청년들은 기존과는 다른 세대였다. 그들은 무수히 많은 죽음을 경험했고, 지옥을 체험했다.
강철 폭풍 속에서 단련된 세대, 총력전과 전체주의를 내재화한 세대.
전장에서 새로운 세대가 탄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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