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군의 붕괴
8월 하순, 한국군단 사령부.
"현 상황은 어떻소?"
"예, 적군의 전열을 무너트리고 작전 계획대로 전진 중입니다."
홍범도 정장은 전선에서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으며, 참모장 노백린 부장과 함께 지도를 들여다봤다.
러시아 7군과 한국군단의 진격은 계획대로 밀고 나가고 있었고, 오스트리아 2군의 전선은 계속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홍범도는 문득 독립전쟁과 북벌전쟁의 전선이 떠올랐다. 마음만 같아선 자신이 직접 총을 들고 전선에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군단의 사령관으로서 전군을 지휘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홍범도는 유능한 지휘관이자 참모인 노백린의 보좌를 받으며 군대를 차분히 지휘했다.
"확실히 오지리(墺地利, 오스트리아)군은 독일군만 못하군."
"그렇습니다. 부대 단위로 항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한국군도 잘 싸우고 있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약체화가 눈에 띌 정도로 보였다.
"Kapitulation! Capitulation!"
"뭐라는 거야?"
"독어와 불어로 항복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좋아, 항복 접수한다고 해."
한국군이 상대한 부대 중에는 트란실바니아 출신의 루마니아인 부대도 있었는데, 이들은 헝가리인 지휘관을 사살하고 백기를 들어 투항했다.
다민족제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는 한계에 부딪혔다.
여전히 제국에 변함없는 충성을 바치고 있는 건 지배민족인 오스트리아인과 헝가리인뿐이었다. 여러 민족의 충성심은 사라져가고 있었고, 그나마 잘 싸우고 있는 건 크로아티아인 정도였다.
이미 별도의 국가를 가지고 있는 세르비아인, 이탈리아인, 루마니아인은 전혀 믿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체코 병사들도 정말 잘 싸우더군."
"공세에 나설 때는 오히려 러시아군보다 낫던데."
"우리 독립전쟁 때를 떠올려 보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병사들은 잘 싸울 수밖에 없어."
"하긴 그렇군."
러시아군의 일익을 맡고 있는 체코슬로바키아군단은 전원이 오스트리아군 포로 출신으로, 전향하여 체코슬로바키아 독립을 위해 싸우는 이들이었다. 임시정부는 범슬라브주의와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워 체코군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이들은 러시아 병사들보다 더 잘 싸운다는 평가를 받았다.
러시아 남서전선군 휘하 병력 중에서 가장 잘 싸우고 있다고 평가받는 부대가 한국군단과 체코군단이라는 기이한 상황이었다.
"폐하, 우크라이나 전선이 위태롭습니다."
"그뿐인가? 이러다간 우크라이나 전선뿐만 아니라 제국 전체가 위태롭네."
붕괴를 체감하고 있는 황제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더 늦기 전에 연합국과의 강화협상에 돌입하고 제국을 재편하려고 했지만, 독일의 간섭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독일은 엘자스-로트링겐(알자스로렌)을 프랑스에 돌려준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이탈리아에 트렌토-트리에스테를 할양하고, 미국과 러시아가 주장하는 민족자결을 최대한 반영한 다민족 연방제로 개편한다. 점령지에서 즉각 철수하고,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등 러시아의 지배를 받다 동맹국이 해방시킨 지역은 주권국가로 독립시킨다."
동맹국 입장에서도 비교적 합리적인 조건이었으나,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강화 구상은 독일 군부의 압박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엘자스-로트링겐을 프랑스에 내준다니, 어림도 없는 소리! 독일은 최종 승리의 그 순간까지 싸운다. 러시아는 한계에 도달했다. 러시아를 조속히 무너트리고 동부전선을 끝낸다!"
당장은 러시아군의 하계공세가 성공리에 진행되고 있었지만, 군의 붕괴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었다.
요컨대, 이제 동부전선은 누가 더 잘 싸우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러시아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중에 누가 먼저 무너지냐의 싸움이었다.
"남서전선군, 연전연승!"
"제7군, 프로스크로프(흐멜니츠키) 수복!"
"오스트리아군 포로 20만 이상!"
"오스트리아 제3군은 붕괴 직전!"
페트로그라드에 모처럼 승전보가 날라 들어왔다. 2주 만에 남서전선군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며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대파했다. 오스트리아군의 연전연패에 독일 남부군도 후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국주의자들에 맞선 혁명의 승리다!"
"이 전투는 이 전쟁의 발미 전투다!"
"혁명적, 애국적 러시아군 장병 동지들 만세!"
"위대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동포들을 해방시킬 것이다!"
임시정부와 소비에트의 혁명적 방어주의자들은 개가를 울렸다. 이는 무능하고 부패한 니콜라이 2세 정권을 무너트린 혁명의 성과였고, 상징적 승리였다.
프랑스 혁명군이 프로이센군을 격파한 1792년 발미 전투의 승리 이후 연전연승했듯이, 러시아에서도 혁명의 승리가 이뤄지리라는 낙관적 희망이 싹텄다.
"양국 군대의 승리는 곧 러시아-한국 동맹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함께 피를 흘린 러시아제국과 대한제국, 로마노프 왕가와 이왕가의 우호는 영원할 것입니다."
"귀국의 장병들이 우리 장병들과 함께 전선에서 분전하고 있다는 소식은 러시아 인민들에게 크나큰 기쁨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임시정부를 대표해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미하일 2세와 육해군장관 케렌스키는 대한제국 특사단에 감사를 표했다.
"대한제국 역시 승전보에 크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 승리가 연합국의 최종 승리와 러시아의 안정에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이진도 크게 기뻐하며 답례했다. 한국군과 러시아군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건 분명했다.
"축하합니다, 전하. 브론스키 장군과 한국군 모두 혁혁한 전과를 거두고 있으니 기쁘시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특히 이영에게 축하가 쏟아졌다. 남서전선군 사령관 브론스키 대장은 바로 이영의 장인이오, 한국군도 분전 중이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러시아군의 지휘자 브루실로프 장군 만세!"
"러시아 인민의 수호자 케렌스키 동지 만세!"
공세의 전략적 상징인 참모총장 브루실로프 대장과, 정치적 상징인 육해군장관 케렌스키를 향한 찬사가 쏟아졌다.
전략적 성패에 모든 걸 집중하고 있는 브루실로프와 달리, 케렌스키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공세의 성공을 토대로 급진좌파와 반동우파를 모두 밀어내고 제헌의회의 승리를 이끌 생각이었다.
‘겨우 한 전선에서 이겼을 뿐인데, 너무 설레발 아닌가? 기대가 컸다가 실패하면 실망도 큰 법인데.’
이영은 페트로그라드의 열광적인 분위기가 오히려 걱정스러웠다. 전쟁에서 이긴 것도 아니요, 한 전선에서 국지적인 승리를 거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황제와 임시정부는 지나치게 빨리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만큼 황제와 임시정부는 승리에 목말라 있었다. 작은 승리도 부풀려서 프로파간다로 만드는 판인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니 그 기쁨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스와 루마니아, 연합국으로 참전!」
1917년 8월 28일(율리우스력 8월 15일), 정교회 성모안식축일에 기쁜 소식이 연달아 들어왔다.
그동안 참전할지 여부를 고민하고 있던 그리스와 루마니아가 마침내 연합국으로 참전했다는 소식이었다.
"정교회 형제들이 함께 싸운다!"
"이제 이 전쟁은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다!"
그리스와 루마니아는 슬라브족은 아니었지만 정교회 국가이자, ‘러시아가 튀르크로부터 해방시킨’ 국가였으므로 러시아인들의 기쁨이 컸다.
그리스와 루마니아가 실제로 전략적인 가치가 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일단 아군이 늘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기쁜 일이었다.
"이는 명백한 연합국 외교의 승리다!"
"루마니아가 총동원령을 내려 70만 명을 투입시키겠다고 자신했소. 루마니아의 참전은 러시아에는 짐을 덜어 주고, 오스트리아-헝가리에는 더욱 큰 압박이 될 수밖에 없소."
"러시아, 이탈리아, 루마니아가 세 방면에서 공세를 퍼부으면,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몰락이 머지않았군요."
연합국은 동부전선에서 러시아의 이탈을 막고, 오히려 오스트리아-헝가리를 몰아내 승리가 가능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1917년 8월, 미국 참전부터 시작된 일련의 사건 전개는 연합국의 승리를 확신처럼 만들었다.
* * *
"페르디난트, 이놈은 호엔촐레른 가문의 일원으로서 어찌 본가를 배신할 수 있단 말인가!"
카이저 빌헬름 2세는 루마니아의 참전 소식에 격노했다. 루마니아 2대 국왕 페르디난트 1세는 호엔촐레른 가문의 방계인 호엔촐레른-지크마링엔 왕가였다. 그렇기에 초대 국왕인 카롤 1세는 명백히 친독적이었지만, 에드워드 7세의 조카사위인 페르디난트는 친영적이었다. ‘동방의 라틴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국민여론도 압도적으로 친불적이었다.
물론 그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연합국이 내민 전후 제안서가 동맹국이 내민 제안서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는 것이었다.
동맹국은 루마니아가 친독 중립을 유지해 주는 조건으로 러시아령 몰도바를 제안했지만, 루마니아는 러시아 남서전선군의 성공에 이끌려, 루마니아인이 다수 거주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령 트란실바니아와 부코비나를 할양받는 조건으로 전쟁에 뛰어들었다.
"오히려 끝까지 의리를 지키려던 매제는 왕위에서 밀려나다니!"
그리스는 카이저의 매제로 독일에 우호적인 중립을 유지하려는 국왕 콘스탄티노스와, 연합국을 지지하여 참전하려는 총리 베니젤로스의 극한대립 끝에, 베니젤로스의 국가방위정부가 승리하여 콘스탄티노스가 퇴위했다. 그리스는 불가리아령 트라키아와 그리스인이 다수 거주하는 오스만령 서부 일대를 할양받는 조건으로 참전했다.
"전 세계가 독일을 적으로 돌리는군."
"뭐, 그래도 솔직히 미국 참전에 비하면 그리스와 루마니아는 군사적으로 큰 의미가 없소."
"문제는 그동안 루마니아가 독일에 밀과 석유를 제공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무력으로라도 빼앗아 오지 않는다면, 연말이면 석유가 바닥날 겁니다."
"허! 연말에 영국의 전쟁수행능력을 끝장낸다더니, 우리가 끝장날 판이구려."
루마니아의 참전은 독일에 위기의식을 안겨 주었다. 루마니아군 자체는 큰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루마니아에는 석유 생산지인 플로이에슈티(Ploiesti) 유전이 있었다. 그동안 중립을 지켜 오던 루마니아는 독일에 석유를 판매하고 있었고, 참전하면서 당연히 석유 공급을 끊어 버렸다.
"폐하께서 루마니아에 느끼는 분노가 대단합니다. 루마니아는 확실히 박살 내야 합니다. 뭐, 폐하의 분노는 차치하더라도, 석유는 반드시 확보해야 해요."
"우선순위를 정합시다. 이대로 가다간 오스트리아가 먼저 무너질 판이니, 다시 동부전선에 집중합시다. 먼저 발트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몰아내고, 루마니아를 단기간에 점령해 밀과 석유를 확보한다. 그다음에 이탈리아를 격파하여 오스트리아가 받는 부담을 줄인다. 미국의 병력 투입은 내년 여름 이후로 예상되고 있으니, 그 전에 동부전선에서 러시아를 굴복시키고, 서부전선에 집중한다."
"좋습니다."
참모총장 힌덴부르크와 참모차장 루덴도르프는 당분간 서부전선 방어에 집중하고, 동부전선은 보조적인 입장으로 전략을 짰으나, 신속히 대전략을 수정했다.
마치 시계 방향처럼, 발트-우크라이나-루마니아-이탈리아-프랑스 순으로 공세를 펼치겠다는 계획이었다.
루마니아의 참전은 역설적으로 ‘동부전선주의자’ 루덴도르프의 관심을 다시 되돌리게 했다.
여전히 서부전선에서는 영불 연합군의 공세가 치열하게 이어졌지만, 독일군은 지크프리트 라인으로 후퇴해 방어에만 집중하고 예비병력을 모두 동부로 돌렸다. 독일군의 역공이 준비되었다.
"북부군은 라트비아로 진격해 리가를 점령한다. 남부군은 반격을 개시해 러시아군을 다시 원래 전선으로 되돌린다."
명목상 동부전선 총사령관인 바이에른의 레오폴트 대공을 대신하여, 참모총장 경질 이후 좌천되었던 팔켄하인 대장이 실질적인 사령관으로서 동부전선의 지휘권을 잡았다.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지휘권도 장악해, 독일군에 완전히 종속되었다.
"첩보에 따르면 러시아군 중에 공세에 열정적인 건 일부 부대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열의가 없다. 적의 희생을 늘려 전의를 꺾어라! 적의 공세를 물리치고 역공에 나서면, 적은 전의를 잃고 마치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이다."
팔켄하인은 러시아군의 약점을 꿰뚫어 보았고, 작년에 실패했던 동부전선의 공세를 자신이 직접 성공시키겠다고 자신했다.
"전군, 포격 개시!"
"발사!"
9월 7일, 북부전선에서 독일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독일군 단독으로 진행된 반격은 맹렬하게 전개되었고, 북서부전선군의 제12군은 큰 타격을 입었다.
"리가를 사수하라! 리가를 내주면 레발(탈린)이 위험하고, 레발이 위험하면 페트로그라드가 위태롭다!"
임시정부는 라트비아 공격에 놀라 서부전선군의 병력을 일부 빼내 리가로 보냈다. 페트로그라드 다음가는 발트해의 항구인 리가의 함락은 임시정부의 위신에 큰 타격을 줄 터였다.
남서전선군의 공세에 보조를 맞추던 서부전선군의 전력 약화는, 바로 독일군이 노리는 바였다.
"반격을 개시한다! 러시아군을 다시 밀어내라!"
9월 15일. 독일 남부군, 서부전선에서 합류한 병력, 전열을 재정비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우크라이나에서 역공을 감행했다.
러시아군 자원자로 선발된 공격부대, ‘충격부대’는 최전선에서 용맹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독일군의 반격은 바로 이 충격부대에 집중되었다.
"충격부대가 전멸했다!"
"제길, 그럼 이제 어떡하지?"
공세에 가장 열의를 보였던 충격부대가 연이은 전투에 모두 소모되자, 러시아군 병사들은 전투에 나설 마음이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반격 개시 후, 독일군은 불과 10개 사단으로 러시아군 20개 사단을 격파하고 몰아내 버렸다.
"퇴각! 퇴각하라!"
"야, 이놈들아! 사령부에서 퇴각 명령은 없었어! 전선을 사수하란 말이다!"
"그럼 여기서 앉아서 죽으라고? 우린 이따위 전쟁에 개죽음당할 수 없다!"
"병사 탓하지 마라! 너희 멍청한 장교들이 전황을 이렇게 만들었잖아!"
곳곳에서 항명과 탈영이 속출했다. 특히 독일군의 공세가 집중된 11군은 완전히 붕괴 직전까지 몰려 버렸다.
"항명하고 탈영하는 자들은 즉결 처분하라!"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전선의 처형에 반대하던 군대위원회조차 탈영병을 사살하라는 명령에 동의했지만, 군율이 붕괴하여 퇴각하는 병사들은 아군이든 적군이든 총을 쏠 생각이 없었다.
"이 무슨 추태란 말이냐! 나폴레옹을 무찌르던 러시아군의 애국심과 용맹은 대체 어디로 갔는가!"
남서전선군 사령부는 개탄을 금치 못했다. 11군의 붕괴는 마치 전염병처럼 7군과 8군으로 확산됐다.
9월 19일. 러시아군은 거의 무너져 내렸고, 22일까지 240km 동쪽으로 후퇴했다. 기껏 수복한 영토는 다시 독일군의 손에 넘어가고야 말았다.
"이제 러시아군의 능력과 의지는 믿을 수 없게 됐다. 연합국이 동부전선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
러시아군의 붕괴 위기는 연합국에 큰 타격이었지만, 역설적으로 한국의 존재감을 강화시켰다.
러시아는 더 이상 동양 문제에 관여할 수 없는 처지가 됐고, 이는 곧 한국의 행동범위가 넓어진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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