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560화 (559/812)

241화 증파(增派)

"폐하, 주미대사관의 전문입니다."

"음, 알겠네."

이승만은 하우스를 움직였고, 하우스는 윌슨을 움직였다. 이선의 계획대로였다.

한국은 러시아 추가 파병의 대가로, ‘동양의 민족자결’을 위한 미국의 보증을 받았다.

새로운 이승만-하우스 밀약은 11년 전 김옥균-태프트 밀약과 유사한 측면이 있었다.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태평양 전략에 맞춘 외교 전략 변화였다.

물론 차이점도 분명했는데, 제국주의자이자 사회진화론자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국제주의자이자 이상론자인 우드로 윌슨의 성향 차이에 근거했다.

루스벨트는 미국의 국익을 앵글로색슨 문명의 우위라는 사회진화론적 관점에서 재편하려 했고, 윌슨은 미국의 국익을 국제주의와 민족자결주의로 포장하고 싶어 했다.

‘미국의 장단을 최대한 맞춰주는 척하면서 대한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전후에 미영프 삼국이 유럽의 지도를 새로 그리듯이, 동아시아의 지도는 대한이 그린다.’

이선은 신해혁명 직후부터 해 왔던 구상, ‘동양의 민족자결주의’를 본격적으로 실현할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만주, 몽고, 회족(무슬림), 장족(티베트)은 엄연히 중화민족과는 다르다. 물론 이들은 대청국의 일원이자, 역사적으로 중화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중국 한족과 같은 민족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20세기 초, 신채호를 비롯한 대한제국의 역사학자들은 근대적 민족주의 이론을 동양의 역사적 관점에서 새로 적용하였다.

"한국을 보라! 조선은 한때 소중화를 자처할 만큼 철저한 유교 국가였다. 문명의 척도를 중화냐 아니냐로 가릴 정도로 중화문명권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하여 조선이 중국과 같은 민족이었는가? 결코 아니다. 중화라는 건 근대적 의미의 민족이 아니라, 전근대의 동양 보편문명을 상징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중화는 서양으로 비유하자면 로마와 같다. 로마의 후예는 반드시 이탈리아만이 아니다."

한국 역사학자들은 ‘중화’와 ‘중국’을 분리하여, 중화는 ‘문명(civilization)’이지 근대 중화민국이라는 ‘국민국가(nation state)’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설파했다.

"대청국의 성격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대청국은 중국 역대왕조의 연장선인가? 그렇지 않다. 대청 황제는 중화의 수명천자(受命天子)이자, 대금국을 계승한 만주의 한(汗)이자, 대몽골을 계승한 몽골의 칸이자, 티베트의 불법을 수호하는 전륜성왕이자, 신강 이슬람의 보호자이다. 오늘날 대청국을 구성하는 영역은 중국과는 다른 역사와 정체성을 가진다."

한국 역사학자들은 대청제국을 한껏 치켜세워 줬다. 이들 지역이 중국에서 분리한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진 채로 하나로 묶이려면, 청나라의 역사적 기억을 긍정적으로 포장해 공유해야 했다.

"그렇다면 대한과 만주의 관계는 어떤 역사적 연원을 갖고 있는가? 고구려의 후예는 발해와 고려요, 고려를 계승한 나라가 조선과 대한이니, 대한은 고구려의 직계 후예다. 고구려와 발해를 함께 구성했던 부족인 말갈의 후예가 여진이요, 여진을 계승한 민족이 만주이니, 만주는 고구려의 방계 후예다. 두 민족은 실로 형제와도 같다."

역사는 해석하기 나름이었다. 과거에는 ‘오랑캐’라 불리며 증오와 멸시의 대상이었던 여진-만주가 조선-한국의 형제 민족으로 격상됐다.

"대한은 약소국이었으나 빠르게 서양 문명을 습득하여 당당한 열강의 일원이 되었다. 동양 천하에 군림했던 대청은 쇠락하여 사직의 안위조차 위태롭게 되었으니, 역사의 변화란 이토록 놀라운 일이다. 몰락의 위기를 처한 형제를 어찌 두고만 보겠는가. 북방민족의 맏형인 대한이 대청을 지도하여 당당한 열국의 일원으로 세상에 자리를 잡게 해 주어야 한다."

근대 한국민족주의, 고구려 계승의식, 범민족주의, 투란주의가 결합한 새로운 이론은 만주와 중국의 관계를 끊어 버리고, 한국과 만주의 관계를 불가분의 관계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조선 역사의 해석에도 변화가 생겨났으니, 그동안 ‘폐주’, ‘혼군(昏君)’으로 규정되었던 광해군의 위상이 300년 만에 복권되기 시작했다.

"광해군은 비록 악업을 저지르기는 했으나, 대국적인 견지에서 만주와의 화친을 지켜 냈다. 실로 혜안을 내다본 탁월한 외교의 군주가 아니겠는가?"

물론 이런 이론에 한국인들도 반감을 갖지 않는 건 아니었다.

"왜 우리가 북방민족인가? 오래 전부터 예와 덕을 지켰던 우리가 어째서 만주 오랑캐와 형제란 말이냐? 하물며 몽고, 회회(무슬림), 서장이 어찌 우리의 형제일 수가 있는가! 병자년 삼전도의 치욕을 잊었는가? 그 치욕을 생각하면 심양을 불태우고 황태극(청태종 숭덕제)의 무덤을 파헤쳐도 시원치 않다."

"비록 병자년에 청국은 조선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 주었으나, 이는 경자년(1900)의 북벌로 극복하였다! 북벌의 대업을 이룩하신 성상께서도 관용으로 적을 대하였다. 하물며 임진년의 참상을 저지른 일본과도 동맹이 되었거늘, 어찌 옛 원한에 매몰되어 대세를 그르치랴?"

대한이 중화의 정통을 계승했다고 믿는 보수유림들은 박은식과 신채호를 비롯한 개신유림이 견강부회(牽强附會)한다고 생각했다.

「중화의 정통은 한-당-송-명으로 이어지며, 대명을 계승한 나라는 청조가 아니라 대한이옵니다.

청조는 오랑캐의 무리요, 오늘날 중화민국을 자처하는 자들은 충효를 저버리고 제 주군을 배신한 역적들이니, 논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오직 대한만이 정통 중화의 후계로서 찬란히 빛날 뿐입니다.

중화는 오랑캐를 위엄과 덕으로 위무(慰撫)해야지, 저 경박한 무리들은 어찌 오랑캐에게 형제 운운하며 폐모살제라는 악업을 저질러 폐위된 광해군까지 복권시키려한단 말입니까. 성상께서는 실로 천명을 계승하신 천자이시오니, 바라옵건대 청천의 대의(大義)를 분명히 하시어 왕도를 구현하시옵소서.」

삼남 유생들이 연명으로 바친 상소를 본 이선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아직도 이런 노인네들이 남아 있었나?"

보수유림은 개화정책을 주도한 이선을 오랫동안 반대해 왔으나, 북벌전쟁의 승리 이후 태도를 돌변했다. 보수유림은 이선에게 ‘정통 중화의 천명을 계승한 위대한 군주’라는 칭호를 안겨 주었고,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만주로 파천하고 중화민국이 수립되자 그런 태도는 더욱 강화되었다.

"청조가 비록 오랑캐라 할지라도, 중국인들이 청조의 녹을 먹은 지가 근 300년이다. 그런데도 반역하여 군주를 핍박한 야심가들이 중화민국을 운운하니, 충효를 저버린 역적들을 어찌 중화라고 인정하겠는가!"

"만청을 대한의 제후국으로 삼고, 민국을 자처하는 역적들을 토벌하여 중화를 바로 세우자!"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역설적이게도, 보수유림이 가장 강경한 반청·반중주의자가 되었다. 이들은 결코 ‘중화민국’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강경한 대외팽창론자인 제국당이 보수유림들과 손을 잡으니, 제국주의를 신봉하는 팽창주의자와 성리학을 신봉하는 유림들의 기이한 연합이 형성되었다.

‘만주는 대한의 위성국이자 완충국으로 삼고, 중국은 분열시켜 시장으로 삼으면 족하다. 뭔 시대착오적인 제후 타령이야. 상대의 자존심을 세워 주고 실리만 빼 오면 되는 일이지. 하여튼 명분론자들이란…….’

이선은 제국주의자와 유림들이 뭐라고 떠들든 간에 무시하고, 계획대로 일을 추진했다.

"러시아 정부와 연합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한국은 증파를 결정했소."

"하오면 얼마나 증파할지요?"

"러시아는 최소 1개 군단을 파병해 주길 바라고 있소. 3개 사단은 보내야겠지."

황제의 말에 원수부는 놀랐다. 1차 파병보다 더 많은 병력이었다.

"국군이 3개 사단을 파병하는 건 군사적으론 어렵지 않은 일이나, 이만한 병력을 멀리 유럽까지 파병하려면 비용이……."

"아, 그건 걱정 안 해도 되오. 비용은 미국과 러시아가 분담하기로 했소."

미국은 한국의 동부전선 증파에 만족했고, 파병 비용의 대부분을 자신들이 부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즉각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증파에 대비하여 계획을 세워 둔 거로 아는데, 어느 부대를 보낼 생각이오?"

원수부를 대표해 참모총장 박승환 정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파병된 9사단과 같은 3군단 소속인 5사단과 7사단을 예정했습니다. 3군단의 파병으로 발생하는 공백은 3사단과 13사단을 북방에 배치하여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소. 그럼 1개 사단을 더 포함시켜야 하는데. 근위사단을 보내는 게 낫지 않겠소?"

"이미 제2근위사단을 파병했는데, 제1근위사단까지 보낸다면 유사시 황성과 서경의 방어는 누가 맡겠습니까?"

"황성은 수도군단 산하 1사단과 12사단이 맡으면 되고, 서경은 10사단이 맡으면 되오."

근위사단은 이름 그대로 황제를 ‘근위(近衛)’하는 부대였지만, 이선은 개의치 않았다.

제1근위사단은 인적자원으로 보나, 편제와 무기로 보나 대한제국 최정예부대였다. 파병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상대로는 분전했지만, 세계최강인 독일군을 상대로는 무리였다. 최정예인 제1근위사단은 되어야 대적 가능할 수 있었다.

"유사시에 대한 걱정은 없지만, 만약 동양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동원령을 내려야지."

주변국을 생각하면 걱정할 건 없었다. 일본이 아무리 신뢰할 수 없어도 동맹관계요, 청국은 한국에 안보를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중국은 잠재적 적국이긴 하나 군벌들의 난립으로 산산조각 난 상태였다.

한국은 총동원령을 내리면 완전무장한 70만 대군이 소집 가능했고, 서양 열강과 비교하면 작은 규모였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최대 규모였다. 일본이 해주육종을 택하고 육군을 감축하면서, 상비군 수는 오히려 한국이 더 많았다.

"자, 그러면 참모총장이 군무대신과 함께 파병의 실무를 맡아 주길 바라오."

"삼가 명을 받들겠습니다, 대원수 폐하!"

광무 21년 10월, 대한제국은 3개 사단 증파를 결정했다. 규모는 제1근위사단, 제3보병사단, 제7보병사단 3개 사단 4만 8천 명이었다.

1차 파병과 달리 증파는 빠르게 결정되었다.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정부는 신속히 파병을 선언했고, 의회도 마찬가지였다.

"의원 동지 여러분! 국군 증파는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고, 연합국과 우방 러시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며, 대한의 국익을 지키기 위한 선택입니다."

"미합중국, 대영제국, 프랑스공화국, 이탈리아왕국 이하 모든 연합국은 러시아의 자유 수호를 위해 투쟁하는 대한국군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운 미국이 증파를 요청하고, 안창호와 전봉준으로부터 러시아 상황을 들은 신민당과 진보당은 고심 끝에 1차 파병과 달리 반대표를 던지지 않기로 했다. 일부 의원들은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았으나, 당 지도부의 요청으로 반대가 아닌 기권을 했다.

"민의원은 찬성 175, 반대 0, 기권 25로 국군의 러시아 증파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중추원은 만장일치로 국군의 러시아 증파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지휘권의 단일화를 위해 별도의 파병군 사령관을 임명하지 않고, 각 사단은 홍범도 정장의 지휘하에 들어가도록 했다.

보병 5개 사단, 기병 1개 사단, 해병 1개 여단으로 구성된 파병군은 기존의 군단급에서 야전군급으로 격상되었다. 한국이 대외전쟁에 야전군을 파병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총병력 9만 3천 명, 유럽 전선에 배치된 병력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이기는 했으나,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군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러시아 임시정부 입장에서는 이조차도 천군만마나 다름없었다.

"제1근위사단은 대원수 폐하의 명을 받들어 러시아 출정을 선포합니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충용무쌍한 국군이여, 승리를 갖고 돌아오라!"

평양에 집결한 2차 파병군은 국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만주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파병군이 탄 열차의 1등석에는 대한제국이 청국에 파견하는 특명전권대사가 탑승했다.

그는 바로 이완용이었다.

며칠 전, 평양 흥경궁.

"일당(一堂), 경에게 묻고 싶은 게 있소."

"하문하시옵소서, 폐하."

이선은 주러시아대사에서 물러나 귀임한 이완용을 흥경궁으로 불러들였다.

"경은 대한의 관료 중에 청 황실과 가장 돈독한 관계를 맺지 않았소?"

"어찌 돈독하다 하겠습니까? 삼가 황명을 받아 외교의 대임을 수행했을 뿐입니다."

이완용은 혹시 예전에 청 황실로부터 거액의 은사금을 받고도 보고하지 않은 게 들켰나 싶어 뜨끔했다. 물론 이완용은 언제나 사세를 살폈으므로, 뇌물을 받았다고 해서 딱히 망해가는 청조를 위해 일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대한제국의 국익을 청국에 관철하는 데 앞장섰다.

"허, 그렇단 말인가. 경이 주청공사를 지낸 세월이 길어 특별히 경에게 만주의 대임을 맡기려고 하였는데, 그리 돈독하지 않다면야. 그렇다면 차라리 금릉위(박영효)에게 맡기는 게 낫겠군."

대임(大任, 중대한 임무)이라는 황제의 말에 이완용은 재빨리 태도를 바꿨다.

"어찌 국가의 원훈에게 외교의 번거로운 일을 맡기겠습니까? 황공하오나, 만주의 일이라면 신이 자신 있습니다. 무엇이든 황명을 내려 주시옵소서."

"좋소. 짐은 경이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있소. 경은 주미공사를 지낸 바 있으니, 미국인들하고도 잘 통하지. 주러대사도 역임하며 협약을 맺은 당사자이기도 하고."

"모두 성상의 현명하신 하명을 따랐을 뿐이옵니다."

"너무 겸양 떨 것 없소. 아무튼, 최근 주미대사 이승만이 미국과 합의를 하였소."

이선은 한미 간에 합의된 사항을 이완용에게 일러 주었다. 이완용은 외교관으로서 30년간 활동했기 때문에, 외교무대에서 잔뼈가 굵었다. 합의의 숨은 뜻이 무엇인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곧 2차 파병군이 만주를 통과할 예정이오. 그때 경도 함께 청국으로 가 새로운 조약을 맺으시오."

"예, 폐하. 조약의 내용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음. 짐이 총리, 원훈과 함께 논의한 사항이오."

이선은 극비라고 적힌 대청(對淸)외교강령을 이완용에게 전달했다. 항목들을 모두 읽은 이완용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명분과 문장은 그럴싸해도 만주 병탄으로의 길인가. 그렇다면 나만 한 적임자도 없지. 대임을 완수하면, 총리대신 자리도 멀지 않겠어.’

"신 이완용, 삼가 황명을 받들어 만주로 가겠나이다."

"좋소. 경의 외교력을 믿도록 하지."

이선도 내심 냉소를 흘렸다. 과연 그만한 적임자도 없었다.

‘조선을 일본에 팔아먹은 이완용이, 여기서는 만주를 대한에 팔아먹겠군.’

물론 이선은 이완용에게 외무대신 이상의 자리를 시켜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완용이 제법 능력은 있어도, 국민의 대표자란 지위에 오를 자는 아니었다. 이완용의 역할이란 바로 제국의 사냥개였다.

- 24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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