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575화 (574/812)

256화 죽음의 청기사

"쌀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을 죽여라!"

"정치 모리배들을 몰아내자!"

일본군의 러시아 파병으로부터 시작된 ‘쌀 소동’은 전국적으로 격화되었다.

러시아처럼 경제적 요구가 정치적 요구로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 일본 정부는 경찰력이 아닌 군대를 투입시켜야 했다.

탄압과 동시에 일본 정부는 민심을 돌리기 위해 매점매석을 금지시켜 위반한 상인들을 체포했다.

"가격을 몇 배로 쳐도 좋으니 쌀 수출량을 늘려 주십시오. 우리는 동맹 아닙니까?"

"귀국의 사정이 그렇다면야,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지요."

일본은 한국에 긴급히 요청해 쌀을 고가에 수입해서 저가에 공급해 미곡가를 떨어트렸다.

강온양면 정책으로 전국적 소요는 잠잠해졌지만, 일본 민중이 예전처럼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걸 분명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국민의 머리에 붉은 물이 들기 전에 미리 차단해야 한다."

러시아혁명의 여파가 일본에도 불어 닥칠 것을 우려한 원로 이토 히로부미는, 양보의 필요성을 느꼈다.

쌀 소동의 책임을 놓고 국민여론, 정당, 원로가 일제히 공박하자 고토 내각은 총사퇴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 파병이 발목을 잡은 셈이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의무,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후임으로는 전 내무대신이자 입헌정우회 총재인 하라 다카시가 취임했다. 귀족, 관료, 군인이 아닌 최초의 ‘평민 총리’였다.

하라 내각은 전원 입헌정우회 정당인으로 구성되어, 영국식 정당중심내각제를 실현하고자 했다.

"이번 내각에서 참정권 개혁에 나섭시다."

하라 자신은 보통선거권을 부정하는 엘리트주의자이자 보수적 자유주의자였지만, 시대의 흐름이 바뀌었으며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인지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바람이 마침내 정치개혁으로 확산될 때가 온 것이다.

* * *

대한제국 평양 흥경궁.

‘러시아 정부가 사회민주주의 국가를 자처하지만, 소비에트와는 달리 세계혁명을 부르짖지는 않지. 이번에 단단히 은혜를 입혀 놨으니, 섣부른 행동은 하지 않을 터.’

이선은 주한러시아대사 포타포프를 불러들였다.

"페트로그라드 전투의 승리에 모든 대한국민이 기뻐마지 않습니다."

"러시아에서도 그렇습니다. 귀국의 호의와 귀국 군대의 분투로 러시아는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고맙소, 대사. 동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요."

대사의 찬사에 이선은 웃으면서 표정관리를 했다.

"이로써 우리 두 나라는 함께 피를 흘린 혈맹이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실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함께 흘린 피를 토대로, 양국의 동맹이 앞으로도 튼튼한 성벽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입니다. 러시아인들은 함께 피를 흘린 동지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러시아제국 시절만큼은 아니어도, 한국은 신생 러시아민주연방공화국과도 동맹 관계를 유지했다. 이제는 혈맹이란 의미까지 부여할 수 있었다.

‘내밀어야 할 청구서가 여러 가지인데. 어느 것부터 내밀어 볼까.’

이선은 승리에 도취되지 않았다. 차분히 러시아와 연합국에 청구서를 내밀 때를 기다렸다.

"러시아 인민의 위대한 승리다!"

"러시아 민주주의연방공화국은 함께 싸운 연합군 동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만세! 만세!"

페트로그라드 전투 승리에 모두가 기뻐했지만, 수도의 지척에서 침략자를 몰아낸 러시아인의 기쁨이 가장 컸다.

2세기동안 제국의 수도로 국가의 기능이 집중된 페트로그라드가 함락되었더라면, 아무리 모스크바로 수도를 임시 이전했다 할지라도 러시아는 전의를 상실하고 즉각적인 강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국의 동지들이여! 러시아 인민은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러시아 군민의 영웅적인 분투가 있었기에 가능한 승리였습니다."

러시아공화국 정부와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를 대표해 혁명군사위원장 트로츠키가 한국군에 감사를 표했다.

페트로그라드 방어의 성공으로 정치적 주가가 가장 오른 정치가는 단연 트로츠키였다.

혁명군사위원장으로서 시민들을 고취하고, 동원하고, 행정을 이끌며 군에 힘을 실어 준 장본인이었다.

그 과정에서 독단적인 면모를 모여 사회주의자들에게 비판을 받았지만, 승리가 모든 걸 상쇄시켜 주었다.

사회민주노동당의 탁월한 연설가지만 독자적인 조직이 없어 ‘고독한 독수리’라고 불렸던 트로츠키지만, 페트로그라드 시민과 군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되었다.

우익은 트로츠키가 사회주의자에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혐오했지만, 승리는 전국적인 영웅으로 떠오르게 했다.

"만약 페트로그라드가 함락되었다면, 어찌 되었을 까요?"

"솔직히 말해서, 방어선이 뚫려 페트로그라드가 위기에 처하면 정부는 독일에 강화를 요청하려고 했습니다. 국력이 한계에 도달했고, 반전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으니까. 그런데 만약 그리되었다면 독일은 반드시 가혹한 강화조건을 내걸었겠지. 단결은 무너지고, 지금은 입을 다물고 있는 우익이 공화국을 무너트리려 했을지도 모르지요."

조한민의 물음에 트로츠키가 솔직히 답했다.

페트로그라드는 ‘혁명의 수도’였고, 신생 러시아 민주연방공화국에는 성지나 다름없었다.

혁명의 탄생지를 빼앗겼다면, 가뜩이나 불안정한 러시아 민주주의는 치명적인 위신의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신정부를 부정하는 극우 왕당파, 극좌 무정부주의자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을 터였다.

결과적으로 페트로그라드 전투의 승리는 러시아 민주연방공화국을 수렁에서 건져 냈다.

"내전이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은 독일이란 공동의 적이 있기 때문에 우익이 잠잠하지만, 공동의 적이 사라지는 순간 결국 서로를 겨누게 될 겁니다. 수백 년 내려온 갈등이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결국 사생결단을 내야 하겠지. 서방 제국주의자들도 독일을 무너트리고 나면, 러시아의 사회주의 정권을 용인하려고 하겠습니까?"

트로츠키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는 말과 법으로만 공화국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군대, 그것도 잘 무장하고 조련된 군대가 필요했다. 우익에 맞서 군대의 충성심을 얻어야 했다.

"연합국은 러시아 국민의 의지를 존중합니다. 현재 20만의 연합군이 러시아를 지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아, 일본군 8만도 추가되겠군요. 늦게나마."

"하, 일본의 의도가 너무 빤히 보여서 우스울 따름입니다. 자국민의 분노도 총칼로 탄압하면서, 무슨 군대를 파병한다고."

일본군의 러시아 파병은 예정대로 진행되었지만, 이미 동부전선은 사실상 종결 상황에 접어든 터라 큰 의미가 없었다.

독일군은 서부전선에서 계속되는 연합군의 공세를 막느라 급급했다. 동부전선의 병력을 빼서 서부전선으로 돌리고, 동부에서는 점령지 방어에만 나섰다.

러시아군도 무리하게 공세에 나설 여력이 없었으므로, 페트로그라드에서 가까운 나르바와 석탄이 풍부한 돈바스 일대를 탈환하는 선에서 반격을 중단했다.

"전쟁이 끝나면 당연히 철수하게 될 겁니다."

"그래야지요. 러시아 인민은 국내 문제에 외국이 관여하는 걸 원치 않으니까.

"물론입니다. 그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집니다. 정치변화는 자국이 알아서 할 일이지요. 소비에트에서 부르짖는 세계혁명이 불화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국제주의자’ 트로츠키는 러시아 내에서 ‘연속혁명론’을 대표했다. 연속혁명이란 곧 세계혁명을 의미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합니다. 내 말은 단순히 정치적 수사법은 아닙니다만, 사회주의 국가가 생존하려면 혼자 살아남을 순 없습니다. 이웃나라의 혁명은 필연이지요."

"울리야노프 선생도 그리 말하더군요. 하지만 그건 유럽, 특히 독일이 대상이라 하였습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가요? 뭐, 그 동지라면 그렇게 말하겠지만. 나는 입장이 다릅니다."

조한민이 울리야노프와 맺은 협정에 대해 암시하자, 트로츠키는 울리야노프를 향해 묘한 경쟁심을 드러냈다.

"뭐, 좋습니다. 러시아 인민이 귀국에 빚을 진 건 사실이니까. 아시아에 혁명이 무르익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귀국에 맞서 아시아 문제에 개입하려고 하진 않을 겁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유럽, 그중에서도 독일과 중동부유럽입니다."

트로츠키도 ‘연속혁명’의 대상이 유럽이지 아시아가 아니라는 데 동의했다.

"좋습니다. 그럼 일전에 말씀드린 차르 일가의 망명은……."

"그건 곤란합니다. 러시아 인민과 혁명은 차르를 심판할 역사적 의무가 있어요. 혁명은 차르를 재판정에 세울 겁니다."

"이제 그는 차르가 아니라 일개 시민, 니콜라이 로마노프일 뿐입니다."

"하지만 차르였던 과거가 사라졌던 건 아니지요. 그의 범죄가 처벌받아야 하는 건 물론이고, 차르라는 이유만으로도 재판정에 서야 합니다. 프랑스혁명이 루이 16세를 재판정에 세웠듯이."

트로츠키는 단호하게 답했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좌익 정치가들 대부분이 그런 입장을 취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재판을 미루고 있을 뿐이었다.

조한민은 예상했다는 듯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그의 가족들까지 죄가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혁명이 어린아이들한테까지 연좌제를 적용하지는 않겠지요?"

"흠, 나도 두 딸과 두 아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순수하지요. 어떻게 교육받느냐에 따라 변화할 수도 있고. 아이들은 새로운 삶을 살 권리가 있지요."

아무리 사회주의자들이 차르에 대한 적개심이 강해도, 가족들까지 원한을 갖는 건 아니었다.

차르는 용인하지 않아도, 그 아이들의 망명은 눈감아 주겠다는 태도였다.

"어차피 이르쿠츠크는 귀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쉬운 곳이니.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차르는 안 됩니다. 이건 그 누구도 용납하지 못할 겁니다."

"그럼 본국에 그리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조한민은 현재 러시아의 ‘3두’라 할 수 있는 사회혁명당의 체르노프, 사회민주당의 울리야노프에 이어 트로츠키의 동의까지 모두 얻었다.

"아, 예전에 테러리스트였다가 코르닐로프 쿠데타에 연루되어 추방된 사빈코프란 인물은 압니까?"

"물론 압니다. 전 국방차관이었던."

과거의 사회혁명당 테러리스트에서 우익 애국주의자로 전향한 사빈코프는 코르닐로프 쿠데타에 연루되어 당에서 추방당했다.

"얼마 전 사빈코프가 극동으로 향했습니다. 목적이 뭐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자가 공화국에 반대하는 지역 군인들과 결탁해 반란이라도 생각한다면 곤란한 일입니다. 극동은 귀국의 영향권이기도 하니, 요주의 인물로 다뤄 주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조한민은 문득 사빈코프가 쓴 책을 떠올렸다.

≪창백한 말≫, 혹은 ≪죽음의 청기사≫.

어쩌면 그는 아직도 옛 테러리스트의 심리로, 죽음을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 *

≪요한묵시록≫은 재앙을 불러일으키며 세계를 멸망시킬 ‘묵시록의 4기사’에 대해 언급한다.

정복 혹은 질병을 상징하는 하얀 말의 백기사, 전쟁을 상징하는 붉은 말의 적기사, 기근을 상징하는 검은 말의 흑기사, 그리고 죽음 그 자체를 상징하는 창백한 말의 청기사.

이는 고대인의 상상에서 비롯된 은유였겠지만, 1918년 유럽에서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시작은 전쟁이었다. 붉은 말이 유럽을 달리니, 수많은 사람이 전장에서 쓰러져 갔다.

다음은 기근이었다. 검은 말이 유럽을 달리니, 수많은 사람이 굶주림에 시달렸다.

다음에는 질병이었다. 하얀 말이 유럽을 달리니, 수많은 사람이 병에 걸려 고통에 시달렸다.

마침내 종장에는 창백한 말이 유럽을 달리니, 청기사가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거둬 갔다.

‘대전쟁’, ‘순무 기근’, ‘스페인 독감’, 그리고 죽음. 1918년 유럽의 현실이었다.

전쟁은 공평하게 찾아왔으나, 기근과 전염병은 나라마다 상황이 달랐다.

해상이 봉쇄된 독일과 중부동맹국은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렸고, 1917-18년 겨울이 되자 기근이 현실이 되었다.

끝없는 전쟁과 굶주림 속에서, 정체모를 전염병이 유럽을 덮쳤다.

"올해는 독감 환자가 너무 많은데."

"지독한 독감이야."

전염병의 기원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스페인 독감이란 이름이 명명된 건, 순전히 오해의 산물이었다. 스페인도 피해자였다. 교전국들은 전시 언론검열로 인해 보도가 최소화되었지만, 중립국인 스페인은 독감에 대해 자유롭게 보도했다. 타임지 스페인 특파원은 ‘스페인 독감’이라 명명했다. 단지 그 때문에, 스페인 독감이 되었다.

기원의 추정은 가능했다. 1918년 여름, 미군이 본격적으로 유럽에 매달 수십만 대군을 파병하기 시작했다. 8월 하순, 공교롭게도 미군이 대규모로 상륙하는 프랑스 항구 브레스트를 기점으로, 전염병이 유럽 전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단순한 독감인 줄 알았으나, 이는 전례가 없었던 인플루엔자 대유행이었다.

원 역사보다는 몇 달 늦은 팬데믹의 출현이었다. 미국의 참전이 원래보다 늦어졌고, 그만큼 대규모 파병도 지체된 때문이었다.

"전군, 공격개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독일은 무너진다!"

"올해는 반드시 크리스마스 전에 전쟁을 끝내자!"

7월 14일의 1차 공세에 이어, 8월 15일 연합군은 2차 총공세를 개시했다.

프랑스군을 주공으로, 영국군과 미군을 조공으로 하는 연합군 대공세는 예전의 공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고, 독일이 자랑하던 힌덴부르크 라인은 붕괴의 조짐을 보였다.

"개전 이래 독일군 최악의 날이다. 승리의 가능성은 더더욱 줄어들고 있다."

그 누구보다 승리를 자신했던 루덴도르프조차 이렇게 뇌까릴 정도였다. 독일군, 아니 독일제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병참감이 신경쇠약에 빠졌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연합군의 거센 공세를 간신히 버티던 독일군 참호에, 전쟁의 적기사와 기근의 흑기사를 이어, 정복의 백기사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독일군은 스페인 독감을 ‘아메리카 독감’, 혹은 더 무시무시하게 ‘블리츠카타르(Blitzkatarrh)’라고 불렀다. 번개감기란 의미로, 걸리면 곧바로 죽는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다.

"독감으로 쓰러지는 병사들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빌어먹을! 하필 이런 상황에!"

일반적으로 독감은 아이와 노약자에게 더 취약한 법인데, 이 번개감기는 정예 돌격대의 병사들을 비롯해 나이와 건강에 상관없이 모든 병사들을 감염시켰다.

서부전선의 연합군도 독감에 의한 피해가 컸지만, 독일군은 기하급수일 지경이었다. 9월말까지 100만이 넘는 독일 병사가 독감에 걸렸다.

전염병이 연합국보다 동맹국에 더 치명적인 이유는, 봉쇄와 누적된 기아로 인해 전염병에 더 취약했기 때문이다. 독일군은 독감 말고도 폐렴과 이질에도 시달렸다.

영양이 부족하고 위생까지 나쁜 열악한 참호에서 수많은 병사가 모여 생활하는 환경은, 바이러스가 퍼지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여러분은 얌전히 주기도문을 외우고 계십시오! 독일이 병을 치료해 줄 수 없다면 우리가 해 주겠습니다. 두 달 후면 여러분은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고기와 근사한 식사를 얻게 될 것이고, 독감은 여러분을 놔두고 떠날 것입니다.」

연합국도 독감으로 고생하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한껏 이 상황을 이용하며 독일의 상공에 선전물을 뿌렸다. 풍족한 환경에서 잘 먹고 있는 연합군 병사들의 사진이 첨부된 건 물론이었다.

"지긋지긋해. 도대체 이 망할 전쟁은 언제 끝나나!"

"최후의 1인이 살아남을 때까지 계속되겠지."

끝없는 전쟁, 기아, 그리고 지독한 전염병까지.

독일인들은 도대체 왜 전쟁을 계속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가장 전의를 불태웠던 독일조차 이럴 진데, 그 동맹국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죽음의 청기사가 모든 생명을 앗아가기 전에 종전을 필요로 했다.

혁명이 임박했다.

- 257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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